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인간 -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오에 겐자부로의 50년 독서와 인생
오에 겐자부로 지음, 정수윤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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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좋다. 나는 지옥으로 가겠다.”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허클베리 핀>의 이 한 문장이 한 소년을 노벨문학상 작가로 만들 줄이야! (, 나도 소년 시절 허클베리 핀을 읽었건만...... 안 읽었나?)

 

소년 오에는 그렇게 살기로 결단했고 노년의 오에는 그렇게 살아왔다고 자부한다.

책이여, 안녕!’이라고 말할 만한 노년의 오에는 현재의 자신을 만들어준 인생의 책들을 회고한다.

 

허클베리 핀, 프랑스 르네상스 단장, 포 시집, 오든 시집, 엘리엇 시집, 에드워드 사이드, 시몬 베유, 블레이크, 맬컴 라우리, 플라톤, 단테의 <신곡> 등등.

 

얼마 전 엘리엇의 <네 개의 사중주>에 꽂혀 있었는데 오에 겐자부로도 좋아했다니 반가웠다.

보르헤스도 여러 나라의 언어로 <신곡>을 읽었다고 하는데, 신곡을 다시 한 번 읽어보고 싶다. 그러고 보면 <신곡>청소년 권장 도서라기 보단 노년 권장 도서가 아닐는지.

 

작고한 영화감독 이타미 주조와 처남, 매제간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어릴 적부터 둘도 없는 친구 사이인 줄은 전혀 몰랐다. 랭보를 이타미 주조에게 배웠다니! 오에가 싱클레어라면 이타미 주조가 데미안이었던 셈. 그는 이타미 주조의 영향으로 수상한 이인조식 소설을 써왔다고 한다. 비평가는 이러한 이인조의 원형으로 사무엘 베케트를 언급하지만, 베케트보다는 헤세에 더 가깝지 않을까. ‘수상한 이인조문학은 실은 문학의 시초로 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기원전 3000년 경, <길가메시 서사시>의 길가메시와 엔키두가 그 원형이므로.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사람이 소년 오에에게 이타미주조였다면

노년의 오에 에게는 에드워드 사이드다.

(이럴 수가, 에드워드 사이드 책을 단 한권도 안 읽다니!!)

 

권력에 대한 비판을 멈추지 않는 에드워드 사이드와 마찬가지로 오에 역시 인권을 침해하는 권력에 날을 세운다. 오에는 천황의 문화훈장을 거부했다. (대통령 표창이라고 하면 한국 지식인들은 너도 나도 받으려고 야단법석이었을 텐데. 경제학자라고 우기는 공 모씨 같은 이들은 환장했을테지.)

 

금수와도 같은, 말라리아 같은 정치인들과 지식인들에게 (기생충이라고 표현하면 안 된다. 서민 박사의 책을 보면 알 수 있는데 기생충에 대한 모욕이다.) 책을 읽혀야 한다.

 

신곡을 권하고 싶다.

 

너희는 짐승처럼 살기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니라, 덕과 지식을 구하기 위해 태어났다.”

 

 

밑줄 그은 문장

p14. 몸도 마음도 얼어붙게 만드는 궤주의 반려, ‘공황에 빠져 용맹하기로 이름난 군사들마저도 견디기 힘든 비탄에 젖어서 의욕을 잃었으니

 

p16. 그리고 센 씨는 엘리엇이 <네 개의 사중주> 세 번째 시 <더 드라이 샐비지즈>에서 크리슈나를 지지하고 있음을 덧붙입니다. 엘리엇은 이 시에서 분명 전투를 계속하는 쪽으로 나아가려 합니다. “Fair well(무사하기를)”이라 하지 않고, “Fair forward(나아가라)”라고 하지요. “나아가라, 항해자여!”라고 말입니다. fare여행하다, 나아가다라는 뜻의 옛말입니다.

 

P20. 나는 숨을 죽이고 일 분간 가만히 생각했다. 그러고는 마음속으로 이렇게 말했다.

그래 좋다, 나는 지옥으로 가겠다.” - 그렇게 말하고는 그 종잇조각을 찢었다. 그것은 무시무시한 생각인 동시에, 무시무시한 말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 말을 내뱉었다. 그리고 말한 대로 행하고 있다. 그 마음을 바꾸려 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당시 웬만해서는 손에 넣기 힘들던 공책을 구해서, 첫 페이지에 그 문장을 적었습니다. 문장 주변에 장식을 두르고는, ‘좋다, 나는 지옥으로 가겠다...... 지금껏 이걸 원칙으로 살아온 듯합니다. 사실 우왕좌왕할 때도 있었지만 근본적으로는 그런 마음가짐을 지녀왔습니다.

