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광준의 생활명품산책 탐사와 산책 4
윤광준 지음 / 생각의나무 / 200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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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턴가 명품변질 되기 시작하여 지금은 고착화되었다. 즉 물질만능주의인 오늘에는 명품은 돈과의 깊은 상관관계를 지닌다. 물론 기계화를 하지 않고 손으로 인한 수작업, 그로 인한 시간 등에 의한 값어치의 환산 등은 값싼 붕어빵과는 차이가 있음이 분명하다. 하지만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듯 한 현상은 나만의 착각일까. 즉 명품은 장인 정신에 의한 감사가 아닌 금전적 환산과 희소성으로 인하여 투자 가치의 대상이 된 듯하다.

그렇다면 '실질적인 사용가치를 웃도는 아우라를 지닌 물건(9쪽)'을 명품이라고 칭하는 지은이의 눈은 내가 보지 못하는 부분을 보고 있는것일까? 명품에 대한 가치 확인은 '명품의 창조자와 내면적인 대화를 주고받고, 그가 일깨워주려고 하는 가치와 목적을 깨닫는 일은 물질의 영역이 아닌 깊숙한 정신의 세계'와 닿아 있다는 그의 가치관은 우민(愚民)한 나를 능가하는 분명한 시선을 지니고 있다. 나는 그의 말을 하나라도 흘려 듣을까봐 밑줄을 쳐 가며 책을 읽어나가기 시작한다.

니콘F3, 송림 티롤화, 원드재킷, 도이터 색, 쿼드34.405-2 앰프 등에서 이야기 할 때에는 나는 감탄을 연발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막연하게 값 싼 것을 쫓으며 비싼 것이거나 외국것을 사는 사람들을 과소비 한다는 내 생각에, 방향 수정을 해야 함을 느꼈다. 그의 생활 명품에 대한 예찬은 일방적이거나 감정적인 것이 아니며, 정보와 생활에 의한 논리적인 설득력을 지니고 있었다. 하나하나 들려주는 그의 명품은 내가 갖고 싶어지는 명품이 되며, 아울러 부러움과 동경의 대상이 되어간다.

하지만 미군용 벨트에서 군대 이야기가 조금 과하다는 생각을 하며, 이야기기 지루하니 잠시 쉬어가는 의미이겠거니하며 다음을 읽어갔다. 몽블랑 만년필, 지포라이터, 메주 몽고간장, 던힐 라이트 담배, 와코루 팬티 등은 앞서의 일상적인 잡다한 이야기에 머물러있다. 즉 앞서서 신선한 정보와 그의 애착은 어디에서도 볼 수가 없으며, 물건에 얽힌 사연이 주(主)가 되며 그의 애착은 조건이 없어 보인다.

또한 열여덟개의 명품은 우리의 일상과 얼마만큼의 일상적인 관계를 지니는가와 우리것에 대한 애착이 너무 소홀하지 않았나 생각이 든다. 그는 '여자의 나신과 섹스의 갈망을 조각한 각종 그림(111쪽)'이 그려진 지포 라이터를 보며 젊은 병사들의 관심을 읽는다고 했다. 나는 그의 시선으로 그의 명품관을 본다. 우리의 일상과 동떨어진 그리고 수입의 자유화가 되지 않은 때 부터 써 온 카메라나 동경은 너무 어린 나이에 물건너 것만 쫓게 만들지 않았나 지례짐작을 해 본다. 우리나라의 물건이 만족스럽지 못한 것이 있을 지라도, 한 두개 밖에 논(論)하지 못하는 그의 가치관은 좋은 제품은 국가를 초월한다는 자유시장논리가 깔려있지 않나 생각을 가져본다. 세계의 모든 담배와 술을 아무런 꺼릿김이 없이 향유하는 그를 보며 동경은 실망으로 우회한다.

마지막으로 글이 과한 부분이 여럿 보인다. 지포 라이터를 이야기하면서 '남자들의 내재된 유전적 형질(105쪽)', 60년대 어린 시절 보따리 아줌마들이 가지고 오는 미제의 물건을 보면서 '어린 마음에도 이 물건들이 당시 조악했던 국산품보다 훨씬 좋아 보였고(151쪽), '담배 때문에 죽을 확률은 교통사고로 죽는 것과 별로 다르지 않을 것 같다. 흡연의 폐보다 순기능을 생각하며 마음 편하고 즐겁게 피우면 되는 것 아닌가?(176쪽)', '바람둥이 친구(209쪽)'가 들려주는 여성들의 속옷상은 분명, 플로베르의 일물일어설(一物一語說)을 빌리지 않더라도 필력이 지나쳤다.

