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부자들의 돈 버는 습관
홍성민 지음 / 더난출판사 / 200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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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치가 조금 빠른 사람이라면 혹은 나름대로 정리가 된 사람이라면 '차례'를 읽어보고 이 책을 다 보았다고 자부할 것이다. 이러한 행동이 거만함에서 오는 치기 어린 발상이라도 난 기꺼이 그의 생각에 동조를 한다.

열심히 읽는이는 부자가 되지 못하지만, 부자의 이름을 빌려서 책을 적은 지은이는 부자가 된다는 말이 있다. 하지만 서로간의 눈높이가 달라서 이런 현상이 벌어지는 것은 아닐까?

갇 걷기 시작하는 어린 아이에게 뛰는 법을 가르치는 것은 벼를 심어 놓고 다음날 쑥쑥 커라고 뽑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또한 뛸려고 하는 어린이에게 걷는 방법을 가르치는 것도 그릇된 행위이다. 이렇게 때를 읽지 못하고, 무조건적인 하나의 잣대로 잰다는 것은 수능시험 외에는 더 이상 적용되어서는 안된다.

이 책을 읽으면서 설레설레 고개를 흔들다가도, 독자들이 한결 같이 좋은 책이라고 하여, 다시 접어들곤 하였다. 그러면서도 아닌데 라는 말이 입에서 떠나지 않았다.

책에 전반적인 깊이는 없다. 하지만 신선한 자극제가 될 수도 있다. 시원시원한 편집은 짬짬히, 화장실에서 읽기에 부담이 없다. 그리고 부자에 대한 막연한 동경에서 구체적인 착상을 그리는 도화선이 될 것이다.

덧붙여 몇 자를 적어보면... 글머리에 독자보다 지은이가 부자가 된다는 말을 하였는데... 이것도 하나의 전략이 아닐까. 니즈(needs)가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고 다가가는 것이 중요하지, 상아탑에 갇혀 학문적 이론을 거창하게 읊는 것은 공허한 메아리에 불과하다.

또한 지은이는 평생직장 개념을 설정한 분위기를 다분히 내포하고 있다. 자기 계발이나 투자에는 인색하다. 아니 굳이 할 필요가 없다. 나이가 차서 직장에 그만두면, 그때 먹고 사는 것을 궁리하지, 오늘 내일하는 벼랑 위의 현실을 외면한 장미빛 미래에 불과하다. 또한 지금의 금리가 4% 정도이나, 6%~ 10% 정도로 설정하는 것은 신기루!!

일년동안 온라인에서 수익모델을 찾으려고 뒤지는 나에게, 이 책은 신선한 자극제도 구체적인 수익 모델 설정도 되지 못했다. 다만 이런 책의 '류'가 잘 팔리는 우리나라의 독서풍토를 보며 깊이를 가늠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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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들의 대한민국 1
박노자 지음 / 한겨레출판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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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자연을 본다는 것은 단순히 보는 것이 아닌 여러 가지로 인지하고 정리하는 사고이다. 즉 사회현상을 바라보는 것도 제각각의 시선이 존재한다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이러한 시선은 우리의 의식을 지배받으며 다양한 사고를 추출하는 것이다

<당신들의 대한민국>이라는 조금은 도발적이며 아류작인 제목은 달고 나왔다. 제목에서 느껴지 듯이 '당신들'이라는 말은 내가 아닌 타자, 우리의 입장에서 보면 이방인을 나타낸다. 특히 단일민족이라는 강한 집착을 보이는 우리나라에, 이방인으로 산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지은이는 이러한 굴곡에도 좌절하지 않고 귀화한다)

지은이는 시험이며, 재산 검증 등의 엄격한 심사를 걷쳐 러시아 사람에서, 대한민국의 사람이 된다. 이제 그에게서 '당신'이라는 말은 통용되지 않는다. 그런데 지은이가 '당신들의 대한민국'이라고 한다. 이는 미운사람에게 떡하나 주고, 고운 사람에게 매하나 더 주는 선조들의 충고를 익히 배우고, 조심스레 자아성찰의 계기로 삼계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아닐까 지례짐작을 해 본다.

