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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 이반의 산 이야기
최성현 지음, 이우만 그림 / 도솔 / 2003년 8월
평점 :
나와 같은 가치관 혹은 같은 곳을 바라보는 이를 만난다는 것은 즐겁고 행복한 일이다. 하지만 그가 조금더 깊이 있게, 혹은 세심하게 이야기를 해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생기면, 더 큰 아쉬움이 된다.
산에 대한 동경은 다른 책 서평에서 올렸기에, 거두절미하고 아쉬움을 한탄해 보겠습니다.
저는 이철수의 글을 읽으면서 조금은 불안했습니다. 내 친구 최성현을 이야기 하면서 '그가 몰고 다니는 4륜 구동의 소형트럭, 핸드폰과 함께 그가 누리는 현대 과학의 산물'을 '생태적 근본주의에 갇혀 있지도 않으면서 과학 만능에 기대지도 않는 새로운 삶의 모형을 모색하는 그 일이 통쾌해 보이기도 했습니다(17쪽)'라고 표현합니다. 산에 4륜 구동의 소형트럭을 몰고 올라가는 사람이 과연 얼마만큼 애정을 가지고 있을까라는 기우(杞憂)가 든 것이죠. 이런 쓸데 없는 걱정이 갈수록 구체화됨에는 그저 한숨 뿐...
이 책의 지은이가 산에 살면서, 느낀 점을 표현합니다. 우선 나만의 장소라 하면서 산에서 누워 보기도 하고, 앉아 보기도 하고, 엎드려 보기도 하라고 권합니다. 그러면 다른 세상이 눈앞에 펼쳐진다는 것이죠. 이렇게 자상하게 말하는 장면에 글자 한 자 놓칠까봐 책을 더욱 당겨서 보았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사물은 거울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내가 제일라는 교만한 마음을 갖지만 않는다면 풀 한 포기, 벌레 한 마리를 보고도 우리는 여러가지를 깨우칠 수 있다는 것을 경험할 수 있다(32쪽, 관물찰기)' 스스로를 비추어 보는 것이죠. 즉 우리는 항상 높은 곳에서 아래를 내려다 보며 삶을 살아가곤 합니다. 자세를 낮추어 보라는 것은 일회성에 거칠 수도 있지만 산에는 만은 겸손, 작은 희망 하나를 품을 수가 있기 때문에 큰 울림으로 다가옵니다.
하지만 뒤로 갈 수록 아니다 싶은 장면이나 글귀가 나타났습니다. 스스로 교만해짐을 버려라고 하지만 지은이만은 버리지 않는 듯 하여 안타까웠습니다.
'누군가를 평가하려면 그 사람의 모카신(북아메리카 인디언의 뒤축이 없는 신)을 신고 세 달을 걸어본 뒤라야 한다(49쪽)', '사람의 얼굴을 보면, 관상쟁이가 아니더라도 누구나 대충 그가 어떤 인생을 살아왔는지 짐작할 수 있다(60쪽)' 너무 말을 쉽게 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앞서서는 인디언의 격언을 들어서 신중해라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쉬이 평가를 내립니다. 이는 깊은 고뇌나 성찰에 의한 것이아니라 마음에 드는 문구를 감성적으로 익힌 것이라 짐작이 됩니다.
'꽃이 피기 전에는 있는지조차 몰랐던 풀꽃들이 여기저기서 피어나 비로소 그 존재를 한껏 드러낸다. 이렇게 구별하기 쉽다는 이유로 꽃이나열매를 중심으로 도감을 만드는 것이다.(80쪽)' 앞서의 내용은, 우리나라 도감에 꽃이나 열매를 많은 이유를 드러낸 문구입니다. 즉 곁에 두고 보지 않고 꽃이 만개한 날에 찾아가 사진을 찍어서 책을 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100권의 책 중에 99권이 이렇게 책을 낸다 하더라도, 한 권을 마저 읽지 못했다면 이러한 말은 삼가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리고 본인만 꽃을 좋아하고 산을 좋아한다는 좁은 선입관은 되도록이면 빨리 버리는 것이 좋습니다. 제가 여기서 어느어느 도감이 뛰어나다는 말은 차마 하지 않겠습니다. 너무나 많기에... 아울러 그의 책도 도감인냥 나무며 꽃, 새 등이나오는데, 예닐곱 줄이 되지 않는 문구는 머리에 들어오기에 벅찹니다. 이는 무엇보다도 그가 잘 알 것입니다. '이름을 외웠더라도 한번 보고는 잊기 쉬우므로 다시 확인하는 과정(80쪽)'을 부탁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쉬이 이름이 외워지지 않는 것을 알고, 남의 책을 쉬이 비판하면서... 정작 본인의책이는 예닐곱줄의 짤막한 백과사전식 내용만 있고 그림은 드문드문 나옵니다.
도감이라 하기에는 너무 부족하고, 산에 사는 산사람의 이야기라 하기에는 너무 오만방자하고, 좋은 기획이라 하기에는 편집이 엉망이고...차마 아쉽다아쉽다하며, 책을 다 읽지 못하고 덮을 뿐입니다. 다음에 조금 더 깊은 성찰의 책을 기다려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