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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가의 토토 - 개정판
구로야나기 테츠코 지음, 김난주 옮김, 이와사키 치히로 그림 / 프로메테우스 / 2004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나에게 꿈이 하나 있습니다. 작은 꿈 하나는 모두가 행복하게 지내는 것입니다. 행복이 무엇인지를 알며, 그것을 느껴본 사람은 그 값어치를 소중하게 다룰려고 합니다. 또한 주위사람들에게 나누어만 줄려고 합니다. 왜냐면 행복은 나룰수록 커지는 것이기에... 하지만 행복을 느끼지 못하고 시기와 질투속에 묻혀 지낸다면 항상 시기와 질투로 세상을 바라보며, 고독과 외로움 속에 지내게 될 뿐입니다.
행복은 어느 책에서 나왔듯이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주위에 있습니다. 잠시 여유를 가지고 뒤돌아보면, 항상 내 옆에서 말없이 웅크리고 앉아 있다가, 화들짝 놀라서 빙그레 미소를 짓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는 태어나자마자 '전쟁', '적자생존'이라는 사슬 속에 스스로를 가두곤 합니다. 남 보다 하나를 가져야 한다는 강박관념은 병적인 증세에 이르기도 합니다. 삶의 가치 기준은 남들과 같이 가지거나 나누는 것이 아닌 차별화되어 우위에 서는 것만이 가치를 지닙니다. 이는 부모님에게서 자연스레 보고 배우며 학교라는 울타리 안에서 가속화되어 급기야 꿈을 펼치 나이에 이르서는, 굳어진 체 사회로 나오게 됩니다.
부모님과 사회라는 다리역활을 하는 학교는 거름종이가 되어 아이들이 자유로운 사고를 유발하며, 행복을 꿈꾸게 하는 매개체가 아닌, 사회에서 내 아닌 모든 사람을 타자화시켜 적으로 삼게 하는데 일등공신의 할일을 합니다. 이는 커다란 잘못입니다.
선생이라는 말은 먼저 난 사람(先生)을 말함입니다. 먼저 낳다는 것은 단순히 나이가 많고 적음을 가늠하는 것이 아니라, 옳고 그름을 분별하여, 후생(後生)에게 올바른 가치를 심어주는 사람을 가르킵니다. 작금의 현실을 바라보면... 내일모레가 수능입니다. 수능이 끝나면 학교의 선생들은 어느 대학에 누구를 더 많이 진학시켰느냐로 가치와 행복을 환산할 것입니다. 이는 공생이나 상생이 아닌 제로섬 게임에 불과합니다. 그러면에서 선생들은 제로섬 게임을 주도하는 할일을 한다고 보는 것이 옳다고 생각을 합니다.
사람에게는 성선(性善)도, 성악(性惡)도 하나의 설(說)일 뿐입니다. 사람은 환경에 영향을 받는 단순하지만 복잡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토토를 현실의 교육이나 수능의 틀에 맞춘다면 그는 제로섬 게임에서 실패한 낙오자입니다. 하지만 고바야시 소사쿠 교장 선생님의 상생교육으로 인하여 스스로 삶을 가꾸며 행복을 찾는 완전한 인격체로 성숙하였습니다. 아이는 단순히 자라는 것이 아닌 어른들을 보고 닮아 가는 과정을 거쳐서 또다른 어른이 되어 가는 것입니다. 토토는 교장선생님이 행한 일들을 단순하게 받아 들였지만 시간이 지난 다음에 자기를 위하는 깊은 속뇌에 감탄과 고마움을 드러냈습니다. 이는 단순히 기억해서가 아니라 추억 하나하나가 토토에게 있어서는 행복이며, 삶이기 때문입니다. 첫날에 어린 토토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교장 선생님을 떠올려 보세요. 아이의 말에 4시간 동안 귀다아 들을 수 있는 교장 선생님을 만난 토토가 한없이 부러우며, 부끄럽습니다.
저는 고바야시 선생님이 외진 숲속에서 적은 학생을 가르치는 훌륭한 사람이 아닌 우리곁에서 같이 숨쉬며, 이야기하는 평범한 사람이였으면 합니다. 이리하여 모두가 고바야시 선생님처럼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항상, 무엇인가를 하나더 줄려고 하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이렇듯 행복을 나누다 보면 세상은 행복이 가득찰 것이라 확신합니다.
깊어가는 가을날, 단풍보다 더 붉게 제 마음을 물들이는 책 한권이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