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은 훈장(勳章)


천 상 병



꽃은 훈장이다.
하느님이 인류에게 내리신 훈장이다. 

산야(山野)에 피어있는 꽃의 아름다움.

사람은 때로 꽃을 따서 가슴에 단다.
훈장이니까 할 수 없는 일이다.
얼마나 으젓한 일인가.

인류(人類)에게 이런 은상(恩賞)을 내린 하느님은
두고 두고 축복되어 마땅한 일이다.
전진(前進)을 거듭하는 인류의 슬기여. 
 

 

-------- 

 

  봄비가 오락가락하더니 오늘은 무춤하고, 내일 또 비가 내린다는 일기예보가 들린다. 날이 아직은 꽤 차다. 큰딸은 오늘이 월요일이라 기숙사에 다시 들어갔는데 아이팟 mps를 두고 갔다고 해서, 도서관 갔다 나오는 길에 갖다주었다. 수학수업 중이었다. 5분 정도 복도에서 기다렸다가 마치고 뒷문을 열고 부르니까 친구들이랑 수다떨다가 헤헤거리며 나왔다. 2학년이 되었는데 즐겁게 잘 생활하고 있는 것 같아 다행이다. 그런데 학교가 꽤 썰렁하고 추웠다. 복도는 또 왜그리 황폐해보이던지. 좀 화사하게 환경미화 좀 하지. ^^

 

 전주 한옥마을 가운데 위치한 최명희문학관을 2월말에 다녀와서 방금 퇴고까지 다 마치고 원고를 보냈다. 전부터 가보고 싶었던 곳이었고 임권택 감독의 101번째 영화 '달빛 길어올리기'의 중요한 공간으로도 나온다고 하여 더욱 가보고 싶었던 집이다. 글에 영혼이 거한다면 그이의 집만큼 그 느낌이 아늑하게 살아있는 집도 없을 듯했다. 세상과 영이별 후 그런 소담한 집 하나 있어 숨 쉴 수 있다면 어떤 느낌일까. 그 행복은 산 사람의 몫이겠지만. 그래도 "집"이 없는 나는 부럽다. 그이의 영원한 한옥 한 채, 그 옆으로 경기전과 전동성당 등 가볼 곳이 두루 많은 마을이었다.  

 

 혼불 10권은 그동안 못 읽고 있었던 대하소설이었는데, 이 기회에 중고샵에서 저렴하게 구입했다. 대하'예술'소설이라고 적혀있다. 오래되어 좀 누런 책장이 오히려 마음에 좋다. 대만족이다. 1권의 1판 1쇄는 1996년 12월, 1판 18쇄는 1999년 1월로 적혀있다. 우선, 곳곳에 유명한 글귀로 소문난 곳을 찾아 훑어보았다.

 

  최명희는 평생 독신으로 살다 1996년 '혼불'의 집필을 마치고 1998년 12월 난소암으로 세상을 떴다. 사실은 완성작이 아니라고 한다. 작가는 해방 후 6.25, 굴곡진 현대사까지 쓰고 싶었다고 하니. 2년 후 2000년 10월에 수상한 옥관문화훈장은, 천상병 시인이 꽃은 훈장이라 노래한 것처럼, 하느님의 은상(恩償)으로 그이의 가슴에 달렸다. 꽃과 같은 마음으로 꽃심 튼실한 외유내강의 글을 쓴 다감한 수필과 진솔하고 소박한 칼럼, 혼을 불어넣은 강연글, 벗들에게 띄운 속내 깊은 편지글이 유난히 마음에 들었다. 그중 <그대 그리운 이여>는 내가 흠모하는 수필이 되었다. 아, 좋다.  *

 

 


댓글(14) 먼댓글(0) 좋아요(1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blanca 2010-03-08 20: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프레이야님! 혼불을 구하셨단 말이에요? 우와! 저 한참을 기다리다 포기하고 잊고 있었는데 그 작년엔가 나온 반짝거리는 책은 얼마 안 있다 바로 들어가 버리더라구요. 결국 중고로만 읽을 수 있다는 얘기인데. 프레이야님의 혼불 독서에 묻어 가야겠어요. 중간 중간 글 올려주세요^^ 그리고 마지막 단락 마치 시 같아요.

프레이야 2010-03-08 20:43   좋아요 0 | URL
저도 중고삽을 뒤져서 얻었어요. 횡재^^
일단, 산문시같은 수필 <그대 그리운 이여>를 제 서재에 올려둘게요.
"약이라면 사람만한 약이 어디 있을까"라고..
그이의 수필을 찾아읽다가 이 글이 제맘에 확 당겼어요.

