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렁이 카로 - 쉐퍼 선생님의 '자연학교'
이마이즈미 미네코 지음, 최성현 옮김 / 이후 / 200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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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나는 내가 보려고 하는 것만 믿지 않으려 하지만, 보는 것만 믿는다."]


옛날에 고니를 보고 전부 하얀색이라고 믿었던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고니 속에 검은 색이 있는 것을 보고 사람들은 믿지 않을려고 했습니다. 자기가 듣고 보고 배운 것에서 벗어나는 것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것이 절대적인 진리가 될 수는 없지만 언제부턴가 그것을 믿고 왔기에 하루 아침에 번복할 수가 없었던 거겠죠ㅛ. 하지만 삼인성호(三人成虎)라고 했던가.

일 여 년이 지났지만 아직 우리에게 많이 알려지지 않은 [지렁이 카로]이야기입니다. 저도 책을 읽지 않고 누군가에 귀동냥을 했다면, 참 이야기를 잘 지어내는 사람이구나라고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놀랍게도 이 이야기는 허상이 아닌 실체이다. 잠시 창문을 닫고 마음의 문을 열고, 조용히 제가 하는 이야기에 귀 기울여 보세요.

학교의 쓰레기가 많이 나오기에, 어떻게 하면 줄일 수가 있을까하는 고민에서 시작됩니다. 쓰레기가 하나둘 씩 늘어나자 줄일 수 있는 방안으로, 카로를 교실에 모시고 와서(?) 공동체 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카로가 먹을 수 없는 것은 자연도 먹을 수가 없다는 것이죠. 카로가 사는 공간에 쌓이는 쓰레기를 아이들이 가지고 오지 않으면서 휴지통 없는 교실이 됩니다. 그리고 칠판에 글씨를 써서 군데 군데 비워두고는, "없는 글자는 카로가 먹어 버렸어요. 어떤 글자를 카로가 먹었는지 찾아보세요(34쪽)"라든가 체육시간에 "천으로 만든 카로를 뒤집어 쓰고 카로가 된 기분으로 <카로의 노래>에 맞춰모두 함께 춤을(37쪽/사진)" 출 때에도, 참 교육을 잘 하는구나라고 고개만 끄떡였습니다. 하지만 여기까지 내가 본 것은 우물안의 하늘이였습니다.

2부와 3부는 학교라는 공간을 넘어 마을로 확장됩니다. 계단씩 밭에 꽃을 심고, 하천에 양부모제도를 둡니다. 그리고 숲과 숲을 잇어서 더불어 숲을 만들어갑니다. 그리고 우리 나라의 두레와 비슷한 유레(Jule)라는 공동체적인 성격을 만들어 마을사람과 마을의 자연과 같이 호흡을 합니다. 감자를 키우기도 하고, 포도밭에 가서 일손을 돕우며 자연을 익힙니다. 또한 마을 관강 가이드의 할일도 한답니다. 물론 이 모든 일을 초등학교 학생들이 주체가 되어서!!

책을 읽으면서 내내 떠나지 않는 것이 쉐퍼 교장 선생님과 우리나라의 대통령입니다. 작은 시골 마을의 교장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무엇인가를 더 줄려고 고민을 합니다. 그리고 항상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생각을 하며, 자연을 하나로 생각하게 합니다.(자연은 우리들을 도와 줍니다. 그러므로 이번에는 우리들이 자연을 도와주는 것입니다-114쪽) 자연 속에서 어울어지는 살아있는 교육.

슈렌트(원래는 선생님인데 지금은 총으로 새와 짐승을 잡는 사냥꾼-88쪽)씨가 만든 통나무로 만든 숲속의 탁자와 의자. 마치 숲 속의 작은 레스토랑 같은 곳에서 식물이나 벌레를 관찰하는 아이들을 상상해보세요. 4월에 부활적 토끼 찾기 놀이-케르트루트 아줌마가 포도밭 여기 저기에 숨겨 놓은 토끼 모양의 초콜릿을 찾는 놀이-97쪽)

