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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보르헤스 > jazz standards를 통해 풀어보는 사랑의 단상(part2)

 

외설스러움(OBSCENE)


내 사랑은 “창녀들의 요란한 웃음소리를 들으며... 자신을 음란하고도 벌거벗은 제물로 만드는 황홀감에 사로잡혀 장엄하고도 악취 풍기는 사정(射精)의 끔찍한 소리를 지르며 전율하는 놀라운 감수성의 성적 기관이다.(조르쥬 바타이유)


추천하는 Jazz Standards




I've Got you under your skin


재즈의 어원이 jive와 ass의 결합으로 이루어진 단어로 여자의 성기를 의미한다는 설이 있기도 하지만 그런 것을 접어두고서라도 이 곡만큼 외설스러운 곡이 있을까 싶다.

있다면 나에게 살짝궁 귀띔해 주시길...


추천하는 음반으로는 Diana Krall의 와 Stan getz quartets의 동명의 음반.

개인적으로 남성분들은 반드시 Diana Krall의 음반을 선택하시길. 그녀의 멋진 외모는 이 곡을 더할 나이 없이 황홀하게 만든다는 점을 반드시 참조하시길 바라며...

여성분들은 당연히 스탄 겟츠의 음반을 흐흐 녹습니다 마구


깨어남(REVEIL)


서글픈 깨어남, 마음이 찢어지는 듯한(다정함으로) 깨어남, 텅 빈 깨어남, 순진한 깨어남, 까닭 모를 불안한 깨어남(“그러자 갑자기 그의 불행이 생각 속에서 명백해 졌다. 사람은 고통으로는 죽지 않는다. 그렇지 않다면 나는 이 순간에 벌써 죽어 있었을 것이다.”)


추천하는 Jazz Standards

 




Falling in love with love


열풍과도 같았던 사랑의 시기가 지나게 되면, 우리는 다시 본질을 탐구하게 된다. 내가 사랑한 것이 그/그녀 였는지 아니면 사랑 그 자체를 갈구한 것에 지나지 않았는지를 말이다.

이 곡의 가사처럼

사랑을 사랑하는 것은 자기를 속이는 일이요 어리석은 자의 놀음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순간의 쾌락을 위해서 혹은 무언가에 의지하고 싶어서 사랑의 감정을 잠시 빌려온 것이라면 이제 그 사랑을 서서히 잃어가는 것도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지도 모르겠지.


추천하는 음반은 Heren Merrill과 Clifford Brown의 멋진 협연이 돋보이는 을 최고의 선택으로 꼽을 수 있다. 차선으로는 Sarah vaughan의 를 연주 음반으로는 Hank Mobley가 발군의 실력을 과시한 동명의 음반을 들 수 있겠다. Bill evans의 연주 또한 상당히 매력적이고 기교 또한 흠잡을데 없지만, 그의 음악은 너무 청량하다고나 할까 왠지 이 곡에는 어울리지 않는 듯 해서 PASS! 


질투(JALOUSIE)


질투하는 사람으로 나는 네 번 괴로워한다. 질투하기 때문에 괴로워하며, 질투한다는 사실에 대해 자신을 비난하기 때문에 괴로워하며, 내 질투가 그 사람을 아프게 할까 봐 괴로워하며, 통속적인 것의 노예가 된 자신에 대해 괴로워한다. 나는 자신이 배타적인, 공격적인, 미치광이 같은, 상투적인 사람이라는 데 대해 괴로워하는 것이다.


추천하는 Jazz Standards

 




My Foolish Heart


진화심리학자 데이비드 버스의 <위험한 열정, 질투>라는 책에서는 사랑하는 사람을 파괴할 정도로 극단적인 질투를 오셀로 증후군이라 부른다. 세익스피어의 4대비극중 하나인 오셀로에서 따온 이 병명은 전체 살인 사건의 13퍼센트가 배우자 살해이며, 그 주된 원인이 질투에 있다는 것을 주목하면서 더욱 알려졌다. 지나친 질투는 대단히 파괴적이고, 비극적이지만 적절한 질투는 헌신적 관계의 특징이라는 점을 이 진화심리학자는 질투라는 감정을 통해 역설하고 있는 것이다.


추천하는 음반으로는 Bill Evans trio의 가 최고의 선택이다. 재즈계의 쇼팽이라 불리는 빌 에반스의 명징하고도 청량한 피아노 터치, 드럼의 폴 모션, 비운의 천재 베이시스트였던 스콧 라파로! 이 세 명이 빚어내는 interplay는 과히 피아노 트리오의 최고봉이라 할 수 있다.

보컬 곡으로는 얼마 전 소개했던 Carol Sloane! 농후하면서도 밀도 높은 그녀의 목소리는 여성재즈보컬이 재즈에서 보여줄 수 있는 모든 것을 보여주었다!


언쟁(SCENE)과 마귀(DEMON)


나는 내게 상처를 줄 수 있는 이미지들(질투, 버려짐, 수치심)을 연신 떠올리면서 스스로를 자해하려 하며, 천국으로부터 추방하려 한다. 이렇게 하여 열려진 상처를, 다를 상처가 내도하여 그것을 잊어버리게 할 때까지 다른 이미지들로 양분을 주고 부양한다.


