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6. 그리고 다음 원숭이의 말을 머리에 채워 넣기 위해 서둘러 다른 강의실로 떠난다. 이런 공부의 과정은 삶의 무능력자들만 체계적으로 양산하고 있다. 똑똑하되 멍청하며, 언변은 좋되 무능하다. 시험 문제는 잘 풀되 삶의 문제를 대처하는 능력은 형편없으며, 남을 품평하는 데는 날카로운 날을 세우되 자신을 성찰하는 데는 무디기 짝이 없다.

 

하나를 배워 다른 하나에 적용할 줄 아는 게 아니라 다른 하나가 내가 배운 하나와 다르면 멘붕하고 열폭한다. 그건 배운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배울수록 무능력해지고, 배울수록 화만 내는 처지가 된 것인지도 모른다.

 

P8. 내가 아는 공부는 반대였다. 어떤 지식 권력의 정당성과 주도권을 확인해주는 것이 아니라 그것에 도전하는 것이 공부였다. 삶은 언제나 지식보다 풍부한 것이고, 언어에 도전하는 것이었다......삶이 공부의 식민지가 아니라 공부가 삶의 도구였다.

 

P9. 공부의 기쁨은 보편성의 발견이다. 내가 처한 현실이나 난처함이 나만의 것이 아니라 이 시대 대다수의 사람들이 모두 겪는 일이라는 걸 깨달아가는 과정이 공부의 과정이다. 동시대성을 발견하는 것이 공부의 목적이라는 말이다. 시대의 암흑이라는 동시대성을 발견하고 그 문제를 공동의 노력으로 해결해가려고 하는 과정에서 동시대인이 형성된다. 이 동시대인을 형성해가는 것, 그것이 공부가 무능력한 개체들이 아니라 삶의 문제를 해결하는 주체를 형성해가는 과정이며 우리가 공부를 하는 이유가 될 것이다.

 

P19. 미국식 표현으로 잔디깍기 맘이라는 말이 있어요. 부모가 먼저 잔디까기 기계로 풀을 깍아줘서 아이가 갈 길을 먼저 열어준다는 뜻이에요.

 

지금의 486 부모들은 공부를 잘하면 잘살 수 있다는 생각이 자기 몸으로 체득된 세대예요. 그러니까 부모들이 자신이 성공했던 방법을 아이들에게 강요하는 거죠. 그런데 사실 거시적으로 보면 운이 좋은 세대였던 겁니다. 80년대 초반엔 졸업 정원제가 있어서 그전에 비해 어렵지 않게 대학에 들어갈 수 있었어요. 그리고 이들이 취업할 무렵인 87,88년도는 우리나라가 한창 경기가 좋을 때라 대기업 취업이 상대적으로 쉬웠습니다. 좋은 일자리 수에 비해 대졸자가 모자랄 정도였죠.

 

주거도 마찬가지입니다. 80년대 후반부터 90년대 초반 신도시가 만들어질 때 손쉽게 집을 살 수 있었어요. 이른바 굉장히 좋은 라인업을 탄 것입니다. ...일종의 프리라이딩, 운이 좋은 세대죠. .....그런데도 본인들이 잘해서 성공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자기가 했던 방식을 그대로 복제해서 자기 아이들도 그러기를 바랍니다.

 

P43. 그런데 요즘 이십대 친구들을 보면 대인관계에서 아주 기본적인 부분들조차 안 돼 있는 친구들을 왕왕 봐요. 머리는 똑똑한데. 그걸 <아프지 않다는 거짓말>이란 책을 쓴 가이 윈치의 말을 빌리자면 인간 관계의 근육이 쇠퇴한 것이라고 비유할 수 있어요.

 

P48. 심리 발달을 어떤 식으로 규정하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그 중 하나의 틀이 자아 중심성egocentrism’에서 자아의 탈중심성egodecentrism’으로 나아가는 것이라고 얘기해요.

