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장 삶과 죽음

 

달빛 아래서의 만찬, 아니타 존스턴

 

중독에서 벗어나는 것이 어려운 이유는 중독자의 의지 부족이나 인격적 결함 때문이라기보다는, 그 대상이 위로와 즐거움을 주거나 삶의 문제를 부분적으로 해결해주기 때문이다. 중독은 생존을 도와준다. 그러니 지나친 수치심이나 굴욕감, 좌절감을 느낄 필요는 없다. 그런 감정을 강요해서도 안 된다. 중독은 누구나 겪는 삶의 고단함에 대한 일시적이고 불완전한 대응일 뿐, ‘문제가 아니다

 

이 책은 내가 읽은 여성의 섭식 장애 관련서 중에서 관점, 현실 인식, ‘해결책과 스토리가 모두 좋다. 중독 증상 때문에 사회의 경멸적 시선과 자기 비하에 지친 이들이 읽으면 충분히 이해받고 있다는 느낌을 얻을 수 있다. 이야기와 은유는 흥미진진하고 깊이와 통찰이 넘친다. 알코올, 담배, 마약 중독은 니코틴 같은 특정 성분에 대한 중독이다. 그런데 폭식은 먹는 행위 자체에 대한 중독이다.

 

내가 반복해서 읽은 부분은 통나무 이야기다. “폭우 후 물살이 사납게 불어난 강물에 빠졌다. 다행히 통나무가 떠내려 와서 붙잡고 머리를 물 밖으로 내놓고 숨을 쉬며 목숨을 부지한다. .....물살이 잔잔한 곳에 이르자 헤엄치려 하는데, 한쪽 팔을 뻗는 동안 다른 쪽 팔이 거대한 통나무를 붙잡고 있다. 한때 생명을 구한 그 통나무가 이제는 원하는 곳으로 가는 것을 방해한다. 강가의 사람들은 통나무를 놓으라고 소리치지만 그럴 수 없다. 거기까지 헤엄칠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

 

과거엔 절실하게 필요했지만 지금은 위협이 되는 것. 작가는 중독을 통나무에 비유한다. 인생에서 완전한 기쁨이나 완벽한 절망은 없다. 한때 나를 구원했던 것(사람, 생각, 조직....)이 나를 억압하는 시기가 온다. 이것은 나의 성장 때문일 수 도 있고 대상의 변절이나 상실 때문일 수도 잇다. 어쨌든 나는 그것들과 헤어지거나 최소한 거리를 두어야 생존할 수 있다. 내게 이 이야기는 분리의 어려움에 대한 비유였다. 20년 된 관계, 30년 된 생각, 사라진 이들과 헤어져야 한다.

 

한낮의 우울, 앤드류 솔로몬

 

이 책의 한 땀 한 땀은 모두 심오하고 아름답고 비극적이어서 매 순간 감탄하느라 숨을 두 번씩 쉬게 된다. 처음 읽었을 때 연필로 밑줄을 그었는데 그 표시가 두 번째 읽을 땐 방해가 되었다. 책을 다시 사서 표시하지 않고 또 읽었다. 원서로도 읽었다. 참고문헌과 주 내용도 중요해서 분책해, 가지고 다니면서 읽었다.

 

원제는 정오의 악마- 우울증의 모든 것’. 이 책 때문에 전 세계적으로 몇십 년간은 우울증 관련 저술에 도전하는 이가 드물었으리라.

 

내가 아는 한 우울증에 관해 정치적, 학문적, 미학적, 윤리적으로 <한낮의 우울>보다 잘 쓴 책은 없다. 하나의 문장을 고를 수 없는 책이다.

 

우울증은 마음의 감기라는 말처럼 근거 없는 말도 없다. 굳이 비유하자면 에이즈와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둘 다 완치 개념을 적용하기 힘든 질병이다. 잠복성, 만성질환, 치명성, 외로움, 사회적 낙인.......가장 중요한 공통점은 심각한 면역력 저하다. 면역성이 사라지면서 부드러운 미풍조차 사포로 미는 듯한 통증을 느끼는 우울증 환자의 증상은 인생의 본질이 순간에 있음을 깨닫게 한다.