'우리 사회의 귀퉁이에서 한 분야의 전문인으로 살아가는 한 사람의 사적인 관심과 안목이 어떻게 보편적인 설득력을 얻을 수 있는가에 대한 실험(8쪽)'은 좋은 결과를 얻지 못할 것이다. 차라리 외국 상품에 대한 나의 사적인 예찬이라고 하는 것이 더 설득력을 얻을 것이다. 그가 명품을 쫓 듯, 그의 책이 명품 대접 받기를 바란다면 '정신의 세계(9쪽)'에 다가가려는 노력을 부단히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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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이야기 들려주기 살아있는 교육 10
서정오 지음 / 보리 / 199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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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는 강물이 되고 바다에 닿는다.

내 어린 시절의 추억을 하나도 기억하지 못한다. 어느 정도의 나이가 되어서야 나는 내 유년시절을 기억할 뿐이다. 어머니 아버지가 하루 먹고 살기 위해서 지친 몸을 해가 뜨기 전에 나가 해가 지면 집으로 들어오곤 하셨다. 나는 어디에도 갈 곳이 없이 과자한봉지에 의지한 체 논두렁에서 해와 풀벌레들과 친구가 되어 하루를 보내다, 지친면 잠이 들곤하였다.

티비나 영화에서 비춰지는 장면, 잠자기 전에 어머니가 들려주는 동화는 내겐 아직도 환상이며 꿈꿀 대상일 뿐이다. 동화 속에 잠드는 아이들은 얼마나 행복할까라는 막연한 상상을 한다. 내가 자란 다음에는, 내 부모님이 가난을 대물림하지 않기 위해서 몸부림 치셨듯, 나 또한 아기들에게 자연스런 꿈의 나라에 대한 여행을 시켜주라고 다짐을 하곤한다. 태교와 어린 아이가 어른의 옛이야기에 귀기울이며 눈을 감는 장면은 진정 내가 꿈꾸는 이상향인지도 모른다.

지은이는 정말 소박하다. '이야기는 입 가진 사람이면 누구나 할 수 있고, 귀 가진 사람이면 누구나 들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글쓴이의 소박한 믿음이다. 이야기는 기술로 하는 것이 아니라 감동과 흥겨움으로 하는 것이며, 말재주 있는 몇 사람의 것이 아니라 땀 흘리며 일하는 보통 사람들의 것이라는 믿음 또한 흔들리지 않는다. 또한 잘난 아이건 못난 아이건, 공부 잘 하는 아이건 못하는 아이건, 이야기를 들으면서 마음을 키워 갈 권리는 누구든지 갖고 있다는 믿음도 바뀔 수 없다(5쪽)' 이러한 소박함에 대한 믿음는 확고한 주장을 내세우며 이야기를 이끌어 간다.

옛이야기는 민중이 살아 숨쉬는 고동이라고 말한다(30쪽). 그는 이야기는 자연스러워야 되며, 재미도 있어야 한다고 한다(38쪽). 그리고 옛이야기의 성격을 흥미성, 민중성, 사상성, 측은지심(45쪽)으로 분류한 것과 좋은 이야기 고르기(62쪽), 살아있는 이야기말에 대한 통찰(83쪽)'은 그의 혜안(慧眼)이 담긴 글이라 할 수가 있다.

서정오님의 글, 참 읽을 맛이 나는 작품이다. 아무리 좋은 글이라도 지루하거나 딱딱하다면 읽기에 거부감이 들테이지만 그의 글은 재미와 감동을 주기에 충분하다. 또한 간간히 들어있는 옛이야기와 친구간의 우애(옛이야기)를 다루고 나눈 초등학교 학생들의 감상문(?)은 많은 생각에 잠기게 하기도 한다.

옛이야기에 대해서 막연하게, 혹은 심정적으로 좇고 있었지만 그의 글을 통해 좀 더 체계적으로 접근 할 수가 있어서 참 좋다. 또한 옛이야기와 초등학생들의 글은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살아있는 이야기말'이다.

