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 아나키즘, 그 반역의 역사 책세상문고 우리시대 29
조세현 지음 / 책세상 / 200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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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나키스트의 대명사가 무정부주의가 아닐까 한다. 바람결에 들려오는 아나키스트=무정부 주의라는 말은 당장에 달려가 항변하고 싶게 만든 적이 있었다. 아나키스트는 단순하게 무정부 주의가 아니라 세계적인 연대를 꿈꾸는 낭만적 혁명가를 말한다고... 하지만 내가 아는 아나키스트 역시 그들이 입으로 흘러내는 지식가 별반 다름이 없었다. 어깨 너머로 들은 아나키스트의 몇 구절에 혹하여 그들을 미화한 것이니... 이런 나에게 조세현씨가 쓴 <동아시아 아나키즘, 그 반역의 역사>는 반가운 책이 아닐 수가 없었다. 내가 좋아한다면 탐구하지 않는 것은 불성실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지은이는 근대의 일본과 중국 그리고 우리나라에서 활동한 아나키스들의 삶을 이야기 하고 있다. 지은이는 책을 쓴 동기에 대해서 '그들의 극적인 삶을 알아보고 싶어서'라는 겸손한 자세를 보인다. 분명 슈스이나 스푸, 신채호들의 삶을 추적하는 것은 극적이며 치열할 것이다. 왜냐면 그들이 산 시대가 엄청난 격변기라는 것을 부인할 수가 없으며, 그들은 스스로를 절차탁마했기 때문이다. 일본과 중국 한국에 아나키스의 삶을 쫓는 것이 극적일 수 있음은 당연하다. 아울러 격변기 아나키스들의 고뇌를 읽는다는 것은 가슴 뿌듯하며, 큰 감동에 벅차 오를 수가 있다.

하지만 이 책은 지면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했다는 아쉬운 점이 남는다. 아나키스들과 사회주의와의 개념을 정리한 부분은 상당히 좋은 면이 있으나, 아나키스트를 비판적으로 읽지 못하고, 그들에 대한 평가를 유보하고 있다는 것이다. 쉽게 찾아가기 위한 시도일 수는 있지만 조금은 모자라는 듯한 아쉬움을 떨 칠 수가 없다. 아울러 신채호가 아나키스트라는 점은 여러책에 언급되는 있는 것을 반복적으로 나타낼 뿐 다른 차별화도 없다. 그리고 박열의 치열한 삶은 단 몇 줄과 에피소드로 끝을 맺고 있다. 그리고 기운이 뒤로 갈수록 처지는 것도 좋지 못한 점이다.

아나키스트에 막연하게 동경이나 호기심을 가지고 있다면 입문서로는 더 없이 좋다. 지은이 글쓰기와 책의 편집으로서는 장점을 지니지만, 깊이 있는 성찰(개개인의 삶과 사회와의 관계, 지식인으로서의 고뇌)과 객관적으로 보고 비판할 수 있는 시야가 없다는 점은 아쉬움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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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인터넷 수익모델을 벗겨라
조장은 지음 / 더난출판사 / 200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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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인터넷에 대한 열풍이 강하게 분 적이 있다. 또한 웹젠에 주식을 가지고 있는 이수영(마이클럽 대표)씨가 엉청난 돈을 벌었다는 소리 등등으로 인하여 죽은 인터넷에 사람이 몰리곤 했다.

인터넷은 시간과 공간의 확장성을 펼쳐 보이며, 상상력을 무한궤도에 올려놓는다. 추운 겨울날 서서 오줌을 누면 언다고 하는 과장을 비유하여 말하자면, 인터넷은 사고의 혁명을 가능케 한다. 새로운 패러다임에 어떻게 준비해야 할 것이며, 장사를 하게 된다면 어떠한 수익 모델을 찾을 것인가라는 의문이 드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이기에 무서움과 두려움이 따르게 마련이다. 이때에 누군가가 손을 내밀어 준다며 더 없이 고마운 일이 것이다. 이런 면에서는 지은이에게 고마움을 표해야 한다.

