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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물에서 하늘 보기 - 황현산의 시 이야기
황현산 지음 / 삼인 / 2015년 11월
평점 :
작가가 2014년 한 해 동안 한국일보에 실었던 시화들을 책으로 엮었다. 시와 시인들의 이야기와 세태에 대한 황현산 교수의 감상이 주를 이룬다. 교과서에 나온 시인들 – 이육사, 유치진, 한용운, 서정주, 등등 –과 알려진 시인들 (백석, 이성복, 최승자, 김수영, 정현종, 최승자 보들레르, 릴케 등등) 그리고 나로선 금시초문인 시인들의 시- 특히나 진이정-를 만난다.
나는 시에 문외한이고 시를 이해할 수 없는 뇌를 가진 걸 한탄하곤 한다. 그런데 간혹 어떤 시를 읽을 때면 완전히 꽂히는 경우도 있다. 김민정, 김경주의 시가 그랬고 최근엔 T.S 엘리엇의 <네 개의 사중주>가 그랬다. 그런데 답답하게도 소설과 달리 시의 경우엔 그 시가 왜 좋은지 딱히 설명할 수가 없다. 지력의 한계 때문일까?
박정만- 황진이
‘국풍 81’을 기억하는가? 어린 시절 ‘국풍 81’에 가서 복권을 샀던 기억이 난다. 10대 아이가 복권을 사도 돼는 건지? 예상외로 다 꽝이었다.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흥청망청일 때 한 남자가 무력하게, 어이도 없이, 울분에 가득 차서 그 광경을 쳐다보고 있었다. 어쩌면 그와 나는 같은 시,공간에 있을 수도 있었으리라. 그의 이름은 박정만이었다. 그는 남산의 어느 시설에서 사흘 동안 고문을 받고 풀려난 길이었다. 그는 도대체 어떤 기분이었을까. 자신은 쥐도 새도 모르게 잡혀가 짐승보다 못한 대접을 받으며 고문을 받는 동안 사람들은 축제를 벌이고 있었다니!
박정만 시인은 사실 시국에 그다지 관심을 갖지 않았다. 천방지축이라고나 할까. 술 좋아하고 놀기 좋아하고 논쟁을 즐겨하고 시를 쓰던 시인이었고 출판사 편집부장이었다. 그런데 단지 어떤 소설가와 술을 마셨다는 이유로 고문을 당했다. 민주화 운동을 하지 않았던 대다수의 국민들 누구나에게 일어날 법한 일이 하필 박정만에게 닥친 셈이다. 그 사흘간의 고문이 그의 삶을 완전히 산산 조각내버렸다.
그는 민주화운동을 하지 않았고 할 마음도 없었다. 그런데, 단지 고문을 당했다는 이유로 어느새 그는 ‘민주화 열사’가 되어 있었다. 그는 고문당했다는 치욕 보다는 자신이 ‘민주화 열사’로 추앙받는 것을 더 부끄러워했다. 즉, 그는 ‘이중의 치욕’으로 고통 받았다.
“숫돌에 칼을 갈 힘이 푸르게 남아”있으니 “너희들의 살점을 죄 발라먹어야겠다”는 복수의 다짐도 잊지 않았지만 연이은 폭음 끝에 결국 그는 간경화로 88올림픽이 끝나는 날, 생을 마감한다.
박정만은 그가 죽은 해인 1988년 세 권의 시집을 냈을뿐더러, 죽기 전 보름동안 무려 300여편의 시를 써냈다.
문성근이 진행했던 KBS 다큐멘터리 <한국 현대사 인물전>에는 존경할만한 수 십명의 인물들이 나온다. 그렇지만 가장 안타까운 인물은 박정만이었다. 그는 마치 우리의 초상처럼 보였다. 대다수 국민들은 이웃들이 당하는 고통을 외면하면서 ‘나만 안 당하면 되지’라고 생각한다. 지금 당하지 않는다고 과연 끝까지 안 당할 거라 자신할 수 있나? 그건 단지 우연일 뿐인데?
책에 실린 시 중에 가장 좋았던 시는 황진이의 시였다.
동짓달 기나긴 밤을 한 허리를 버혀내여,
춘풍 이불 아래 서리서리 넣었다가
어론님 오신 날 밤이어든 굽이굽이 펴리라.
이 시를 어느 책에서 처음 읽었는지 기억나진 않지만
그때 그때 다시 읽어도 곧장 혼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