 

우울증은 내 두뇌의 암호 속에 영원히 살고 있다. 그것은 나의 일부다......나는 우울증을 제거하려면 우리를 인간이게 하는 정서적 메커니즘들을 손상시키는 방법밖에 없다고 믿는다. 따라서 과학이든 철학이든 미봉책(half-measures)을 통해 접근해야 한다.”

 

나는 이제까지 미봉책을 제대로 꿰매지 않은 상태로 알고 있었다. 완전히 봉합하지 않는 미봉(未縫), 혹은 미봉(未封)인줄 알았던 것이다. 아뿔싸! 사전적 의미의 미봉책은 미봉책(彌縫策)이었다. ()와 봉(), 모두 꿰매거나 깁는다는 뜻으로 흔적과 자국이 남는 것은 그 자체로 불완전하다는 것이다. 때문에 본질적 해결이 우월하고, 미봉책은 속임수나 일시적 방도에 불과하다는 부정적 의미가 강한 단어다. 아무런 표시가 남지 않는 천의무봉(天衣無縫)이 찬사인 이유다.

 

흔적 없음은 존재 없음이다. 아름답지도 않고 완전하지도 않고 가능하지도 않다. 꿰맨 자리는 아물기도 하고 터지기를 반복하기도 한다. 생명은 미봉의 점철. 그러므로 미봉책은 임시방편이 아니라 영원한 방도다.

 

언니의 폐경, 김훈

 

나는 최근 몇 년 사이 세 번 삭발했다. 아침마다 머리 감기가 귀찮아서였다. 주변의 반응은 머리 감기보다 더 번잡스러웠다. “암이니?”, “(머리가)아프니?”, “논문 스트레스?”......내 진심 (게으름)을 몰라주고 사람들이 너무 걱정해서 잠시 나의 사회성을 의심했지만, 실상 나는 매우 사회적인 인간이다.

 

<칼의 노래>같은 글은 불편하다. 그러나 나는 다음 세 가지를 주장한다. 김훈은 소설, 논픽션, 기사, 수필을 불문하고 모든 글을 잘 쓰는 예술가다. 나는 그의 글을 읽을 때마다 장르의 구별에 의문을 품는다. 그는 인간이든 자연이든 물상이든 묘사 대상에 대한 대상화를 최소화하는 윤리적인 작가다. 그의 글이 풍경과 상처가 되는 이유다.

 

박완서가 일상에 관한 뛰어난 서술자였다면, 육체에 해당하는 작가는 김훈이 아닐까 생각한다

<화장>을 읽은 독자는 더욱 동의하리라. 몸은 자원이 아니라 행위자다.

 

삶에 대적하는 화자의 태도. “남편의 속옷에 붙어 있던, 길고 윤기 나는 머리카락에 관하여 나는 한마디도 묻지 않았는데, 마지막 예절과 헤어짐의 모양새로서 잘한 일이지 싶다.” 나는 이 문장을 넘기지 못하고 몹시 몸부림치고 몹시 몸서리쳤다. 나이 들어 영원히 헤어질 수 밖에 없는 이들과 세월로 인해 잃고 얻을 모든 것들과 이렇게 관계 맺을 수 있기를 소원하면서.

 

, 틱 낫 한

 

진짜 문제는 화를 내는 사람이 아니라 화를 나게 하는 사람 아닌가? 예전에 읽든 틱 낫 한의 책(<>< <평화 이야기>은 그래도 덜 했는데, <>는 화를 돋우었다. 물론 책마다 타깃 그룹이 있고 모든 독자를 만족시킬 수 없다. 하지만 현대 사회의 분노를 다룬다는 책이 인간의 고통에 대한 이해가 겨우 이정도인가.