순오기 2010-03-08 2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혼불문학관 다녀왔군요.
혼불은 못 읽었고 문학관에도 못 갔고...ㅜㅜ
지금 확인해보니 2009년에 나온 세트는 절판이지만 낱권으론 살 수 있네요.
예전에 최명희 1주기때 KBS스패셜로 최명희문학 방송했는데 굉장하더라고요.

프레이야 2010-03-09 01:21   좋아요 0 | URL
아뇨, 언니 그곳 남원의 혼불문학관 말고
전주 최명희문학관요. 참 아기자기 정갈했어요.
혼불문학관도 가보고싶어요.
혼불의 배경이기도 하여 볼거리가 많겠더라구요.
그녀가 가신 지 벌써 12년이 되었군요.

hnine 2010-03-09 05: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꽃심 지닌 사람이 사는 집>이 완성되었군요.
봄비라는 말이 무색하게 어제 밤엔 집에 돌아오는 길.이 어찌나 쌀쌀하던지.
오늘은 눈까지 온다네요. 내일은 영하로까지 내려간다고 하고.
오늘 어떻게 무장하고 나가야하나, 일어나자마자 그 생각부터 합니다.

프레이야 2010-03-09 07:16   좋아요 0 | URL
네, 나인님.^^
일찍 일어나셨네요. 저도 늦게 잤는데 6시에 일어났어요.
그냥 잠이 좀 안 오고 마음이 좀 그래요.
오늘 날이 많이 춥다고 하더라구요.
완전 겨울옷으로 톡톡히 무장하고 나가시기를요.

세실 2010-03-09 06: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느님이 인류에게 내리신 훈장이란 표현이 참 곱네요.
처음 보는 시가 참 좋아요.
혼불은 왜이리 읽을 엄두가 나지 않는지..
집에 달랑 1권 있습니다.

프레이야 2010-03-09 07:15   좋아요 0 | URL
천상병시인의 눈이 참 그런 것 같아요.^^
언제든 읽을 수 있다고 생각되는 건 오히려 손이 잘 안 가더군요.
오늘 추워요. 비는 그쳤네요.

무스탕 2010-03-09 08: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혼불을 읽을때는 정신줄 놓고 읽었는데 이젠 생각나는 장면이 몇 없어요;;;;
울 엄니는 청암부인이 죽는 장면을 읽고는 손늘 놓으시더군요.
기운이 빠져서 못 읽으시겠다고요..
전주엘 그렇게 다녀도 가본 곳이라곤 경기전이랑 덕진공원밖에 없어요. 왜 이렇게 퍽퍽하게 사는건지.. -_-
다음에 전주 내려갈땐 프레이야님의 숨결이랑 발자국이 남아있을 최명희문학관도 꼭 가봐야 겠어요 ^^

프레이야 2010-03-09 09:36   좋아요 0 | URL
그래도, 엄니도 읽으셨군요.^^
전동성당이 참 멋있었어요. 구석구석 느리게 걸으며 다니면
좋을 도시 같아요. 덕진공원의 연꽃은 저도 그림으로만 봤다우.
무스탕님 좋은하루!!

L.SHIN 2010-03-09 1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헤에- 시도 프레님의 글도 좋습니다.
저 역시 꽃에 대한 글을 올릴려고 어제 써놓은게 있는데...
마치, 제가 이 글을 보고 쓴 것과 같은 느낌이 나는군요. 희안합니다.(웃음)

프레이야 2010-03-09 11:30   좋아요 0 | URL
그래요?^^ 비슷한 감정, 비슷한 심상이 친근하기도, 놀랍기도 해요.
밤새 비가 내렸는지 베란다창틀에 빗방울이 맺혀있어요.
날이 흐리네요. 그래도 좋은 하루 보내세요!!

다락방 2010-03-12 12: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번 해에는 혼불을 읽어야지, 해놓고 무심히 넘겼는데 이 페이퍼를 보니 다시 혼불을 읽어야겠다는 마음이 솟았어요. 셋트는 절판이지만, 저 위에 순오기님 댓글을 보니 낱권으로는 살 수 있나 보군요. 저는 긴 셋트는 낱권으로 사보는 쪽이 더 편하니까 낱권으로 사서 읽어야겠어요. 다 읽고나면 프레이야님과 혼불에 대해 얘기할 수 있겠죠?

프레이야 2010-03-13 10:15   좋아요 0 | URL
그랬어요? 다락방님^^
우리 다음에 혼불에 대해 얘기 나눠요.^^
즐거운 주말 보내시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