좀 더 이야기를 재미있게 혹은 옛이야기의 필요성에 대해 의문이 든다면 이 책을 집어 보는 것이 현명할 것이다. 다만 아쉬운 점은 지은이의 시선이 옛이야기에 한정한다는 점이다. 데스몬드 모리스는 [접촉]이라는 책에서 모유(母乳)를 먹이는 것이 단지 우유(牛乳)를 살 돈이 없어 먹이는 그 이상이라고 했다. 이런 정신적이거나 지식으로 표현이 안되는 살아오면서 쌓인 연륜에 이야기꾼의 논의가 다소 부족하다는 점이다.

이야기는 강물처럼 유유히 흐르며 우리의 가슴속에 울렁임을 선사할 것이다. 또한 역사와 함께 쌓여지는 이야기는 우리만의 문화를 가꾸어갈 것이다. 그리고 끊임없이 이야기는 발굴되고 새로 만들어지면서, 후손들에게 깊고 다양한 문화를 쌓아 갈 것이다. 이야기는 단절이 아닌 이어짐이다. 가뭄에도 매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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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한 우리는 절망하지 않는다
알프레드 랜싱 지음, 유혜경 옮김 / 뜨인돌 / 200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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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실수이다. 언론에 비친 새클턴의 모습으로 쫓으려는 나의 환상이 책을 거짓으로 보게 만들었다. 나는 중반을 읽고 나서야 기대감을 접었다. 더이상 새클턴의 고뇌나 판단이 나오지 않는다면 이 책은 앞서의 연장선상에서 이야기기 이우러질 것이라는 나의 짐작은 틀리지가 않았다.

남극을 가기 위해서 한 배에 탔지만 뜻하지 않은 돌출사고 인해 그들은 배에 갇히게 되며, 급기야 '497일만에 처음으로(202쪽)' 육지에 발을 디딛는다. 하지만 육지는 단시 '30M 폭에 15M 길이의 좁은 땅에 불과'하다. 다시 작은 섬으로 옮기지만 '140M에 폭이 30M쯤(209쪽)'되는 작은 엘리펀트라는 무인 섬일 뿐이다. 이곳에 새클턴은 22명의 대원을 남기고 배를 불러 오기 위해 긴 향해를 나서고, 처음으로 두 그룹으로 나뉘어 생활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배를 타고 나서의 행동이 쭉~ 담담하게 서술되어 있다. 간혹 날마다 일기를 적은 대원들의 일기가 살짝 공개되기도 하지만 큰 흐름은 사건의 서술에 머물렀다.

즉 남극에 대한 막연한 호기심과 직업정신으로 한 배에 탔지만, 뜻하지 않은 사고로 배를 침몰당한다. 이들은 결국 남극대륙은 밟지 못했지만 누리에서 가장 큰 대륙, 희망이라는 대륙을 횡단한다. 매서운 바람과 죽음에 대한 공포, 먹을 것에 대한 걱정과 처자식에 대한 향수 등을 통해 서로간의 의지를 더욱 돈독히 하여 힘을 모우는 것이다. 새클턴에 대한 맹목적(?) 추종은 일을 일사천리로 진행시키며 큰 혼란을 가중시키지는 않는다. 그들이 그들은 살아서 돌아간다는 절대적인 희망을 버리지 않는 것이다.

앞서서 나타나 있지만 아쉬운 점은 사건의 서술에 불과하기에 그들의 고통이나 새클턴의 선장으로서의 판단이 많이 미비하다는 점이다. 얼마나 사람이 힘겨운 곳에서 지냈는가라는 역사적 사실의 기술에 불과한 점이 못내 아쉽기만 하다. 한 배를 탄 대원들의 고뇌가 조금 더 깊이, 풍부하게 담아냈다면 하는 기대감은 책을 덮는 순간 까지 내 머리를 아프게만 한다.

살아있는 한 우리는 절망하지 않는다. 이 얼마나 기대와 희망이 어우러진 말인가!! 살아있다는 숭고함과 누군가가 한 '내가 헛되이 보낸 오늘이 어제 죽어간 친구에게는 그토록 살고 싶었던 내일이었다'라는 문구를 자연스레 떠올리는... 살에 대해 조금더 충실해야겠다.