아이들은 쉐퍼 교장 선생님이 선사하는 자연에서 이렇게 추억과 수많은 것을 배웁니다. 유레라는 공동체에서 아이들은 "만약 수많은 어린이들이 수많은 작은 마을에서 수많은 작은 일을 한다면 세계는 바뀌리라-79쪽"는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무엇보다도 내 마음을 울리게 했던 것은 아이들의 용기입니다. 아이들은 자연속에서 뛰어놀기만 한 것이 아니랍니다. 그들은 진실로 더불어 사는 것과 어떻게 사는 방법을 배운 것입니다. "상황이 어려워지면 감자나 토마토를 키우며 살아갈 수도 있어요. 빵도 구울 수 있고, 수많은 어른 앞에서 말도 잘 할 수 있구요. 걱정 없다, 우리의 미래(112쪽)" 라고 외치는 아이들에서 부끄러움을 느낍니다. 그리고 부러움을 느낍니다. 초등학교 학생의 자신감이 과연 내가 숨쉬는 대한민국에서는 외울리지 않을까라는 아쉼이 남습니다.

이 책은 카로가 교실로 와서 조금씩 변화를 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습니다. 아이들에게 무엇인가를 더 주려는 내리사랑이 가득한 교장선생님, 아이들의 자발적 참여와 더불어 살기를 바라는 동네 어른들이 만들어 내는 행복한 공동체의 이야기입니다.

여러분은 이 거짓말 같은 이야기를 믿을 수가 있나요? 저는 감히 하얀 까마귀를 보았을 뿐입니다. 많은 이들이 하얀 까마귀를 보는 순간에 우리도 쉐퍼 선생님이 차는 동네처럼 변하지 않을까라는 작은 기대를 가져봅니다.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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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전쟁, 우리의 미래는 사라지는가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외 지음, 모주희 옮김 / 아이디오(IDO) / 200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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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내가 책을 선택하는 기준은 제목에 많이 의존을 하는 경향이 있다. 제목이 암시하는 것으로 책의 흐름을 가늠하며, 목적의식적 글읽기를 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다보면 간혹 제목과는 상치되는 경우를 만나곤 하는데... 조금은 당혹스럽더라도 내용의 깊이가 남다르다면 참을 수가 있다. 하지만 조잡한 상술을 만난다면 내 마음은 심히 불편할 것이다.

[핵전쟁, 우리의 미래는 사라지는가]라는 거창한 제목은 한반도에 일어나는 일련의 사태를 다시한번 생각해 주게 하지 않을까라는 기대가 있었다. 나아가서는 우리 미래에 대한 어떠한 명제를 도출하지 않을까라는 기대를 가지고 읽었다. 더욱이 나의 눈길을 잡은 것은 희대의 두 천재들과 만남이다. 아인슈타인과 프로이드의 편지 토론이라니... 이 보다 더 멋진 책이 읽을 수가 있을까! 예전에 사계절 출판사에 나온 마르쿠제와 포퍼의 [혁명이냐 개혁이냐]를 읽은 좋은 느낌이 지배한 것도 사실이다. 이렇게 거창한 선입관을 중 무장하고 난 책을 펼쳤다.

책은 두껍지도 않으며, 글자의 간격도 치밀하지도 않고, 여백도 두둑히 두어 읽는데 불편함이 전혀 없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컨텐츠(내용)는 부실하다 못해, 심한 배신감 마저 들었다. 두 천재들의 편지 토론 실체는 아인슈타인이 국제 연명의 부탁을 받은 '인간에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문제를 선택하여 주십시오. 그리고 그 문제를 물어보고 싶은 상대를 선택하여 주십시오'라는 단 한 번의 요구 조건 뿐이다. 이에 프로이드는 자기의 생각을 장문의 글에 적지만, 편지글이라는 것은 매수의 한계를 지닌다. 프로이드는 그의 정신분석의학으로 사람에게는 에로스 충동과 공격(파괴)본능이 있는데, 공격본능을 이성적으로 통제를 한다면 전쟁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가정을 세운다. 사람의 천성에 대한 기대는 저버리며, 이성에 의한 통제 즉 문화를 발전시키면 전쟁을 일어나지 않는다것이 전부이다. 이것이 1장 끝!!

2장은 두 사람의 연대기를 간략하게 서술하였는데, 이는 쪽수를 늘리기 위한 단편적인 사고라는 것을 누구나 쉽게 인지 할 것이다. 간혹 그림 한 장이 한 면을 차지하는 경우도 있다.