추천하는 Jazz Standards

 




Love me or Leave me


I want your love

don't want to borrow

to have it, today

give it back, tomorrow

your love is my love

there's no love for nobody else


나는 당신의 사랑을 원해요

하지만 애걸하는 사랑은 싫어요.

오늘은 갖고 놀다가

내일은 돌려주는 사랑 따윈 싫어요.

당신의 사랑은 나의 사랑

다른 누구의 사랑도 아니에요


love me or leave me

let me be lonely


날 사랑하든지 아님 떠나세요.

나를 혼자 있게 두세요.


추천하는 음반으로는 역시 사랑하면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사람. 바로 빌리 할리데이다. 그녀의 목소리가 처음부터 husky한 것은 아니었다. 고통스럽고 굴곡 많은 삶이 그녀로 하여금 허스키하지만 보석처럼 빛나는 “빌리 할리데이”만의 목소리를 만들어 주었다. 연주 음반으로는 Miles Davis의 Walkin'이 최고의 선택일 듯. Miles Davis를 필두로 J.J. Johnson, Lucky Thompson, Dave Schildkraut, Horace Silver, Percy Heath, Kenny Clarke 등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막강한 라인업을 구축하여, 완벽하리만치 소름끼친 연주를 들려준다.


파국(CATASTROPHE)


내 모든 육신은 뻣뻣해지며 뒤틀린다. 날카롭고도 차가운 섬광 같은 순간에 나는 내게 선고된 파멸을 본다. 그것은 힘든 사랑의 예의 바르고도 은근한 우울증과는 무관한, 버림받은 주체의 전율과도 전혀 관계가 없는 것이다. 나는 울적하지 않다. 전혀 울적하지 않다. 그것은 파국처럼이나 분명한 것이다.

“난 끝장난 것이다!”


추천하는 Jazz Standards

 



I Cried For You


이 곡은 빌리 할리데이에 많은 부분을 빚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곡이 재즈 스탠더드로써 확고한 위치를 구축하게 된 것은 빌리 할리데이가 이 곡을 여러 차례에 걸쳐 부르고, 수많은 녹음을 남겼기 때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하지만 이 곡의 추천음반으로는 빌리 할리데이의 것을 들고는 싶지는 않은 데, 그녀의 곡은 마치 차가운 서리가 잔뜩 서려 서늘한 한기마저 품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당신 때문에 울었죠, 이번은 당신이 나를 위해 울 차례에요.” 라는 가사는 얼핏 들으면 ‘빌리 할리데이’식의  곡 해석이 분명 자연스러운 것일 테지만, 이 곡의 내면에는 단순히 버림받은 여자의 처절한 恨만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이미 뒤틀리고 어긋나버린 지나간 사랑의 후회가 아닌 한땐 너무나도 소중하고 아름다웠던 옛사랑의 노스탤지어를 이 곡은 함께 안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녀보다는 Ella Fitzgerald의 서글프고 애절한 I Cried for you 가 내 정서에는 더욱 맞다.


별은 빛나건만(E LUCEVAN LE STELLE)


“별은 빛나고 있었다.” 그러나 그 행복은 결코 그대로는 돌아오지 않는다. 건망증은 내 마음을 충족시켜 주고, 또 아프게 한다.


추천하는 Jazz Standards

 




"별은 빛나건만"은 푸치니의 3대 오페라중 하나인 토스카의 주옥같은 아리아 중 백미로 뽑힌다. 아직 들어보지 않으신 분들은 한번 들어보시는 것도 괜찮을 듯.. 빅토르 데 사바타 지휘로 마리아 칼라스가 토스카로 분한 1952년도 녹음이 명반으로 잘 알려져 있다. 특히 쥬세페 디 스테파노가 부르는 “별은 빛나건만”은 헐! 천의무봉의 경지이다.


각설하고 재즈 스탠더드 곡으로 아마 Stardust만큼 이 곡에 잘 어울리는 곡이 있을까? stardust를 작곡한 호기 카마이클은 어쩌면 엘리트 코스라고 할 수 있었던 인디애나 대학의 법학과를 다니던 중에 파멸적인 성격의 재즈 뮤지션 빅스 바이더벡을 만나 의기투합해 다니던 학교를 그만두고, 자신도 본격적인 재즈 뮤지션의 길을 걷게 된다. 그런 낭만적인 성격의 소유자였던 그가 결혼이 허가되지 않던 학생 시절 연인의 모습을 보고 하늘의 별을 보며 흥얼거리던 멜로디가 그대로 stardust가 되었던 것이다.


추천하는 음반으로는 다. 우리의 사랑은 처음 무렵에는 입맞춤 하나하나가 영감이었지만, 그것은 이미 지난 일이고 지금 나의 위안은 노래의 별똥 속에 있다라는 내용의 가사처럼 이 곡의 매력은 씁쓸하면서도 은은한 여운을 얼마나 오랫동안 잡아주느냐가 관건인데 두 음반 모두 테크닉과 감성 어느 면으로도 절정의 경지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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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한샘 > (퍼온글)인문학 위기의 진짜 이유

필자가 인문학 위기에 대해 이야기할 처지가 되는지 모르겠다. 근자에 인문대 교수들이 위기를 선언할 때 사회과학자들은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끼어들기가 더욱 그렇다.

