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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써바이 써바이 - '온 더 로드'의 박준, 길 위의 또 다른 여행자를 만나다
박준 지음 / 웅진윙스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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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한달이 너머 가는 듯 하다. 가뭄에 콩나듯이 나는 찔끔찔끔, 몇 번이고 읽었다 내려놓고 시간을 내어 다시 읽고, 또 읽고를 반복한다. 하지만 그 느낌 만큼은 새롭고, 전율은 사그라질 줄 모른다. 그리고 그네들의 삶이 무척이나 아름답고 행복해 보인다.
  

배낭여행을 하며 무수한 사람을 만나고 스치고 지나가는데, 그 잠시 잠시 동안의 만남으로, 사람을 간혹 단정짓는 어리석음을 범할 경우가 있는데, 낯선 거리에서 다가온 이 당혹감은 쉬이 진정되지 않고 부풀어지게 마련이다. 난 고마운 이의 도움을 더욱 고맙게 생각하면서도 당혹스런 일이 벌어지면 뒤돌아보지 않고 그 자리를 떠나곤 한다. 

책을 읽으면서, 그네들은 들려준다. 캄보디아 사람들이 천사가 아니라 사람이라고, 좀 더 교육을 받으면 서로에 대한 배려를 갖게 되고, 나누는 것도 안다는 것을. 그리고 그네들은 말한다. 대한민국이라는 관계가 그를 억압하는 사회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고, 조금은 경제적 여건이 좋지 않지만 웃음이 아주 흔한 이 동네가 좋다고 한다.
 

그네들은 처음에 그에게 주는 당혹감을 애써 외면하지 안혹, '화'를 부풀어올린다. 그리고 그 '화'를 진정시키고, 오래도록 그네들 곁에 머무른다. 

한 달 째 붙잡고 있지만, 읽을 때 마다 각기 다른 그네들이 한결같은 미소로 행복하다고 들려준다.

난 책을 읽으며 다시 꿈을 꾼다. 낯선 길 위에서 만나는 모든 이들에게 좀 더 많은 손을 내밀고, 오래도록 그네들의 이야기를 듣는 꿈. 낯선 나라에 사는 그이들은 현재 진행형이다. 누군가 이렇게 묻을 지도 모른다. 지금 행복하지 않는데, 시간이 지난다고 행복할까. 그이들은 아주 작은 것에 감사할 줄 알고, 소소한 일상에서 행복을 꾸며가는 이들이다. 계단을 오르거나 성을 쌓는 일은 하루 하루의 일상 속에서 잉루어지지 결코 한 순간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어쩜 내일, 내일하며 미루다 여원히 그 시간을 마주하지 않을지 모른다면, 그이들은 진정 자기삶을 충실히 살아가는 이들이다.

감사합니다. 내게 다른 사람의 모습과 나눔, 행복을 들려주셔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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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방일기
지허 스님 지음 / 여시아문 / 200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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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차분하다, 모든것을 내려놓은 듯 하면서 견성을 쫓기 위해 몸부림 치는 스님은 해탈할 듯 하면서 스스로 '견성'을 이루지 못하여 고뇌하니, 죽비소리가 깨달음으로 이르는 지름길로 삼고, 선방에 머무르는 이들을 '화두'로 삼는다. 

겨울밤, 군불을 때는 아궁이 앞에 고구마 몇 개를 넣고서는 쪼그리고 앉아 기다렸다가, 고구마가 탈까봐 얼릉 꺼내 손을 호호 불며 안방으로 들어가, 이미 가져온 김치 한 줄을 올린다. 신문지에는 검정이 내려 앉고 손톱 마디마디는 새까맣게 익어가는지도 모른 체 할머니의 옛이야기를 듣는다. 할머니의 옛이야기를 듣고, 지허스님의 이야기를 듣는다. 스님은 할머니의 이야기처럼 차분하게, 차분하게 들려주신다.

