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유화 / 김소월


산에는 꽃 피네
꽃이 피네
갈 봄 여름 없이
꽃이 피네

산에
산에
피는 꽃은
저만치 혼자서 피어 있네

​산에서 우는 작은 새여
꽃이 좋아
산에서
사노라네

​산에는 꽃 지네
꽃이 지네
갈 봄 여름 없이
꽃이 지네

​—————


김훈의 두 번째 소설집. 반가운 소식에 책받침대와 같이 얼른 영접했다. 여러 개 있지만 군데군데에 비치해 두면 편리하다.
제목은 김소월의 시 “산유화”에서 한 구절 가져왔다. 일곱 개의 작품 중 마지막에 있는 표제작부터 읽어보았다. 생과 멸, 성과 속, 자연과 인간, 죄와 구원 그리고 동서고금 시공을 초월해 신을 향한 영혼의 지향성과 영속성이 감정은 절제하고 아니 배제하고 아주 담담한 문체로 씌어있다. “흑산”에서도 다룬 천주교 소재.
늙고 병든 두 수녀가 등장하고 한 사람은 가고 또 한 사람은 남는다 아직은. 백도라지를 닮았을 잠옷을 입은 채 도라지동산 흙으로 돌아간 루시아 수녀의 봉분이 저만치 있다. 같이 있다 해도 혼자서 ‘있다.’ “칼의 노래”에서 묘사하였듯 적은 전체로 덮쳐오는 것과 달리 삶도 죽음도 개별적이라 존재는 끝내 고독하다. 그리고 이어져 있고 얽혀 있다. 너의 얼굴을 거울 보듯 마주하고 서로 매무새를 만져주는 것, 가엾고도 반듯한 일이다. 저만치 혼자서 피었다가 “갈 봄 여름 없이 꽃이 지네.” 저만치의 시공 너머 또다시 피어나리.

“나는 한 사람의 이웃으로 이 글을 썼다.” - 김훈

도라지수녀원의 정식 명칭은 ‘성녀 마가레트 수녀원‘이다. 교구청의 김요한 주교가 이름을 지었다. 마가레트 수녀는 12세기 라인강 언덕의 자연동굴 안에 들어 있던 피에타 수녀원 소속이었다. 아들의 사체를 무릎에 얹고 죄 없는 세상을 간구하던 마리아의 기도를 이어가는 것이 그 수녀원의 서원이자 일과였다. 피에타 수녀원은 라인강의 시퍼런 강물이 산악 구간을 굽이쳐 나가는 협곡에 자리잡아서 외부에서는 보이지 않았다. 수녀원의 계율은 은둔과 침묵이었는데, 계율을 따로 정하지 않아도 은둔과 침묵은 그 동굴 속에서 이미 실현되어 있었다. - P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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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2-06-10 06:2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김훈 작가님의 작품이 나왔네요~! 저 제목이 산유화란 시의 구절이라니 몰랐습니다. 시 너무 좋네요~!! 검색해보니 독서대도 좋아보입니다 ^^

프레이야 2022-06-10 10:21   좋아요 3 | URL
김춘수의 꽃처럼 존재론에 기인하니 김훈 작가에게도 늘 화두가 아니었을까 싶어요. 저만치 혼자서! 그간의 제목과 달리 서정적이다 싶었는데 산유화였어요. 독서대를 전 책받침대라고 했네요 ㅎㅎ 흰색 원고지 무늬로 괜찮네요. 득템했어요. 접어서 도서관 같은 데 들고나가기도 쉽겠어요.

바람돌이 2022-06-10 09:1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지난번 <달 너머로 달리는 말>이 별로였어요. 그래서ㅜ이번 책은 읽을까 말까 고민중이었는데 프레이야님이 불을 지르시네요. ㅎㅎ 그나 저너 김휸작가의 산유화 사랑은 여전하네요. 오래전 강연에서 이 시 얘기하면서 끝없이 얼마나 좋은지 열변하던 김훈작가 모습이 떠올라서요. ㅎㅎ

프레이야 2022-06-10 09:55   좋아요 3 | URL
오호 바람돌이님 전 그 장편소설은 패스했더랬어요. 왠지 한번 볼까 싶네요 오히려. 김훈이니까 ㅎㅎ 이번 건 강산무진 이후 16년만의 소설집이랍니다. 강연을 들으셨군요 전 기회가 없었는데 부러워요. 역시 산유화를 마음에 오래 품고 있었군요. 산유화 못지않게 말을 좋아하시는 듯요.

mini74 2022-06-10 13:0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두 수녀이야기 관심이 갑니다. ~~ 시가 글에 스며드네요 ~

프레이야 2022-06-10 13:39   좋아요 3 | URL
작가도 늙고 병드니 더 단단해지고 숙연해진 느낌이 들었어요^^

독서괭 2022-06-10 16:5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여전히 원고지에 연필로 쓴다는 얘길 들었었는데 이번책 표지가 원고지네요^^ 느낌이 좋습니다.

프레이야 2022-06-10 17:07   좋아요 2 | URL
네. 육필원고 느낌 좋아요. 몽당연필 좋아하시고 직접 연필로 써야 쓰는 것 같다죠. ^^

samadhi(眞我) 2022-06-11 16: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훈 글을 읽으면 담배를 물고 연기를 내뿜는 장면이 떠올라요. 제가 못 해봐서 그저 상상할 뿐이지만. 말없이 느끼는 것들. 쓸쓸해서 좋은 느낌.

프레이야 2022-06-11 17:24   좋아요 1 | URL
네. 동감이에요 ^^ 말없이 느껴지는 것들이 있지요. 그래서 좋아합니다 김훈의 문장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