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 노동축적과 여성의 지위하락

유럽에서 토지사유화는 15세기 후반에 식민지 팽창과 동시에 시작되었다. 그것은 거주자 추방, 지대 인상, 빚을 지게 하여 토지를 팔게 하는 국세 인상 등 다양한 형태를 취했다. 이것들을 모두 토지 수용이라고 정의할 수 있는 것은, 폭력이 수반되지 않은 경우에도 토지 상실은개인이나 공동체의 의지에 역행해서 이루어졌고 이것은 생존기반의 파괴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토지 수용은 전쟁과 종교를 통해 이루어졌는데, 특히 전쟁은 이 시기에 영토적·경제적 배치를 바꾸기 위한 수단의성격을 띠게 되었다. - P109

잉글랜드에서 토지사유화는 대개 "인클로저"를 통해 진행되었는데, 이 현상은 노동자의 "공동자산"cawealth을 박탈하는 것과 매우 깊은 연관이 있었기 때문에, 오늘날 반자본주의 운동가들은 이것을 사회적 수급권에 대한 모든 공격을 지칭하는 용어로 사용한다. 16세기에는 "인클로저"가 전문용어였다. 인클로저는 잉글랜드에서지주와 부농이 공동체적 토지소유를 제거하고 자신들의 토지보유를 확대하기 위해 이용한 일련의 전략을 가리켰다.28 그것은 주로 공동 경작제open-field system를 폐지하는 것을 의미했다. 공동경작제란 주민들이 - P111

토지사유화가 해방시킨 것은 노동자(남자건 여자건)가 아니라 자본이었다. 이제 토지가 생존의 도구라기보다는 축적과 착취의 도구로서 "자유롭게" 기능할 수 있게 되었기때문이다. 해방된 것은 지주였다. 지주는 직접고용의 경우에만 노동자가 생계유지 수단을 얻을 수 있게 함으로써 재생산 비용을 거의 다 노동자에게 떠넘길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상업위기나 농업위기가 닥쳐와 일자리가 없어지거나 타산이 맞지 않으면, 전과 달리 노동자가 굶어 죽건 말건 해고해 버리면 그만이었던 것이다. - P122

물가상승은 소농을 몰락시켰다. 그들은 소출이 생존에 불충분할 때는 곡물과 빵을 사느라 땅을 팔아야 했다. 물가상승은 자본주의적 기업가 집단을 만들어냈다. 그들은 많은 사람들이 돈이 없으면 굶어죽어야 했던 시대에 농산 - P123

물 투자와 고리대금업으로 떼돈을 벌었다.
또한 가격혁명은 오늘날 세계은행과 IMF가 수행한 "구조조정"의여파로 아프리카, 아시아,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에서 나타난 것과 맞먹는 역사적인 실질임금 하락현상을 촉발시켰다. - P124

유럽에서 "이행"기는 여전히 격렬한 사회갈등의 시기였고, 국가가주도적으로 일련의 정책을 취하는 발판이 되었다. 정책들의 결과에서역으로 이 정책들의 주된 목적을 세 가지 정도로 추려볼 수 있다. 첫째,
더 잘 훈육된 노동력을 창출하는 것. 둘째, 사회적 저항을 분쇄하는 것.
셋째, 노동자들을 강요된 일자리에 묶어두는 것. - P134

인구위기와 경제위기는 1620~1630년대에 정점에 이르렀다. 유럽과식민지 모두 시장이 위축되고, 무역이 중단되고, 실업이 일반적인 것이되었다. 그리하여 한동안 발전도상의 자본주의 경제가 붕괴할 가능성도있었다. 유럽과 식민지의 경제적 통합이 진행돼서, 각지의 위기들이 서로를 빠른 속도로 상승·확대시키는 효과가 나타난 것이다. 이는 최초의국제적 경제위기였다. 역사가들은 이를 17세기의 "일반적 위기"GeneralCrisis라 부른다(Kamen 1972 : 307ff; Hackett Fischer 1996:91). - P140

맑스는 출산이 착취의 영역이자 저항의 영역일수 있다는 점을 전혀 인정한 바 없다. 그는 여성이 출산을 거부할 수 있다거나 그런 거부가 계급투쟁의 일부분이 될 수 있다고 상상하지 못했다. 맑스는 『정치경제학 비판 요강』(1973 : 100)에서, 자본주의 발전은인구수와 무관하게 진행되는데, 그 이유는 노동생산성이 증가하는 덕에, "고정자본"(기계류 및 기타 생산자산에 투입된 자본과의 관계에서자본이 착취하는 노동은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그 결과 "잉여인구"가결정되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맑스가 "자본주의 생산양식에전형적인 인구법칙"(『자본』 1권 : 689ff)이라 정의한 이 동학은 출산이 - P148