그래도 남의 일 같지 않아 귀 기울이고 있으니 필자도 평소 느끼던 문제들이 들려온다. 학생들은 인문학과를 기피하고, 졸업생들은 취직이 안 되고, 인문학 연구지원에는 인색하다는 등의 이야기 말이다. 결국에는 학과를 없애야 될 정도로 인문학이 대학.사회.정부로부터 홀대받고 있다는 것이다. 성토는 곧 물질만능주의에 병들어 있는 사회에 대한 질책으로 이어진다.

여기서 두 가지 의문이 생긴다. 첫째는 이런 문제라면 사회과학도 동병상련의 아픔을 가지고 있을 터인데 이 '위기'를 모르니 더욱 위기가 아닌가 하는 생각. 둘째는 학생들을 재미나게 해주고, 교수에게 연구비를 더 많이 지원하고, 사회인의 정신교육을 강화하면 문제가 해결될까라는 의문이다.

이런 식의 해법은 대증요법에 지나지 않는다. 약효가 떨어지면 곧 병이 도질 것임에 틀림없다. 그렇다면 근본 원인은 무엇인가.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한마디로 말한다면 인문학이 마땅히 던져야 할 질문을 잊어버렸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사람은 살기 위해 질문을 던진다. 아이들이 자라면서 던지는 질문 공세, 얼마나 괴로운가? "이게 뭐야, 이게 뭐야" "왜? 왜?" 대학에서 하는 일도 이것과 전혀 다르지 않다.

인문학이 전문적으로 던지는 질문은 "이게 뭐야"다. 예컨대 "삶이란 무엇인가" "사회란 무엇인가" "역사란 무엇인가" 등의 질문이 그것이다. 그런데 이런 질문을 받으면 우리는 그 자리를 피하고 싶다. 아니면 웬 생뚱맞은 이야기를 시작하나, 화가 나기도 한다.

이러한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서는 먼저 "'사람'이란 무엇인가"의 문제에 대해 해결을 봐야 한다. 인문학이 본질적으로 '사람학'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런데 21세기에 이르러 동서양을 막론하고 "사람은 별것 아닌 존재"로 낙착을 본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 필자의 느낌이다.


"사람이 정말로 별것 아닌가"라는 문제를 놓고 학생들과 씨름하다가 그러면 원점으로 돌아가 개와 사람의 차이에 대해 생각해 보자고 제안했다. 이 얘기, 저 얘기 하는 가운데 "개도 거울을 볼까, 거울 속에 자기가 보이면 그게 자기인 줄 알까"라는 데 생각이 미쳤다. "바로 이것이다. 이것이 개와 사람의 종차(種差)다"라고 선포하고 정리해 보니 '사람'이 보였다. 사람은 거울 속에다 자기(self)를 끄집어내어 볼(reflect) 뿐만 아니라 자기가 원하는 모습을 상상하고 창조한다. 거울 앞에서 머리 빗질하며 근사한 자기 얼굴을 꿈꿔 보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을까.

인간은 이렇듯 꿈꾸는 존재다. 물론 꿈을 안 꿀 수도 있다. 그때는 개 같은 인생이 된다. 인간이 자기 자신에 대해, 사회에 대해, 역사에 대해 꿈을 꿀 때 사회가, 역사가, 인생이 변한다. 그런데 우리는 개화기 이후 여태까지 서구 근대인들의 꿈을 강요받아 오고 있다. 다른 꿈을 꾸면 안 된다. "인간은 합리적이고, 사회에는 갈등이 필연적이고, 역사에는 법칙이 있다"며 그들이 근대라는 짧은 기간 동안 경험한 것을 우리에게 정답이라고 우기고 있다. 문제는 여기에 있는 것이다.

우리의 인문학이 "사람이란 무엇인가"의 질문으로 되돌아가서 인간 존재의 깊이를 복원하고(적어도 우리가 개보다는 낫지 않은가), 우리가 꾸는 꿈의 정체를 해석해 줄 수만 있다면(여기가 문화종속에서 벗어나 문화창조로 넘어가는 대목이다) 학생이, 사회가, 정부가 돌아올 것이다. 이를 위해 우리가 가진 자원은 세계문화유산급이다. 아직도 잊지 않고 "인간아, 인간아"를 외치고, "꿈은 이루어진다"며 밤을 새우는 우리가 있지 않은가? 제발 성공해서 "왜?"라는 질문에 매달려 '물건학'으로 연명하는 사회과학을 구원해 주기 바란다.