 

분노가 무엇인지, 그리고 상처받은 인간의 고통을 모르는 사람만이 늘어놓을 수 있는 아름답고 한가하고 피상적인이야기들. 이 책은 한때 70만 권 넘게 팔렸다. 위로를 갈구하는 현대인이 안쓰러울 뿐이다. 아시아 출신 도인들은 서구에서 증명받은 뒤 다시 아시아 시장으로 온다. 그들의 내공과 관련 없는 오리엔탈리즘, 불쾌한 지식의 정치학이다.

 

그러다 반전. 나는 단 한마디에 깊고 냉철한 위로를 받았다. 지난 몇 년 동안 시달려 왔던 개인적 의문까지 풀렸다. “내 행동만이 나의 진정한 소유물이다. 나는 내 행동의 결과를 피할 길이 없다. 내 행동만이 내가 이 세상에서 서 있는 토대다.”

 

내가 아는 한 이 구절은 인간의 본질에 대한 인류의 지적 성취를 요약하고 있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행위 뒤에 행위자 없고(니체), 행동은 사상의 기반이 되며(비트겐슈타인), 인간의 행동의 반복으로 구성되는 재현(주디스 버틀러)이다.

 

참나는 내 행동뿐이다. 인간사에서 죽음과 더불어 유일한 진실이 있다면 이것이다. 유일한 진실이자 유일한 정의인 것 같다. 알아야 할 것은 분노의 본질이 아니라 분노의 위치다. 행동만이 나를 말해주고 행동만이 내가 가진 유일한 것이다. 이 부담스런 소유에 나는 안도한다.

 

오늘 부는 바람, 김원일

 

인생을 한 장면으로 요약한 소설이 있다면 나는 주저 없이 김원일의 <오늘 부는 바람>을 들겠다.

 

<오늘 부는 바람>1970년대 도시 빈민의 가난과 절망에 관한 이야기다. 나는 이 소설을 읽고 문학과 지성의 본뜻, 문학과 지성의 관계를 배웠다. 빼어난 문장이란 그 자체로 영상이며 읽는 이의 몸에 배어들고 몸을 베는 글이다.

 

작품의 내용은 비극적이지만 분위기는 힘이 있다. “.....이제 엄마 생각에도 서러워지지 않았다. 껌보다도 더 질긴 삶이 내 발을 땅에다 굳건히 세우고 있을 뿐이었다.”

 

작가 후기 역시 매혹적이다. “나는 구원이나 긍정을 바탕으로 한 화해보다도 어둠이나 죽음의 아름다움, 삶의 어려움이 주는 쓸쓸함과, 고통에 소리 죽여 흐느끼는 절망을 사랑해왔다. (나는 이런 작가를 사랑한다!).....비극의 세계가 부정이나 허무가 아니라 거대한 질서의 운동이요, 생을 절실히 사랑하는 애정의 소산임을 확신한다.”

 

인생의 고통을 놓지 않는 사랑스런 후기지만 내 생각은 조금 다르다. 이 시대의 비극은 애정의 소산임을 확인할시간이 없는 비극이다. 날마다 전쟁이고 흐느낌이다.

 

병을 달래며 살아간다. 다이쿠바라 야타로

 

홍준표 경남지사에게 공공 의료는 좌파 정책이다. ‘우파 민중은 안 아픈가? 공공 의료는 국가의 기본 역할인데? 그는 아나키스트인가? 내가 분노하자 주변에서는 뭘 기대하냐는 반응이다. 일부 지도층의 이런 발상에 대한 현저한 면역 결핍이 내 지병이다. (내 지병은 홧병)

 

질병은 삶의 부작용이 아니라 본질이다. 의료는 복지 이슈가 아니다. 쌀 수급을 복지 정책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다. ‘질병은 비정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비용 문제로 접근하는 것이다. 홍 지사의 사고는 철학의 문제, 그것도 국정 철학의 오류다. 그는 좌파의 국가관을 의심하기 전에 자신의 공동체관부터 검증받아야 한다.

