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아이 담임 선생님이 붓펜으로 아이들에게 글쓰기를 시켰나보다.
오늘 아이 책상을 정리하다 발견한 글귀. 한지에 세로쓰기로 적어놓았다.
아마 칠판에 적어주고 그대로 베껴쓰라고 하셨을 거다.^^
눅눅하고 후텁지근한 날에 이런 시, 나쁘지 않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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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께
아침 저녁으로 부는 바람이/ 제법 포근하게 느껴집니다./ 매화를 떠올리며 시 한 편/
적어 올리겠습니다.
설매사
꽃샘바람 앞에 남 먼저 피는 바람
벌 나비 허튼 수작 꺼리는 높은 뜻을
우러러 천년을 두고 따름직도 하더니라.
정소파
늘 건강하십시오.
경인년 오월
박*령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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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는 오늘 낮에, 상담 선생님과 한 시간 정도 얘기 좀 하고 집에 오겠다고 메시지를 보냈다. 집에 온 아이에게 무슨 이야기를 나눴냐고 물으니 씩 웃으며 그냥 ,이라고만 대답했다. 어떤 이야기? 말하기 좀 그렇나?, 라고 물으니까... 응, 이러며 또 씩~~ 지금 말하기 싫으면 다음에 엄마한테 말하고 싶을 때 말해줘, 라고 말하니까 또 씩~ 만족스러운 웃음을 보이며 응, 이라고만 말했다.
섭섭하다기보다 기뻤다. 아이가 그런대로 잘 자라고 있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상담선생님이랑 얘기하면 참 좋아, 내가 먼저 얘기 좀 하자고 신청했어, 라고 곁들인다. 전에도 몇번 했다는 건 알고 있다. 아이는 지난 달 초경을 시작했고 이번 달에 두번째로 쉽지 않은 걸 치렀다. 큰애는 케이크 사다가 축하도 해주고 그랬는데, 작은애는 뭔가 쑥쓰러워 하고 숨기고 싶어해서 다른 식구에겐 말하지 않았다. 그 일이 여자에겐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여자가 아니면 알 수 없다. 그건 살면서 더더 느낄 거다.
요즘 아침마다 심통을 부리고 나가서 마음이 좋지 않았다. 오늘 아침에도 좀 늦게 일어나 시간이 촉박한 아이가 머리는 감아야겠고 핀잔 듣고 허둥대며 스트레스 받는 걸 아무렇지 않은 척 달래서 좀 웃겨주고 보냈다. 덩치도 나보다 훨씬 크고 어떤 때에는 나보다 한 수 위에 있는 것 같은 아이라 고맙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하고 그렇다. 어제 문우들과 울산에 가 있는 동안에도 '엄마, 오늘 날씨가 참 산뜻하네. 친구랑 밖에 나가 놀래. 여전히 또각이 열심히 찍고 있어. ' 이러며 메시지를 보내왔다. 날씨가 참 산뜻하다고?? ㅎㅎ 무슨 능구렁이 여우 멘트인지...
기말시험 치고 나서 약속대로 또각이를 사줬더니 며칠 째 제이름을 영문으로 찍어내느라 바쁘다. 내것도 찍어달라고 했더니 색깔을 선택하라더니 3개만 찍어줬다. ㅋ 아무튼 오늘 아이가 상담 선생님을 자진해서 찾고 이야기를 나누고 긍정적으로 스트레스를 다룰 줄 아는 모습을 보고 그냥 대견했다. 의미있는 타인, 성장에 얼마나 중요한지 모른다. 나는야 팔불출엄마^^ 중학교 교복 입기 전 중부지방 살만 좀 빠지면 좋겠다. 언니처럼은 못 돼도 조금이라도 빠져야할 텐데 아직 식욕이 너무 왕성하다.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