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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석의 문장 ㅣ 한국어 글쓰기 강좌 1
고종석 지음 / 알마 / 2014년 5월
평점 :
글을 빨리 쓰는 게 목표라곤 하지만 어찌된 게 아무리 써도 글이 좋아지진 않는다. 리뷰를 쓰면 쓸수록 다른 사람들처럼 잘 쓰고 싶다는 욕망이 점점 강렬해진다. 이 책을 들여다보니 내가 왜 여전히 허접한 글들을 쓰고 있는지 대충 알 것 같았다.
1부 글은 왜 쓰는가?
조지오웰 ; 글을 쓰는 네 가지 동기,
순전한 이기심
미학적 열정
역사적 충동
정치적 목적
“그러니까 어떤 사회를 지행할 것인가, 그런 사회를 이루기 위해서 어떻게 싸워야 할 것인가에 대한 남들의 생각을 바꾸려는 욕망 말입니다. 다시 말해, 글을 통해서 다른 사람들을 설득해 그 사람들의 생각을 바꿈으로써 세상을 더 살만한 곳으로 바꾸고 싶은 욕망이 오웰이 말하는 정치적 목적입니다. 오웰은 이 대목에서 어떤 책이든 정치적 편향으로부터 진정으로 자유로울 수는 없다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예술은 정치와 무관해야 한다는 의견 자체가 정치적 태도라고 덧붙이기도 했습니다.”
“내 작업들을 돌이켜보건대 내가 맥없는 책들을 쓰고, 현란한 구절이나 의미 없는 문장이나 장식적인 형용사나 허튼소리에 현혹되었을 때는 어김없이 ‘정치적’ 목적이 결여되어 있던 때였다.”
사르트르 : 사물의 언어와 도구의 언어
사물의 언어라는 건 그야말로 사물 그 자체인 언어입니다. 아무런 목적이 없는 언어. 굳이 묵적이 있다면 자기만족입니다. 사르트르는 대표적인 사물의 언어로 시를 꼽았습니다.
도구의 언어는 명확한 목적을 가진 언어입니다. 사람들의 생각을 변화시키고 그럼으로써 세상을 변화시켜야겠다는 의지를 담은 언어. 이 도구의 언어가 산문입니다.
사르트르는 그래서 시를 경멸했는데 말년에 젊은 시절의 주장을 철회했다. 시가 어떻게 단지 ‘사물의 언어’일 수 있겠는가.
롤랑 바르트 : 자동사적 글쓰기와 타동사적 글쓰기
자동사적 글쓰기란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끼치겠다는 목적이 전혀 없이 오직 ‘기능’에 충실한 글쓰기.
타동사적 글쓰기에서 중요한 건 ‘활동’입니다. 활동이라는 건 지식을 전달하거나 사람들을 설득한다거나 증언하다거나 선전한다거나 설명한다거나 하는 것입니다.
고종석은 조지 오웰, 사르트르, 롤랑 바르트가 말한 글쓰기 개념들을 소개한 이후, 자신의 강좌는 오웰이 말한 정치적 글쓰기, 사르트르가 말한 도구로서의 언어, 롤랑 바르트가 말한 타동사적 글쓰기를 익히기 위함임을 표명한다.
뛰어난 선동문 세 권
고종석은 뛰어난 선동문으로 토마스 페인의 <상식>,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공산당 선언>, 아룬다티 로이의 <9월이여 오라>를 꼽는다.
로만 야콥슨: 은유와 환유
야곱슨에 따르면 비유법엔 단 두 가지 밖에 없다.
은유 : 유사성에 기초한 비유
환유 : 인접성에 기초한 비유
직유역시 은유다.
2부. 한국어답다는 것의 의미
소쉬르 : 시니피앙과 시니피에
개념 : 시니피에
청각영상 : 시니피앙
기호 : 시니피에 + 시니피앙
한국어 음성 상징의 예
재잘재잘, 산들산들, 보풀보풀, 졸졸, 간질간질, 반질반질, 넘실넘실, 새실새실, 꿈틀꿈틀, 보슬보슬, 흔들흔들, 한들한들, 야들야들, 매끌매끌, 빙글빙글, 생글생글, 데굴데굴, 나풀나풀, 까불까불, 너울너울.