 

p23. < 프랑스 르네상스 단장>에 제가 붉은색으로 선을 그어둔 부분 중 하나를 인용하겠습니다. 이것만으로도 책의 내용과 저자의 말투를 알아채시리라 믿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이 난제들 가운데 어떤 것에도 답할 수가 없다. 다만 한 가지 아무리 해도 포기할 수 없는 편견은, 르네상스기에 인간이 회복한 자유 검토 정신인 휴머니즘만이 인간을 구원할 수 있으며, 이를 올바로 발전시켜나감으로써 필연적 통제주의마저 불관용과 기계화, 비인간화에서 벗어나 인간의 것이 될 기회를 주리라는 것이다. 하지만 애초에 이런 생각이 신중세로부터 거부당한 케케묵은 태도에서 오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문은 여전히 남는다.

 

p52. 그렇다면 과거의 파토스는 어떻게 되는 거지? 내게는 대단히 중요한 문제야. 이미 지나간 것으로서의 과거 말이지. 경의를 표하고, 격찬하고 중시하는 것은 그것이 이미 지나간 것이기 때문이야. 그걸 요즘 유행하는 식으로 갱신해서 현대적인 것과 관계가 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서만은 아니라고 생각해. 내가 뭘 이야기하고 싶은지 알겠나? 역사에는 무자비한 측면이 있어서 인간의 경험 깊숙한 곳으로 파고들지. 어떤 것들은 결코 돌이킬 수 없어. 그것은 과거에 속한 것이니.

 

p56. 지금 자신이 있는 곳으로 들어오고자 하는 사람은 누구나 열렬히 환영하는 가톨릭다운 환경도 존재합니다. 그러나 저는 어느 하나의 환경 속에 받아들여지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바라지 않는다는 말만으로 제 기분을 제대로 표현했다고는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는 쉽고 편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가능하다면 저도 바라고 싶습니다. 하지만 제게는 그런 것이 허락되지 않았다는 기분이 듭니다. 저는 혼자이고, 예외 없이 어떠한 인간적 환경과도 인연이 없는, 추방된 상태로 존재하는 것이 제게 필요하며, 또한 그런 부름을 받았다는 기분이 듭니다......

 

p68. 그것은 3년마다 읽고 싶은 대상을 새로 골라서 그 작가, 시인, 사상가를 집중해서 읽는 방식이었습니다. 그렇게 하면 말이죠, 자기가 읽어온 것들로부터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어요. 아울러 자신의 새로운 언어 감각을 발견하게 됩니다.

 

p82. 이렇듯 외국어 책을 읽는 것과 일본어 소설을 쓰는 것이 본질적으로 서로에게 여운을 남깁니다. 어떤 소설의 근본적인 톤, 음악으로 보자면 선율 같은 것이 떠오르는 경우도 있습니다. 저는 이것을 문체라고 부릅니다. 소설의 스타일이란 바로 이런 것을 말하며, ‘grief’라는 작은 단어 하나에서 문장으로, 이어서 작품 전체로 전개됩니다. 나아가 한 사람의 소설가가 지닌 인간을 바라보는 견해, 사고방식, 소설가로서 뿐만 아니라 인간 본연의 자세와도 이어지는 것이죠. 그것이 문체이며, 결국 우리는 이것을 읽어내기 위해 소설을 읽고 소설로 쓰기도 하는 것입니다.

 

p122. 그리스어로 아남네시스anamnesis’상기하다’, 떠올리다, 생각해내다라는 뜻인데요. 이 아남네시스라는 것이 오늘날 세계에서 우리를 자기도 모르는 아름다움, 올바름으로 이끌어준다는 플라톤의 널리 알려진 철학을 다뤘습니다.

 

처음 기 형은 신약성서 <마태 복음>에 나오는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워라. 그 가지가 부드러워져 싹이 트면 여름이 다가옴을 알리니라는 구절에 마음을 빼앗겼다고 편지에 씁니다. “나뭇가지가 부드러워진다는 부분은 실제로 깊은 숲 속 나무에 둘러싸여 사는 내게 중요하게 다가왔다하여 이번에는 플라톤의 <파이드로스>를 다시 읽게 되었다는 내용이 이어지지요.

 

옛날 우리는 천사처럼 하늘을 날았고, 지금도 우리는 가끔씩 새의 날개가 돋는 부분, 어깻죽지 부근이 근질근질하다 부풀어 오르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기 형은 아까 말한 무화과나무에 대한 성서 말씀으로 돌아갑니다. 나뭇가지에서 싹이 나는 계절, 작은 가지가 돋아나기 직전에 무화과나무를 보면, 아주 약간 부풀어 있고 부푼 부분을 눌러보면 부드럽다고 합니다. 식물이 새로 잎을 낼 때에는 딱딱한 나무 살결이 부드러워지고, 조금 부풀어 오릅니다. 그런 것과 마찬가지로 인간의 육체도, 영혼도, 거기서 뭔가 새로운 것이 싹트려 할 땐 약간 부풀어 오르면서 부드러워지는 것이 아닐까. 그렇게 새로 움트는 것을 소중히 여기지 않으면 안 된다고 플라톤은 말합니다.

