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장 권력

 

슬픔의 노래, 정찬


 

한국 소설 중 나만의 ‘3부작이 있다. <슬픔의 노래>, <얼음의 집>, <> 모두 한 작가의 작품이다. 우연이다. 우리 사회에서 인생은 생잔(生殘, 살아남기’), 권력은 폭력, 슬픔은 실패를 의미한다. 이런 현실에서 폭력과 권력 탐구를 짊어지는 작가는 흔치 않다. 어쨌든 정찬같은 캐릭터의 지식인이 많아야 한다고 절실히 주장한다.

 

내가 이해하는 정치신학자정찬의 주제는, 권력과 폭력 앞에 선 인간의 선택이다. 가해자든 피해자든 그들의 모습은 작가를 통해 예술과 신학의 이유가 된다. 그는 권력과 폭력을 비판하거나 혐오하기보다, 사유한다.

 

<얼음의 집>의 주인공은 고문 기술자다. 그는 사정에 버금가는 쾌감이라는 권력 행사를 자제하면서, 진실(자백)을 만들어내는 임무를 수행한다. 쾌락을 통제하는 것, 자신에게 주어진 권력을 사용하지 않는 것. 어떤 인간에게도 쉽지 않은 일이다. 나는 20여 년간 가정 폭력 상담을 하면서 열 대를 때릴 수 있는데 여덟 대에서 멈추는 남자를 만난 적이 없다.

 

정찬의 주인공들은 타인의 신체적 고통으로부터 획득되는 권력의 전능함을 알고 있다. 권력의 경험을 사유하는 그들은 기술자가 아니라 예술가’. 최소한 방황하는 영혼이다. <슬픔의 노래>에 등장하는 ‘80년 광주가해자의 보개. “칼이 몸속으로 파고들 때 칼날을 통해 생명의 경련이 손안 가득 들어오지요.......생명의 모든 에너지가 압축된 움직임. .......한 인간의 생명이 이 작은 손안에 쥐어져 있다는 것이죠.......그것은 상상할 수 없는 쾌감입니다.” 이후 그는 죄의식의 갑옷을 벗는 배우가 되었다.

 

정찬의 작품을 읽을 땐 머리와 심장의 분간이 사라진다. 독자의 몸은 무간 지옥에 빠진다. 작가가 먼저 부서져 강이 된 까닭이다.정말 사족. 박정희 체제의 공과를 논할 때 공은 경제 성장, 과는 인권 탄압이라는데,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고문은 정권의 흠이 아니다. 통치 자체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뜻이다.

 

리바이어던, 토머스 홉스.

토머스 홉스의 <리바이어던>은 인간 해방에 국가가 어떤 의미를 지니며 어떻게 운영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매뉴얼수준의 규범과 철학을 제시한다. 홉스는 중세가 저물고 원자화된 개인의 개념이 본격적으로 등장한 시대에 살았으며, 정신도 미세한 물질로 구성되었다고 생각할 정도로 유물론자였다.

 

그는 자연상태에서는 남녀가 평등하다고 믿었다. 그의 관심사는 자연 상태가 어떻게 가부장제 사회가 되었는가였다. 홉스가 분석한 원인은 이기적인 남성들의 집단적 동의에 의한 시민법의 일종인 결혼법때문이다. 자연 상태가 국가의 탄생과 시민사회로 넘어오면서 결혼 제도를 통해 여성은 개인이었다가 개인의 여자로 강등되었다. 성차는 당위가 아니라 인위적 제도라는 것이다.

 

홉스에게 결혼은 여성을 인간의 범주에서 제외시킨 결정적 사건이었으므로 개인 간 범죄의 경중을 비교할 때 기혼녀의 정조 유린은 미혼녀의 그것보다 더 큰 범죄다.”

 

천자문, 주홍사


 

내가 읽은 책 중 최고의 라스트신이 <천자문>일 줄이야. 역시 고전은 고전이다. <천자문>의 마지막 문장은 위어조자 언재호야이다. “뜻은 없지만 말을 잇는 조사가 있는데, ()은 앞 문장을 가리켜 이에’ ‘여기에서라는 뜻이다. ()와 재()는 탄식할 때, 의심할 때 혹은 반어적으로 사용한다. ()는 대개 끝내는 말(~이다)로 쓴다.


위어조자 언재호야’ 996자를 알아도 마지막 네 글자 조사를 모르면 글을 쓸 수 없다. 문장의 성립은 조사로만 가능하니, 문장은 결국 조사의 기술이다. 글자와 조사의 관계를 실과 바늘, 나사와 볼트처럼 짝 개념으로 볼 수도 있다. 둘의 위치는 동등하고 불가분이다. 하나가 없으면 나머지도 소용없다.

 

그러나 이들은 동등하지 않다. 사실은 조사가 더 우월하다. 글자들의 관계, 즉 문장의 내용을 결정하는 것은 뜻이 있는 글자가 아니라 뜻이 없는 글자, 조사다. 무의미는 모든 의미다. 뜻의 무게를 진 자는 사용이 한정되지만, 조사는 자유로운 영혼이면서 문자를 배치하고 지배한다. 의미(권력)없음이 의미를 통제하는 것이다.

 

실은 좋은 글귀 색거한처 침묵적요(한가한 곳을 찾아 사니 조용하다) - 말고 갖고 싶은 문장이 있었다.

 ‘탐독완시 우목낭상’ “돈 없이 책방에 가도, 한 번 읽으면 머릿속에 책 내용이 다 들어온다.”

 

극단의 시대, 에릭 홉스봄, 무솔리니가 집권하자 기차가 정시에 도착했다.