 

일본 출신의 티베트 의사이자 승려인 다이쿠바라 야타로의 <병을 달래며 살아간다>는 티베트 의학의 인식론과 증상에 따른 실제 치료법을 다루고 있다. 티베트 불교에서는 인간을 신의 구현물로 보지 않는다. 동식물처럼 자연의 일부일 뿐, 불완전해도 상관없다.

 

몸의 생애는 곡선이다. 내려갈 때가 있다. 성형 열풍이나 완벽한 몸 이미지는 몸의 과거와 미래를 인정하지 않는 비현실적 행위다.

지금 뭘 하고 있나요?” 알퐁스 도데는 말한다. “아프고 있습니다.”

 

세계 최고의 의료 수준과 제도를 자랑하는 쿠바는 1986년 우크라이나의 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 사고 때 모든 국가가 기피한 원전 난민을 무료로 치료해주었다. ‘국격이 있다면 이런 것이다. 원래 진주의료원 같은 기관은 동리마다 있어야 한다. 폐업이 아니라 더 만들어야 한다.

 

살아남은 자의 아픔, 프리모 레비

 

어떻게 작품과 자기 자신을 분리시킬 것인가? 작품이 끝날 때마다 나는 한 번씩 죽는다.”이런 사람은 홀로코스트가 아니었어도 매일 다시 태어났을 것이다.

 

레비는 평균 생존 기간 3개월인 오시비엥침(독일어로 아우슈비츠)에서 110개월을 버티고 살아남았다. ....... 그는 투신 자살했다. 지금 우리 사회 보통 사람의 자살과 비교할 수는 없다. 하지만 타인의 고통을 헤아리기 어려운 것은 마찬가지다. “난 무려 100년 참고 참는다....../난 내일 죽음과의 약속을 지킬거다! /하지만 너네 인간들은 백번 죽었다 깨어나도 / 내말을 이해할 수 없을 거다. (용설란)

 

망각을 거부한 투사가 치러야 하는 대가는 남은 인생이 과거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확신이다. 불확실한 삶이라면 가능성을 희망이라 믿고 살겠지만 확실한 상태에서 선택은 많지 않다.

확실성의 볼모가 된다는 것. <기차는 슬프다>가 바로 그것이다. “단 하나의 목소리와 단 하나의 노선으로/ 정해진 시간에 떠나야 하는 기차보다 / 더 슬픈 게 있을까/ 그 어떤 것들도 이보다는 더 슬프지 않다.” 이 구절을 읽을 때 내 시간이 멈췄다.

 

공부가 가장 쉬웠어요, 장승수.

 

셋째는, 공부의 의미가 조금 다르다. 최근 임지현은 <홀로코스트와 탈식민의 기억이 만날 때>라는 글에서, 사유하는 법을 배우고 싶어 찾아온 대학생 한나 아렌트에게 하이데거가 한 말을 전한다. “생각한다는 것은 외로운 일이네.” 인생에서 어려운 일이 세 가지 있다. 생각, 사랑(관계), 자기 변화.

 

훌륭한 저작을 남긴 지식인이나 작가의 오만을 사랑할 수 있는 이유가 여기 있다. 생각하는 일은 어려운 일이다. 생각은 그 자체로 새로운 것이다. 나도 조금 생각한 적이 있다. 피학의 쾌락이 있었지만, 공부가 가장 어렵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 무능력도 원인이겠지만 사유는 힘든 일이다. 생각할수록 공부할수록 무지의 공포는 비례상승한다. 나 자신이 작아지고 우울해진다. 우울은 공부의 벗. 공부를 멈추지 않는 사람은 겸손하다. 자신에게 몰두한다. 계속 자기 한계, 사회적 한계와 싸워야 하기 때문이다. 계속 공부하는 사람이 드문 이유다. 하지만 분명한 점은, 생각하기를 두려워하는 사회는 생각하는 고통보다 더 큰 고통을 치러야 한다는 사실이다.