조중빈 국민대.정치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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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로쟈 > 김현, 또는 마음의 풍경화

며칠간 책들과 씨름했다. 이때 '씨름'은 물론 비유적인 의미에서 쓴 것이지만 비유만은 아닌 게 책을 읽고 이해하느라 고투했다는 의미에서가 아니라 책장의 있는 책들을 모두 빼서 다시 정리하느라 진땀을 뺐다는 의미에서의 '씨름'이기 때문이다(그 결과 삭신이 쑤신다). 딸아이의 방을 만들어주려고 몇 주전부터 진행중인 프로젝트의 하이라이트로서 3단 책장 6개와 5단 책장 3개에 꽂혀 있던 책들을 모두 거실(혹은 베란다)로 빼내고 그걸 기화로 서재의 책들도 전부 재배열했다. 전쟁터 같은 집안 풍경이 다소나마 정리된 게 어젯밤이다.

오늘은 하루 종일 칠하느니 마느니 갈피를 못 잡다가 결국 딸아이의 방에 칠할 '친환경' 페인트를 구했고 그 사이에 날은 저물었다. 어젯밤과 오늘 오전에 본 비디오를 반납하러 나갔다가 편의점에서 조간신문을 사들고 온 게 조금 전이다. 읽은 시간상으론 '석간'이라 해야 할 그 신문이 수요일자 한국일보이고 내가 읽은 건 고종석의 '말들의 풍경'이다. 특별히 오늘은 '文靑 사로잡은 비평의 신화' 김현을 다루고 있기에 여기에 옮겨놓도록 한다. 김현, 김윤식이란 이름은 내 청춘의 10년을 사로잡았던 '신화'이기도 했었기에(사실 고종석이 '말들의 풍경'이란 제명 자체를 빌어온 김현에 대해서는 연재의 말미에서나 다루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었다).

 

 

 

 

칼럼의 서두에서 언급되고 있지만, 이 불세출의 비평가가 세상을 뜬 지도 열여섯 해가 되었다. 그의 부고기사를 신문에서 읽고 어떤 막연한 의무감에 영안실이 안치돼 있다는 병원에 전화를 걸었던 기억마저 나는 갖고 있다(짧게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라고만 되뇌었던가). 책장 정리를 다시 하면서 가장 가까운 서가에 그의 책 대여섯 권을 아직 꽂아둔 것도 그런 '인연'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인지도 모르겠다. 그 중 손이 닿는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책이 <말들의 풍경>(문학과지성사, 1993 5쇄본)인데, 그가 세상을 떠난 1990년 12월에 나온 초판이 아닌 것은 내가 어떤 사정으로 이 책을 한번 더 샀기 때문이다(초판은 내가 군복무시절에 산 책이어서 지방에 놓아둔 것으로 기억된다).

사후적인 회고가 되겠지만, 언제부턴가 지난 90년대 문학을 '김현 이후의 문학'으로 나는 기억/규정한다. 마땅한 당대의 비평가를 갖지 못한 문학의 허전함을 나는 지우지도 채우지도 못하겠다. 칼럼의 중간에 나오는 고종석의 말을 미리 빌자면 "사실 김현은 문학평론을 그 자체로 읽을 만한 텍스트로 만든 거의 첫 비평가고, 어쩌면 마지막 비평가일지도 모른다." 그보다 목소리 큰 비평은 많고 그보다 예민한 비평도 없지는 않다. 하지만, 그는 비평도 '문학'이라는 걸 확증시켜준 (어쩌면) 마지막 비평가였고, 그래서 그의 부재는 아쉽고 유감스럽다. 최근 '근대문학의 종언론'에 기대어 비평의 종언을 시비하는 이들도 없지 않지만 만약 비평에 종언이 있(었)다면 그건 지난 1990년에 일어난 사건으로 기록되어야 할 것이다. 한국 현대사에서 4.19 세대가 소위 한국사의 '근대' 혹은 '근대 시민정신'과 '학생운동의 정신'을 웅변하는 세대였다면 김현이야말로 4.19세대의 가장 대표적인 비평가였고, 지난 1990년은 그가 세상을 떠난 해이니까.   

한국일보(06. 10. 04) [말들의 풍경]<31> 김현, 또는 마음의 풍경화

문학비평가 김현(1942~1990)이 돌아간 지 16년이 되었다. 16년이면 한 사람의 생애와 정신의 궤적을 감정의 동요 없이 되돌아보기에 꽤 넉넉한 시간적 거리다. 그에 대한 친구들의 사랑도, 적들의 미움도 그 격렬함이 많이 잦아들었을 테다. 그가 작고하고 세 해 뒤에 16권으로 완간된 ‘김현문학전집’의 종이빛깔도 제법 누렇게 되었다.

김현 이후 16년 세월은 이른바 ‘문지 동아리’ 안에서 김현 신화가 더욱 굳건해진 세월이기도 했고, 그 동아리 바깥에서 김현 신화가 사뭇 바랜 세월이기도 했다. 서로 반대 방향으로 치달은 이 세월의 힘 가운데, 더 큰 것은 뒤쪽이었던 듯하다. 그것은 생전의 김현이 누린 권위가 워낙 컸던 탓이기도 하다. 정점에 이른 자에겐 또 다른 상승의 가능성보다 추락의 가능성이 훨씬 더 크다. 아닌게아니라, 그 16년 세월은 김현 글의 모자람을 드문드문 드러낸 세월이었다.