스르르, 사르르, 까르르, 뱅그르르, 조르르, 함치르르, 찌르르, 번지르르, 반드르르, 야드르르, 보그르르, 와르르, 데구루루, 후루루
뭔가 흐른다는 느낌, 가볍다는 느낌이 나지 않습니까? ‘ㄹ’ 은 어떤 흐름, 가벼움, 밝음 같은 음성상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낭창낭창, 가르랑가르랑, 오동통, 둥글다, 동그랗다, 아장아장, 깡충깡충, 빙빙, 송송, 어화둥둥, 붕붕, 아롱아롱, 대롱대롱, 퐁당퐁당, 초롱초롱, 또랑또랑, 송이송이.
올망졸망, 살랑살랑, 살강살강, 팔랑팔랑, 찰랑찰랑, 가르랑가르랑, 종알종알, 몰캉몰캉
‘ㅇ’ 은 통통 튀는 느낌과 함께 둥긂의 느낌이 나지 않습니까? 통통 튀는 ‘ㅇ’ 과 흐르는 ‘ ㄹ’이 섞이면 흘러가면서 튀는 느낌이 납니다.
사피어 – 워프 가설
세계나 생각이나 인식에 앞서 언어가 있다는 언어결정론적인 입장.
한때 주목 받긴 했으나 요즘은 언급하지 않는다.
개인적으론 사피어 – 워프 가설이 부분적으로 어떤 사회 현상을 설명하는데 도움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사이코패스’를 예로 들어보자. 이 단어가 일상화된 이후로 왠지 규정할 수 없는 행동을 한 모든 사람들을 ‘사이코패스’란 단어 하나로 획일화하는 경향이 눈에 띈다. 생각이나 인식에 앞서 언어가 있을 순 없겠지만 언어가 사람들의 사유를 조장하는 측면을 무시할 순 없다.
스티븐 핑커 : 멘털리즈 혹은 생각의 언어
스티븐 핑커가 사피어 – 워프 가설을 비판하면서 어떤 특정 국가의 언어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생각의 언어’로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이 공통언어를 핑커는 ‘멘털리즈mentalese’라고 불렀다.
고종석의 조언들.
접속부사와 쉼표
접속부사를 빼면 문장에 긴장감이 생기고 생기가 돈다.
일본식 접미사 ‘적’
‘-적’은 뺄 수 있으면 빼는 게 좋다.
부사는 관형사를 수식할 수 없다.
‘내면적 성찰’, 좋습니다. ‘내면적인 성찰’이라는 말은 쓰지 마십시오. 그렇지만 앞에 ‘매우’라는 부사가 붙으면 ‘매우 내면적인 성찰’이 돼야 합니다. ‘매우 내면적 성찰’은 틀린 표현입니다.
일본식 조사 ‘의’
‘의’는 되도록 빼는 것이 자연스럽다.
꼭 피해야 할 일본어투 표현
‘~에의’, ‘~로의’ 같은 겹조사는 절대 쓰지 마라.
복수표현 ‘들’을 남용하지 마라.
‘개인적으로’라는 표현은 되도록 쓰지 마라.
‘그’를 남용하지 마라. 유럽어 정관사의 악영향.
‘우리나라’라는 표현은 잘못된 표현이다. ‘한국’이라고 써야 된다.
보조사 ‘는/은’과 주격조사 ‘이/가’
이/가 는 주격조사 지만 ‘은/는’은 주격조사가 아니다. 왜냐하면 목적격에도 쓸 수 있기 때문이다. ‘걔가 너는 사랑해’할 때 ‘너’의 성분은 목적어기에 ‘는’은 보조사다. 뜻을 섬세하게 만들어 준다.
같은 조사를 연속해서 쓰지 마라.
‘~가운데 하나는’ 할 때 ‘가운데’는 무조건 빼라.
‘것이다’라는 말은 되도록 안 쓰는 게 좋다.
‘~하고 있다’는 표현도 되도록 쓰지 마라.
‘아마도’는 ‘아마’로, ‘역시도’는 ‘역시’로 고쳐라, ‘도’를 빼라.
쓸데없는 ‘동안’은 무조건 빼라
‘나는 그 일을 두 달 동안 했어’보다 ‘나는 그 일을 두 달 했어’가 좋다.
‘~한 일이다’라는 표현도 피하는 게 좋다.
‘부모의 성을 함께 쓰는 것이 우리에게는 매우 낯선 일이다.’
보다는 ‘부모의 성을 함께 쓰는 것이 우리에게 매우 낯설다.’가 더 깔끔하다.
‘대신’으로 가능한 표현을 ‘대신에’로 쓰지 마라.
‘~에 의해’란 표현도 되도록 쓰지 마라.
‘토끼가 늑대에 의해 잡아먹혔다’ 라는 표현 대신 ‘토끼가 늑대에게 잡아먹혔다’가 더 자연스럽다.