우리나라보다 (유선) 인터넷이 덜 발달 되었지만 더 활성화된 일본을 흐름을 짚어준다. 마흔개 정도가 되는 유로 인터넷 사이트를 차근차근 살펴보며, 타산지석으로 삼기를 바라는 것이다. 회사개요라든가 이런 것으로 돈을 번다, 혹은 담당자의 한마디는 절실하기만 한 목구멍에 단비처럼 적셔 줄 것이다. 그렇지만 너무 목이 말라서 이것이 단비인지 구정물인지 모른체 마시는 것은 아닐까... 이 책은 잘 짜여진 편집과 지은이의 넓은 시야는 배울만 하다.

하지만 흐름을 짚는다하여 구체적으로 안다는 것은 아니다. 냇물이 흘러가는 것을 보는 것과 물살을 타고 흘러가는 것은 다르다. 이런 점은 그가 '우리나라에서 이 사업을 하려면 어떻게?'라는 물음에 대해서 나온다. 일례로 일본의 온라인 서점 북원과 우리나라의 서점을 비교하는 부분에서는 턱없이 모자란다. 그가 본 일본의 시야가 옳은지 그른지 몰라도 우리나라 인터넷 서점을 살펴보는 부분은 미약하기 그지 없다. 이미 나와 있는 예스24나 알라딘을 말하며, 그들과의 비교분석이나 수익모델 등은 나오지 않는다. 또한 단순한 나열은 장미빛 미래가 될 수는 있지만 자만을 심어주기에 이 책의 효용성은 독자의 몫이라 할 수가 있다.

시간이 2여년이 지났지만 건져낼 것이 많이 있다면 아직 좋은 책임에는 틀림이 없을 것이다. 이미 내가 건져 낼 수 있는 것은 이렇게 흘러가는구나라는 큰 틀과 입맛만 다시고 마는 담당자의 한마디 뿐이다.

추신: 담당자의 이야기씩은 '나 인터넷에 가게 차렷어(?)'라는 책을 봐도 좋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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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초 편지 - MBC 느낌표 선정도서 야생초 편지 2
황대권 지음 / 도솔 / 200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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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드만은 “비극적 세계관”이라는 말을 통해, 그가 볼 수 있는 세계는 그가 인지하는 것에 한정된다고 말하였다.(다르다면 멜 주세요^^:)

바다에 사는 사람은 거친 바다와 힘겨루기를 하며, 농부는 여름날의 땡볕과 씨름하여, 과실의 결실을 이루어 낸다. 그들에게 바다와 여름은 낭만일 수가 없으며, 싸워 이겨내거나 공생관계를 이루어야 할 무엇이다. 이런 극한 상황을 잘 이겨낸다면 해마다 반복되는 순환을 슬기롭게 극복할 수가 있을 것이다. 나이를 드신 어른은, 태풍이 온다면 배를 바다로 띄운다. 이는 그가 한평생을 살아 오면서 체득한 태풍을 이기는 세계관적 지혜이다. 즉, 사람이 성숙하게 됨은 풍요나 삼의 충족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닌 위기나 불협화음이 닥칠 때 슬기롭게 극복할 때에 조금씩 나아간다고 볼 수가 있다.

야생초 편지를 쓴 지은이도 한동안 영어의 몸으로 지냈다. 그의 죄명이 무엇인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오늘의 그를 잊게 한 삶의 연속선 상에서 “감옥”이 중요하다. 감옥에서 지내는 동안 그의 구체적인 삶은 알 수가 없지만 야생초에 대한 애정을 통하여, 그의 사념을 반추 할 수가 있다. 그는 가장 낮은 것에 눈을 주며, “토종이 사라져도 아무도 슬퍼하지 않는 사회, 그런 세상에(72쪽)” 가슴 아파한다. 또한 “아무도 보아주지 않은 저 작은 꽃을 피워내기 위하여, 화단 구석의 내밀한 공간 속에 의젓하게 자리하기 위하여 쉼 없이 움직이고 있는 주름잎(11쪽)”에 남다른 애정을 쏟는다.