십리를 달려왔다느 어느 노장 스님, '스님들 스님들, 저 시래기 좀 붙잡아 주고가오, 늙은이가 시래기를 놓쳐 십 리를 쫓아오는 길이라오' 시래기를 쫓아 십리를 달려오는 우직함과 그 하나 조차 버리지 못하는 마음 씀씀이가 하늘처럼 높아 보이는데, 미리 짐작하고 선을 긋는 납자의 발걸음에서 내가 보여 한 없이 부끄러워진다. '영원한 것은 하나도 없다. 그러나 모든 것은 영원하다' '영원성을 불신함은 중생의 고집 때문이요, 영원성을 확신함은 불타의 열반 때문이다'라는 화두를 견성하지 못한 우매한 나는 몇 번이고 되내인다.

선객의 바랑, 끝내 견성하지 않으면서 절간에서 머무른다면, 생의 모독자라는 자기 검열은 준엄하다. 그저 무위도식하는 듯 하면서 잡히지 않는 견성을 위해, 몸 받치며 자아를 찾는 스님의 모습은 준열하다. 그리고 두 동자승의 장난은 내 유년시절의 소꿉장난이며, 스님들의 뒷방 이야기는 스님도 사람이구나하는 마음을 심어주면서 한편으로는 스님이면, 나 보다 좀 더 높은 경지에 이르러 자세 또한 그러했으면 하는 바람과 억지를 품어본다.

나는 들었다. 스님은 어느 절 주지를 지내시고, 이제는 조그마한 선방에서 차(茶)를 키우신다고, 어쩜 내가 스님의 글을 찾게 된 것도 그 이야기를 듣고 부터이다. 예순을 넘는 노장 스님과 지천명에 이른 납자가 한 방에 앉아 세 시간 동안 차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아름답다, 아름답다. 여기에는 속세의 먼지가 들지 못하고, 선계의 바람 만이 머무를 뿐이다. 그리고 납자-내게는 높은 선생님-가 스님을 뵈온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차잎이 날 때 쯤에 선생님을 졸라 스님을 뵈러갔다오면 참 좋겠다. 오늘 일은 책에서와 선생님이 본 스님의 모습이 한결같이 느껴짐은 한점 흐트러짐이 없는 정신과 마음 때문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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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이 멈추는 곳, 라오스 - End of Pacific Series 2
오소희 지음 / 에이지21 / 2007년 8월
평점 :
절판


참 부럽습니다.

여행이 끝난지 5개월이 지난, 책을 읽은지 6개월이 지난 어느날, 난 내 책상 위에 꽃힌 책을 다시 꺼내들었습니다. 그리고 무슨 말이라도 해야 할 듯 하여, 서투른 글을 주워담아 봅니다.

처음 느낌, 정말 이런 곳이 있을까라며, 가슴 설레이며, 여기가 어딜까라는 -책을 읽을 때 까지, 라오스가 어디에 붙어 있는지조차 몰랐습니다. 부끄럽게도, 그렇게 내게 아시아는 너무 먼 거리였는지 모릅니다. 책을 읽으며, 캄보디아에서 여행하며 형에게 들었습니다. 난 라오스를 '위,아래 다 둘러 볼 것이며, 아마 한 달 정도 머무를 것이다'라고. 그렇게 내게 -라오스는 아름다운 곳이며, 그 아름다운 자리에 머물면 어디서나 웃음 띤 얼굴로 '사바이디'가 들려 올 것이라며 행복한 미소를 지었습니다. 그가 들려준 참파싹을 거닐며 풍선이 들려주는 아름다운 이야기, 싸반나케의 공룡박물관의 상상력, 방비엥으로 가는 길목에서 아픔저림,  루앙 프라방에서... 낯선 거리에서 낯선 나라를 떠올리며 마냥 가슴 설레였습니다.

캄보디아에서 태국 방콕으로 든 다음, 아유타야를 보고 긴 밤기차를 타고, -아마 저녁 8시 쯤, 그리고 10시간 정도-우본 차라타니로 든 다음, 꽁지암을 보고, 총멕으로 다시 내려와 라오스로 들었습니다. 그리고 라오스.  빡세로 가기 위해, 난 국경에서 생태우 뒷자리에 앉아, 5시간을 기다렸습니다. 간간히 아주머니가 손바닥 보다 작은 오징어와 숯을 들고와서 팔면, 배고픈 나는 얼릉 쪼그리고 앉아 먹습니다.

태국에서 사람이 건너오면 운전 기사는 '빡세' '빡세'하며, 예닐곱의 손님은 안중에 없다는 듯이, 스무명은 태워야 간다고 합니다. 그래도 흥분된 마음은 라오스에 대한 은근한 설레임을.

