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아이 담임 선생님이 붓펜으로 아이들에게 글쓰기를 시켰나보다.  

오늘 아이 책상을 정리하다 발견한 글귀. 한지에 세로쓰기로 적어놓았다.   

아마 칠판에 적어주고 그대로 베껴쓰라고 하셨을 거다.^^ 

눅눅하고 후텁지근한 날에 이런 시, 나쁘지 않네.ㅎㅎ

---------

부모님께 

아침 저녁으로 부는 바람이/ 제법 포근하게 느껴집니다./ 매화를 떠올리며 시 한 편/  

적어 올리겠습니다. 

설매사 

꽃샘바람 앞에 남 먼저 피는 바람 

벌 나비 허튼 수작 꺼리는 높은 뜻을 

우러러 천년을 두고 따름직도 하더니라. 

정소파 

 

 늘 건강하십시오.

경인년 오월 

박*령 올림 

 

 

----------- 

아이는 오늘 낮에, 상담 선생님과 한 시간 정도 얘기 좀 하고 집에 오겠다고 메시지를 보냈다. 집에 온 아이에게 무슨 이야기를 나눴냐고 물으니 씩 웃으며 그냥 ,이라고만 대답했다. 어떤 이야기? 말하기 좀 그렇나?, 라고 물으니까... 응, 이러며 또 씩~~  지금 말하기 싫으면 다음에 엄마한테 말하고 싶을 때 말해줘, 라고 말하니까 또 씩~ 만족스러운 웃음을 보이며 응, 이라고만 말했다.  

섭섭하다기보다 기뻤다. 아이가 그런대로 잘 자라고 있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상담선생님이랑 얘기하면 참 좋아, 내가 먼저 얘기 좀 하자고 신청했어, 라고 곁들인다. 전에도 몇번 했다는 건 알고 있다. 아이는 지난 달 초경을 시작했고 이번 달에 두번째로 쉽지 않은 걸 치렀다. 큰애는 케이크 사다가 축하도 해주고 그랬는데, 작은애는 뭔가 쑥쓰러워 하고 숨기고 싶어해서 다른 식구에겐 말하지 않았다. 그 일이 여자에겐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여자가 아니면 알 수 없다. 그건 살면서 더더 느낄 거다.  

요즘 아침마다 심통을 부리고 나가서 마음이 좋지 않았다. 오늘 아침에도 좀 늦게 일어나 시간이 촉박한 아이가 머리는 감아야겠고 핀잔 듣고 허둥대며 스트레스 받는 걸 아무렇지 않은 척 달래서 좀 웃겨주고 보냈다. 덩치도 나보다 훨씬 크고 어떤 때에는 나보다 한 수 위에 있는 것 같은 아이라 고맙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하고 그렇다. 어제 문우들과 울산에 가 있는 동안에도 '엄마, 오늘 날씨가 참 산뜻하네. 친구랑 밖에 나가 놀래. 여전히 또각이 열심히 찍고 있어. ' 이러며 메시지를 보내왔다. 날씨가 참 산뜻하다고?? ㅎㅎ 무슨 능구렁이 여우 멘트인지... 

기말시험 치고 나서 약속대로 또각이를 사줬더니 며칠 째 제이름을 영문으로 찍어내느라 바쁘다. 내것도 찍어달라고 했더니 색깔을 선택하라더니 3개만 찍어줬다. ㅋ 아무튼 오늘 아이가 상담 선생님을 자진해서 찾고 이야기를 나누고 긍정적으로 스트레스를 다룰 줄 아는 모습을 보고 그냥 대견했다. 의미있는 타인, 성장에 얼마나 중요한지 모른다. 나는야 팔불출엄마^^ 중학교 교복 입기 전 중부지방 살만 좀 빠지면 좋겠다. 언니처럼은 못 돼도 조금이라도 빠져야할 텐데 아직 식욕이 너무 왕성하다.ㅋ


댓글(19)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blanca 2010-07-05 21: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을 읽는 내내 마음이 따사로와짐을 느껴요. 프레이야님의 공주님이 그려져서...스스로 상담선생님을 찾아 갔다는 것도 참 귀엽고^^;; 대견하네요. 또각이가 뭔가 했어요 ㅋㅋ

프레이야님, 제 딸은 고작 세 살인데 벌써 제가 잘 키우고 있는 건지 의심이 들 때가 종종 있답니다.-..-

프레이야 2010-07-05 21:29   좋아요 0 | URL
저도 늘 모자라는 엄마에요. 감정을 주체 못하고 퍼붓기도 하구요.ㅠ
또각이도 아이가 이곳저곳 알아보더니 굳이 일본제 말고 국산 중에서
여러모로 괜찮은 걸로 골라 사달라고 하더군요. 1등 하면 사달라고 했지만
결과와는 상관없이 그냥 사줬어요. 제이름을 골백번도 더 찍고 앉아있는게
어찌나 웃기는지요.