순수하게 생물학적 과정이거나 경제변동에 자동적으로 반응하는 활동인 경우에만 적용될 수 있고, 또 자본과 국가가 "여성들이 임신과 출산을 거부할까 두려워 할 필요가 없을 때에만 적용될 수 있다. 맑스가 가정했던 것은 바로 위와 같은 상황이었다. - P149

중세 내내 여성은 주로 약초로 제조한 여러 가지 피임약을 이용했는데, 대개 생리주기를 바꾸거나 낙태를 유발하거나 불임상태에 이르기 위한 것이었다. 미국 역사가 John Riddle은 『이브의 약초 :서양 피임술의 역사』(1997) Eve‘s Herbs : A History of Contraception in the West 에서 다양한 약재와 각각의 기대효과를 광범위하게 서술하고 있다. 피임 관련 지식은 여성이 출산에 대해 일정한 자기통제를 확보할 수 있도록 해 주었다. 하지만 피임이 불법화되면서 여성들은 세대를 거쳐 전승되어 오던 이 지식들을 박탈당했다. - P150

비노동자 정의과정은 17세기 후반에 거의 완성되었고,
이에 대해서는 여성주의 역사학계에서 많은 연구가 이루어졌다.
여성은 원래 그들만의 직업으로 여겨지던 맥주양조나 산파 일에서밀려나고 있었고, 여성고용에 대한 새로운 제한들에 묶이게 되었다. 특히 프롤레타리아트 여성은 최하층의 직업 말고는 일자리를 구하기가어려웠다. 여성 노동인구 3분의 1은 하녀였고, 나머지는 농장 일방적·뜨개질 · 자수. 보따리장사· 유모와 같은 일에 종사했다. - P151

계속되는 토지사유화와 더불어, 동업조합과 시정부의 이와 같은 동맹을 통해 새로운 성적 분업 또는 캐롤 페이트먼Carole Pateman(1988)의용어를 빌자면 새로운 "성적 계약"이 날조되었다. 이 새로운 성적 계약은 여성의 노동자로서의 지위를 은폐하는 어머니 • 아내·딸· 미망인과 같은 용어로 여성을 정의하는 한편, 여성과 그 자식들의 신체와 노동에 대한 무상이용권을 남성에게 부여했다.
.
이 새로운 성적 사회계약에 따라 프롤레타리아트 여성은 인클로저때문에 남성노동자가 상실한 토지의 대체물이자 가장 기초적인 재생수단이 되었으며, 또 누구나 뜻대로 전유하고 이용할 수 있는 공유재가 되었다. 스스로 매춘에 나선 창녀를 지칭하는 16세기의 "공유여성"(Karras 1989) 개념에서 이 시초축적"의 메아리를 들을 수 있다.
그러나 새로운 노동편성에서 (부르주아 남성이 사유화한 여성만이 아닌) 모든 여성이 공유재산으로 변했다. 일단 여성의 활동이 비노동으로정의되자 여성의 노동은 마치 공기처럼 누구나 마음껏 쓸 수 있는 천연자원으로 보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 P157

마녀사냥의 시대에는 여성이 야만적인 존재로서 정신적으로 허약하고, 구제불능의 욕망을 가졌고, 반항적이고, 순종하지 않으며, 자기통제능력이없는 것으로 그려졌지만, 18세기가 되면 이것이 뒤집히게 된다. 이제여성은 수동적이고, 무성적이고, 남성보다 더 순종적이거나 더 도덕적이고, 남성에게 긍정적인 도덕적 영향을 줄 능력을 가진 존재로 묘사되기 시작했다. - P168

플랜테이션 체제는 대대적인 노동집결과 고향에서 뿌리 뽑히고 의지할 곳 없는 예속 노동력으로 공장제에 선례를 제공했을 뿐 아니라 노동비용 절감을 위한 이주노동과 지구화를 예견한 것이기도 하다. 그것은 특히 노예와 임노동자를 지리적·사회적으로 나누어 놓은 상태에서
"소비재의 생산을 통해 노예노동을 유럽 노동인구의 재생산에 통합시킨 국제분업의 형성에 결정적인 단계가 되었다. - P170

17세기 후반에 들어서면 유럽 출신 노동자를 덜 쓰고 그들을 아프리카 노예들로부터 분리하기 위한 법안을 도입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돌이킬 수 없는 인종적 구분선이 그어진 것은 18세기 말에 이르러서였다(Moulier Boutang 1998). 그때까지는 백인, 흑인, 토착민 간에 동맹의 가능성이 항상 존재했고, 본토에서건 플랜테이션에서건 유럽인 지배계급의 상상 속에 언제나 그러한 동맹에 대한 공포가 존재했다. 셰익스피어의 『템페스트』는 이런 공포를 잘 드러내고 있다. 셰익스피어는 마녀의 아들이자 토착민 반란자인 캘리번과 먼 바다를 항해하는 유럽 출신 프롤레타리아트 트린큘로와 스테파노가 조직한 음모를그림으로써, 억압받는 자들의 치명적인 동맹의 가능성을 제시하는 동시에, 프로스페로의 마법을 통해 지배자들 간의 불화가 치유되는 극적인 대조를 펼쳐 보인다. - P175