 

내가 평소 좋아하는 글귀가 두 개 있다. 하나는 사랑(관계)은 아무나 하나, 그 누가 쉽다고 했나.”이고 하나는 이 글 제목이다. 전자는 인간을, 후자는 세상을 요약한다. 고민의 순간마다 상기되면서 할 말을 잃게 하는 매혹이 있다. 이 매혹의 정체는 인간()의 무능과 이중성.

 

원래는 무솔리니가 기차를 정시에 달리게 했다”(Mussolini made the trains run on time)인데, 내가 조금 고쳤다.

 

에릭 홉스봄은 당대를 대표하는 비판적 지식인으로서 라이벌에드워드 톰슨(영국 노동계급의 형성)과 함께 영국 지성의 자부심이다. 원제는 ‘1914 ~1991’이라고 시기가 표기되어 있다. 자본주의가 지구를 목 죄기 시작한 1990년대까지 포함했다면 저자는 극단의 시대를 넘어 종말론의 시대를 분석해야 했을 것이다. 20세기 들어 인류는 7천 년에서 8천 년 걸릴 변화는 70여 년 동안 겪었다. 옮긴이의 전언대로, 이 책은 “20세기의 자서전이다.

 

무솔리니가 집권하자 기차가 정시에 도착했다.” 히틀러의 스승이자 변절한 사회주의 언론인 베니토 무솔리니가 파시즘의 우월성을 시위하기 위해 만든 프로파간다였다. 이는 실제가 아니라 담론의 효과였다. 이탈리아 기차는 이미 잘 달렸고, 무솔리니 집권 후에도 기차는 시간표대로 정확히 운행되지 않았다고 한다.

 

파시즘을 향한 대중의 지지는 질서의 효능에 대한 믿음 때문이다. 현행 주폭단속이 좋은 예다. 싹쓸이! 질서(order)는 글자 뜻 그대로 대중의 주문이자 지배자의 명령이다. 통치자의 입장에서는 편리하고, 나만 희생자가 아니라면 대중은 기차가 정시에 도착하리라는 환상에 동의한다.

 

군대를 버린 나라, 아다치 리키야, 평화의 근원은 빈곤과 고립

 

전쟁과 평화. 이 두 단어가 늘 붙어 다니는 이유는 둘 다 뜻이 모호하기 때문이 아닐까. 같이 써놓으면 인식 가능할 것이라는 착각. “전쟁은 안개와 같다카를 폰 클라우제비츠가 시작해서 로버트 맥나마라가 답한 전쟁의 의미다. 불확실하고 부정확한 정보 때문에 그 추이나 결과를 예측할 수 없다는 뜻이다. 전쟁도 모르겠는데 평화는 얼마나 알기 어렵겠는가.

 

이 글의 제목은 저자가 코스타리카 여행 중 외교부 직원에게 들은 말이다. 빈곤과 고립이 평화의 비밀이라니! 코스타리카는 실질적, 합법적으로 군대가 없는 지구상 유일한 국가다.

 

모든 국민이 군대가 없다는 삿길에 자부심을 품고 있으며 환경, 인권, 평화 선진국의 정책과 이미지를 전 세계에 선전하여 이를 방위력과 외교력으로 전환시켰다. 군대가 없기 때문에 오히려 침략당할 가능성이 적다.

 

미국과 북한만 외국이 아니다. 지구상에는 다양한 사회가 있다. 책이 전하는 몇 가지 감동. 코스타리가 교도소에는 담장이 없다. ‘탈출 가능한 철조망은 있다. 교도 행정의 목표는 수감자가 자신에게 어떤 권리가 있는지 알게 하는 것이다. 갱생의 첫걸음은 자기 인식, 자기 평가, 자기 긍정이기 때문이다. 그 결과 재범률은 20%에 불과하다. 보험료를 못 낸 사람이나 불법체류자도 국립병원에서 무료로 치료해준다.

 

군주론, 마키아벨리. 사랑과 외경 중 어느 것이 나은가.


 

박근혜 대통령이 시장에서 감자를 사면서 냄새를 맡는 사진은 정치적, 미학적 충격이었다. 나는 대통령들의 채소류에 대한 무지와 무시에 분노한다. 먹을거리는 민생의 기본이다.

 

냄새를 맡고 구입하는 식자재는 거의 없다. 생선조차 그럴 필요가 없다. 그런데 흙 묻은 감자를 코에 바짝 대고 과일 향기를 맡는 듯 포즈를 취한 여자 대통령의 모습은 그로테스크하다. 대통령을 비난하려는 것이 아니다. 여성스러운 포즈의 진부함과 오브제의 야릇한 부조화는 비/웃음을 생산했다.

 

군주가 국민에게 사랑받은 것과 외경 받은 것 중 어느 것이 나은가마키아벨리는 둘 다 겸비하면 좋겠지만 이는 지극히 어려운 일이므로, 택일한다면 외경의 대상이 되는 편이 안전하다고 주장한다. <군주론>의 요약이자 유명한 구절이다.

 

감자의 향기는 사랑도 두려움의 대상도 아닌 웃음거리, 트러블 메이커, 국민을 당황스럽게 하는 지도자를 연상시킨다. 클린터의 섹스중독이나 부시 2세의 무식, “왜 나만 미워해!”라고 투정 부리면서 갑자기 사임한 후쿠다 전 일본 총리......이들은 바람직한 군주와 거리가 먼 것이 아니라 군주에서 논외인 경우다.

 

폭군 정치는 당연히 저항을 불러온다. 그러니, 크게 걱정할 일이 아니다.’ 나는 국민과 다른 세상에서 사는,

현실에서 탈구된, 감자의 향기를 연출하는 여성 리더십이 더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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