자유가 구속된, 한정된 공간에서 느끼는 감상은 현실에서 우리가 살아가면서 짧게는 10년, 길게는 평생에 걸쳐 묻고 관찰하고 배워야 할 것을 술술 풀어낸다.(첫째, 실천의 중요성, 실천을 하되 지속성이 있어야 할 것, 둘째, 어떤 일을 할 적엔 반드시 전체와의 연관 속에서 그 일을 추진할 것; 74쪽) 이렇게 야생초와 풀어내는 그의 사념은 가히 놀랍다. 마지막으로 녹색평론에 실렸던 “뿌리 내리기”의 강연은 한 사람의 사상적 가로세로 깊이를 옆 볼 수가 있다. 실질적인 생태주의의 언급은 늦은 감이 있지만 위기를 기회를 바꾸는 계기가 되기에 늦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이 책은 소설처럼 한 번 읽고 책꽃이에 꽃아 두는 것이 아니라 베개머리 맡에 놓아두며 하루의 일과를 돌아보고 나서 일독을 권한다. 밥상의 된장국 처럼 몇 번을 끓여도 진국이 달아나지 않듯, 그의 책도 읽으면 읽을수록 삶에 향기를 더 해 줄 것이다. 한 장이 엽서 무게가 한 권의 책보다 더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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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멜표류기 - 낯선 조선 땅에서 보낸 13년 20일의 기록 서해문집 오래된책방 3
헨드릭 하멜 지음, 김태진 옮김 / 서해문집 / 200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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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한번쯤을 들어보았을 이름이다. 조선시대에 배가 난파되어 제주도에 머무른 일행…쯤을 알고 있을 것이다. 이는 춘향전을 다 알면서도 읽지 않은 것과 같다. 나 역시 하멜에 대한 이름만 들어왔기에, 그의 기록을 더듬어 보기로 했다.

낯선 조선 땅에서 13년 20일을 보내면서 그는 무엇을 보고 느꼈을까? 이러한 호기심을 가진다는 것은 예상외의 실망을 안게 될 것이다. 부유층이거나 아담 스미스가 유럽을 여행하던 당시처럼 하멜이 유랑을 했을 것이라는 막연한 짐작은, 익숙한 것에 대한 선입관일뿐이다. 하멜에게는 하루 하루를 어떻게 견디어 그리운 고향으로 갈까하는 생각일 뿐이다. 즉, 지은이가 글을 쓴 목적은 옮긴이가 말하듯이 월급을 타기 위한 수단이다. 아울러 13~15년의 시간이 흐른 지난 다음의 글은 세월의 여과 장치를 거쳐 인상 깊은 것만 남았을 것이라는 것은 짐작이 가능하다.

하멜이 조선에게 느낀 것은 과연 무엇일까? 월급은 받기 위해서 그들의 생활이 조금은 억측이 되었다하더라도, 백성에게 존경을 받는 사또는 그들에게서도 존경을 받았다. 하지만 백성을 괴롭히는 사또는 그들에게도 불편한 존재이다. 그가 제주 목사(이원진; 33쪽)에 대한 상세한 서술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심성은 같다는 것을 나타내는 부분이다. 앞서서 말했지만 목적의식에 의한 글쓰기와 시간이 많이 지난 다음에 쓰여진 글은 단순한 반복과 무료함일 뿐이다. 하멜이 조선에서 커다란 무엇을 느끼거나 감동을 받았기를 바란다는 기대는 혜성처럼 멀어져갈 뿐이다. 깊이 있는 인상에 대한 단락적 회상에 머무른 작품이다. 지은이의 여유가 못내 아쉽지만 어쩔 수가 없으니, 나의 여유로 그를 볼 수 밖에 없다.

