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녹음실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헤드폰을 빼고 문을 빼꼼히 여니
송혜교 닮은 팀장 얼굴이 동그랗게 들이민다.
"밖에 눈 와요!!! 어서 나와보세요."
폰을 들고 나가서 포슬포슬 내리는 눈을 몇 컷 담고 여직원들과 같이 서로 사진 찍어주고 깔깔.ㅎㅎ
한두 시간 내렸는데 제법 세상이 하얗다. 눈 속에 새빨간 피라칸다가 방긋 돋보이고.
눈 오는 날, 이혜경 소설집 <너 없는 그 자리>를 다섯 시간 내리 읽어 절반 정도 했다.
2012, 12, 5 시작, 7일 119쪽까지 완료
9편의 이야기 중 어제는 네번째 '그리고, 축제'까지 읽고 다섯번째 '감히 핀 꽃' 조금 들어갔다.
갈수록 이혜경 작가에게 빠지고 있다. 특이한 서술 방식, 상처입고 외로운 사람들의 역전을 위한
희망없는 듯 희망있는 결말과 어딘지 모를 메마른 온기.
페스티벌은 그 비극 이듬해에 시작되었다.(중략)
옴 샨티 샨티 샨티 옴. 갈라 페스티벌에서 인사말을 하던 사람들마다 마무리할 때 쓰던 진언.
그 뜻을 알려준 사람은 앨리스였다. "옴 샨티는 '모든 인류에게 평화'를 뜻해요. 그걸 세 번
반복하는 건, 정신의 고통과 육체의 고통, 그리고 우리로서는 어쩔 수 없는 자연재해 때문에
생긴 고통에서 풀려나 마음의 평화를 얻으라는 뜻이지요."
- '그리고, 축제' 중 (p113)
2012, 12, 5 1차 편집 시작. 어제 80분 소요 127쪽까지 완료.
레오의 문장부호에서 엿보이는 심리를 에미가 해체하는 대목이 다시 봐도 재밌다.
그리고 여는 괄호는 글쓰기상의 형식적인 기교, 그다음의 점 여섯 개는 비밀에 싸인
생각의 갈래들. 이제 충분한 고뇌를 거쳤으니 괄호를 닫아 말줄임표에 담긴 혼란을 꼭꼭
싸매두는군요. 그러고 나서는 내면의 혼돈 속에서도 외적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보수적인 마침표.
(중략) "좋아요, 하지만(......). 아니에요, 하지만이 아니라, 좋아요!"는,
당신의 흔들리는 마음이 보여주는 화려한 론도예요!
공개리에 행해진 당신의 의사 결정 과정이 들려주는 매혹적인 돌림노래예요!
이 남자는 자기가 뭘 원하는지 모른다는 사실을 정확하게알아요. 다른 사람들과 달리 자기가
그 사실을 안다는 걸 남에게 전달할 줄도 알아요. (p92-93)
오늘은 집에서, 이런저런 일상에 자꾸 밀리는 감이 있는 <안나 카레니나 2>를 집중해서 읽고 진도 나가야겠다.
레빈이 러시아 농부와 농업에 대해 구체적으로 고심하고, 일꾼들에게 이득이 분배되고 더 많은 수확을 얻기 위한
방안을 실천하려는 중이다.
우린 이미 오랫동안 노동력의 본질에 대해 묻는 일 없이 우리 나름의 방법으로,
즉 유럽식의 방법으로 실패를 거듭해오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앞으로는 어디 한번
노동력을 관념적인 노동력이 아니라 본능을 갖춘 러시아의 농부로서 인정하고,
그들에게 적응하도록 농업을 정리해보십시다.
(중략)
처음에 레빈은 새로운 조합 조직 아래 농사 전체를 지금가지 해오던 대로
농부들과 일꾼들과 마름한테 맡기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내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일을 몇 갈래로 구분해야겠다고 결심했다. 축사, 채소밭, 목초지, 경작지,
여럿으로 구획된 밭이 저마다 다른 사업 종목으로서 구분되지 않으면 안 됐다.
(p202-205)
어제는 뜻밖의 설경도 선물이었는데, 영화 '나의 ps 파트너'를 보고 집에 오니까,
포항에서 날아온 과메기가 기다리고 있었다. 곁들여주신"화이트 과메기데이~"라는 문자에 빵 터졌다. ㅎㅎㅎ
오늘 점심으로 더 먹고 힘내자. 보내주신 따뜻한 마음, 고맙습니다.^^
옴 샨티 샨티 샨티 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