 

태백산맥, 조정래

아는 의사 셋이 같은 주제로 흥분하는 걸 보고, 염 대장의 말이 근대 과학의 패러다임과 관련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믹스 커피 성분이 카제인나트륨과 우유를 대립시키는 광고 때문에 시작된 이야기 였다. “카제인(단백질 화학명)이 우유잖아.”, “용각산이 바로 도라지 가루지.” “리튬(조울증 치료제)이 버드나무 잎에서 나는 거거든.” 그들의 요지는 같은 성분인데 우유(‘자연)와 카제인나트륨(’화학의 이미지를 대립시키는 교묘한 광고라는 것이었다.

 






자살의 이해, 케이 레드필드 재미슨

 

<자살의 이해>는 제목 그대로, 자살의 이해를 돕는 책이다. ......이 책은 저술의 모범이다. 사회적 필요, 다학제 관점, 정치적 열정, 전문 지식, 고통에 대한 공감. 생명체인 인간과 사회적 인간, 개인과 구조, 이 쟁점들을 상호 융합적으로 다룬다.

 

이해는 아는 것을 버리는 것이다. 선입견이든 지식이든 기존의 앎을 버리지 않는 한, 새로운 것은 절대 우리 몸에 들어오지 않는다. 충돌은 앎의 지름길이다.

 

간혹 매우 총명한 이들과 조우한다. 나는 그들의 비법을 알고 있다. 이해는 영혼이 순수한 사람의 특권이다. 대상에 대한 사랑. 이해하고 싶어서 기득권을 포기하는 데 망설임이 없다. 자신을 보수하지 않는다.



러브 스토리, 에릭 시걸.

 

내가 제일 듣기 싫은 미안함에 관련한 표현은 “(나는 동의하지 않지만) 네가 불쾌했다면 미안해.”. 이럴 땐 차라리 싸우자는 게 예의다. 진짜 미안할 때는 할 말이 없거나 멀리서 오랫동안 미안해한다.

 

<러브 스토리>의 연인들은 계급 차이 때문에 남자 주인공(올리버) 집안의 반대로 결혼에 어려움을 겪는다. 올리버가 제니에게 미안하다고 하자, 제니는 사랑하는데 뭐가 미안해.”라고 말한다. 마지막 페이지에서 제니가 죽자 올리버의 아버지는 안됐구나. (i’m sorry.)”“라고 말한다. 올리버는 아버지에게 사랑은 미안해할 일을 하지 않는 겁니다.“라며 원망스레 울먹인다.

최근 의문이 조금 풀렸다. ‘사랑미안은 같은 말일 수도 있고 무관할 수도 있다.

 

가장 친한 친구가 8년 째 아프다. 심각한 병이지만 사회적 낙인이 심해 위로받기는커녕 변명과 거짓말로 하루하루를 버틴다. “돈 잘 벌고 착하고 자랑스러운딸이었던 그녀는 걱정거리와 민폐로 전락했고 경력, 경제력, 인간관계 모든 것을 잃었다. 그녀의 고통을 지켜보며 인생을 배우는 나는 미안하다.

 

기대에 부응하는 삶, 아프다/죽고 싶다는 호소. 그녀는 주변 사람들에게 늘 미안하다고 말한다. 질병의 증상(신체적 통증)으로 고통받는 그녀에게 정신 차리라고 혼내는 사람도 있다. 낙오자 취급은 엘리트였던 그녀의 자아에 사망 선고가 되었다.

 

그녀의 증상은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 환자라는 이유만으로 미안한 것이다. 약자는 보호받고 지원받아야 하지만 통치 세력이 노골적으로 약육강식을 지시하는 사회에서 뭘 기대하겠는가.

