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한 순간은 애써 궁리 한 몇 해보다
더 많은 걸 우리에게 줄 수 있는 법
우리 마음은 기공 하나하나에서
이 계절의 기운을 들이마시리라.

우리 가슴은 무언의 율법을 만들어
오래도록 따르리라
다가올 해를 위해 바로 오늘에서
우리의 기지를 얻을 수도 있으리라

여기저기 위아래로 구르는
그 행복한 힘으로
우리 영혼의 가락을 빚어보자
영혼이 사랑에 조율되도록.

그러니 오라, 누이여! 오라, 제발,
서둘러 산책복으로 갈아입어라
책은 가져오지 마라, 오늘만은
빈둥거리며 보내자꾸나.

- 누이에게, 중 마지막 시구



시에 등장하는 누이는 워즈워드가 도브 코티지에서 8년을 함께 산 도로시(1771-1855)이다. 처음 발표된 서정담시집에는 “집(알폭스덴하우스)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써서 어린 남자 아이를 통해 그 수취인에게 보낸 시”라는 긴 제목으로 수록되었고 1845년에 “감성과 사색의 시편들”이라는 표제 아래 분류된 일련의 시편들 그룹에 포함될 때는 “누이에게”라는 제목으로 바뀌었다. 1798년 서정담시집을 내고 이듬해 이곳에 이사와 살았다.

지만지에서 나온 이 시집에는 서정담시집(1802) 서문 초록이 실려 있다. 좋은 구절이 많다.

(…) 신은 모든 지식의 숨결이자 정기이다. 그것은 모든 학문의 얼굴에 깃든 열정 어린 표정이다. 좀 더 힘주어 말하자면 셰익스피어가 사람을 두고 한 말 즉 “그는 지난 일도 돌아보고 앞날도 내다본다”라는 말은 시인에게도 해당된다. 그는 인간성의 보루고 어디건 간에 관계와 사랑을 갖고 다니는 인간성의 지지자이자 보존자다. (198쪽)

위에서 셰익스피어가 한 말이란 인간의 사고력과 이성에 대한, <햄릿> 4막 4장 햄릿의 독백에서 따온 어구라는 주석이 달려 있다.

퇴원 후 사월 한 달을 집에서 잘 보냈다. 5월 3일 외래진료를 다녀왔고 눈맑은 젊은 의사에게 뼈가 잘 붙었으니 이제 아파도 참고 많이 딛고 걷는 연습을 하라는 엄명을 받았다. 하루 하루 아주 조금씩 나아져가는 몸이 참 신기하다고 느낀다. 모든 일에는 단계가 있는 듯. 이제는 두 발로 디딜 수는 있으니 한 발로 디디는 것이랑 천지차이다. 두 발로 걸을 수 있다는 게 당연한 것이 아니었다는 뼈아픈 사실. 그래서 오늘은 목발을 하나만 끼고 안과 간다. 좌안 후발백내장 수술하러…. 이틀 전 우안을 했다. 이거까지 하고 나면 침침한 게 많이 나아질 듯. 수정체낭에 낀 단백질을 간단히 레이저로 제거하는 건데 이게 또 백내장 수술 후 다 오는 건 아니고 세포증식이 잘되는 사람에게 온다니 뭐 좋게 해석한다.

유월 초 그래스미어에 있는 도브 코티지에 닿았을 때의 추억을 떠올리며 이 시집을 들춰본다. 오늘 여기도 그날처럼 햇살이 너무 좋다. 시공간이 돌고돌아 이어져 있는 느낌은 우리의 기억이 이루어내는 보람찬 작용 같다. 우리 집 고양이 모꾸는 베란다에서 햇살바라기 하며 늘어지게 누워 있고 코티지 뒷마당에서 만난 붙임성 좋던 고양이를 나는 또 떠올린다. 소박하면서 정갈한 코티지 안팎, 특히 뒷마당 자연정원의 조용하고 편안함.