후담이지만 이 책을 읽고 나서, 송두율 교수를 떠올린다. 얼마 전 신문에 70여명이 넘는 사람들이 오고 싶어도 고국에 오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했다. 예나 지금이나 고향에 대한 그리움은 변함이 없나 보다. 유치한 감정이지만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오고 싶어도 올 수 없는 그들에 대한 눈높이를 맞추어주길 바란다. 아울러 책을 읽는 사람이 있다면 텍스트에 갇히지 말고, 자유로운 상상을 한다면 나보다 더 큰 감동에 휩쌓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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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각의 순례자 카사노바
김준목 지음 / 시공사 / 200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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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일생을 서술하는 것만큼 어려운 것이 있을까? 스스로가 스스로를 모르는데, 자기 아닌 다른 사람이 안다는 것은 어쩌면 오만이며, 편견일 수가 있다. 이러한 서술에는 용기가 따른다. 산이 높다하여 오르려고 하지 않고, 길이 멀다하여 가려고 하지 않는다면 제자리만 맴돌것이다. 넘어지고 무릎이 까지는 경우가 있어도 걸을려고 하는 것은 미지에 대한 탐구만이 아닌 자기 자신과의 약속이라 할 수가 있다. 우리는 서로가 불충분한 것을 인지하며 하나씩 하나씩 이루어가고 있는 중인 것이다. 그렇기에 어떠한 시도이든 그 용기를 복돋아 주어야 한다.

이 책의 지은이는 이런 면에서 용감했다. 자기가 열정을 가지고 좋아한 사람을 추적하여 자기만의 사람으로 만들어 낸다는 것은 상당한 식견과 부러움을 자아내게 한다. 상상 속에 혹은 머리속에 떠올리는 나의 그는 괴물이든 신선이든 상관이 없다. 왜냐하면 그가 존재하는 공간은 나의 머리속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지 못하고 머리 속을 박차고 나올 때는 좀더 진지하고 논증적이며, 구체적인 이야기를 형상화 해야 한다. 이 책의 지은이는 이런 면에서는 많은 부족함이 따른다는 것이 나의 주관이다.

지은이는 책 날개 분에 “그것은 내게 평생 잊지 못할 희열과 감동이었다. 그때 이후 나는 로마에 갈 때에 그 남자를 만났고, 그의 책들 속 수많은 영혼과 대화를 나누었”다고 한다. 그 중에 한 명이 '카사노바”이다. 그에게 비친 카사노바는 “단순한 호색한이 아니라 수많은 책을 저술하기도 한 유럽의 지성임”으로 인식되어진다. 이러한 이끌림은 그의 글 쓰기를 부추겨는지는 모르지만 글을 읽는 내내 나에게 설득력을 얻지 못했다.

4개의 큰 주제속에 작은 소제목은 글 읽기의 편함을 줄지는 몰라도 깊이에의 이르기는 배가 바다에 떠 있는 모습이다. 카사노바가 사랑한 여인이 나오며, 그가 나눈 운우지정이 자랑스레 풀리지만 어떠한 사색을 했는가에 대해서는 “?”만 있다. 또한 그가 철저한 지성인이라는 것도 의심스럽다. 지은이 지성인에대한 개념 정리가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보여진다. 혹시 후광효과-짝사랑하는 사랑에 반하여 신격화 한 것이 아닌지 심히 의심스럽다. 또한 카사노바가를 좋아한다는 주위사람들을 카사노바가 어떻게 밤샘을 혹은 여러 여자를 즐겁게 하고 자기도 즐거웠는지에 대한 비법은 나온다. “매 순간마다 새로운 아이디어로 창의의적인 일을 도모했던 카사노바는 사랑과 삶 속에서는 늘 자유를 추구했다고 했다(93쪽)” 다만, 여기까지만이다.

분명, 그의 새로운 아이디어는 이성을 꼬시는데에는 탁월했음을 지레짐작이 가능하지만 연인간의 사랑을 빼고, 삶 속에서 지성으로서 모습은 찾기가 어렵다. 아울러 지은이의 여과가 상당히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 사람이 손가락이 이쁘다고 하여, 하는 행동이 아름다운 것은 아니다.

추신:책을 1/2가량 읽었지만 더 이상의 기대효과가 없어 여기서 접었습니다. 모든 이견을 겸허히 수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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