 

p56. 아즈마 히로키라는 일본 문화비평가의 표현 중에 게임화된 현실이라는 말이 있어요. 그 말을 응용하면 모든 일을 정말 게임처럼 생각하면서 내가 시뮬레이션한 대로 통제가 되고 일이 굴러갈 거라고 생각하고, 그렇게 시뮬레이션한 데에서 내가 이렇게 열심히 하니 아이템이 주어지듯 뭔가가 주어질 것이다, 라고 생각하는 경향을 말합니다.

 

61. 자아 중심성이 굉장히 강하니까 자의식은 무척 높은데, 자기 의견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부분은 없고, 그러다보니까 한편으로는 굉장히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하면서 어떤 결정을 할 때는 남 얘기에 쉽게 넘어가는 거죠. 자기 의견이 없게 돼요.

 

 

p63. 세상에 적응하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고 보는데, 하나는 나를 구겨 넣는 방법, 맞추는 방법이 있고, 또 하나는 환경을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바꾸는 방법이에요. 이 두 개를 적절히 조화롭게 사용하면서 우리는 적응을 해나가는 거겠죠. 그런데 일부 친구들의 자아 중심성의 세계에서는 나를 구겨 넣을 생각이 없어요. 그리고 환경을 바꾸고 싶지도 않아요. 환경이 알아서 바뀌어줬으면 좋겠는 거죠.

 

p64. 미디어가 점점 더 대다수의 시민들을 관전평, 품평을 하는 사람들로 만들고 있어요. 댓글을 달고, 시민들을 관전평, 품평을 하는 사람들로 만들고 있어요. 댓글을 달고, ARS를 돌리고, 시청자 게시판에 글을 올리고 하는 등등이 마치 의견을 이야기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그저 품평을 하는 것에 지나지 않거든요. 의견을 말하는 것이 참여자의 입장이라면 품평은 구경꾼의 언어예요.

 

p68. 엄기호. 공부를 하는doing’게 아니라 구경하는 거예요. 교재에 형광펜이 다 칠혀져 있다니, 세상에 그런 공부가 어디 있어요? .....그러니까 계속 구경하는 형태예요, 존 듀이가 말한 대로라면 언더고잉undergoing;’, 즉 겪는 게 있어야 하는데 그게 사라져버리는 거죠. 공부 중독이라고 하는데 중독될 실재는 없어요.

 

p76. 특히 정신과가 각광받으면서 최근 7,8년 동안 똑똑한 친구들이 정신과에 많이 지원했어요. 그런데 이 친구들이 정신과 의사가 어울릴까 하는 의문이 들 때가 있어요. 정말 똑똑하고, 공손하고, 예쁘고, 잘생기고, 영어도 제2외국어도 너무 잘 하고.....그런데 정신과 의사가 가져야 할 파이팅이 없어요. 아울러 자기가 살아온 세계가 너무 좁으니까 연민이나 사람에 대한 이해의 폭도 좁고, 마치 요즘 교사들이 공부 못하는 애들을 이해 못하는 것과 비슷해요. “왜 학교를 안 가니?” 이런 식, “이 정도면 가난한 건가?” 이런 식....머릿속에 상식이 만들어져 있어요.

 

p79. 엄기호. 그들에게는 세상이 안 공정한 거예요. 나는 죽을 둥 살 둥 공부해서 서울대 왔는데, 그리고 또 죽을 둥 살 둥 공부해서 정규직이 됐는데 비정규직으로 온 사람들이 갑자기 데모하면서 정규직화 해 달라 그러면 너는 지금까지 뭘 하고 살아왔는데 그런 요구를 하느냐, 생각하죠. 우리는 차별이 정의롭지 않다고 생각하잖아요. 이들 경험 세계에서는 차별을 정의롭지 않다고 보는 게 공정하지 않은 거예요. 이 이야기는 오찬호 씨가 쓴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에 잘 나와 있죠.

 

p81. 하지현. 바칼로레아와 논술시험의 가장 큰 차이점은, 바칼로레아는 어떻게 보면 답이 없어요. 구술하는 논리 전개를 보는 거잖아요? 철학적 담론이나 재미있는 주제를 던제주죠. 그런데 우리나라 수리 논술시험은 독특해요. 수학 문제, 통계, 확률 문제가 나오는데, 여기서 최적의 솔루션을 도출하는 방법과 그것이 왜 그런지를 써라. 전 처음에 이게 무슨 논술시험이야’,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논술시험을 볼 때는 철학 문제나 윤리적 딜레마, 이런 문제들이 많았거든요. 그래서 생각을 좀 해보니, 이래야 논란의 여지가 없이 채점이 가능한 거예요.