사바이디 케스트하우스2의 도미토리에 배낭을 내리고, 무작정 거리를 걸어봅니다. 내 나라, 내 작은 방에서 책을 읽으며 꿈꾸었던 그 거리를 걷는다는 생각에, 메콩을 바라보니 저 멀리서 비구름이 몰려옵니다. 비구름 앞에 무지개가 다리를 놓습니다. 구름이 건널 수 있도록.

우체국에 들러, 이쁜 우표를 달라합니다. 편지를 부치고, 빡세에서 이틀을 머무르고, 메콩강에 가서 물어봅니다. '참파싹으로 가는 배가 있나요?' 분명 여행책에는 적혀 있는데, 아저씨는 없다고 합니다. 다시 버스터미널로 와서 언제 떠날지 모르는 생태우에 배낭을 내립니다. 지은이가 '눈치 없는 뚝뚝기사 양반, 곱짜이'라 말한 그 자리. 나 역시 뚝뚝을 타고 왔는데, 아저씨는 친절하게 언제 떠날지 모르는 생태우를 가르켜 줍니다. 하지만 나는 국경에서 이 놈의 생태우 맛을 보았는지라. 역시 지은이처럼 사진기를 들고, 시장을 걷습니다. 그리고 두 어 시간이 지난 다음, 생태우에 스무다섯명이 닥지닥지 붙어 앉은 다음, 생태우는 떠납니다.

참파싹에서 시판돈으로 갈 때, 차가 멈춰서면 자연스레 생태우의 손님들은, 원시적이거나 자연스런 행위로 볼일을 봅니다. 여자분은 치마를 높이 올리고서는 칸막이를 만듭니다. 여기는 시간이 멈춰버린 거리, 라오스입니다.

다시 메콩강을 건너 만난 사 천 개(씨판돈)의 섬, 아무도 달려오지 않습니다. 아무도 들려주지 않습니다. 어린이 몇 몇이 언덕에서 옷을 입은 체 물속으로 뛰어듭니다. 강이 어린이를 키우고 있습니다. 빡세, 참파싹, 씨 판 돈. 내게 라오스는 '심심함'과 '시간이 정지'한 두 개의 느낌으로 안겨옵니다. 난 다시 비엔티엔으로 24시간 버스를 타고 올라옵니다.

왕위앙에서 넘쳐나는 서양 배낭객과 메콩을 벗어난 건너 마을의 어린이를 만났습니다. 서양객들은 저희끼리 신이 나고, 건너마을 아이는 다 헤어진 옷을 입고 소쿠리로 고기를 잡습니다. 손가락만 한 고기를. 넘쳐나는 외국 배낭여행객은 강을 건너지 않고, 저희끼리 강을 따라 내려올 뿐입니다. 건너마을,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동굴 앞에서 손전등을 빌려주며 입장료(1달러)를 받는 묘령의 아가씨는 헤픈 웃음을 나에게 날립니다. 어린 꼬마는 고기 대신에 가이드가 되어 나를 주선합니다.

왕위앙에서 루앙 프라방, 세계 문화유산 속에 하루살이를 하는 라오 사람들의 야시장. 루앙남타로 달려가는 산속길과 초가집.  스무 날 가까이 내가 본 것은 라오 사람들이였고, 그네들의 삶이였다. 난 라오스를 벗어날 때 쯤에 열이 올라, 내가 읽은 책에 대한 독설만 줄줄이 외웠다.

그는 부유하지는 않지만 넉넉한 삶으로, 라오 사람 깊숙이 들지 않고 오직 '쉬려고 이곳'에 왔을 뿐이고, 내게는 '아무것도 없는 자리'였다고 되씹었다.

시간이 한참 흐르고, 싫다하면서 차마 내리지 않고 내 책상 위 책들 속에 꽃힌 책을 보며 근래에는 '참 부럽다'는 생각을 가져봅니다. 그는 그가 본 모습을 내게 들려주었고, 난 그와 같이 못 보았기에 그가 과장되었거나 옳지 못하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는 그가 본 것을 들려주었고, 난 나를 버리고 그가 되려고했다. 내가 느끼지 못한 것은 그의 잘못이 아니라 나와 라오스 사람들과 관계, 즉 내가 그에게 다가가는데에 기인한 문제이다. 이렇게 나에게 고개를 돌리니, 그는 참으로 아름다운 자리를 만나고 왔다는 생각이 듭니다.




