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집 - 불굴의 인간 토니 주트의 회고록
토니 주트 지음, 배현 옮김 / 열린책들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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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토니 주트의 대표작이라 말할 순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은 열쇠 책이다. 즉 토니 주트라는 세계를 열어젖힐 수 있는 key. <기억의 집>은 루게릭 병에 걸린 말년의 그가 자신의 삶을 담담히 회고한 유고작이다. 런던 태생이었으나 유대인이었던 주트는 젊은 시절 이스라엘 키부츠 농장으로 가 청년 시온주의 단체에서 무급으로 일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그곳의 유대인들을 보고 경악했다. 유대인들은 패전한 아랍인들을 잔혹하게 대했고 자신들이 아랍 땅을 점령하고 지배할 거라는 기대에 들떠 있었다. 그러한 경험을 통해 일찌감치 그는 마르크수스의는 물론이고 마오주의, 극좌주의, 3세계주의 등 당시 유행하는 그 어떤 이데올로기에도 관심을 두지 않았다. 시온주의와의 결별이후 그는 보편적 사민주의자의 길로 나아갔다.

 

자신을 영국인으로도 유대인으로 규정짓지 않은 그는 주트는 뉴요커였다- 자신에게 유대인의 피가 흐른다는 이유만으로 역사에 책임감을 느낀다. (한국은 일본에 사죄를 요구하기 이전에 필리핀에 먼저 사죄해야 한다. 역사적 낭만화라고 해야 할까? <국제시장>에서 묘사된 것처럼 우리는 필리핀 사람들의 구원자가 아니었다. 살인자. 박정희가 그러하듯 도살자였다.)유대인을 학살했다는 죄악 외에 히틀러의 또 다른 죄를 추가하자면 갈가리 찢겨있던 시온주의를 공고히 했다는 것이다. 젠장, 히틀러이전 유대인들은 그 누구도 시온주의를 원하지 않았거늘.

 

오늘날 유대인은 히틀러만큼이나 잔혹한 만행을 스스럼없이 일삼는다. 하나님이라는 이름으로 여자와 어린 아이들의 배를 가른다. 오늘날 종교는 신이 고안했다기보다는 악마가 고안한 것처럼 보인다. 절대적으로!

 

타인의 관습을 접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우리는 스스로에 대해 가차 없는 비판자가 되어야 한다. 나는 이 과거에 대해 책임감이라는 빚을 지고 있다. 바로 이것이 내가 유대인인 이유다.

 

중년의 위기로 인해 다른 남자들이 차를 바꾸거나 아내를 바꿀 때, 주트는 체코어를 공부했다. 체코에 대한 관심 덕분으로 그는 대표작 <포스트 워>를 집필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미워시의 <사로잡힌 마음>과의 만남도.

 

미워시는 그의 동시대인 네 사람을 연구 대상으로 삼아, 그들이 자율에서 출발하여 복종의 희생양이 되는 과정에서 보인 자기기만을 드러내면서, 지식인들에게 <복종 감정>이 필요했다는 데 방점을 찍는다.

 

그 책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두 개의 이미지다. 하나는 <무르티빙의 약>이다. 이 약은 스타니스와프 이그나치 브트키에비치가 쓴 모호한 소설 <탐욕>에서 미워시가 찾아 낸 것이다. 이 소설의 중앙 유럽인들은 동쪽에서 온 정체불명의 유목민 무리에게 정복당하기 일보 직전, 어떤 약을 먹게 된다. 이 약은 두려움과 불안을 덜어 주며, 그 약효를 본 사람들은 새로운 지배자들을 받아들일 뿐 아니라 적극적으로 그들을 환영하며 기뻐한다.

 

두 번째 이미지는 <케트만ketman>인데, 이는 아르튀르 드 고비노가 쓴 <중앙아시아의 종교와 철학>에서 빌려온 것이다. 그 책에서 프랑스 여행가인 고비노는 이란에서 생겨난 선택적 정체성이라는 현상을 보고한다. <케트만>이라는 존재 방식을 내면화한 자는 자신이 하는 말과 다른 것을 믿으면서 모순적으로 살아갈 수 있다. 지배자가 새로운 것을 요구할 때마다 자유롭게 순응하는 한편, 자기 내면의 어딘가에는 자유사상가로서 적어도 타인의 사상과 독재에 스스로 복종하겠다고 자유롭게 선택한 사상가로서 자율성을 지켜 왔다고 믿는다.

 

미워시는 말한다. <동유럽 사람이기에, 미국인을 진지하게 받아들일 수 없다. 사람들이 판단하고 생각하는 방식은 언제나 상대적이라는 사실을 미국인들은 경험을 통해 배운 적이 아직 한 번도 없기 때문이다. (....) 미워시 탄생 후 100, 시대의 획을 그은 에세이 <사로잡힌 마음>이 출판된 지 57, 노예근성을 가진 지식인들을 향한 미워시의 고발은 그 어느 때보다 진실 되게 들린다. <그의 주된 특징은 스스로 생각하기를 두려워하는 데 있다.>

 

케트만의 존재 방식을 내면화한 노예근성을 가진 지식인들을 향한 미워시의 고발은 그 어느 곳보다 이 땅에서 진실 되게 들린다.

 

유대인이었으나 끔찍한 유대인들을 서슴없이 비난했던 주트, 루게릭 병으로 예고된 죽음을 기다리면서도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가 낳은 온갖 불평등과 극심한 빈부격차에 분노하던 주트. 그는 죽었으나 더 나은 삶을 상상하라던 그의 가르침은 죽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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