3장은 죽은 자와의 대담이 이루어진다. 죽은 아인슈타인을 불러 낸 사람이 누구인지도 나와있지 않으며, 혼자서 장구치고 북치고 한다. 죽은 프로이드를 만난 이는 백상창이라는 이인데, 프로이드 전문학자인 중앙대 김효창 박사라고 적혀만 있는데, 역자 소개에는 강사로 나온다. 죽은 자와의 대담을 나눌 사람이라면 그 만한 식견과 안목을 가지고 있는 분이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정체불명과 혼선은 신뢰를 쌓기에 불충분하다.

4장은 아인슈타인의 반전 평화 메세지가 나온다. 핵을 개발하고 그 위력에 놀란 이가 반전 평화주의가 되는 것이 기구하다며 기구하다. 하지만 더 깊이 있는 논의는 없다. 역사적 배경과 시대 상황에 조화를 이루지 못하니 개 밥에 도토리격이다.

즉, 이 책은 출판사에 의해서 전략적으로 기획된 것으로 보인다. 세기의 두 천재들의 편지 토론, 이 시대 주요 이슈-핵, 넓은 간격 큰 글씨, 여유많은 여백! 이 모두가 읽기에는 부담이 없지만 내용이 부실하니, 두 번 다시 손이 가지지가 않는다. 이 책을 구입의 의사가 있으신 분은 오프라인 서점에서 필독을 권하는 바입니다.

여담; 출판사에 혹평을 하였는데... 실망감에 비하면... 출판인으로서의 사명감이 있는지 의문입니다. 그리고 죽은 자와의 대담은 정경모씨의 [찢겨진 산하]에도 쓰여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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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가의 토토 - 개정판
구로야나기 테츠코 지음, 김난주 옮김, 이와사키 치히로 그림 / 프로메테우스 / 200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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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꿈이 하나 있습니다. 작은 꿈 하나는 모두가 행복하게 지내는 것입니다. 행복이 무엇인지를 알며, 그것을 느껴본 사람은 그 값어치를 소중하게 다룰려고 합니다. 또한 주위사람들에게 나누어만 줄려고 합니다. 왜냐면 행복은 나룰수록 커지는 것이기에... 하지만 행복을 느끼지 못하고 시기와 질투속에 묻혀 지낸다면 항상 시기와 질투로 세상을 바라보며, 고독과 외로움 속에 지내게 될 뿐입니다.

행복은 어느 책에서 나왔듯이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주위에 있습니다. 잠시 여유를 가지고 뒤돌아보면, 항상 내 옆에서 말없이 웅크리고 앉아 있다가, 화들짝 놀라서 빙그레 미소를 짓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는 태어나자마자 '전쟁', '적자생존'이라는 사슬 속에 스스로를 가두곤 합니다. 남 보다 하나를 가져야 한다는 강박관념은 병적인 증세에 이르기도 합니다. 삶의 가치 기준은 남들과 같이 가지거나 나누는 것이 아닌 차별화되어 우위에 서는 것만이 가치를 지닙니다. 이는 부모님에게서 자연스레 보고 배우며 학교라는 울타리 안에서 가속화되어 급기야 꿈을 펼치 나이에 이르서는, 굳어진 체 사회로 나오게 됩니다.

부모님과 사회라는 다리역활을 하는 학교는 거름종이가 되어 아이들이 자유로운 사고를 유발하며, 행복을 꿈꾸게 하는 매개체가 아닌, 사회에서 내 아닌 모든 사람을 타자화시켜 적으로 삼게 하는데 일등공신의 할일을 합니다. 이는 커다란 잘못입니다.

선생이라는 말은 먼저 난 사람(先生)을 말함입니다. 먼저 낳다는 것은 단순히 나이가 많고 적음을 가늠하는 것이 아니라, 옳고 그름을 분별하여, 후생(後生)에게 올바른 가치를 심어주는 사람을 가르킵니다. 작금의 현실을 바라보면... 내일모레가 수능입니다. 수능이 끝나면 학교의 선생들은 어느 대학에 누구를 더 많이 진학시켰느냐로 가치와 행복을 환산할 것입니다. 이는 공생이나 상생이 아닌 제로섬 게임에 불과합니다. 그러면에서 선생들은 제로섬 게임을 주도하는 할일을 한다고 보는 것이 옳다고 생각을 합니다.