꿈꾸는섬 2010-07-05 23: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너무 대견해요. 상담선생님과 대화를 나누는게 좋다고 말하는 걸 보니 정말 잘 자란 것 같아요.^^

프레이야 2010-07-05 23:57   좋아요 0 | URL
가끔 이래요, 얘가.
의젓한건지 의뭉한건지.ㅎㅎ

2010-07-06 01: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프레이야 2010-07-06 19:35   좋아요 0 | URL
아름다운 님, 8개월 난 아가라면 정말 보드랍고 이쁘지요.
젖병을 빠는 모습에서 안쓰러움을 느낀 님은 놀랍게도 엄마다운 걸요.
네, 그렇게 아무 거리낌없이 사랑받는 능력이 있던 까마득한 시절이
누구에게나 있겠지요.^^
늘 통통공주를 예뻐하시는 님, 지금은 덩치가 얼마나 커졌는지
제가 안아주기보다 안겨야돼요. 아마 가냘픈 님을 한 손에 들지도 몰라요.^^

순오기 2010-07-06 01: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 정말 엄마보다 한 수 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
우리도 큰아이는 케익에 속옷 선물로 축하했는데
둘째는 민망해해서 살짝 넘어갔어요. 5학년 3월에 바로 시작해서 안스럽기도 했고...

프레이야 2010-07-07 01:04   좋아요 0 | URL
둘째딸 일찍 했군요.
오늘은 친구한테 병아리 한마리를 얻어와 종이상자에 담아놨네요.ㅋㅋ
자꾸 빠져나와선 기웃거리고 다녀요.
다시 넣어주려고 잡으니까 으스러질 것 같아 제대로 잡지를 못하겠어요.
너무 연약하고 보드랍고 작아요.

전호인 2010-07-06 09: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아이들의 소소한 일정에 절로 웃음이 흘러나옵니다.
그렇게 그렇게 아이들은 성장하고 있는 거지요.
해람이도 성장하고 있다는 것이 느껴집니다.
근데 또각이가 뭐에요?
전혀 모르겠다는....ㅠㅠ

2010-07-06 11: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라로 2010-07-06 13: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전히 또각이 열심히 찍고 있어,,,가 뭐에요????( ")

저희 딸아인 중2인데도 아직 안하고 있어요.
저는 내심 다행으로 생각하고 있어요,,ㅎㅎㅎ
그런데 제 딸아이도 엄청 내성적이고 숨기고 싶어할것 같긴 한데
만약 아이가 한다면 생리 시작한 날짜를 새긴 목거리를 선물할거에요. 14K로다가.

*령이 정말 대견하네요,,,,독립을 잘 하고 있는것 같아요,,,,
누구나 스스로 성장해야 하는데,,,그 어려운 길을 잘 시작하고 있는것 같아요~.
자식복이 많은 레야님이 부러워잉~~~~.^^

프레이야 2010-07-06 19:40   좋아요 0 | URL
우잉? 14K 목걸이에 날짜를 새겨서요?
역쉬 나비님의 아이디어는 반짝반짝 해요.
전 그냥 말로 떼우고 지나갔어용.
또각이는 국산 상표명인데요, 왜 있잖아요? 플라스틱테잎에 이름찍어서
붙일 수 있는 거요. 그거에요.ㅎㅎ

마녀고양이 2010-07-06 17: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비님이 저랑 같은 생각하시네요. 저두 또각이가 뭘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아,,,,, 날씨가 산뜻하네... 너무 이쁜 표현이예요. 저도
꼭 써먹겠어요. 우리 코알라도 저렇게 멋지게 성장해야할텐데.

프레이야 2010-07-06 19:41   좋아요 0 | URL
또각이는 위에 나비님 댓글 답글 보시와요.ㅎㅎ
오늘도 날씨가 산뜻했지요, 마녀고양이님.^^
마음도 늘 산뜻하자구요, 우리^^

같은하늘 2010-07-09 02: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아이들은 뭐든 빨라서...
그래도 기다려 줄줄 아는 프레이야님 같은 엄마를 둔 따님들이 얼마나 행복할까요?
저 같으면 빨리 얘기하라고 했을것 같은데...^^

프레이야 2010-07-09 07:13   좋아요 0 | URL
요새 사춘기라 애가 감정기복이 심해요.
스스로 그걸 다스리려는 흔적이 보여요.^^

2011-02-25 13: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2-25 18: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2-25 21:43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