그 모자람은 김현 둘레 사람들의 글과 견주어서도 더러 드러난다. 김현 이후 16년은 김현의 제자나 후배 비평가들의 나이를 김현보다 더 먹게 만들었다. 그가 아끼던 후배 김인환과 황현산은 이제 그들의 선배보다 훨씬 더 나이를 먹었고, 그가 아끼던 제자 정과리는 스승이 도달했던 마지막 나이에 이르렀다. 그 제자와 후배들의 글들 옆에 나란히 놓일 때, 김현의 글은 어쩔 수 없이 낡아 보인다. 사실 이런 ‘낡음’은 이미 김현 생전에도 기미를 드러냈다. 김현의 어떤 글은 정치함에서 김인환만 못해 보이고, 자상함에서 황현산만 못해 보이며, 화사함에서 정과리만 못해 보인다.

생전에 낸 마지막 평론집 ‘분석과 해석’의 서문에서 김현은 청년기부터 그 때까지 자신의 변하지 않은 모습 가운데 하나로 ‘거친 문장에 대한 혐오’를 거론했으나, 그 혐오를 철두철미하게 실천한 것 같지는 않다. 청년 김현의 글에서는, 청년 정과리의 글에선 찾기 어려운 유치함과 허세 같은 것도 읽힌다. 현학은 ‘배운 청년’이 흔히 앓는 병이지만, 청년 김현은 그 병을 좀 심하게 앓았던 듯하다. 물론 김현은 이내 그 병에서 회복되었다.

그러나 김현의 글은, 이 모든 모자람에도 불구하고, 이 후배와 제자들의 글보다 훨씬 더 맛있게 읽힌다. 그의 윗세대나 동세대 평론가들의 글과 견주어서는 말할 것도 없다. 사실 김현은 문학평론을 그 자체로 읽을 만한 텍스트로 만든 거의 첫 비평가고, 어쩌면 마지막 비평가일지도 모른다. 그것은 김현이, 적어도 30대 이후의 김현이, 비평이란 수필의 일종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드문 비평가였다는 사실과도 관련 있을 테다.

그에게 비평은 논리와 지식의 전시장이 아니라 직관과 감수성의 연회였다. 김현은 비평을 제 앎을 드러내는 자리로 사용하지 않고, 마음(의 파닥거림)을 주고받는 자리로 사용했다. 작품론이나 작가론에서, 김현은 (초기 글들을 제외하고는) 자신의 불문학 교양을 거의 드러내지 않았다. 그러나 김현 특유의 직관과 감수성이, 모든 뛰어난 비평가에게 그렇듯, 오래 축적된 문학 교양과 어찌 관련이 없으랴?

김현이 자신의 직관과 감수성으로 작품에서 길어낸 의미가 늘 옳았던 것 같지는 않다. 다시 말해, 한 작품이 김현의 손길을 통해 늘 제 비밀을 고스란히 드러냈던 것 같지는 않다. 그러나 이 말은 얼마나 어리석은가? 한 작품에는 고정된 의미(들)만 있다는 속 좁은 문학관이 그 속에 웅크리고 있으니 말이다.

그것은 생전의 김현이 결코 동의하지 않았던 견해다. 그러니 이 말을 이렇게 바꾸자. 김현이 작품에서 길어낸 의미가 늘 표준적이었던 것 같진 않다고. 사실은 그 반대다. 김현의 말 읽기, 마음 그리기는 거의 언제나 독창적이었고, 바로 그 독창적인 의미화를 통해 한 작품을, 한 작가의 정신세계를 두텁게 만들었다. 모든 독창적 해석이 누군가에게는 오해로 받아들여진다면, 김현은 오해의 대가였다고도 할 수 있다.

김현은 한 작품을 그 안으로부터만 읽어내지 않았다. 그는 한 작품을 그 작가의 다른 작품 전부와의 맥락 속에서 읽을 줄 알았고, 무엇보다도 한 세대 내 또는 세대간 영향(의 불안)이라는 커다란 맥락 속에서 읽을 줄 알았다. 그것은 유년기 이래 평생 이어진 그의 글 허기증 덕분이었다. 김현은 동시대 비평가들보다 글을 훨씬 많이 썼지만, 진짜 잊어서는 안 될 점은 그가 동시대 비평가들보다 글을 훨씬 많이 읽었다는 사실이다.

설령 그가 이런저런 작품들에 매긴 자리(생전의 김현은 ‘자리매김’이라는 말이 싫다고 고백한 바 있다. 자리매김이란 관계맺기, 관계짓기보다 훨씬 고착적이어서, 한 번 자리가 매겨지면 변경하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상자 기사의 ‘말들의 풍경’ 서문은 그의 이런 생각을 매혹적인 한국어로 펼쳐 보이고 있다)가 늘 공정하게 보이진 않았다 할지라도, 텍스트와 콘텍스트를 넘나들며 작품과 작가에게 그럴듯한 자리를 마련해준 것은 김현 이전에 아무도 하지 못한 일이었다. 사후에 출간된 독서일기에서, 김현은 자신의 글을 괴팍하다고 평한 어느 소설가의 말을 거론한 뒤, “괴팍하다니. 나는 내가 쓰고 싶은 글을 썼을 뿐이며, 남들도 다 쓸 수 있는 글들을 쓰는 것을 삼갔을 따름이다”라고 적고 있다. 김현의 이 자부심은 온전히 정당하다.