2018년 6월 2일 아이폰 촬영 사진 몇 개 올립니다. 마지막 사진은 베아트릭스 포터 때문에 가보고 싶었던 호수지역 윈더미어 선착장입니다. 그래스미어로 가기 전 들렀어요. 어이없고 답답한 뉴스들 속에서도 살아가기, 살아남기. ㅎㅎ 야! 좋다, 이러며
오늘도 기분 좋게 좋은 계절 누리시길!!!


도브 코티지 입구


1800년 5월 19일에 한 일. 귀여운 양 그림.


부엌


뒷마당 자연정원


붙임성 좋던 고양이


1802년 4월 20일 나비도 쉬어가라고.


윈드미어 호수 선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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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2-05-06 11: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언제나 그렇듯이 사진 너무 좋네요. 저는 특히나 첫번째 벽에 가득한 식물들이 있는 사진과 맨 마지막 바다와 배가 있는 사진이 너무 좋습니다. 배가 여러척인데 분위기는 왜이렇게 고독하고 외로울까요? 너무 좋은 사진입니다, 프레이야 님.

프레이야 2022-05-06 17:57   좋아요 1 | URL
초록은 참 좋습니다 언제 어디서나.
보기만 해도 눈도 마음도 편해져요. 단순하게 조촐하게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코티지 입구의 담쟁이와 식물들이 흰색 벽 소박한 집과 어울려요. 배들 위로 한 마리 새가 특별출연해줘서 더 좋아졌네요 다락방 님.

청아 2022-05-06 16: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쩜 작품같은 사진을 이리도 많이 올려주신겁니까♡.♡
각각의 사진이 나름의 이유로
다 마음에 들어요^^
심난한 정치...그래도 계절은
희망적이네요. 수술잘 받으시고
좀더 선명한 시야 맞으시길바래요~♡

프레이야 2022-05-06 17:52   좋아요 1 | URL
네. 미미 님 우리몸이 이리도 싱기방기한지요. 세상이 맑아졌어요. ㅎㅎ 이제 안구건조증만 잘 달래며 살아가는 걸로요. 책 많이 보시니 당근도 많이 드시고 눈관리 잘 하세요.
사진이란 게 있어 좋으네요 ^^

희선 2022-05-06 23: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번주는 날씨가 좋은 날이 이어지는군요 오월 첫주만 이러는 거 아닐지... 날씨는 좋기도 하고 안 좋기도 하겠습니다 그런가 보다 해야죠 걷는 연습하셔야 하는군요 걷는 연습하다보면 편하게 걷게 되겠지요 눈수술은 잘 받으셨겠지요 사진이 다 멋지네요

프레이야 님 주말 편안하게 보내세요


희선

프레이야 2022-05-07 00:20   좋아요 1 | URL
날씨는 좋을 때도 덜 좋을 때도 다 날씨니까 좋다고 생각해요. 수술은 잘하고 왔어요. 요건 레이저로 하는 거라 간단히요. 눈은 내일 되면 좀 편해지겠지요. 어버이날도 다가오고 주말 앞이라 그런지 시내에 차가 많았어요. 사람도 많고. 아장아장 걷고 있어요. 에고 ㅠ 희선님 님 고맙습니다 ^^

바람돌이 2022-05-07 00: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진짜 아 좋다하게 되네요. 시 읽으면서 사진 보면서 힐링~~~ 또ㅜ언젠가는 나도 꼭 가야지 하면서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힐링입니다. 수술 잘하시고 다리도 빨리 나아 두발로 굳건히 다시 걸으시길 기원해요

프레이야 2022-05-07 09:33   좋아요 1 | URL
바람돌이 님 힐링되는 말씀 고맙습니다. 어여 그런 날이 오겠죠 ! 이번 주말 어버이날이다 석가탄신일이다 여튼 힐링하는 주말 보내세요.^^

水巖 2022-05-10 11: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진 사진 감상 잘 하고 갑니다.

프레이야 2022-05-10 12:57   좋아요 0 | URL
수암 님 고맙습니다.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2022-05-12 19: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5-12 20:11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