그가 바라보는 대한민국은 나와 우리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와 '타자'가 존재한다. 이방인을 멸시하며, 자본가는 노동자를 착취하고, 권위는 자율을 숨죽이게 한다. 그의 시선은 크게 4가지로 나눌 수가 있다. 우선 권위에 대해 철저하게 해부하며 비판을 가한다. 박정희의 통치술이나 군대에서 강요되는, 혹은 다른 국민들에게 가해지는 힘은 상당히 왜곡되어 있다. 두번째로는 가진자는 못땠다는 관념이 다분하다. 중심부 국가, 준주변부, 주변부로 보는 국가관(61쪽)과 '힘과 정의, 물리력과 도덕은 보통 함께 가질 수가 없는 것이다. 어떤 나라이든 군대와 관료조직이 크고 힘셀 수록 오만함과 횡포로 배가 된다(130쪽)'는 이분법적 도식이다. 이는 자본주의 사회의 자본가와 노동자와의 대립으로까지 이어진다.

셋째로 자아성찰이다. '많은 한국인에게 인종주의적 편견이 이미 고질화되어 있다는 말을 할 때, 내 마음은 억제하지 못할 만큼 설렌다. 바로 한국인들이 세계체제의 기본 논리 중 하나인 인종주의의 최대 피해자였다는 사실을 너무 잘 기억하기 때문이다(269쪽)' 이렇듯이 내면적 성찰인 것이다. 이방인에서 이제는 가족으로 다가와 찬찬히 둘러보는 그의 눈에는 대한민국이 아직 안타까울뿐이다. 마지막으로는 여러나라와 대한민국의 차이를 비교한 점은 열린시야를 가지게 할 수가 있다. 자칫 우울안에 머물를 수 있었는데, 이를 잘 극복하고 있다.

솔직히, 지은이가 귀화인이라는 점에서 어느 정도의 구미를 당기게 했다. 하지만 깊은 성찰에도, 설익은 감이 바람에 이기지 못한 것 처럼 보인다. 아무리 대한민국의 국민으로, 안타까운 마음에서 몇 자 적은 글이라고는 하지만 어떻게, 이렇게 까지 한 눈으로 보는가라는 생각이 든다. 리영희 교수는 '새들은 좌우의 날개로 난다'고 했는데... 우리나라가 아직 존재하는 것은 많이 어설프고 안타깝지만 그래도 가슴 속에 사람에 대한 사람이 식지 않아서이고, 꿈과 희망에 대해서 아직 공허한 메아리로 인식하는 것이 아닌 적극적으로 행동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생각한다.

또한 '다른 것은 몰라도 그들이 국가로서의 도덕적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 올바른 '주변 4강관(觀)'의 기초가 되어야 한다(131쪽)'는 논리는 어린아이의 사고에 머물렀다. 주변 4강(미국, 일본, 중국, 소련)이 호시탐탐 굶주린 하이에나처럼 노려 보는데, 도덕적 권위를 부정하는 것으로 대안이 될 수가 있는가? 전략은 지피지기에서 출발한다. 그들이 힘의 논리로 나온다면, 우리는 힘과 지혜라는 전술을 구가해야한다. 단순한 감성에의 호소나 자각은 어떻한 해결책이 되지 못할 것이다.

대한민국을 사랑하는 이의 자기 고백서라 할지라도, 한방향으로 치우치는 것은 옳지 못하다. 그리고 적절한 대안에 도달하지 못하는 그의 감성적인 비판은 극복의 대상이다. 하지만 넓은 시야로 세상을 이야기하는 부분은 열린시야와 확장된 사고를 가능케 하기에 충분히 공감이 가는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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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어트의 성정치 책세상문고 우리시대 18
한서설아 지음 / 책세상 / 200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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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몸에 대한 상품화는 이제 우리엑 익숙한 단어가 되었다. 집에 먼지 묻은 신문을 펼쳐보더라도 다이어트에 대한 광고를 쉽게 찾을 수가 있을 만큼 상업적으로 돈이 된다는 말이다. 여성의 몸과 다이어트, 이 둘은 어떻게 상관관계를 지는가? 여성의 몸에 대한 우려를 드러내는 지은이의 시선은 확고 부동하다. 그것은 지배자(보이지 않는 손)에 의한 피해자(여성)를 양상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보이지 않는 손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가?