사람에게는 성선(性善)도, 성악(性惡)도 하나의 설(說)일 뿐입니다. 사람은 환경에 영향을 받는 단순하지만 복잡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토토를 현실의 교육이나 수능의 틀에 맞춘다면 그는 제로섬 게임에서 실패한 낙오자입니다. 하지만 고바야시 소사쿠 교장 선생님의 상생교육으로 인하여 스스로 삶을 가꾸며 행복을 찾는 완전한 인격체로 성숙하였습니다. 아이는 단순히 자라는 것이 아닌 어른들을 보고 닮아 가는 과정을 거쳐서 또다른 어른이 되어 가는 것입니다. 토토는 교장선생님이 행한 일들을 단순하게 받아 들였지만 시간이 지난 다음에 자기를 위하는 깊은 속뇌에 감탄과 고마움을 드러냈습니다. 이는 단순히 기억해서가 아니라 추억 하나하나가 토토에게 있어서는 행복이며, 삶이기 때문입니다. 첫날에 어린 토토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교장 선생님을 떠올려 보세요. 아이의 말에 4시간 동안 귀다아 들을 수 있는 교장 선생님을 만난 토토가 한없이 부러우며, 부끄럽습니다.

저는 고바야시 선생님이 외진 숲속에서 적은 학생을 가르치는 훌륭한 사람이 아닌 우리곁에서 같이 숨쉬며, 이야기하는 평범한 사람이였으면 합니다. 이리하여 모두가 고바야시 선생님처럼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항상, 무엇인가를 하나더 줄려고 하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이렇듯 행복을 나누다 보면 세상은 행복이 가득찰 것이라 확신합니다.

깊어가는 가을날, 단풍보다 더 붉게 제 마음을 물들이는 책 한권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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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on 2004-04-13 18: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목이 인상깊네여~ ^^

열린사회의적 2004-04-13 20: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맙습니다. 교장 선생님이 학생의 이야기를 듣어 준다는 것이 제게는 너무 멋있게 보였습니다. 전 간혹 생각합니다. 어린아이가 하는 말에 그토록 오래 오래 귀 기울였나고.... ^^ 좋은 책 많이 읽으세요~~ 좋은 일만 가득하시고요..
 
경제공부 합시다!
곽해선 지음 / 청림출판 / 200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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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생활이 경제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는 것은 불문가지일 것입니다. 뉴스나 신문에서 나오는 말을 들어버면 너무나 생소한 단어가 나오며, 금리를 잡아야 한다 등의 말이 쏟아집니다. 금리가 무엇인지를 모른다면 '꼭' 잡아야 되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이는 관용적인 말투죠. 이렇듯이 경제 용어는 한자어 투성이며, 이제는 영어까지 가세하여 언어가 새로운 장벽을 만들어 낸 듯합니다.

말이 어렵다고 공부를 하려고 하지 않는 것은 다리가 아프다고 목적지에 가지 않고 중도에 포기하는 것과 동일하다는 생각에, 경제학 서적을 잡았습니다. 조금은 쉬운 것이 어떨까라는 생각에 위의 책을 펼쳤는데...

차마, '청소년'이라는 알림글을 알라딘에서 보았더라도 이 책을 구입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흔히 질이 아닌 양으로 승부를 할 때에는 편집에 치중한다는 느낌을 많이 받습니다. 큰 활자에 넓은 간격, 그리고 쉬엄쉬엄 나오는 카툰 형식의 그림은, 정상보다 두 배의 부피로 만들어내며, 값비싼 포장으로 메겨집니다. 이 책 역시 청소년을 위한 글이지만 너무 편집에 치중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책 표지에 있는 '...아저씨에 이르기까지'는 너무 포용력이 크다고 보여집니다. 이십대인 제가 보기에도 너무나 단순나열씩 사고에 머물렀는데, 실물경제에 조금더 깊이 들여다 볼 어른들에게 감히 이 책을 추천하는 것은 아닌 듯 싶습니다.

(앞서서 계속) 잘 된 편집에, 떨어지는 질!! 내용은 원론에 머물렀습니다. 그리고 두 줄로 말이 끝날 것을 200줄로 늘여 놓았습니다.

마음을 편안히 잡고 책 장을 넘길려고 해도, 너무나 단순한 사고에 지칠 뿐입니다. 예전에 중앙일보에서 틴틴경제라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이 책도 그와 비슷한 편집으로 이루어졌는데, 꼭 구입하시기 전에 신문과 오프라인 서점에서 내용을 비교하여 사 보시길 바랍니다.