김현의 글은 어느 순서로 읽어도 술술 읽힐 만큼 자기완결적이지만, 시간축을 따라 읽을 때 그 저자의 ‘인간적 매력’을 한결 또렷이 드러낸다. 그 ‘인간적 매력’이란 지적 정서적 윤리적 성숙의 여정이다. 청년 김현의 글에서 설핏설핏 보였던 문장의 어설픔, 현학 취미와 자기애는 만년 글에서 거의 말끔히 걷혀지고, 단정하되 윤기 있는 문체가, 타인에 대한 배려와 겸양이 독자를 맞는다. (물론 그는 자신의 ‘앎’에 대해서는 겸손했으나 자신의 ‘감식안’에 대해선 끝내 겸손하지 못했다. 그리고 자신의 감식안을 감식하지 못하는 한국 문단을 슬그머니 타박하기도 했다.) 기분 좋은 일이다.

지적으로든 정서적으로든 윤리적으로든, 나이가 늘 사람을 성숙시키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나이와 함께 푹 익은 인격을 바라보면, 기분이 좋아질 수밖에 없다. 그것이 한 분야의 세속적 정점에 이른 이의 인격일 때야, 더 말할 나위도 없다. 게다가, 생전의 마지막 평론집 ‘분석과 해석’과 유고 평론집 ‘말들의 풍경’에 묶인 글들은 한국어 산문이 도달한 아름다움과 섬세함의 꼭대기를 보여준다.

 

 

 



김현은 문학이 정치에 직접적으로 개입해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비정치적 문인이었지만, 그의 문학평론은, 특히 만년에 이르러, 폭력의 문제를 중심으로, 정치의 고갱이를 건드리곤 했다. ‘르네 지라르 혹은 폭력의 구조’(1987)와 그 즈음의 몇몇 평문에서 그가 탐색한 폭력의 의미는, 깊숙한 수준에서, 1980년 봄과 관련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김현이 전라도 사람이라는 것과, 역시 깊숙한 수준에서, 무관치 않았던 것 같다.

사회적으로 성공한 전라도 지식인들이 흔히 그렇듯, 김현도 ‘억눌린 자’와 ‘억누르는 자’ 사이에서, 아니 보편(적 지식인 됨)과 특수(한 소속감) 사이에서 정서적으로 동요하고 있었다. 제임스 쿤의 ‘눌린 자의 하나님’을 읽고 쓴 1986년 5월27일치 일기의 한 대목은 이렇다.

“나는 전라도 사람으로서의 나 자신에 대해 숙고했다. 때로는 혐오하면서, 때로는 연민을 갖고서, 그러나 대부분의 시간은 도피의 마음으로. 전라도 사람이라는 것 때문에 하숙을 거절당한 것, 사투리 때문에 놀림받은 것, 전라도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80년 이후에도 조용하다는 것…… 등의 것들이 뭉쳐져 내 가슴에 밀려들어왔다. 쿤의 책은 내 경험세계의 신학적 의미를 되묻게 만든다. 나는 억눌린 자인가? 아니다. 억눌림에서 벗어나기 위해 완전히 지배이데올로기에 종속되어 있는가? 그것도 아니다.”

‘문학장’ 속에서 권력을 효과적으로 획득하고 합리적으로 행사하는 방법을 알았다는 점에서 김현은 매우 정치적이기도 했다. 대학시절의 ‘산문시대’에서 ‘사계’와 ‘68문학’을 거쳐 ‘문학과지성’으로 이어지는 그의 동아리 운동에는 세대 전쟁과 세계관 전쟁이 버무려져 있었고, 김현은 늘 제 캠프의 우두머리 노릇을 했다. 그가 문학의 고유성과 (은밀한) 위엄을 그리도 강조한 것은 바로 그 자신이 ‘문학’이었기 때문이리라.

서가에 꽂혀 있는 김현 전집 가운데서 아무 거나 뽑아 들어 띄엄띄엄 읽노라면 문득 가슴이 울렁거린다. 거기에 내 글의 원형이 있기 때문이다. 세상을 바라보는 눈에서나 그 눈길을 담아내는 문체에서나 내 글은 김현의 글로부터 너무 멀리 떨어져 있지만, 그리고 격조와 깊이에서 도저히 김현의 글과 견줄 수 없지만, 그 근원은, 행복해라, 김현의 글이었다.(고종석 객원논설위원)

● '말들의 풍경' 서문 (앞부분)

말들은 저마다 자기의 풍경을 갖고 있다. 그 풍경들은 비슷해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다 다르다. 그 다름은 이중적이다. 하나의 풍경도 보는 사람에 따라 다르고, 풍경들의 모음도 그러하다. 볼 때마다 다른 풍경들은 그것들이 움직이지 않고 붙박이로 있기를 바라는 사람들에게는 견딜 수 없는 변화로 보인다. 그러나 변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그것이야말로 말들이 갖고 있는 은총이다.