여성들이 몸 때문에 피해를 입게 되는 것은 '윤리적 의무'에 의한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되고, 최종적으로 '제도'가 뒷받침 되기 때문이다. 이 사회적 분위기라는 것은 매스미디에 의해 날개를 달고 세상을 활주한다. 즉 미디어에 등장하는 여성들은 높은 직급이나 직장에 있으며, 일을 깔끔하게 처리한다. 무엇보다도 몸이 가느다랗다. 이는 여성들은 잘 생기고 봐야된다는 왜곡된 심리를 투영하여, 그릇된 형상을 만들어 낸다. 아울러 거대한 회사는 몸매에 맞는 조건을 내세워 여성의 노력과 자질보다는 신체지수로 가늠한다.

이러한 '다이어트의 성정치'는 '여성의 성과 자아 정체감에서 외모가 차지하는 비중'이 '여성들이 갖고 있는 다양한 자원과 능력'을 간단하게 무력화시킨다.(126쪽) 아울러 '여성들이 외모의 힘을 간파하고 자신의 몸을 관리'하면서 심각한 고통을 가중시키게 된다. 결국에는 이러한 악순환이 '여성 개인의 외모 관리가 남성 시선을 중심으로 하는 사회적 힘에 의해서 주동'되지만 가려진다는 점에서 심각한 문제점을 안고 있다.

남성들의 눈요기로 인하여 여성들의 몸은 표준화시켜지지만 여성들에 가해지는 상처는 나몰라라 한다. 즉 남성들은 동등한 인격체로 여성을 보지않고 상품성으로 인지한다는 것이 이 책의 주요 쟁점이다. 이를 증폭시키거나 은폐하는 것은 미디어이며, 남성들은 표준에 들지 않는 여성들을 도덕적으로 제명해 버린다. 결국에는 여성들이 상처만 입게 된다.

무엇인가를 큰 것을 기대하고 이 책을 읽게 된다면 조금의 아쉬움이, 다이어트가 어떻게 성정치의 도구화가 되는가에 대해 낯설음이 있다면 신선한 자극제가 될 것이다. 적어도 내가 읽기에는 몇가지 간과한 점이 있어 아쉽기만 하다.

지은이가 말하는 '사회적 분위기'-실체를 정확하게 계산하지 않고 있기에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라는 문제가 나오지 않고, 어떻게 순응할 것인가에 초점이 맞추어진다. 또한 '사회적 분위기'로 상정한다는 것은 일반 대다수(남성과 그리고 몇 몇의 여성의 묵시적 동의가 이루어진다는 전제조건하에 성립이 된다. 지은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남성의 눈요기 때문에 다이어트를 하는 것이 아닌 속칭 '출세'를 하기 위한 수단이다.

이 출세는 고학력 내지 사회적으로 부를 가진 사람에게 1차적인 문제가 되는 것이다. '사회적 분위기'라는 거대담론을 끌어냈지만 실제로 그가 관찰하고 논의의 대상이 되는 여성은 소수의 화이트 칼라의 고학력자들이다. (또한 지은이는 회사의 시선이 남성의 시선과 동일하다고 말하였지만 정확한 논증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삶의 질이 아닌 생계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이들에게 다이어트는 무엇인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은 없었다.

두번째로 보이지 않는 손에 대한 실체가 없다. 남성대 여성의 대립관계 혹은 사회적인 분위기에 의한 제도적 희생양으로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본질에 대한 접근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정확한 실체를 알지 못하는 이상 단순히 미인대회에 산발적인 시위만 있을 뿐이다. 또한 남성들 전체를 적으로 만들어 버렸기 때문에, 연계 가능성을 배제 시켜버렷다. 소수의 피해자와 가해자를 일반화하여 서로의 대립관계를 더욱 깊이, 스스로 고립시키는 결과를 만들었다. 남성과 여성, 가해자와 피해자라는 이분법에서는 벗어나야 할 것이다.