-그들의 삶에 경의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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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틀 비트와 함께한 여섯번의 여름
잭 베클런드 지음, 홍은택 옮김 / 삼진기획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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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과 사람이 6년 동안 나눈 아름다운 이야기에 흠뻑 취해 보심이 어떨는지요?

지은이 부부는 지천명(知天命)의 나이에, 산골(그랜드머레이)로 이사를 간다. 지친 일상에서 안식을 찾기 위함이다. 깊은 뫼와 강이 흐르는 집은 여느 자연과 다름이 없지만 그곳에는 사람만이 사는 자연이 아니라 자연이 살아 있는 자연이 기다리고 있다. 무슨 동물을 보기 위해서 버스를 타고 동물원에 가는 것이 아니라 숲길을 따라 난 터널을 지나가면 그곳에는 곰이 있는 것이다. 또한 사슴이며, 다람쥐도 뛰어 논다.

숲속 자연에 집을 지어놓고 편안한 일상을 보내려는 그들에게 엉뚱한 손님이 찾아오면서 이 이야기는 엮어져 간다. 엉뚱한 손님에 대한 막연한 불신은 넘지 못하는 강을 만들어 놓았으며, 부부는 친해질려기보다 어떻게든 집에서 멀리 보낼려고만 한다. 그들은 고무총도 쏘우고, 이웃이 알려준 '풍선에 암모니아 가스와 물을 섞어 넣은 뒤 꿀로 표면을 발라 나뭇가지에 걸어놓(31쪽)'기도 하지만 열덟 개를 걸어놓은 풍선이 아홉 개로 걸렸있는 것을 보게된다. 그리고 며 칠 뒤 정말 엉뚱한 손님, 부부와 6년을 함께할 리틀 비트(곰)가 찾아온다.

서로에 대한 얇은 믿음은 쉽게 친숙해질 수가 없었다. 하지만 사랑으로 맺어진 관계는 겨울에는 동면을 하고 나서 여름마다 부부의 집 베란다에 놀러오게 하는 정(情)으로 엮인다. 부부의 리틀 비트에 대한 애정은 해마다 계속되는 기다림 속 설레임과 걱정 속에서도 잘 드러난다. 사냥기간 들려오는 총소리에 잠 못이루고, 전봇대에 올라가 감전사한 아기곰을 보며 재발 방지를 위해 풍경을 다는 부부 속에 무엇이 그들을 그토록 아름답게 변화시키는가를 곰곰히 생각해 보게끔 한다.

또한 책 속에는 곰가족의 이야기도 재미나게 서술되어 있다. 리틀 비트가 엄마가 되어 아기곰을 거느리며 겪는 아픔과 또 다른 여집 아줌마곰인 빅마마의 생활. 겨울이면 찾아오는 사슴과 욕심 많은 다람쥐 등은 살아 있는 자연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굳이 무엇을 알려고 외우지 않아도 된다. 조용히 자기만의 시간을 내어 읽어 간다면 스스로 느끼게 되는 마법과도 같은 책이다.

부부가 말을 하였지만 리틀 비트가 찾아 오지 않았다면 그들은 이렇게 아름다운 삶을 살을 수가 있었을까? 집에 찾아온 엉뚱한 손님을, 욕심에 불탄 두 눈으로 먹이로 보았다면 과연 이렇게 아름다운 우정이 지속되었을까?

부부가 곰에 대해 막연한 불안감만 갖고 있었다면... 조금 아쉬운 점은 리틀 비트에 대한 추억이 너무 과분하여 다른 동물들과의 관계가 조금은 엉성한 점이다. 즉 리틀 비트 대한 막연한 그리움은 다른 동물들과의 관계 설정이 되어 있지 않았으며, 부부의 누리를 보는 눈빛이 날카롭지 못하다는 점이다. 리틀 비트에 대한 그리움이 너무 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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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리와 함께한 화요일
미치 앨봄 지음, 공경희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0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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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렇게 많은 중에서/ 별 하나가 나를 내려다 본다./ 이렇게 많은 사람 중에서/ 그 별 하나를 쳐다본다.// 밤이 깊을 수록/ 별은 밝음 속에 사라지고/ 나는 어둠속에 사라진다.// 이렇게 정다운/ 너 하나 나 하나는 /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한때 대중가요로 불려진 김광섭의 '저녁에'에라는 시이다. 시 속에서 지은이는 '밤은 깊을 수록 별은 밝음 속에 사라지고 나는 어둠속에 사라진다'라고 말한다.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밤이 깊다는 것은 어둠에 짙다는 것인데, 지은이는 별은 밝음 속에 사라진다고 말한다. 하지만 시적 나는 어둠속에 묻힌다. 서로의 입장이 바뀌었다고 말 할 수가 있다. 어쩌면 시인은 힘겨운 일상을 노래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우리의 삶도 이와 같다고 하면 억측일까?