말들의 풍경이 자주 변하는 것은 그 풍경 자체에 사람들이 부여한 의미가 중첩되어 있기 때문이며, 동시에 풍경을 보는 사람의 마음이 자꾸 변화하기 때문이다. 풍경은 그것 자체가 마치 기름 물감의 계속적인 덧칠처럼 사람들이 부여하는 의미로 덧칠되며, 그 풍경을 바라다보는 사람의 마음의 움직임에 따라, 마치 빛의 움직임에 따라 물의 색깔이 변하듯 변한다. 풍경은 수직적인 의미의 중첩이며, 수평적인 의미의 이동이다.

그 중첩과 이동을 낳는 것은 사람의 욕망이다. 욕망은 언제나 왜곡되게 자신을 표현하며, 그 왜곡을 낳는 것은 억압된 충동이다. 사람의 마음속에 있는 본능적인 충동이 모든 변화를 낳는다. 본질은 없고, 있는 것은 변화하는 본질이다. 아니 변화가 본질이다. 팽창하고 수축하는 우주가 바로 우주의 본질이듯이. 내 밖의 풍경은 내 충동의 굴절된 모습이며, 그런 의미에서 내 안의 풍경이다. 밖의 풍경은 안의 풍경 없이는 있을 수 없다. 안과 밖은 하나이다. 하나는 둘을 낳고 둘은 만물을 낳는다는 말의 참뜻은 바로 그것이다...

06. 10. 04.

P.S. 이 칼럼/페이퍼를 '곁다리텍스트'로 분류해놓는 것은 이전에 옮겨놓은,김윤식의 서문집에 대한 고종석의 칼럼('나는 '쓰다'의 주어다')과 짝을 맞추기 위해서이기도 하고 또 (지극히 정당하게도) 칼럼 말미에 인용돼 있는 <말들의 풍경> 서문 때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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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가넷 > [현대미술 따라잡기]제목 짓기는 창작의 핵심 요소

[현대미술 따라잡기]

제목 짓기는 창작의 핵심 요소
유진상 계원조형예술대 교수·미술이론
 

르네 마그리트, ‘듣는 방’(Chambre d’ ecoute).

현대미술에서 제목이 갖는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현대미술 이전 시기의 제목은 작품에 드러난 주제를 가리키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제목이 색채나 형태, 그림의 주제, 재료 등에 못지않게 중요한 지위를 차지하기 시작한 것은 다다이즘과 초현실주의부터다. 대표적인 작가는 마르셀 뒤샹으로, 그는 의도적으로 작품의 내용과 무관한 제목들을 붙인 최초의 작가였다.

 

개념미술의 효시라고도 할 수 있는 ‘유명론적 회화(nominalist painting)’ 중 개념을 처음으로 만들어낸 그에게 단어는 중요한 시각적 요소다. 그러므로 ‘레디메이드’에는 ‘단어’도 포함된다. 제목 혹은 그림에 들어가는 소재로 사용될 단어를 선택하는 방법에 대해 그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라루스 사전(프랑스에서 가장 일반적인 프랑스어 사전)을 집어 들고 ‘추상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 모든 단어를 베껴 쓴다. 즉 그것들은 구체적인 참조 내용이 없는 단어들이어야 한다.” 이렇게 선택된 단어들로 이루어진 작품 제목들 중에는 ‘재채기를 하세요, 르로즈 셀라비’ ‘너는 나를’ ‘정조의 모서리’처럼 그림과 상관없이도 강한 연상을 유도하는 것들이 있다. 그는 제목이란 ‘보이지 않는 색채’라고 규정하기도 했다.

또 다른 대표적인 예로는 르네 마그리트가 있는데, 그의 대표작인 ‘듣는 방’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 ‘인간의 조건’ 등은 작품의 시각적 요소와 제목 중 어느 쪽이 더 중요하다고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제목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

 

제목에 대한 연구로 유명한 존 웰치만(John C. Welchman)은 주요한 시각적 요소로서 제목의 대두가 19세기 말에 이미 시작됐다고 지적한다. 그는 1880년대 화가인 알폰스 알라이스를 예로 든다. 이 작가의 작품 중 온통 붉은색으로 이루어진 모노크롬 회화가 있는데, 이 작품의 제목은 ‘(북극광 효과가 있는) 홍해 해변에서 중풍기가 있는 추기경에 의한 토마토 수확’이다. 이런 식의 유머러스한 제목 붙이기는 1960~70년대에 광범위하게 이루어진 현대미술 경향의 특징적인 면들을 잘 드러내고 있다. 제목 짓기가 창작의 핵심 부분이 된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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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널 잘못고른 TV토론같은 '한반도' (펌)
  2006/07/16 12:46
이동진      

남과 북이 경의선 철도 개통식을 열려던 날,

일본은 1907년 대한제국과의 조약 내용을 내세워

이에 대한 모든 권한이 일본에 있다고 주장한다.