정희재씨의 [나는 그곳에서 사랑을 배웠다]는 책을 읽고, 티벳을 동경하여, 그가 걸은 자리를 걸을 때에도 나는 정희재가 될 수 없었고, 나였다. 그가 풍요롭게 들려준 이야기를 내가 그릴 수 없다고 그가 거짓믈을 하거나 잘못된 것이 아님을 알았지만, 난 같은 잘못을 두 번이나 저질렀습니다.




내가 뒤돌아보아야 할 것은 그의 풍요로운 이야기와 내 여행 발걸음이다. 분명 라오스는 라오스이고, 같이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난 그의 걸음걸이와 마음씀씀이가 부럽고, 내 게으른 걸음걸이가 부끄럽습니다. 다시 라오스를 꿈꾸어도 될 까요?

한동안 책상에 놓아두고, 시비를 오래도록 걸며, 내가 걸은 지난 걸음을 오징어마냥 오래 곱씹어야 될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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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에 묻힌 태양 - 세계문화예술기행 4
최수철 지음 / 학고재 / 199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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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한다는 것은 나와 비아의 소통이고, 꿈꾸는 행위이다. 내가 가보지 못한 곳에 대한 동경을 품고 낯선 길을 걸으면서, 낯선 공간에서 내가 아닌 다른 나를 보면서 풍경과 마주하고 소통하게 된다.

여행기를 쓴다는 것은 알몸으로 사람들 앞에 나서는 행위와 같다. 소설은 화려한 옷으로 가려입을 수 있고, 수필은 짧은 사유로 사람 앞에 나설 수가 있고, 시는 몇 몇의 노래로 은유를 품을 수 있지만 여행기는 내 머릿속에 숨어 든 모든 지식과 낯선 거리에서 마주하는 경험이 우러나기에 무엇을 숨기거나 감출 수가 없다. 그렇기에 여행기를 읽으면서 나는 그를 알몸으로 마주한 듯 한 느낌을 간혹 마주하게 된다고 생각한다.

이집트를 다녀온 이.
피라미드는 여행자라면 누구나 한 번 쯤, 적어도 내게는 동경의 자리이다. 그런 곳을 오늘 보다 10여 전에 다녀온 글쟁이의 글을 따라 읽다가 덮어 버린다. 좋은 여행기를 읽으면 입가에 살며시 미소가 지으지고, 거짓이거나 자기를 들어내려는 여행기를 읽으면 괜시리 머리가 아파온다.

최수철이라는 이가 그려온 이집트의 이야기. 나는 어느 문사의 헌사를 다 지워버리고 여기에 내가 느낀 글을 몇 자 메모하는 것으로 긴 글을 생략한다.

+ 일반화 -길에서 아주치는 젊은 이집트 여인들은 대부분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아름다웠다. 그들에게는 강렬하게 활짝 폈다가 스러지는 열대의 꽃의 이미지가 있으면서도, 서양 여자들에게서 간간히 엿보이는 공격성은 전혀 없는 순박함을 지니고 있다.(56쪽)

+ 억지스런 의미부여 -그러한 입장에서 보자면 문화와 인종을 초월하여 일정한 나이에 있는 모든 여인들에게는 분명 나름대로 평균적인 아름다움이 있기 마련이었다. 그런데 동양인들, 혹은 한국인들은 그런 독자적이면서도 평균적인 미를 충분히 자각하고 있는 것일까.(56쪽)

+ 지례짐작 -방금 그는 상점 측으로부터 커미션을 받느나로 나를 기다리게 한 것이 분명했다(64쪽)

+ 거리감 -이탈리아 피자 식당에서, 피자를 먹으며 스텔라라는 이집트 맥주를 마시다.(55쪽)

그의 일반화 오류나 억지스런 의미 부여를 통해 깊은 성찰을 들어내려는 의도를 몇 번이고 참고 읽어왔고, 시장 한 구석의 장터보다 깔끔한 자리에서 밥을 먹거나 크루즈를 타는 것에 대해서는 뭐라 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난 이 다음 부분에서 폭발해버렸다.