하루 만큼 산다는 것은 하루 만큼 나이를 먹는다는 것이며, 이는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어머니의 자궁으로 부터 멀어짐을 나타낸다. 또한 죽음이라는 먼발치 한 발 발 짝 다가가고 있음을 기록한다. 그렇지만 우리는 모리 교수가 말하는 것 처럼 죽음에 대해서 인지를 하지 않는다. '절대로 돈 때문에 일하지 않겠다고 스스로 다짐한 시절이 있었는데, 평사 봉사단에 가입하겠다고, 영감을 주는 아름다운 곳에서 살겠다고 다짐했던 때(44쪽)'는 일기장 속 추억에 먼지에 쌓인체 세월과 함께 지워져가고 있을 뿐이며, '하루에 8시간씩 컴퓨터 앞에서 보내며(53쪽)', 잠시의 여유도 없이 톱니바퀴처럼 굴러 간다. 즉 죽음에 대한 인지는 삶에 대한 성찰을 동반할 때에 가능하지만 그렇게 하기에는 우리의 삶은 너무나도 짧다. 남보다 더 열심히, 더 많이 '일'을 하여 더 낳은 물질적 풍요를 누리는 것이 진정 우리가 추구해야 할 가치로 전락했기 때문이 아닐까.

하지만 예순을 넘은 교수를 통해, 과연 이것이 진정 우리가 바라는 삶인가에 대한 성찰을 내린다. 모리 교수는 '어떻게 죽어야 할지 배우게 되면 어떻게 살아야 할지도 배울 수 있다(94쪽)'도 이야기 한다. 죽음에 대해 한 번도 생각하지 못한 미치(미치는 우리의 자화상이다. 조용히 가슴에 손을 얹고서 진정 죽음에 대해 생각을 해 보았는가 그려보라! 자신에게 예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미치보다는 한 발 짝 더 나아간 사람이 될 것이다)는 비로소 죽음에 대한 성찰을 한다. 죽음과 사는 것에 상관관계는 무엇일까?

모리 교수는 교수직을 다 마치지 못한 상태에서 병으로 인하여 집안에 머무른다. 또한 혼자서 일을 처리하지 못하여, 항상 주변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그제서야 '내가 고통을 당하고 보니, 이전보다 고통을 겪는 사람들이 더 가깝게 느껴(61쪽)'진다고 솔직하게 고백을 한다. 그리고 고통으로 부터 해방되는 방법은 관계 맺는 것이라고 한다.(이는 어린왕자에서 여우가 왕자에게 한 말과 일맥상통하며, 엠마누엘 수녀가 세상을 보듬는 방식과 동일하다. 참고서적 [어린왕자], [풍요로운 가난]) 정신병자가 슬펐던 것은 '자기가 거기 있다는 것을 누군가가 알아주는(121쪽)'이가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스스로 정신병자가 구분을 짓는다. 하지만 자기의 정체성을 위해서 쉼 없이 발로 뛰는 사람과 힘이 없어 단지 고함을 지르지 못하는 그들과 무엇이 다를까?

모리 교수가 말하는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 '사랑을 나눠주는 법과 사랑을 받아들이는 법을 배우(62쪽)'게 된다면 누리는 더 풍요로워질 것이 분명하다. 어느 노교수가 죽음의 문턱에서 깨닭은 것은 다른 것과 구분을 짓지말고 '관계 맺기'를, 관계 속에서 '사랑'을 엮어 가기를 바라고 있다.

모리 교수와 상반되는 지은이의 이야기와 옛날을 오고가는 글 구성이 조금은 어지러운 느낌을 지울 수가 없지만 삶에 대한 근원적인 문제를 던진 점에서 필독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본다. 우리가 진실로 사랑을 하게 되다면, 시인의 외로운 싯구절은 더 이상 가슴 아련하게, 우리의 마음속 울리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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