 

아픈 사람이 미안해할 때야말로 사랑은 미안하다고 말하지 않아, 이 말이 필요하다. 인생은 열렬한 사랑의 순간보다 괴로운 시간이 훨씬 많다. 공감은 미안하다고 말하지 않는다.

 

마지막 잎새, 오 헨리.

 

몇 해전에 성별을 기준으로 하여 10대에서 70대까지 열네 개 그룹으로 나누어 인생에서 가장 후회되는 일이 무엇인가라는 설문 결과를 본 적이 있다. 놀랍게도 거의 모든 연령과 성별에서 다시 태어난다면 공부를 열심히 하고 싶다.”라는 응답이 가장 많았다. 내 대답 역시 그렇다


여기서 공부10대를 억압하는 입시 공부가 아닌 뭔가 의미있는 인생을 원한다는 뜻일 것이다. 의미 있는 삶이란 무엇일까. 내가 필요한 존재였다는 것, 무엇인가를 추구했다는 것, 나만의 세계가 있었다는 것 등으로 다양할 것이다.

 

60대 친구가 몇 있다. 돈과 학벌을 따지는 속물이 득실거리는 우리 사회에서 남들 보기에도 비교적 성공한인생들이다. 그들 역시 공부 이야기를 제일 많이 한다. 자신은 이룬 것이 없다며, 가진 것이 없는 내게 말한다. “그래도 너는 책을 썼잖니, 나는 한 것이 없다.”

 

의욕, 삶의 방향, 목적. 사람은 결국 무엇때문에 산다. 삶의 의미는 인간이 묻는 것이 아니다. 삶이 우리에게 묻는 것이다. 이 질문에 답하려는 몸부림이, 내가 생각하는 의미 있는 삶이다.

 

사람들이 외로운 이유 중 하나는 자신에게서 인정받지 못하는 데 있지 않을까. 자기가 추구하는 가치에 몰두하는 사람은 덜 외롭다. 아무도 모르게 혼자 죽는 것. 모든 사람이 가장 두려워하는 죽음이다. 버먼은 그렇게 죽었지만 비참한 죽음이라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는다. 그렇다고 대단히 위대하고 행복한 마침표도 아니다. 이것이 오 헨리 작품의 매력이다. 슬픈데 따뜻하고, 찡한데 안식이 있다. 희망과 절망 그런 차원이 아니다. 애상이나 애잔함은 오히려 충만한 느낌이 있다.

 

누이를 이해하기 위해서, 김승옥

 

다른 측면에서 글쓰기는 조금 더 평등하다. 운동, 음악, 미술 분야에 비해 장비가 간단하고 독학 가능성이 있다. 거칠게 말해, 연필 한 자루면 된다. 나는 글이 투자 대비 생산성이 가장 큰 콘텐츠라고 생각한다.

 

작가는 엄청난 양의 독서, 습작, 조사를 해야 하는 데다 삶의 매순간이 연습이다. 좋은 글을 빨리 쓰는 사람이 있다. 비결은 연습(치열한 삶)이다. 글 쓰는 시간은 연습을 타자로 옮기는 시간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물론 고뇌를 사랑하는 사람을 존경한다. 그렇지만 그들을 존경하기만 하면 그걸로써 의무감의 해방을 느끼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나는 예술가는 아니지만 이 문장에 동의한다. 일하지 않고 예술만 즐기고 싶다. 푹신한 소파에 앉아 커피를 마시면서 열 받지 않아도 되는영화와 소설을 읽으며 살고 싶다. (이 책에서 가장 동감하는 구절.)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아름다음만 소비하고 싶다. 비생산의 삶. 죽을 때 연기조차 없는 삶. ‘독자가 된다는 것은 주체로 사는 피로와 죄악을 피하는 길이다. 호랑이나 사람이나 무엇인가를 남긴다? 끔찍하다.