 

p86. 엄기호. 지금 대학은 논문을 쓰는 교수, 강의를 잘하는 교수, 책을 쓰는 교수, 프로젝트를 잘 하는 교수 등등 더 다양한 형태의 교수가 필요한데, 학교랑 똑같아지는 거예요. 그러니까 역설적으로 논문 기계들만 임용되게 되는 거죠. 결국은 이 공정함이라는 게 어떤 공정함인가, 누구를 위한 공정함인가, 라고 질문 할 수밖에 없어요.

 

p99. 하지현. 우리나라는 2천 년대 초반 이후, 특히 IMF 이후에 성장 곡선이 정점을 찍고 이후에는 아마 멈추지 않았나, 5천 만 인구의 내수 시장을 봤을 때 이미 꽉 차지 않았나 싶어요. 70년대에서 90년대 초까지의 팽창은 이제 불가능하죠. 그런데 박해천의 <아파트 게임>에 나오는 것처럼 486들이 부를 축적한 방식이 대학을 졸업하고 분당이나 일산의 아파트 분양권을 당첨 받아서 그걸 두세 번 갈아타니 어느새 서울이나 소도시에 꽤 괜찮은 아파트를 갖게 되었고, 그걸 통해서 먹고살 길이 생긴 거죠. 이런 라인업이 만들어질 수 있었던 건 사회가 팽창하고 있었기 때문이에요. 이제는 그게 불가능하다는 겁니다.

 

P100. 공부를 통해서 고학력을 얻고 고학력을 통해서 나름의 기본 위치를 갖는 것은 여전히 안전한 길입니다. 하지만 확률로 따지면 성공 확률이 높다기보다 상대적으로 실패 확률이 낮은 방법일 뿐이에요.

 

실제 자료를 봐도 그래요. 사회학자인 신광영 중앙대 교수가 2000년부터 2014년까지의 한국노동패널 자료를 분석해서 중간계급 세대 간 이동 경로를 추적했어요. 놀랍게도 부모와 자녀 세대가 모두 중간 계급을 유지한 확률은 10.5 퍼센트에 불과했어요. 10명에 9명은 지위가 달라진 거예요. 이렇게 애를 써서 자기 중간 계급을 물려주려고 부모 세대는 무진장 애를 쓰지만 10명에 9명은 실패했다는 것. 이건 이 전략이 개인의 능력 문제로 실패한 것이 아니라 전략 자체가 잘못되었다는 증거 아닐까요?

 

P105. 엄기호. 공부라고 했을 때, 경험을 통해서 뭔가를 얻는 건 의미가 없는 것이 되어버렸어요. 그러다 보니 굉장히 위계화되고 학벌화된 시스템의 자격증만이 유의미하게 됐죠. 이반 일리치의 개념을 가져와서 쓰면 한국사회가 스쿨링화된 사회라는 생각이 들어요. 사회 전체가 학교가 되었다는 거죠. .....그런데 한국 사회는 스쿨 자체가 굉장히 위계화된 학벌사회라서, 어디를 나왔는지가 그 사람의 능력과 그 밖의 모든 것을 검증해주고 보여준다고 보는 사회죠. 그래서 좁은 의미의 공부에 대한 집착 같은 게 생겼죠. 그런데 이게 사회적으로 보면 정말 비극이거든요.

 

요즘 강남 대치동의 학부모들이 자식들에게 주는 약 중에 하나가 오력탕이라고 하던데, 총명하게 하고, 뭐 그렇게 하면서 다섯 가지 힘을 준대요. 그런데 그 약의 핵심적인 기능이 잠 안 오게 하는 거래요. 잠자지 말고 공부하라는 거죠.