온라인 서점의 독자서평에 전적으로 의존하시지 마시고, 자기의 눈높이에 맞추시길 바랍니다. 제 눈높이는 20대 청년이며, 몇 권의 책을 읽은 사람이랍니다.

여담: 조금 글을 빨리 읽으시거나 경제 용어를 한 두가지 알고 있다면 서점에 서서 1시간에 다 볼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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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lot 2004-05-24 23: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습니다. 책 내용은 청소년이 읽기에 아주 괜찮은 책이지만 가격이 어이없게 비싸네요. 제가 읽어본 이 책은 고등학교 경제 교과서를 더 이해하기 쉽고 자세하게 풀어 놓은듯한 책이더군요. 가격만 조절 된다면 청소년들에 유익한 책이 될듯 싶은데,,

열린사회의적 2004-05-25 18: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맙습니다. 저의 생각에 동의를 하여 주신다니^^; 더 많은 관심과 애정어린 비판을 바랍니다. 행복한 하루되세요~~
 
미야자키 하야오는 이렇게 창작한다!
황의웅 지음 / 시공사 / 200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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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국왕 이름을 몰라도 원령공주나 이웃의 토토로, 고양이의 보은을 만든 사람이 누구냐고 물어본다면 아마도 일본 국왕의 이름보다 더 많이 듣게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작품을 좋아하게 되니, 누가 만들었나라는 의문이 들며, 결국에는 이 책을 접어 들게되었습니다. 지은이의 말대로 그는 '어떻게' 창작을 하기에 매번 나에게 이런 큰 울림을 울리는가라는 의문은 아직도 여전히 풀리지 않고 있습니다. 이는 책 제목의 '미야자키 하야오는이렇게 창작한다!'라는 글이 내 궁금을 여름날의 소나기 처럼 풀지 못한 이유입니다.

지은이의 말하는 미야자키 하야오는 이미지 보드(만들고 싶은 작품을 향한 무의식의 추적)를 이용하여 발상(목적성이 내포되어 있음)한다는 것이 주내용이다. 그는 이미지의 자유로운 상상이 애니에이션의 원동력이 되는데, 작금은 시간과 상업성에 쫓기어 에니메이터가 일을 추진하는 것이 아닌 분업화되어, 본분의 실력을 110%로 발휘하지 못한다는 서론을 이야기 한다.

그리고 몇 개의 소제목으로 나누어 미야자키 하야오가 그린 모든(?) 작품을 분석하는데, 처음의 캐릭터 이미지는 어디에 모티브를 두었는가, 원류를 찾아낸다. 여기에서 그의 오타쿠 정신이 보인다. 하지만 배경/무대, 장면/상황속의 이미지를 다루는 부분에서는 아무런 인과성을 추출할 수가 없다. 다만 지은이가 인의적으로 나눈 분류에 의한 짜집기뿐이다. 구조주의자들이 나누는 하나의 틀을 가지지 못하고, 장면장면을 끌어내어 이야기를 하는 단순나열씩에 불과하다. 그리고 통일성을 이루지 못하기에 부분 부분 장면이 어떠한 암시를 이루며 작품의 전체에 대해 어떠한 복선으로 깔리는지에 대한 의미는 없다. 이미지만 있을 뿐이다. 지은이의 출발은 스토리 보드 즉, 이야기의 인과성을 중요시하는 것이 아니라 애니메이터의 자유로운 발상, 이미지를 중요시한다는 점입니다.

미야자키 하야오가 창작하는 방법은 앞부분의 10여쪽에 불과하며, 나머지는 캐릭터의 원류를 찾는 것과 자기만의 이미지 분류에 머무른 작품입니다. 깊이 있는 분석 보다는 이미지가 어떻게 진화하는가라는 점이 궁금하다면 이 책의 유용할 것입니다. 아울러 작가론과는 거리가 멀다고 하겠습니다.

여담; 스토리 보드와 이미지 보드의 조율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스토리가 튼튼하지 못한 상황에서 이미지만 날개를 단다면 사상누각이 되지 않을까 합니다. 이런 면에서 지은이의 균형감각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이견을 겸허히 수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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