힘이 약한 사람일 수록 서로가 뭉쳐야 하는데, 이런 전략에 있어서는 지은이의 식견이 상당히 부족하다. 다른 억압받는 소수자와의 연결 가능성에 대한 고리를 끊어버린 지은이의 시선이 마냥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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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동적 근대주의자 박정희 책세상문고 우리시대 2
전재호 지음 / 책세상 / 200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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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동적 근대주의자 박정희가 지니는 암시는, 박정희라는 일개 개인에 대한 판단을 나타낸다. 그리고 전제가 되는 것은 '박정희=반동적 근대주의자'라는 공식이다. 근대는 무엇이고 현대는 무엇인가? 근대와 현대의 개념을 구분하지 못하고, 혹은 근대가 지는 의미를 알지 못하고 이 책을 일게 된다면 부담스러울까? 크게 걱정할 것은 없다. 지은이는 근현대의 구분을 하고 있지 않지만 '반동적', '근대'라는 개념정리를 깔끔하게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가 인지하는 '반동적'이라는 의미는 '서구의 근대성이 지닌 진보성, 혁명성, 합리성, 민주성이 거세되었음을 뜻한다'(14쪽)

제프리 허프의 '반동적 근대주의-1960년댜 제 3세계 국가에서 기술과 금융에 의한 관심의 형태'로 등장한다는 식은 지은이에게 큰 영향을 주게 된다. 그가 박정희를 반동적 근대주의자를 단정짓는 것도 이러한 시선의 선입관에 의한 것이다. 즉 제프리 허프의 프리즘으로 본 반동적 근대주의자 박정희를 논하지만 실제로는 18년의 정치를 수박 겉핧기식 살피고 있다.

지은이는 박정희가 4월의 혁명을 등지고 쿠테타를 일으켜, 어떻게 장기 집권에 이르게 되며, 경제 개발 5개년이 미국의 정책에 의해 좌지우지된다고 살피고 있다. 또한 새마을 운동이 어떻게 여론 몰이에 활용되는가를 등등 살피고 있다. 박정희의 통치 이면에 숨겨진 진실을 하나씩 풀어가는 그의 세밀한 관찰은 높이 평가를 받아야 한다. 하지만 깊이 있는 분석이 이루어지지 못한다는 한계에 부딪힌다. 짧은 책으로 박정희의 18년 통치기간을 논하는 자체가 무리수인 것이다.

두리뭉실하게 몇가지를 살피면서 흘러가는 그의 논의는 자칭 이현령비현령(耳懸鈴鼻懸鈴)식의 논증이 될 수 있다. 이러한 면은 책에서 간간히 보여진다. 박정희의 역사관을 살피는 대목에서 '<국가와 혁명고 나>의 '오천년 역사는 개선되어야 한다'에서는 한민족의 역사를 퇴영과 조잡과 침체의 연쇄사'로 규정한다. 물론 박정희의 사고가 당대 지식인의 사고를 대표한다고 할 수 없지만'이라는 가설은 생태학적인 부분을 의도적으로 도외시했다. 그는 만주사관학교를 졸업할 때 일본 천황에게 맹세까지 하였으며, 독립군을 잡으로 다닌 사람이다. 이러한 경험에 의해 형성된 그의 사고를 무시하면서 다른 한편에서는 '가난한 농민의 아들로 태어나 출세를 꿈꾸며 수 없이 변신을 거듭했던 박정희의 성장배경을 고려한다면(57쪽)'이라는 앞부분과 상치된다.

두 번째 책을 읽게 된 동기는 반동적 근대주의자에 대해서 알고 싶어서인데, 지은이는 그것이 중요하지 않으며 박정희 정권에 눌린 국민들의 의식을 살펴 보고자 한다. 이는 현실에 대한 반사적 반감일 수가 있다('그래서 나는 수업시간에 이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면서 열번을 토했다(9쪽)') 하지만 이마저도, 반동적 근대주의자에 대한 비판이나 성찰도, 국민들의 의식에 관한 문제도 없다. 그가 살피고 있는 것은 박정희의 의식구조와 그의 경제논리가 독립적인 것이 아닌 등에 없은 것이라는 등등의 항변이다.