 

하지만 연습을 많이 한 이들이 독자로 사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그들은 오만할 자격이 있다. 연습은 끝이 없는 개념이다. 외롭고 지루한 연습이 아무런 보상이 없을 수도 있는 삶을 기꺼이 선택한 이들이다. 이들은 이미 모든 것을 가졌다. 진실을 아는 자의 만족스런 불평이다. 김승옥도 알고 있다. “천 번만 먹을 갈아보고 싶다. 그러면 내 가슴에도 진실만이 결정되어 남을까?”

 

하류지향, 우치다 타츠루

 

모 신문에 게재된 채현국 선생의 인터뷰를 읽은 적이 있다. 그는 치유란 사람의 매력 그 자체의 효과이지 시대의 멘토해주는것이 아님을 보여주었다. 그의 언어는 모두 깊고 힘이 있었다. 나를 붙잡은 구절은 모든 것은 이기면 썩는다. 예외는 없다. 돈이나 권력은 마술 같아서, 아무리 작은 거라도 자기가 휘두르기 시작하면 썩는다.”였다.

 

지식, 사회, 자기 자신에 대한 태도가 존경스러운 불문학자 우치다 다쓰루의 <하류지향>은 승, 부 중 어느 한쪽을 격려하지 않는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당대 젊은이들의 사고방식을 철저히 그들의 입장에서 사고함으로써 자본주의의 새로운 단계를 보고했다는 점이다. 소위 내재점 관점(질적 방법)‘이 잘 적용된 예다.

 

이 책에 등장하는 학생들은 온 힘을 다해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학력 저하는 노력의 성과. 그러나 자기 선택은 어느 정도 안전하고 정의로운 사회에서만 가능하다. 약자는 고립되어 있기 때문에 약자다. 자유는 고립 이데올로기다. 스스로 결정하고 결과도 혼자 책임질 것. 위험 사회가 사회적 약자에게 강요하는 삶의 방식 혹은 죽음의 방식이다.

 

저자처럼 계몽 의식과 책임감을 지닌 기존 자본주의의 수혜자는 그들의 선한 의지와 달리 시혜자가 되지 못한다. 저자의 문제의식은 절박하지만 진짜 현실인식은 안이한 듯하다. 충격은 이제부터다. 룸펜, 의지박약자, 잉여는 구제 대상이 아니라 파국의 주체다.


 

에필로그, 다르게 읽기와 독후감 쓰기.

 

 

좋은 독후감의 전제는 일단 다르게 읽기. 단언컨대 모든 사람이 알 만한 진부한 사고방식으로는 절대 좋은 글이 나올 수 없다. 나는 좋은 책이 반드시 좋은 독후감을 낳는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렇지 않는 경우도 많다. 독후감은 책에 관한 것이 아니라 책과 읽기의 상호 작용이기 때문에, 책의 수준과 무관하다.

 

....책을 읽고 책에 대해 쓰는 것은 결국 자신에 대해 쓰는 것이다. 그 사람만이 쓸 수 있는 독후감, 책을 다시 쓰는 것, 저자가 쓰지 못한/않은 부분을 쓰는 것 그리하여 새로운 의미, 곧 새로운 정치학을 주장하는 것이다.

 

이렇게 읽는 사람도 있고 저렇게 읽는 사람도 있는데 그 차이는 왜 발생할까. 대개는 콩쥐한테 동일시하고 그치는 경우가 많지만 계모의 내면 세계나 아버지, 친척, 이웃 사람들은 어떤 사람인지가 궁금한 이들도 있다. 나는 팥쥐는 꼭 딸이어야만 하는가, 아들일 경우 어떻게 될까가 궁금했다. 이런 생각의 차이들은 가치 다양성, 관용, 배려 차원의 내용 확대가 아니다. 정치적 모순, 갈등, 위계의 내용을 다시 구성하는 것이다. 정치적 전선을 이동시키는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좋은 독후감은, 내가 쓰고 싶은 독후감은 다른 시각으로 읽음으로써 없는내용을 만들어내는 방법, 즉 지면을 투사하는 것이다. “행간을 읽는다.”라고도 표현한다. 다른 안경을 쓰고 읽음으로써 텍스트를 복잡하고 풍부하게 만들어서, 다양한 정치적 입장을 드러내는 것이다. 이것은 진위여부를 가리는 것이 아니라 경합하는 읽기이다.