 

지금이야말로 내 안에 무언가 새로운 것이 움트려 하면서, 몸과 마음이 부드러워지고 있는 듯하다. 나는 지금 완전히 새로운, 따라서 대단히 위험할 수도 있을 일을 하고자 한다.

 

124. 그 가운데 하나가 <토성 아래서>라는 시입니다. “지금 내가 우울한 얼굴을 하고 있다 해서 상실한 사랑에 대한 기억을 잊을 수 없기 때문이라 생각하지는 말아다오. 그게 아니라 나는, 이제 더는 젊은 날을 경험할 수 없다는, 바로 그것이 괴로운 것이다.”

 

p134. 인생의 중반기에 올바른 길을 잃고 헤매던 나는, 어느 어두운 숲 속 가운데 있었다.

 

p136. 네가 올라가 저들 옆으로 가기 원한다면 그곳에 나보다 더 나은 영혼이 있으리라. 우리는 헤어질 때가 왔으니 너를 여기에 두고 가겠다.

 

p151. 조금이나마 너희 마음에 합당하다 싶으면, 그냥 지나치지 말고, 너희 중 하나가 가르쳐다오. 너희는 정처도 없이 어디를 헤매다 죽었느냐.

 

p152. 너희는 짐승처럼 살기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니라, 덕과 지식을 구하기 위해 태어났다.

 

p174. “서로를 신뢰하고 사랑하기까지 하지만 서로 미워하는 듯도 한, 어쨌든 서로를 필요로 하는 이인조가 오에의 소설에는 등장한다.” 고 제임슨은 말합니다. 이러한 이인조에는 원형이 있다고 하면서, 그는 사무엘 베케트의 <이름 붙일 수 없는 것>을 인용했어요. 베케트가 생애 최후에 쓴 소설 삼부작 <몰로이>, <말론 죽다>, 그리고 <이름 붙일 수 없는 것>입니다.

 

p183. 그리하여 그곳을 나와 다시 하늘의 별을 우러렀다.

 

p186. 그 단편은 이토 시즈오라는 시인의 시를 인용하는 것에세 시작합니다.

 

나의 영혼이 무엇인지는 말할 수 없다.

그 증거를 나는 너에게 이야기하겠다.

 

p190. ‘나의 영혼이 무엇인지는 말할 수 없다.

그럼에도 나의 영혼은 기억한다.

 

p193. s 씨에 따르면, 시인은 영혼의 자발성을 믿지 않고, 영혼이 말하자면 악기처럼 외부에서 오는 울림이라고 생각했다 한다. (중략) 자체적인 힘에 의해 자기 안으로부터 노래를 발산하는 나의 영혼이 아니다. 그러나 일단 악기가 되어 울리기 시작한 노래를 나의 영혼은 기억한다.......

 

p204. 또한 죽은 자들이 살아 있을 때에

말로 꺼내지 않은 것을

죽은 뒤에는 말할 수 있다.

죽은 자들의 전달은 살아 있다

인간의 언어를 초월하여 불로서

드러나는 것이다.

 

p224. 그는 지식인의 역할이 사회 속에서 어떤 특권도 지니지 않는 아마추어로서 권력을 비판하는 움직임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지식인의 표상>을 읽어본 분들은 잘 아시겠지요.

 

p230. 본질적으로 보자면, 고향 상실의 주변인으로 언제까지나 권력을 향한 비판을 멈추지 않는 사이드가, 예를 들어 이슬라엘 지식인으로 안주한 작가 아모스 오즈에 비하면 분명히 유대계 지식인다운 특성을 지녔으며, 나는 그러한 최후의 인간이라 할 수도 있다라고 한 건 사이드다운 유머이면서 아울러 그의 진심이라고 이해할 수 있겠습니다.

 

p231. 사이드는 아도르노에 대하여라고 주석을 달아 말합니다.

 

만년성은 받아들여지는 것이나 정상적인 것을 뛰어넘어, 그 너머에서 계속해서 살아나가겠다는 사싱이다. 아울러 만년성은 인간이 만년성을 뛰어넘고, 인간이 이를 초월해 거기서 탈피하는 것은 실제로 불가능하다는 인식을 담고 있다.

 

아도르노는 베토벤이 화해 불가능한 것을 하나의 이미지로 화해시키는 것을 거부했다고 썼습니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사이드 자신의 음악과 세계에 대해 몇 번이고 똑똑히 들었던 음성입니다.

 

내가 아도르노 안에서 발견하는 중요한 부분은 이런 긴장감에 대한 고찰, 내가 화해시키기 어려운 것이라 부르는 부분에 강렬한 빛을 비추어 극적인 것을 만들어내는 고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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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의환희 2016-02-13 08:4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리뷰를 어쩜 이렇게 잘 쓰시는지요 ^^ 글쓰시는 분같아요 ^^

시이소오 2016-02-13 08:41   좋아요 1 | URL
허걱 그런 칭찬 처음 들어요. 환희의 도가니!! 감사합니다. 잘 쓰도록 해 볼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