지은이는 제목과 어긋나는 논의를 펼치면서, 박정희의 통치술에 대한 비판적인 글쓰기를 하고 있다. 앞서서도 말을 하였듯이 18년이라는 긴 시간을 짧은 책으로 엮기에는 역부족인 듯하다. 박정희의 통치술이 많이 낯설은 사람에게 입문서가 될 수는 있어도, 반동적이라는 의미에 혹은 깊이 있는 분석에 대한 욕구라면 과감히 이 책을 버리는 것이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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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정치의 악몽 - 국가폭력 책세상문고 우리시대 21
조현연 지음 / 책세상 / 200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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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주의는 또다른 가족주의가 될 수 있는가? 한국 현대정의 악몽(부제:국가폭력)을 읽다보면 그 말은 공허한 울림이나 건설해야할 숙제이다.

근대가 일본의 강압에 의해 움트기 시작했다면 현대는 외세가 아닌 내세의 강압에 의해 굴절되고 왜곡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제가 물러가고 나자, 완전한 하나를 위하는 통일보다 영구적인 분담으로 자국의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무리와 이에 발 맞추어 자기의 욕심을 체우려는 한 무리에 의하여 우리나라의 현대사는 큰 뒤틀림을 당한다.

지은이는 이러한 억압에 의해 희생되거나 싸우다가 아직 완성하지 못하고 죽어간 수 많은 영혼들을 이야기 하고 있다. 물론 그의 시야는 희생당한 사람들과의 동일시가 아닌 부제에서 명시하듯이 '국가폭력'이 얼마만큼 강하게 이루어졌는가를 살피고 있다. 그는 리영희 교수님의 말을 빌려 한국 현대사를 '광기가 지배해온 야만의 역사'라고 말한다. 이 책은 야만의 역사에 대항해 가시밧길을 걸어간 사람에 대한, 자기위안일 수가 있다.

지은이는 국가 폭력의 헤게모니를 '안보를 존집의 가장 핵심적인 기초'로 삼는 점에서 살피고 있다. 국가의 안보는 '국론 통일과 총화단결, 일사불란, 발본색원으로 표현할 수 있는 강제적 동원, 획일적 교육과 사상 통제를 통해 국민의 기본권 제한과 자유의 억제를 가능케 했다(21쪽)'고 말한다.

이러한 억압이 어떻게 이루어졌는가를 국가폭력의 4가지 유형을 들어 말한다.(이는 지은이가 역주에서 밝히고 있듯이 김동춘의 [전쟁과 사회]에서 한번 다룬 유형이다) 4가지의 각기 다른 유형이 존재하지만 시대를 초월하여 공통점은 자기의 자리를 공고히 하기 위해 사람을 고립시켰다는 것이다. 해방이 되고 나서 이승만의 정치적 살해, 그리고 전쟁기간의 민간인, 박정희 군부독재 기간 중의 살인과 전두환의 광주학살 등을 차분하게 이야기 하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면 국가가 과연 무엇인가를 다시 묻게 한다. 국가를 보는 시야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뉠 수가 있을 것이다. 직접민주제의 대체로 간접민주제로 보는 시야와 기득권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독재 정권, 과연 지금 우리는 어느 시대에 살고 있는가? 그리고 현재는 시간이 흘러서 존재하는 것이 아닌 수많은 사람들의 피와 땀이 얼룩진 치열한 삶의 공간임을 인정하고, 그 분들에게 고마움을 표해야 할 것이다. 아울러 우리의 후손들에게 아름다움을 물려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이 책의 읽으면서 많은 아쉬움은, 지은이가 말하였지만-'치밀한 논리에 바탕한 분석이 아니라'- 너무 나열씩으로 흐른다는 점이다. 국가의 폭력이 어떻게 이루어졌는가에 대한 입문서로서는 좋을지 몰라도, 더 많은 책을 읽어야 됨은 분명하다. 시장의 좌판을 둘러보기만 할 뿐 요기를 채워 줄 밥은 먹지 못한 형상이다. 비판적 지성인의 초년생에게 권하는 필독서이다. 이 책을 읽고 더 읽은 보고 싶은 이라면, 지은이가 말하는 책 외에도 <1960년대>, 정경모씨의 <찢겨진 산하> 리영희씨의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등을 덧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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