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톨로지 (반양장) - 창조는 편집이다
김정운 지음 / 21세기북스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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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에디톨로지editology, 일명 편집학, 김정운의 호언장담과는 달리 그리 새로운 관점은 아니다. 큐레이팅, 콜라보레이션이 유사한 개념이다. 들뢰즈가 말한 배치역시 editing이다. 영화에서의 편집 역시 배치다. 김정운은 일본의 두 학자로부터 영향을 받았다고 말한다. 가라타니 고진과 마츠오카 세이고. 고진은 일본문화를 저수지 문화라고 말했다. “일본은 모든 것을 다 받아들인다. 그래서 하나도 안 받아들인다세이고는 이이토코도리좋은 것은 기꺼이 취한다!’가 일본의 정체성이라 주장했다.

 

지식과 문화의 에디톨로지

 

인간은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본다. 심리학에선 이를 선택적 지각이라 부른다. 그 반대편에는 무주의맹시inattentional blindness’라는 현상이 있다. 크리스토퍼 차브리스와 대니얼 사이먼스의 보이지 않는 고릴라실험에 대해선 여러 책에서 이미 접한 바가 있었지만 이 책에서 실험 동영상 사진을 처음 보았다. 사진을 보기 전까진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고릴라가 화면 한 가운데를 떡하니 차지하고 가슴을 두드리는데 이걸 못 보았다니!!

 

인간 의식과 행동은 도구에 의해 매개된다고 한다. 하루에 세 번 숟가락으로 뜨고젓가락으로 집는사람과 포크로 찌르고나이프로 자르는사람의 의식은 근본적으로 다를 수 밖에 없단다.

 

독일 유학을 간 김정운은 독일 학생들의 특이한 공부법에 주목한다. 한국 학생들이 노트에 필기하는 반면 독일 학생들은 카드에 필기한다. 별다른 차이가 없다고 느껴질지 몰라도 편집 가능성에선 어마어마한 차이가 난다. 노트는 편집이 불가능한 반면 카드는 무한히 편집할 수 있다.

 

창조적 발견은 절대 논리적 사유로 가능한 것이 아니다. 연역법과 귀납법은 순환 논리에 불과하다. 퍼어스는 창조적 사유를 가능케하는 제 3의 추리법을 주장한다. 유추법abduction이다. 유추법이란 혹시 그런게 아닐까하는 창조적 추론이란. 미국 하버드 대학원생 마사 매클린톡은 생리대를 사러 기숙사 근처 상점에 가면 매번 생리대가 다 팔린 사실에 호기심을 느껴 이 의문을 추적했다. 이후 그녀는 생리 주기 동조화 현상<네이처>지에 발표한다. 이후 매클린톡 효과는 함께 생활하는 여학생들의 생리 주기가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비슷해지는 현상을 일컫는 용어가 됐다.

 

스티븐 시걸의 감정 차트를 보고 뒤집어졌다. 김정운은 시걸의 똑같은 표정의 사진 밑으로 다른 감정들을 표기했다. 행복한, 슬픈, 심술부리는, 외로운, 등등. 김정운의 말대로 영화는 편집의 예술이다. 그러나, 연기력이 형편없는 배우로 좋은 영화를 만들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관점과 장소의 에디톨로지

 

김정운은 독일 유학을 마치고 한국에서 교수가 되었을 때 자유로운 토론 수업을 하려고 했다고 한다. 그런데 아무리 노력해도 잘 안 됐다고. 한국 주입식 교육의 폐해일까. 그러나 야외수업을 해보니 활기로운 토론 수업이 가능했다고 한다. 한국에서 토론 수업이 불가능한 이유는 강의실 구조 때문이었다. 강의실에 앉으면 학생들은 앞쪽 칠판만 바라보게 되어 있다. 한편 독일 대학 세미나실에는 학생들끼리 서로를 마주보게 책상과 의자가 배치되어 있다. 즉 공간 편집이 교육 내용을 결정한다. 천장이 높아져도 사람들의 문제 해결 능력은 향상된다고 한다. 마음에 드는 이성이 있다면 레스토랑에서 어떻게 앉아야 할까. 마주보게 앉아야 할까? 아니면 같은 곳을 바라보게 나란히 앉아야 할까? 아니다. 모서리를 사이에 두고 앉는 게 가장 좋다.

 

마음과 심리학의 에디톨로지

이 장에서 가장 내 눈을 끈 내용은 항문기 고착의 일본인과 구강기 고착의 한국인이다. 일본에선 여름에 환기가 조금만 안 되어도 집 구석구석에 곰팡이가 바로 핀다고 한다. 매번 창문을 열어 환기해야 한다. 그러다 보니 일본 가옥은 벽이 얇아질 수 밖에 없다. 창문도 통풍이 잘 되어야만 한다. 그러다 보니 옆집의 소음이 다 들린다. 그래서 생긴 게 러브호텔이라는 것이 김정운의 가설이고 읽자마자 고개가 끄덕여졌다.

 

또한 일본의 다다미 바닥은 아이들 양육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다. 젖은 다다미는 금방 썩는다. 따라서 똥오줌 못 가리는 아이는 다다미에 치명적이다. 그래서 일본에선 아주 어릴때부터 철처한 배변 훈련을 시킨다. 때문에 일본인들 대다수가 항문기 고착이라는게 김정운의 주장이다. 그럴듯하지 않은가? 반면 한국의 경우엔 항문기 고착 성격은 별로 없다. 왜냐하면 한국은 장판문화기 때문이다. 장판에 아무리 똥오줌을 싸질러놔도 걸레로 슥 닦아내면 그만인다. 김정운은 그대신 한국인들은 구강기 고착이라고 주장한다. 입이 거칠고 목소리도 크고 담배도 많이 피운다. ? 너무 못 먹어서 그렇다는데, 이 주장에 대해선 선뜻 동의할 수가 없다.

 

김정운은 책은 끝까지 읽을 필요없다라는 주장을 해서 욕을 먹었다고. 나는 그의 주장에 동의한다. 문학책은 예외로 하고 책을 끝까지 읽을 필요는 없다. 특히나 김정운의 이 책 역시 그렇다. 한번 쓱 전체를 둘러보고 재밌는 부분만 골라 읽으면 된다.

 

김중혁은 <메이드 인 공장>에서 에버노트를 쓴다고 말했는데 이런, 김정운도 에버노트 예찬론자다. 자료 입력은 삼성 갤럭시 노트가 최고? 에버노트는 써볼 맘이 있지만 나는 삼성불매자라 죽기 전까지 갤럭시 따위는 쓰지 않는다.

 

 - 2015. 6.9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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