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보통의 연애
백영옥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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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진의 <밤은 책이다>를 읽고 가장 끌렸던 소설 중의 하나다. 장편이라 예상했었는데 단편집이었다. 재밌는 단편들이 여럿 있지만 역시나 표제작인 <아주 보통의 연애>가 가장 눈에 띈다. 몇 개의 숫자와 몇 개의 단어로 한 인간의 삶을 투명하게 보여 줄 수 있을까? 그렇다. <아주 보통의 연애>는 우리가 전혀 상상하지 못한 방식으로도 세상을 바라 볼 수 있음을 증거 한다고 할까? ‘기이한 미니멀리즘의 세계다.


한 장의 영수증에는 한 인간의 소우주가 담겨 있다.

취향이라는 이름의 정제된 일상

흡연처럼 고치지 못한 악습들.

....그리고 연말 정산이라는 이름의 집단적인 자기반성.

이렇게 많이?”

부인하기도 하고,

이런 델 왜?”

의아해하기도 하며,

아직도!”

육만오천원씩 꼬박꼬박 빠져나가는 육 개월 할부의 잔해를 보며

실패한 연애를 한탄한다.

.......영수증은 우리가 토해낸 일상을 투명하게 반영한다.

몇 개의 숫자, 몇 개의 단어로.

 

인생이 쓸데없이 길어지는 걸 비웃는,

기이한 미니멀리즘의 세계.


주인공은 잡지사 관리팀에서 일하며 직원들의 영수증을 처리한다. 영수증의 숫자와 단어들은 침묵 속에서 말한다. 주인공은 영수증을 통해 누가 알코올 중독자인지 누가 불륜에 빠졌는지를 알 수 있다. 그녀는 <모드>의 패션팀 수석 이정우를 짝사랑한다. 그래서 그녀는 자신인생의 도돌이표와 같은 이정우의 영수증을 모은다. 그녀는 거의 5년 치, 서른 두 권의 영수증으로 이루어진 비밀 일기장을 갖게 된 것이다.

 

그러나, 언제쯤 그녀는 자신의 사랑을 고백하게 될까?

 

<청첩장 살인사건>의 주인공은 청첩장 쇼핑몰을 운영한다. 청첩장을 디자인하고 수 백 가지의 모시는 글을 만들어내지만 정작 그는 결혼식에 모셔지지않는다. 비록 아무도 그를 초대하지 않지만 그는 자신 고객의 결혼식에 참석해 가족 사진을 찍는다.

 

굳이 마르크스를 불러내지 않더라도 백영옥의 단편 속에 주인공들은 자신의 일로부터 소외되어 있다. 일은 행위자를 드러내지 않고, 오히려 감춘다.

 

영수증을 통해 타인의 삶을 알 수 있다하더라도 타인과 소통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넌 그냥 형용사야 독립된 명사가 될 수 없지. 당연히 동사도 될 수 없어. 넌 섹스나 키스도 책으로 배워야 하는 사람이니까. 살아서 뜨거운 피가 도는 인간이라는 종에 대해 애정이 있긴 한거야? 사랑과 질투를 구별하는 건, 편집자로서 중요한 자질이야. 넌 나를 사랑하는 게 아니라 질투하는 거야. 네가 쓰지 못한 내 책을 질투하는 거지.

<강묘희 미용실, >

 

백영옥의 소설들의 등장인물들은 형용사에 불과하다. ‘겨우 겨우라고 말해왔지만 한 번도 희망 비슷한 것을 포기한 적은 없었다.’고 말하는 화자처럼 등장인물들은 언젠가는 독립된 명사로서의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

 

2014. 8. 20 작성. 백영옥의 새로운 소설을 반기는 마음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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