 

P111. 현재 교육 시스템에서 근대 교육의 기본 정책을 재고해봐야 할 필요가 있어요. 그래서 평균을 중심으로 하는 교육을 일으키고, 그리고 주로 제가 만나는 아이들, 하위 50퍼센트 친구들을 어떻게 도울 것인가, 탈락하는 10퍼센트를 5퍼센트로 줄일 방법은 무엇인가, 이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이에요. 결국 이 친구들도 사회에 나갈 거니까, 사회에서 자기 밥벌이를 할 수 있는 최소한의 기술과 능력을 가질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 필요하단 말이죠. 그리고 상위 5퍼센트 친구들은 알아서 가는 거지 학교가 힘쓸 일은 아니라는 거예요.

 

어느 순간부터 고등학교 정문 플래카드에 어느 대학 몇 명, 어느 대학 몇 명 합격했다는 게 그 학교의 성적표가 되어버렸는데, 그렇게 되면 안 되는 거거든요. 학교는 학원이 아니거든요. 우수한 몇 명을 위한 학교가 아니라 중간인 아이들을 위한 학교가 되는 게 원래 학교의 취지에 더 맞죠. 그러니 플래카드를 붙인다면 졸업 10년 후 80퍼센트의 졸업생이 독립적으로 잘 살고 있습니다.”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요.

 

P114. 엄기호. 학부모고 학생들이고 실제로는 최상인데 그것을 마치 중간값이고 평균인 것처럼 착각하고 있어요. 한윤형 씨가 썼던 표현대로 하면 평균압입니다. 평균에 대한 압력이죠. 한국은 적어도 평균이 되어야 한다는 압력이 매우 높은 사회라는 뜻입니다. 평균이 되지 못하면 탈락이고 낙오이며 패배한 인생이라는 말이 돼요. 그런데 한국 사람들이 생각하는 평균이라는 건 절대 평균이 아니라는 거예요. 너무 높다는 거죠.

 

.....중간쯤 되는 아이들도 소위 10개 대학 있잖아요, ‘서연고서성한중경외시라고 하는, 그 정도까지는 가줘야 평균이라고 생각하죠. 이건 정말 말이 안 되는 거거든요.

 

하지현. 10개 대학 정원을 대략 계산해보면 3만 명 정도 되거든요. 현재 수능 수험생을 65만 명 정도로 보면...대략 4.5퍼센트. 그런데 이걸 평균값으로 생각한다는 거잖아요.

 

P.124. 하지현. 얼마 전에 연애연구소를 운영하는 분과 이야기를 나눠 볼 기회가 있었어요. 기업 교육을 나가서 연애란 어떻헤 하는 것인가를 가르치는 분이에요. 제일 반응이 좋은 직업군이 판검사, 의사라고 하더군요. ‘이럴 땐 이렇게 하고, 저럴 땐 저렇게 해라라고 이야기해주는 것에 열렬한 반응을 보인대요...그런데 재미있는 건, 이 분이 저한테 가장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는 데가 어딘지 아세요?” 그러더라고요. 어디일 것 같으세요

이마트 직원 분들이래요. 이분들은 늘 사람을 대하고 있으니 도리어 연애 기술이라고 하면서 사람 대하는 기술 같은 것을 가르치는 게 조금 웃기는 거예요.

 

P129. 엄기호. , 여기에서 재미있는 현상이 있어요. 틀 밖에서 성공한 사람들이 있잖아요. 성공을 하고 나면 그것으로 죽 살아가면 되잖아요? 그것이 다른 사람들한테 훨씬 더 영감을 주거든요. 그런데 꼭 책을 씁니다. 꼭 학원을 해요. 결국 자신의 성공 방식을 매뉴얼화하는 거예요. 본인이 그러고자 하는 욕망이 있고 또 사람들이 그것을 원하죠. 결국 한국에서 블루오션은 공부밖에 없어요. 출판계도 레드오션이잖아요. 그런데 출판학교는 잘되고 있어요. 출판계는 망해가고 있는데 말예요.

