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굴의 시대 - 침몰하는 대한민국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박노자 지음 / 한겨레출판 / 2014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1990, 한국학 전문가 안드레이 란코프 교수는 당시의 러시아 현실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러시아 역사에는 공포스러운 장면이 많습니다. 그러나 현재처럼 이렇게 더러운 시대는 .......아마도 처음인 것 같습니다.

 

오늘날 대한민국이 그렇다. 이렇게 더러운 시대는 없었다. 국가는 잔학해지고 개인은 점점 더 비굴해지고 있다. 기득권에 기생하기 위해 대다수 지식인들이 침묵을 선택한 것과 달리 러시아의 아들박노자는 한국 현실에 대해 가차없는 비판을 서슴치 않고 해왔다. 그의 비판이 소중한 것은 우리가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내면화한 파쇼적 아비투스가 전혀 없다는 점이다. 박노자는 박근혜 정권을 파쇼의 부활로 본다. 히틀러 독재가 대중 독재였듯 오늘날 대한민국은 파쇼 대중을 기반으로 한 파쇼 정권이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정당을 해산시키는 걸 보고나 들은 적이 있나? ‘도살자박정희도 전두환도 정당을 해산시킨 적은 없다. 박노자 말대로 편집증 정권, 미친 정권이다. 오죽하면 보수적인 불교, 천주교, 개신교등 종교계가 손잡고 대통령 사퇴를 부르짖었겠는가?

 

박노자의 말대로 공포를 먹고 사는 사회가 지옥이라면 대한민국은 무간지옥이다. 예전에 리뷰를 썼던 스티븐 핑커의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에 대해 어떤 이가 반박의 글을 올렸다. 책을 제대로 이해못했다고? 핑커의 책은 초등학교 1학년 수준의 지력만 있다면 누구나 이해가능하다. 핑커의 주장은 한 마디로 유사이래 폭력이 감소해왔다는 거다. 박노자는 뭐라고 했을까?

 

핑커의 주장과 달리 우리 사회에서 폭력은 전혀 수그러들지 않았다. 그 주된 폭력의 형태는 자본의 횡포, 이른바 갑질이다. ‘은 파견 업체를 통해서 1년 계약의 비정규직을 모집해서 정규직과 같은 라인에서 일하게 한다. 비정규직은 정규직과 동일하거나 오히려 더 힘든 일을 한다. 그들이 비정규직 보호법에 의거해서 정규직 전환을 요구하기만 하면 갑은 바로 계약을 해지하고 그들을 내보낸다. 직장이외에는 사실상 어떤 복지도 존재하지 않는 사회에서, 실업 수당을 최장 10개월간 받고 나면 그저 굶어 죽을 수밖에 없는 사회에서, 갑의 이러한 횡포는 그 자체가 폭력이다. 무엇보다도 가장 기초적인 정의를 짓밟는 강자의 부당 대우는 바로 광의의 폭력에 속하지 않을까?

 

이런 시각에서 본다면 핑커의 주장과는 정반대로 우리 사회는 비폭력화되기는커녕 오히려 신자유주의적 패악질이 누적됨에 따라 더 더욱 폭력화되고 있다.

 

그렇다고 물리적 폭력이 없어진 것도 아니다. 희방버스 참석자들은 용역깡패에 의해 머리가 깨지고 송경동 시인은 갈비뼈가 부러져 나갔다.

 

국가폭력은 개인의 폭력을 내면화시키는 걸까. 윤일병 살인 사건, 김해 여고생 사건을 보면 대한민국은 괴물제작소. 김해 여고생 사건에서 가해자들은 성매매 강요, 폭행, 고문에 이어 시신에 휘발유를 붓고 시멘트로 암매장했다.

 

우리보다 경제적으로 힘든 네팔, 이집트, 아르메니아, 시리아 등의 국민들은 왜 우리처럼 자살하지 않는 걸까.

 

울리히 벡이 위험사회에서 말했듯 돈이 없고 지위가 낮을수록 생명의 가치는 제로에 가까워진다. 세월호 사건은 기업과 국가가 공모한 대량 살인 사건이다.

 

미쳐가는 나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핑커의 말이 맞다고 아득바득 주장하는 사람들을 보면 아연해진다. 대한민국에서 인간답게 사는 길이 있을까. 박노자의 처방이다.

 

믿지 말라, 무조건 따르지 말라, 동류를 찾으라.

 

우리는 당장 체제를 벗어날 수 없다. 그렇지만 체제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은 가질 필요가 있다. 또한 체제가 강요하는 사회화 과정을 거부한다면 체체의 보복이 뒤따른다. 박노자는 우선은 체제 안에서 자신의 욕망에 충실하도록 노력하라고 말한다. 부모의 말에 따라 명문대를 선택할 것이 아니라 자신의 욕망을 존중할 수 있는 학과를 선택하라. 그리고 동류를 찾으라고. 온건 사회주의자가 되든 급진 아나키스트가 되든 나는 혼자가 아니다라는 느낌이야 말로 중요하다고.

 

나는 좌, 우파 프레임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한국의 좌파는 모르겠지만 한국의 보수는 보수가 아니다. 나의 모든 척도는 만인의 인권이다. 인간답게 살 권리 말이다. 작금의 대한민국은 인간답게 살 권리를 존중하는 사회인가? 각자가 생명으로서 인간으로서 존중받지 못하는 나라의 국민으로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박노자는 이렇게 말한다.

 

각자도생의 시대에는 사실 진정한 의미의 행복이란 없다. 아니 불가능하다. 수백만 년 동안 군중 동물로 살아온 인간이 남을 짓밟고서 혼자서만 누리는 생존과 번영에 진정 행복할 수는 없다. 그것은 생물학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결국 아무리 표면적으로 성공해도 이 체제와 시대가 각자에게 남기는 것은 내면의 파멸과 고통일 뿐이다.

 

인간이면 남의 고통을 진지하게 보고 이해하는 순간 자비심을 낼 것이다. 그렇게 되면 언젠가 운명이 그 자비심을 실천할 기회를 줄 것이다. 각자도생 시대의 적자생존이니 약자 도태니 하는 코드에 역류할 수 있는 심층적 집단 심성이란 결국 자비심밖에 없다. 그것이야말로 혁명적 실천의 원천이다. 파웰 코르차긴의 말대로 내 모든 생명과 정력을 다해 그것을 실천한다면 죽는 순간에는 그래도 덜 부끄럽지 않을까?


-2015. 5. 27  작성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대왕오징어 2016-02-12 21: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강자에겐 한없이 약하고 약자에겐 더없이 강한 꼰대들이 판치는 시대죠..

시이소오 2016-02-12 21:14   좋아요 0 | URL
적어도 꼰대는 안되도록 살아야되겠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