+ 살생 -그때 나는 우리 나라에서 보던 것과 똑같이 생긴 작고 새카만 모기 한 마리가 벽에 앉아 있는 것을 보고서 집중적으로 약 세례를 가했다. 그러자 그 모기는 약물에 젖은 날개를 한 번 부르르 떨고는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그 모습을 보고서 나는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단순히 모기라는 이유 만으로 한 생명을 죽이면서, 그는 사디스트적인 희열을 느낀다. 글을 적는다는 이가, '존재의 본질'을 담으려는 이가 죽어 없어진 피라미드에서는 감격하고, 곁에 다가온 모기를 죽이면서 행복하다니. 난 그가 이집트의 피라미드를 보며 느끼는 어떤한 사유도 들지 않는다. 지식인은 얇은 펜대로 깊은 사유를 끓어내려 하지말고, 흙탕묻은 신발이나 다 헤어진 신발을 끓고 시장 바닥을 하루 종일 돌아다닌 다음에 그가 다음 이야기를 풀어내야 할 것이다. 마냥 이것이 나만의 아집이라면, 난 펜대를 사유하는 지식과는 영원히 결별할런지 모른다.

슬프다. 누구보다 많은 책을 읽고 깊은 글을 쓴다는 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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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여행자, 세상과 소통하다 Beyond Travel Beyond Language 1
방희종 지음, 김시훈 그림 / NEWRUN(뉴런)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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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랫만이다.


책을 펼치고서 글 하나하나 읽으며, 내 목 등뒤에서 소름이 돋고 전율이 이는 느낌. 아주 조심조심스레 다가갔는데, 그는 선뜻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반가이 맞이해주며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전혀 낯설지가 않다. 나는 '맞다' '맞다' 속으로 글 한자를 띄엄 띄엄 읽을 때 마다 소리친다. 속으로 고함 지르고, 입가에는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내 떠남을 그려보고, 내 지난 길을 되돌려 본다. 옆에서 일하는 이가 '뭐가 그리 재미있노' 물어보지만 난 아무말도 하지 않는다.

예전에는 여행에 대해 무수한 정의를 둘러세우고, 그 의미를 '도(道)'라 할 만큼 포장을 하며 설득하지만 결국 나에게 돌아오는 이야기는 '이상주의자'이거나 '대책 없는 혹은 현실을 모르는 이'라는 철부지 어린아이를 보는 시선이였다. 난 그에게 여행을 말하지 않는다. 다만 그 길을 나선 이가 있다면 살며시 그에게 다가가 그의 이야기를 엿들어보며 홀로 좋아라 한다.

그리고 '하우아시아' 내게 아시아를 들려주었고, 안나푸르나를 그려주었고, 네팔의 퍼수파티나흐와 사두를 소개해 주었다. 두 번의 배낭 여행, 아시아의 길을 좀 더 쉽게 다가갈 수 있었던 것은 어쩜 '하우아시아'의 만남 때문이였다면, 난 성급하게 온라인으로 일어오던 그의 글을, 가을비가 내리는 오늘밤, 어둠이 사위를 감싸는 늦가을 밤, 커피 한 잔 책상 위에 놓아두고, 메모지를 꺼내 놓은 다음, 그의 이야기를 새겨 듣는다. 그리고 몇 번이고 입가에 살며시 미소를 짓는다.

미소를 짓는다.

두 번의 만남, 참 고마운 사람이다.

난 아무래도 오늘 밤 안에 이 책을 다 못 읽겠다. 한 쪽 읽고 미소짓고서는 그곳을 무아지경 동경한다. 그리고 한 이야기를 듣고 마냥 웃기만 한다.

나도 유난히 네팔을 좋아하고, 발티스탄을 그리워하고, 카라쿨 호수의 천막과 카쉬가르의 오래된 골목, 히말라야를 무지 무지 좋아라 한답니다.

그의 여행기록 http://www.howasia.net 내 여행기록 http://nacafe.co.kr

내가 담은 사진 몇 장.


티벳 라싸에 대해.


작은 티벳, 라다크의 곰파와 하늘


히말라야를 닮은 순수한 나라. 네팔 포카라


사막의 오아시스, 카쉬가르


내가 만난 가장 아름다운 호수, 카라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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