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를 드리면 꼴이 이래서 보여주기 싫다고 못 오게 하시니 불쑥 그냥 찾아갔다. 안 계셔도 그만이라고 생각하고... 편찮으신 그분은 혼자 있을 때 물이라도 한 컵 마시려면 2층 오르내리기 어렵다고 일인 침대를 주방으로 옮겨놓고 조만간 있을 수채화전시전에 출품할 작품을 그리고 계셨다. 최민식 사진집 '낮은 데로 임하는 사진'중, 엄마가 아이를 업고 있는 흑백 사진 한 장을 보며 자산홍 빛깔의 색연필로 섬세한 스케치를 한 걸 두 장 보여주며 어떤 게 더 낫겠느냐고 물으셨다. 반야심경을 쓰신 글도 선생님만큼 단아한 서체였는데 은근히 자랑하셨다. 법정의 책들을 유난히 골라두셨는데 그 중에서 1982년에 따님이 선사해준 '무소유'를 보여주셨다. 그외에도 신간으로 보이는 법정의 책 두권이 낮은 나무 탁자위에 또 놓여있었다. 무한한 끼와 열정의 선생님, 건강하시면 더 좋을 텐데. 우리들과 함께 글쓰기 수업했을 때가 참 좋았다고 하신다. 우리들 향기가 제각각 참 아름답다고, 늘 따숩게 말씀하시는 분.
커피와 센베이를 먹으며 넓은 창유리 바깥으로 보이는 마당의 꽃들과 푸성귀들, 오래된 비파나무, 매화나무, 연못과 백송 세 그루를 바라보며 볕을 쬐었다. 작년 5월쯤 매실을 한아름 따던 기억이 났는데 다른 언니가 올해도 매실 따러 불러달라고 했더니 안 그래도 우리 셋만 불러서 실컷 따가게 할 작정이시란다. 안 따주면 안 되고 담아놓은 매실주와 매실청도 다 못 먹고 있는 참이라시며. 일어나 케일이라도 좀 뜯어가라시길래 마당으로 나갔다. 나는 풀 뜯는 건 뒷전이고 꽃사진만 찍었다. 그래도 나중에 보니 달래랑 신선초, 조금 비닐에 담겨있네. ㅎㅎ 연못에 물고기들을 고양이가 잡아먹는단다. ㅠ 아무튼 요만한 땅도 돌보지않고는 생명을 제대로 키워내지 못하는 것. 뽑고 돌아서면 잡초,라는 말씀이... 땅이든 뭐든 사람손의 정성이 없이는 되지 않는 것.
아파트 공원에 벚꽃이 피어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