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주전 부터 점자도서관 녹음실 책꽂이에 위의 책들 앞에 이런 메모가 붙어있다.
"마광수, 스릴러, 먼저 녹음 부탁 드려요."
나도 그 메모는 봤지만 썩 끌리지 않아 손이 가지 않았는데 어제는 팀장에게 물어봤다.
"마광수 책이 잘 안 나가나 봐요? 너무 표현이 적나라해서 읽기가 좀 그래서 그런가?"
미혼인 팀장과 다른 샘 한 명이 웃으면서 그렇단다.
책장 쓱 훑어보고는 모두 도로 꽂아둔다는 거다.
"근데 시작장애우분들이 마광수 책을 많이 원하나요?"
대답은 의외였다.
연애소설이나 스릴러, 그러니까 다소 자극적인 책을 많이 원한다는 거다.
"대상 연령대는요?"
이 대답도 의외였다.
20대부터 70대까지 남자분들 대부분이 그렇단다.
개중에는 전에 그 대구에 사는 60대 분처럼 철학이나 명상 쪽에 심취한 분들도 있어서
그런 분들은 특별히 신청하시지만 대개는 상상의 나래를 펴며 기분좋게 술술 들리는 달콤한 책을 원하는 거다.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특별히 개인이 신청한 도서가 아닌 다음에는
낭독녹음 봉사자들이 책을 골라서 녹음하는데
마광수류의 야한 연애소설이나 자극적인 스릴러물은 잘 간택되지 않는 다는 거였다.
그래서 특별히 이런 메모를 써붙여놓게 되었다는 거다.
나는 잠시 갈등이 생겼다.
"그럼 내가 마광수 전담으로 해볼까요? 호호호"
- "그래 주시면 좋죠. 저희들 편집할 때도 들으면 좀 그렇지만 그래도 원하시는 분들이 많으니... 부끄ㅎㅎ"
위의 책 세권이 일단 꽂혀있었는데 대충 훑어봐도 각 페이지마다 직접적인 표현과 노골적인 단어들이 수두룩하다.
사실 그건 괜찮은데 스토리나 문체가 읽기에 자꾸 걸리면 녹음하는 사람으로서 재미가 반감되는데 그게 걱정.
일단 책을 도로 꽂아두었다.
지금 녹음 마무리하고 있는 건 바로 안치 민이 쓴 <펄벅을 좋아하나요?>.
목사 아버지를 따라 중국에서 어린 시절과 청년기를 보낸 펄 벅과 오랜 우정을 나눈 안치 민의
실화가 담긴 이야기로 중국근대역사를 관통하며 중국풍속도 나온다.
아무튼 지금 내 고민은,
내가 원하는 책을 녹음하는 게 맞을까, 나는 읽기에 내키지 않아도 시각장애우가 원하는 책을 하는 게 맞을까, 입니다.
봉사하는 사람으로서 고민되는 부분이네요.
아무래도 후자가 맞을 듯한데 그래도 내가 즐겁지 않으면 그게 꼭 옳은 걸까요?
조언 부탁합니다~~
다음 책으로 나는 코엘료의 '브리다'를 골라뒀는데 그걸 미루고 마광수를 먼저 읽는 게 맞을까요? 안 내켜도...
검색해보니 마광수가 쓴 책이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많네요.
연세대 학생들이 쓴, 마광수는 옳다, 와 강준만의 마광수 살리기, 등 마광수 옹호론도 많습니다.
크게 관심을 두지 않은 사람이라 그런 것들을 다 찾아 읽어보진 않았지만요...
마광수를 좋아하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