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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매화
미치오 슈스케 지음, 한성례 옮김 / 씨엘북스 / 2012년 11월
평점 :
품절
<달과 게>, <랫맨>에 이어 세 번째로 접한 미치오 슈스케.
그의 소설은 한마디로 뜨뜻미지근하다. 내치자니 미안하고 좋다고 하기엔 미흡한?
단편 소설집인 <광매화>엔 총 6편의 연작 단편이 실려 있다. 앞부분 3장까지 숨바꼭질, 벌레쫒기, 겨울나비는 어둡지만 재밌다. 뒷부분 봄나비, 풍매화, 아득한 빛은 밝지만 재미없다.
6편의 작품 중 <숨바꼭질>이 가장 인상에 남는다.
<숨바꼭질>
‘나’의 아버지는 30년 전 자살했다. 나는 치매에 걸린 어머니를 모시며 도장 파는 일로 생계를 유지한다. 어느날 어머니는 연두색 색연필로 조릿대꽃을 그린다. 조릿대꽃은 30년 만에 한 번 꽃을 피운다. 나는 아버지가 살아 계실 때 조릿대꽃을 보았다. 나는 초등학교때 부터 아버지의 별장에서 지내는 생활을 좋아했고 중학교 2학년 여름 방학 때 목공예 가게를 운영하는 30대의 여자를 만나 관계를 갖는다. 고등학생이 된 나는 별장에서 또 다시 그녀를 만나지만 그녀는 왠지 무뚝뚝하게 나를 대한다. 나는 그녀의 목공예 가게를 찾아간다. 그러다가 그녀와 함께 있는 남자를 보게 된다. 아버지였다. 나는 그녀와 아버지의 정사장면을 훔쳐본다.
다음날 그녀의 시체가 발견되고 아버지는 자살한다.
엄마는 조릿대꽃 옆에 한 남자와 한 여자를 그린다. 엄마가 어떻게 알았을까?
그러나, 엄마는 칠월칠석날의 견우와 직녀를 그렸던 것.
<광매화>라고 해서 미칠 ‘광’자 일거라 짐작했건만 빛날 ‘광’자 였다. ‘빛으로 꽃가루를 운반하는 꽃’ .그러니까 작가는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빛이 되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거겠지?
메모한 문장들.
조릿대의 개화는 30년에 한 번으로 매우 드물고 꽃은 무리지어 일제히 피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조릿대 열매를 먹은 야생 쥐가 이상 번식을 하기도 해서 옛날에는 조릿대꽃을 불길하게 여기기도 했다고. 개화 요인은 조릿대의 영양 상태에 기인한다는 설도 있고 유전자 조합에 의한다는 설도 있지만 아직 정확한 요인은 밝혀지지 않았다고 한다. 조릿대는 꽃을 피운 뒤에 어떻게 될까? 마침내 어느 책에서 해답을 찾았다.
꽃을 피우고 나면 조릿대는 전부 시들어버린다.
p210.
“풍매화니까 화려하지 않아도 돼.”
“풍매화요?”
“풍매라는 한자를 풀면 바람 풍에다가 중매할 때의 매를 쓰거든. 바람으로 꽃가루를 운반하는 꽃이야. 풍매화는 화려한 외관을 가질 필요가 없어. 왜냐하면 일부러 자신을 꾸며서 곤충을 불러 모으지 않아도 되니까. 바람이 회려한 색깔이나 눈에 띄는 모습에 이끌려서 불지는 않잖니.”
p301 사실 그 빛은 사라지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세상은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으니까. 변한 것은 아마도 나 자신이리라. 변하는 것은 언제나 사람이다. 누구도 자동차 보닛 위에 알을 낳은 고추잠자리를 비웃지 못한다. 추억으로만 남은 빛 위에서 갈팡질팡 흔들릴 뿐이다. 사람은 현실이 더욱 밝게 빛난다는 사실을 잊고 산다.
p303 때로는 눈부시게 빛나고 때로는 그늘을 드리우기도 하는 이 세상을 나도 나비처럼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고 싶다. 모든 것이 한곳으로 흘러 모이면서도 언제나 새로운 이 세상을. 어떤 풍경이 보일까? 우는 사람. 웃는 사람. 입술을 깨무는 사람. 큰 소리로 외치는 사람. 누군가의 손을 꼭 잡는다. 무언가를 품에 소중히 안는다. 하늘을 올려다본다. 땅을 내려다본다.
갑자기 눈물이 솟구쳤다. 울지 말자. 울 이유가 없다. 당황해서 눈을 감으려던 그때였다.
시야 가득히 가로등 불빛이 번졌다. 하얗고 눈부시게.
그 빛이 정겨워서 나는 눈을 감는 것마저 잊어버렸다.
솟구쳐 오른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