‘~로서는’ 이란 표현도 나쁜 습관이다.
‘나로서는’ 보다는 그냥 ‘나는’이 훨씬 간결하고 깔끔하다.
‘~에’, ‘~에 대한’이란 표현도 구질구질하다. 뺄 수 있으면 빼라.
‘로서’와 ‘로써’
‘-로서’는 자격을 뜻하고 ‘-로써’는 수단이나 방법을 뜻한다. 수단이나 방법을 뜻하는 ‘로써’는 다소 무거운 느낌을 준다. 특히 용언의 제 1명사형 다음에 붙을 때 그렇다.
용언을 명사형으로 만드는 방법
1. 용언에 ‘ㅁ’이나 ‘음’을 붙이면 ; 제 1 명사형
‘사랑하다/사랑함’, ‘가다/감’, 이것이 제 1명사형입니다.
2. 용언에 ‘기’를 붙여도 : 제 2명사형
용언의 어간에 아/게/지/고를 붙이면 부사형이 됩니다.
그 순서에 따라 제 1부사형, 제2부사형, 제3부사형, 제4부사형
‘~ㅁ/음으로써’는 ‘아/어’로 고치는 것이 좋다.
‘나는 휴전선을 지킴으로써 국가안보에 이바지하겠다.’ 대신
‘나는 휴전선을 지켜 국가안보에 이바지하겠다.’가 더 한국어답다.
명백한 오문 ‘ ~하는 이유는 ~ 때문이다.’
‘때문’과 ‘이유’는 서로 호응할 수 없다. ‘이유는’이라는 표현을 쓰고 싶다면 ‘이유는 ~에 있다’ 거나 ‘이유는 ~ 것이다’거나 ‘이유는 ~한다는 사실이다’로 고쳐야 문법에 맞다.
연도나 시기를 표기하는 말에 ‘에’가 없어도 뜻이 통하면 빼는 게 더 좋다.
‘1984년에 제정된’ 보다는 ‘1948년 제정된’ 으로
‘되풀이’라는 표현보다 ‘거듭’이 더 자연스럽다.
수동형태 표현은 되도록 피하라.
‘정당화되기’는 ‘정당화하기’로 고치는 게 좋다.
‘현대화시키다’는 ‘현대화하다’로.
‘변화시키다’는 그대로 놔둬야 한다. ‘변화하다’는 타동사로 쓰일 수 없다.
단위를 나타내는 불완전 명사는 뒤로 빼라.
‘두 개의 구슬’ 대신 ‘구슬 두 개’로
주어/목적어와 서술어 사이의 거리는 가까울수록 좋다.
한 문장 안에 똑같은 단어가 여러 번 반복되는 것은 피해라.
정치적 올바람은 글쓰기의 미덕
‘상경하다’, ‘서울에 올라온다.’, ‘지방으로 내려간다.’는 표현보다는
‘철원에서 서울로 왔다’ ‘서울에서 철원으로 갔다’ 이런 식으로 쓰는 게 좋다.
‘~로 하여금 ~하게 하다’란 표현은 되도록 쓰지 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란 표현은 절대 쓰지 마라.
‘그런데도’나 ‘불구하고’로 써라.
이 말을 참 많이 들었는데, 이상하게도 ‘그럼에도 불구하고’란 말 자체가 좋아서 자주 쓰게 된다. 박웅현도 말하지 않았던가? 자기가 가장 좋아하는 말이 ‘그럼에도 불구하고’라고.
가장 아름다운 우리말 열 개
김수영 : 마수걸이, 에누리, 색주가, 은근짜, 군것질, 총채, 글방, 서산대, 벼룻돌, 부싯돌
고종석 : 가시내, 서리서리, 그리움, 저절로, 설레다, 짠하다. 아내, 가을, 넋, 그윽하다.
정분, 누이, 영글다, 품,
수강생 : 사랑, 엄마, 어머니, 그리움, 그립다, 오롯하다, 노을, 담백하다, 바다, 시나브로, 햇살, 햇빛
다른 반 : 그윽하다, 어머니, 엄마, 설레다, 고즈넉하다, 품다, 사랑,
나도 한번 생각나는 대로 적어봐야겠다.
산들바람, 산뜻한, 신산한, 섬돌, 살랑거리는, 사랑, 그립다. 햇살, 햇빛, 품격, 발목......
내가 좋아하는 단어엔 왜 ‘ㅅ’이 많이 들어갈까?
-2014.10.11일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