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것들의 신 - 제19회 부커상 수상작, 개정판
아룬다티 로이 지음, 황보석 옮김 / 문이당 / 2010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고종석의 <문장>에서 아룬다티 로이의 이름을 처음 접했다. 그는 세계 최고의 선동문 세 편 중의 한 편이 아룬다티 로이의 <9월이여 오라>라고 말했었다. 두 번째로 <심장박동을 듣는 기술>의 얀 필립 젠드커가 가장 좋아하는 작가로 아룬다티 로이를 뽑았다. <작은 것들의 신>을 읽고 보니, 이 작품이 <심장 박동을 듣는 기술>에 얼마나 큰 영향을 끼쳤는지 알 수 있었다. 세 번째로 장정일의 독서일기에서도 아룬다티 로이를 언급하고 있었다. 거의 매일 매일 아룬다티 로이의 이름을 들으니 그녀의 소설을 안 읽고 버틸 수가 없었다.

 

앞 표지 뒷면에 실린 사진을 보고 굉장히 실망했다.

왜 이렇게 이뻐? 보나마나 얼굴 때문에 유명해졌군.’

 

이런 편견은 첫 페이지부터 산산이 깨졌다. 저절로 몸가짐을 바로 잡고 읽어 나가기 시작했다. 나는 묘사가 서사를 방해하는 소설을 좋아하지도 않을뿐더러,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 할뿐만 아니라 끝까지 읽지도 않는다. 이 소설은 묘사가 서사를 압도할뿐더러 조각조각 파편화한다. 이 소설 앞에서 나는 기꺼이 내 원칙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김훈의 <칼의 노래>가 남성적 묘사의 정점이라고 한다면, 아룬다티 로이의 <작은 것들의 신>은 여성적 묘사의 극한이다. 아무 페이지나 펼쳐보라. 어디서도 보지 못했던 비유, 묘사와 마주치게 될 것이다. 책 속의 문장을 인용할 엄두조차 나지 않는다.

 

그녀가 묘사와 비유를 서스펜스로 사용한 점도 놀라웠다. 소설가들은 서스펜스서프라이즈기법을 빈번히 쓴다. 서스펜스는 작가가 독자에게 정보를 공개했을 때 발생하고, 서프라이즈는 작가가 독자에게 정보를 공개하지 않을 때 발생한다. 미스테리 작가들은 서스펜스보단 서프라이즈를 주로 사용하는데(고수들은 오로지 서스펜스만 쓴다), 유능한 작가들은 서프라이즈를 위해 곳곳에 숱한 씨를 뿌려두는데 반해, 불성실하거나 능력 없는 작가들은 아무 씨도 뿌리지 않은 채 끝에 가서 독자들 뒤통수만 치려든다. 이런 작가들은 정말이지 목을 서스펜스(매달아야)’해야 한다.

 

아룬다티 로이는 작품 초반부터 주인공인 라헬과 에스타의 사촌인 소피몰의 죽음을 미리 알려준다. 소피몰의 죽음의 원인은 현재 시제의 개입과 묘사와 비유의 개입을 통해 끊임없이 지연된다.

 

이 작품은 묘사가 뛰어날 뿐더러 캐릭터 역시 강렬하다. 쌍둥이인 라헬과 에스타, 그들의 엄마 아무, 소피몰의 아빠이자 쌍둥이들의 외삼촌인 차코, 쌍둥이들의 할머니이자 아무의 엄마인 마마치, 아무 집안의 노예에 가까운 벨루타, 심지어 보조 인물인 필라이 동지까지 쉽사리 잊을 수 없는 인물들로 가득하다. 소설 속 인물들은 벨루타를 제외하곤 각자 모두 전체적인 인상에 어울리지 않는 기묘한 특성들이 있다.

 

뛰어난 아름다움에는 약간이 기묘함이 반드시 섞여있다” - 프랜시스 베이컨

 

베이컨다운 말이다.

 

 

아름다움은 어떤 것에도 부합되지 않고 조화롭지 않도록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잔인하고 불안정합니다. 아름다움은 부조화와 불협화음, 그리고 조화롭고 일치하려는 모든 것들의 파열로 향합니다. 우리가 아름다운 형태라고 공인된 형태들을 끊임없이 분열하고 파괴했다는 사실이 그것을 잘 보여주지요......그 자체로 단순하게 되풀이되는 순간부터 형태란 더 이상 아름다움과는 전혀 관계가 없습니다. 아름다움에 대한 관점을 일깨우려면, 아름다움에 욕설을 퍼부었던 랭보의 말대로 그것을 파괴하고 해체해야 하는 것이지요.”

 

- -뤽 낭시, <, 정의, 사랑, 아름다움>

 

낭시는 아름다움의 부조화적인 측면의 예로 랭보의 시와 도스또예프스키의 소설을 꼽았다. 보들레르 식으로 말하자면 바다 위에 흔들리는 배와 같은 것이리라.

 

아룬다티 로이가 여성 인도인으로서 영국 최고 권위의 문학상인 부커상을 거머쥔 건 우연이 아니었다. 그녀의 존재조차 모른 체, 살만 루시디 책 몇 권 뒤적여보고 인도 소설은 다 읽었다는 듯 건방떨며 살아온 18년은 헛산 것이다. 18.

 

오로지 이 책 한권을 읽기 위해,

올해 나는 240여 권의 책을 읽어야만 했던 것일까.

 

11,12월 두 달 동안 어떤 책을 읽든, 아룬다티 로이의 <작은 것들의 신>이 올해 내가 읽은 최고의 소설이 될 것이라는 점은 바뀌지 않을 것 같다.

 

-2014. 10. 24일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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