 

내가 생각하는 독후감의 의미는 단어 그 자체에 있다. 독후감(讀後感), 말 그대로 읽은 후의 느낌과 생각과 감상이다. 책을 읽기 전후 변화한 나에 대해 쓰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기가 없다면 독후감도 없다. 독서는 몸이 책을 통과하는 것이다. 온몸으로 통과할 수도 있고 몸이 덜 사용될 수도 있다. 터널이나 숲속, 지옥과 천국을 통과하는 것처럼 어딘가를 거친 후에 나는 변화할 수밖에 없다.

 

독후감은 그 변화 전후에 대한 자기 서사이다. 변화의 요인, 변화의 의미, 변화의 결과.......그러니 독후의 감이다. 당연히, 내용 요약으로 지면을 메울 필요가 없다. 독후에 자기 변화가 없다면? 왜 없었을까를 생각하고 그에 대해 쓰는 것도 좋은 독후감이 된다. 나는 왜 책을 읽고 아무 느낌이 없을까도 좋은 질문이다. 자기 탐구가 깊어진다는 점에서 더 좋은 독후감이 도리 확률이 높다. 자신의 경험, 인식, 지식, 가치관, 감수성에 따라 여정의 깊이는 달라진다. 독후감의 수준은 여기서 결정된다.

 

 

독자의 위치성, 그 위치성을 의식하고 의심하고 사랑하는 읽기가 책의 위상을 결정한다. 영화든 드라마든 미술작품이든 책이든 모든 텍스트는 철저히 읽는 이의 상황에 의존한다. “저자는 죽었다.” , “책은 독자가 다시 쓴다.” 라는 말은 권력이 결국 읽는 이, 듣는 자에게 있다는 뜻이다. 언제나 문제는 나 자신이다. 물론, (주체, subject)는 사회와 대립하는 개인이 아니라 시회적 몸(social body)이다.

 

책이 되지 못한 책들의 피해, 비평이 되지 않는 비평의 폐해는, 수많은 책을 읽는 들에 의해 청산될 수 있다

어느 출판사의 사훈은 책 때문에 망가지는 나무가 없도록 하자는 것이라고 한다. 좋은 독자는 지구를 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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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에 이럴 생각은 아니었는데, 리뷰가 아닌 필사가 돼버렸다. 우선 내게는 생소한 작가가 너무 많았다. (나의 무지에 죽고 싶었다.) 에필로그에서 작가가 말했듯 그녀가 온몸으로 책을 통과하는 글들에 섣불리 개입할 수가 없었던 것도 결정적 이유다. 단 한 챕터도 그냥 흘러갈 수 없었다. 환호작약, 촌철살인의 문장들로 흘러넘친다.

 

내가 읽은 서평집 중에 최고다. (장정일, 이현우, 이다혜, 정혜윤, 장석주, 정여울, 이동진 모두에게 미안하지만) 그 이유는 아마도 그녀의 독후감의 원칙 때문이 아닐까. 어떤 책을 읽는가도 중요하겠지만 그보다 중요한 건 독자의 독서 이후의 변화. 정희진은 자신의 원칙들로 어디서도 볼 수 없는 정희진만이 쓸 수 있는 유일무이한 독후감을 써냈다.

 

타성적인 서평 백 편을 읽느니

개성적인 독후감 한 편을 읽는 편이 낫다.

그녀가 어떤 책을 칭찬하면 침을 질질 흘릴 정도로 그 책을 읽고 싶었다.

 

그녀가 통과한 책들을

이제 내가 통()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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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3-17 01: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시이소오 2016-03-17 02:43   좋아요 0 | URL
아, 저도 이렇게 훌륭한 글을 쓰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