 

P132. 엄기호. 공부 중독의 비극적 역설은 여기에 있는 것 같습니다. 삶의 문제를 풀기 위해서 공부를 하는데 공부와 삶을 분리시키고 공부에 올인하다 보니 삶이 더욱더 빈약하고 허약해지고 있다는 것. 그 빈약함과 허약함을 채우기 위해서 가르칠 수 없는 것을 또 가르칠 수 있는 것처럼 만들면서 삶은 공부의 식민지로 전락하고 있고요.

 

P139. 엄기호. 대기업 생산직 노동자들이 돈을 꽤 많이 벌거든요. 노동 계급의 대표는 아니고 중산층화된 노동 계급이죠. 이 사람들은 이제는 대학 가 봤자 아무 짝에도 쓸모없다는 걸 알아요.

 

P144. 하지현. 마루야마 겐지 식으로 얘기하면 자식도 엄밀하게 말하면 남이다, 아들러 식으로 말하면, 아무리 자식이라도 자식의 삶에 대해서 왈가왈부하지 마라. 그런데 우리나라는 그게 참 안되죠. 자식을 자아의 확장이라고 생각하면서 자식이 잘되는 것이 내가 잘되는 것이라고 여기죠.

 

자신의 삶의 성적표가 자신의 성취에 의해 매겨지는 게 아니라 애가 대학갈 때, 취업할 때, 결혼할 때, 이렇게 세 번, 자신의 인생 성적표를 받는다고 생각해요. 자기 인생에서 내가 뭘 얻었고, 내가 뭘 재미있게 생각했고, 내가 그동안 살면서 사회에 어떤 공헌을 했다, 이렇게 생각하는 게 아니라 내 자식이 어느 대학에 갔고, 어디에 취직했고, 어떤 직업을 가졌고, 어떤 집안과 결혼해서 어느 동네에 살고 있는가를 가지고 자기 인생의 성적표를 받고 있다는 것은 정말 불행한 일이라는 거죠.

 

P145. 엄기호. 방금 선생님이 말씀하신 그 메시지를 매우 강력하게 던지는 게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학교 안에서도 그렇고, 사회에서도 그렇고 공부 중독이 차별과 혐오를 굉장히 광범위하게 양산해내고 있거든요. 그 핵심에 지나친 과잉 투자와 보잘것없는 아웃풋이 있다 보니까, ‘내가 이 개고생을 해서 어떻게 얻었는데 내가 왜 쟤랑 이걸 나눠야 하지’, ‘왜 내가 쟤랑 동등해져야 하지’, 이런 생각에 용서가 안 되는 거죠. 그리고 이게 안 되면 안 될수록 중산층들은 교육을 더욱 더 특권화하려고 해요.

 

P147. 엄기호. 여전히 의미 있는 것 중의 하나가, 그런 지식인들이 자식에게 내가 소위 공부를 통해서 여기까지 와봤지만 정말 별것 아니더라하고 말하기도 하잖아요. 내가 어느 정도 재산을 물려줄 수 있으니까 그 돈을 발판으로 농부가 돼든 목수가 돼든, 조금 벌고 조금 쓰는 삶을 살아라, 이건 굉장히 훌륭한 선택이라고 생각해요.

 

P149. 부지불식간에 자기 자식을 신빈곤층으로 만든 거예요. 부모님이 아파트 팔아가지고 사교육 시켜줬으니 부자인 줄 알고 살다가, 대학 와서 자기가 신빈곤층이 되었음을 절감할 때, 이것보다 더 비참한 것이 있을까요? .....그런 학생들 말고 완전히 무기력해지는 학생들이 있어요. 가난에 대해서 조금의 면역 체계도 없는 학생들이 완전히 멘붕이 되는 거죠.

 

P151. 엄기호. 의사나 변호사는 이러니저러니 해도 죽을 때까지 갈 수 있는데, 대기업 부장은 다 허깨비예요. 해고되면 끝이잖아요.