거액의 차관과 핵심기술 이전 사업의 철회를 무기로

일본이 대한민국 압박해오자,

사학계의 이단아인 최민재 박사(조재현)는

고종(김상중)이 숨겨둔 진짜 국새를 찾아

조약 문서에 찍힌 국새 도장이 가짜임을 밝히면

일본의 도발을 격퇴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무력시위까지 벌이는 일본에

강력하게 맞서던 대통령(안성기)이

최박사로 하여금 국새를 찾도록 지원하는 사이,

대일유화책을 주장하는 국무총리(문성근)는

국정원 서기관 이상현(차인표)를 시켜

국새 찾기 작업을 방해할 것을 명한다.

 

강우석 감독의 한반도는 메시지에 올인한 영화다.

그리고 그 메시지가 위험하고 조악한 영화다.

1세기 전 우리를 짓밟은 일본 등의 외세를 배격하고

통일을 이뤄내야 한다고 시종일관

우렁우렁 열변을 토해내는 이 영화는

흡사 패널을 잘못 고른

TV 토론 프로그램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을 안긴다.

자기확신이 지나친데다

말이 많고 다혈질이라서

종종 얼굴 붉힌 채 화까지 내며

장광설을 늘어놓는 패널의 모습이 떠오르는 이 영화 어조는

돈 내고 극장에 들어가서 2시간 넘게

역사 강의를 들어야 하는 관객에게

불편함을 안긴다.

 

일본인 등장인물들이

자신들끼리도 한국어로 대화하게 하고,

고종황제와 명성황후와 대통령이 카메라를 노려본 채

정면 클로즈업으로 비장하게 대사를 읊도록 하는 연출은

최소한의 필터도 없이 관객에게 감정적으로

직접 호소하길 원하는 이 영화의 직설적 화법을

그대로 드러낸다.

 

1세기 전의 비극과 오늘의 상황을 누차 교차편집해

기어이 관객에게 정답을 쥐어주고야 마는

편집의 조급함도 마찬가지다.

초강력 대응으로 일본에 맞서

나라를 구하는 선의 축

대통령-국정원장-국방부장관이라는 설정에서

이 영화가 부르짖는 민족주의가

어떤 색깔인지 극명하게 드러난다.

 

투캅스 공공의 적 실미도

숱한 흥행작을 내놓은 강우석 감독의 재능은

매력적인 캐릭터를 만들어내고

감칠맛나는 영화적 살을 붙여내는 데 있다.

그러나 캐릭터의 생생함을 포기하고

뼈 뿐인 사건 만으로 이어붙인 한반도를 보다보면

왜 그가 이런 선택을 했는지 못내 아쉬워진다.

 

애국자와 매국노 밖에 없는

이 영화의 종잇장 같은 캐릭터들을 연기하며

배우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치켜 뜬 눈에 핏발을 세우고

시사 다큐 프로그램의 MC처럼

한 단어씩 힘주어 씹어 뱉듯 대사를 처리한다.

 

가장 중요한 캐릭터인 최박사는

극 초반 주부 대상 교양강좌에서

(명성황후 시해일인) 11월17일이 무슨 날인지 아느냐고

질문을 던진 후 답을 얻지 못하자

초컬릿 주는 날은 기억하면서

국모가 시해된 날은 모르냐

마구 반말로 호통친다.

 

주부를 연예인 타령이나 하고

역사의식 없는 속물로 그려낸

이 장면의 여성 비하적 시선은 잠시 접어두더라도,

11월17일이 무슨 날인지 알지 못한다는 이유만으로

(이 글을 쓴 사람을 포함해

아마도 그걸 모르고 있을 대부분의 한국인들에게)

내려다보며 꾸중할 수 있다는 도덕적 우월감은

대체 어디서 온 것일까.

길이란 오직 하나 밖에 없고,

내가 그 길을 먼저 가고 있으니

무조건 따라와야 한다고 강변하는

이 영화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의 반대란 이 아니라

독선임을 새삼 느낄 수 있다.

 

그런데 어쩌면 이 영화의 진짜 문제는

메시지의 내용과 말하는 방식이 아닐 수도 있다.

정치와 달리 최대한의 상상력을

허용해야 하는 창작의 영역에선

맹목적 반일이든 위험한 민족주의든

하고 싶은 말을 맘껏 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영화를 다 보고 나면

결국 떠오르는 것은 보들레르의 말이다.

누구에게도 자신을 말할 권리가 있다.

단, 남을 지루하게 하지 않는 한에서.

 

- 이동진님 블로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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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퇴전문 2006-07-20 01: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검찰 홍보 영화를 공짜로 찍어 줬던 공공의 적 II 까지 보고, 이제 안 보기로 했습니다. 정치적 시시비비는 잘 모르겠고, 뭣보다 재미가 없어서요.

프레이야 2006-07-20 01: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공공의 적 2가 그랬나요? 강우석 감독은 아무래도.. 흠..

중퇴전문 2006-07-20 01: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동진님이란 이름 탓에 몰랐는데, 이동진 기자였군요. 산케이신문과 자매협약을 맺고 있는 신문에서 기자 일 하느라 이분도 고생이 많죠. '정치적으로 올바른' 민족주의나 반일이었다 하더라도, 아마 핑계거리는 많았을 겁니다. 첫 방문에 좀 생뚱맞긴 하지만, 그냥 생각이 나서 적었습니다.

프레이야 2006-07-20 01: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랬군요. 몰랐던 사실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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