 

엄기호. 제가 아는 친구 중에서는 그 돈으로 온 집안 식구가 1년 동안 세계 여행을 한 집이 있어요. 그렇게 하면 많은 사람들이 불안감에 묻죠. “그러고 난 다음에 먹고사는 건 어떻게 할 거냐”, “직업은 어떻게 할 거냐”. 이 불안을 잠재울 수 있는 건 두 가지죠. 하나는 내가 무슨 직업을 구하더라도 어떻게든 살아가기 위해서는 감수할 수 있는 지혜와 용기가 필요한 것이고, 또 하나는 제가 사회학자니까, 뭘 하든 굶어죽지 않는 시스템을 사회에서 만들어줘야 하는 거예요. 시민 수당이든 어떤 형태든지 간에요.

 

P153. 하지현. 부모고 아이고 리스트에 대한 두려움이 너무 커요. 그런데 그 두려움을 넘어서야 돼요. “이리로 한번 가봐. 그 대신 6개월은 해봐. 그럼 대충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게 돼. 그런데 그게 길이 아니라는 결론을 얻는다면 그동안 시간 낭비한 게 아니라 최소한 네 인생에서 이 길은 아니라는 것은 알게 되잖아.” 이십대 초반에 얻어야 하는 것은 하고 싶다도 있지만, ‘해보니까 이건 아니다인 것을 찾는 것도 굉장히 중요한 것 같아요.

 

P156. 하지현. 우리나라 사람들의 3퍼센트에서 5퍼센트에 드는 수입일 텐데, 이들이 허덕허덕한다는 것은.....

 

엄기호. 강남 대치동에 사는 제 친구는 그곳을 늪이라고 표현해요. 안 시키려야 안 시킬 수가 없대요.

 

하지현 : 제가 이런 얘기를 강연에서 하면 나오는 특징적인 피드백이 있습니다. “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사회 시스템이 변하지 않는 한 결국 손해를 보게 되는 것은 나 개인이 아니겠는가? 그러니 이 말은 맞으면서도 현실에 맞지 않는 허황된 얘기로 들린다라는 것입니다. 사교육 안 시키고 그래서 좋은 대학 못 가고 그래서 취업이 안 되면 사회에서 듣보잡취급 받으면서 살 텐데 어떡하느냐는 거죠. 저는 그래서 더욱 더 이부분에 대한 새로운 공감대와 행동을 해낼 개인이 늘어나야 한다고 보는 거예요.

 

....그래서, 한 명씩 한 명씩이라도 개인의 선택의 변화가 이어지고, 그 수가 어느 순간 무시할 수 없는 수가 된 다음에는 결국 상식의 전환이라는 거대한 위상 전위를 맞이할 수 있을 거라고 믿어요. 다행히 분위기는 무르익었다고 봐요. 중산층이 어려워지면서 더 이상 이 게임에 넣을 판돈이 모자란다는 현실과, 인풋 대비 아웃풋이 턱없이 맞지 않을 정도로 인풋 요구량이 현실적으로 감당할 수준을 넘어섰고, 아웃풋마저 매우 미비한 확률 게임이 되어버렸다는 점에서요. 그래서 이 게임 내지는 이 게임을 바라보는 인식 자체가 잘못되었고 여기서 벗어나야 살 수 있겠다는 인식의 대전환이 일어날 그날이 꽤 가까이 다가와 있다고 봅니다.

 

P159. 하지현. 완전히 새로운 영역의 공부가 필요해요. 학교에서 가르치는 교과가 아니라 뭔가를 알고 싶다라는 욕구로부터 시작하는 새로운 공부. 이 친구들에게 이전까지의 공부는 불쾌한 기억이거든요.

 

P163. 공부라는 것, 알고 싶다는 욕망을 갖는 데에는 동기가 필요하거든요. 동기는 크게 세 가지라고 생각해요. 하나는 절박감이에요. ‘이거 모르면 나 죽어’, ‘어떻게든 알아내야 해이런 것이죠. 두 번째는 경쟁심이에요. ‘쟤보다는 나았으면 좋겠어하는 욕구, 세 번째는 그냥 하고 싶어’, ‘알고 싶어이런 이상적인 목표가 있는 거예요. 저는 이 세 가지가 인간을 움직이는 추동력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문제는 이 세 가지가 전부 다 없는 친구들이 있어요.

 

P166. 하지현. ‘그렇다면 공부를 잘한다는 것은 뭘까에 대해서 생각해봤어요. 첫 번째는 핵심, 맥락을 잘 잡아내는 거죠. 둘째는 짧은 시간에 효율적으로 많은 정보를 자기 것으로 만드는 것, 셋째가 진짜 공부를 잘 하는 것일 텐데, 이치를 깨닫는 것이죠. 큰 흐름 안에서 이게 뭘 의미하고 있고, 어디에 자리하고 있는가, 나아가서는 나하고 어떤 관계가 있는가까지 생각할 수 있는 것이겠죠.

 

지금 우리 아이들에게 주어지는 공부는 둘째가 90퍼센트예요. 성적이 아주 잘 나오는 아이는 첫째 덕목인 맥락을 잡 잡아내서 요령이 좋죠. 정작 중요한 것은 셋째인데 거기에까지 마음이 미칠 여유가 없어요. 또 그럴 필요도 느끼지 못하고 있다는 게 비극입니다. 저는 순서로 볼 때 셋째를 목표로 하면서 첫째를 중심으로 흐름을 잡고, 그리고 둘째는 필요에 의해서 노력하면 되는 게 아닌가 싶어요.

 

P181. 이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학력간 임금 격차를 획기적으로 줄이는 거예요. 대졸자와 고졸자 간의 임금 격차가 너무 큽니다. 이 경제적 격차가 사회적, 문화적 격차로 이어지는 한 결코 이 문제는 해결되지 않아요.

 

P184. 엄기호. 한국의 가장 큰 문제는 계급이 구조화가 되면서 동시에 경제적 격차도 구조화가 된다는 점이에요. 경제적 격차가 줄어드는 방식으로 또는 경제적 격차를 완충하는 방식, 이를테면 복지 제도잖아요, 그런 방식으로 계급의 구조화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어요.

 

P193. 공부의 블랙홀에 빠진 부모는 공부에 중독된 아이를 만들고, 그 아이들이 사회에 나온다. 공부 백 퍼센트짜리 순도 높은 존재일 뿐, 사회성, 공감능력, 유연성 같은 요소는 상대적으로 결핍된 상태다. 공부로 승부하는 나이는 20대 중반까지이고 그 후에는 다른 요소들이 더 중요할 수 있는데, 이 요소들이 모자라다고 느끼면 역시 공부를 통해 해결할 수 있다고 여기며 책과 학원을 찾으니 기가 찰 노릇이다. 이런 악순환에 빠져 있는 것이 지금 우리 사회다. 공부라는 블랙홀이 학교를 넘어서 사회와 인생을 빨아들이고 있다.

 

P194. 더 중요한 것은 공부에 중독된 한국인이 그 독 때문에 내 인생뿐 아니라 자식의 인생도 망가뜨리고, 더 나아가 사회구조까지도 동력을 잃어버리게 하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 먼저다. 그리고 그 길로 아무리 노력하고, 아무리 성실하게 열심히 한다고 해도 끝에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올 것이라 믿고 싶지만, 이 대담에서 누누이 반복했듯이 그럴 확률은 급격히 작아진 것이 현재 우리 사회다.

 

모두가 미쳤어, ”이건 아니야를 외치면서도 그 트랙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는 아는 도둑질이 이것뿐이라는 점도 있고, 나만 혼자 빠져나갔다가 혼자서만 불리해질 것이라는 두려움이 강하기 때문이다. 사회적 이슈로 비판을 하면서도 정작 내 아이라는 개인의 문제가 되는 순간 이전의 합리적 상식은 더 이상 작동하지 않고 멈춘 채 하던 대로 하고 있다는 것이다.

 

P195. 이 대담을 시작으로 한 명이라도 더 이 게임에서 벗어날 수 있는 생각의 전환과 용기의 불씨를 가질 수 있기를 바란다. 공부 중독에서 벗어나 다른 트랙에 선 사람이 늘어날수록 공부라는 블랙홀의 중력장은 힘을 잃을 것이다. 차곡차곡 쌓여서 어느 순간 임계점을 넘어설 정도의 참여자가 모이고 나면, 블랙홀은 그 위력을 잃고 사라져버릴 것이라 기대하고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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