성차별과 마찬가지로 인종차별도 입법을 통해 제도화되고 강제되어야 했다. 흑인과 백인 간의성관계가 금지되었고, 흑인노예와 결혼한 백인여성은 비난을 받아야했으며 그들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는 평생 노예로 살아야 했다. 1660년대에 메릴랜드와 버지니아에서 통과된 이 법령들을 살펴보면 인종차별사회는 위로부터 만들어졌다는 사실이 분명하게 확인된다. 게다가 "흑인과 백인의 관계를 종식시키기 위해 종신노예화라는 처벌이 필요했다는 점은 그 관계가 얼마나 친밀했었는지를 보여 준다.
마치 마녀사냥의 대본을 따르기라도 한 것처럼, 새로운 법령들은백인여성과 흑인남성의 관계를 악마화했다. - P1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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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농노제가 주인과 하인 간의 관계에 도입한 변화의 관점에서, 농노 - P48

제의 가장 중요한 측면은 그것이 농노로 하여금 재생산수단에 직접 접근할 수 있게 해줬다는 점이다. 영주직영지demesne에 바치는 부역노동의 대가로 농노는 한 뼘의 땅 망스mansus, hide를 받았다. 농노는 이 토지를 경작해서 먹고 살았으며, 이것을 "상속수수료만 내면 진짜 유산처럼"(Boissonnade 1927 : 134) 자식에게 물려줄 수 있었다. - P49

화폐와 시장은 계급차이 위에 소득차이를 도입하고, 정기적인 적선에 기대지 않고서는 살아갈 수 없는 가난한 대중을 만들어 내며 농민층을 갈라놓기 시작했다(Geremek 1994 : 56~62).
점증하는 화폐의 영향력으로 인해 유대인을 향한 체계적인 공격이 12 - P60

세기에 시작되었고, 동시에 그들의 법적·사회적 지위는 하락했다. 기독교 경쟁자들이 왕, 교황, 고위성직자에게 대부해 주던 유대인을 몰아낸 것과, 성직자들이 유대인 차별규정(예 : 구별되는 옷을 입게 한다)을새로이 도입한 것, 그리고 잉글랜드와 프랑스가 유대인을 추방한 것은사실 서로 뜻깊은 관련이 있다. 교회로부터 버림받고, 기독교인들과 분리되고, (유대인에게 허락된 몇 안 되는 직업 중 하나인) 대부업을 촌락수준에서만 영위할 수 있게 된 유대인들은 이제 빚진 농민들의 화풀이대상이 되었다(Barber 1992 : 76). - P61

교회가 성적 규제를 재구성한 특권적 도구로서 7세기부터 출간한 책자인 고해안내서Penitentials가 있다. 푸코는 『성의 역사』1권(1978)에서, 이 책자들이 17세기에 담론으로서의 성과 다양한 단계로 구성된 성 관념을 만들어 내는 데 맡았던 역할을 강조한다. 그러나 고해안내서는 중세에 이미새로운 성담론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이 책자들은 성행위 중 허용된체위들(실제로는 오직 한 가지 체위만이 허용되었다)과 성행위가 허용되는 날짜, 그리고 성행위의 대상으로서 허용되는 자와 금지되는 자를세세하게 규정하고 있어서, 교회가 진정한 성적 교리문답을 부과하려고 시도했음을 보여 준다. - P73

14세기 중엽이 되면 종교재판관의 보고서는 더 이상 이단의 이상성행위와 성적 방종을 고발하는 것으로 만족하지 못한다. 이제 이단은 악명 높은 꼬리 아래 입 맞추기 bacium sub cauda 의식을 행하면서 동물을 숭배하고, 술에 취해 난교를 벌이며, 밤에 하늘을 날고, 아이들을 제물로 바친다고 고발당했다(Russell 1972) 종교재판관들은 루시퍼파라는 악마숭배 종파가 존재한다고 보고하기도 했다. 이단 박해가 마녀사냥으로 넘어가는 이 과정에 발맞추어 이단의 형상은 점차 여성의 모습을 띠게 되었다. 그리하여 15세기 초가 되면 마녀가 이단 박해의 주요 대상이 되었다. - P78

흑사병의 가장 중요한 결과는 계급갈등이 만들어 낸 노동력위기의 심화였다. 노동인구 중 많은 수가 질병으로 사망하자 노동력이극도로 부족하게 되었고 임금이 상승했다. 이는 봉건지배의 족쇄를 부수고자 하는 사람들의 결심을 더욱 굳게 만들었다. - P86

프롤레타리아트 남성이 경제적 조건 때문에 결혼을 - P92

미룬 것에 대한 보상으로 "자기 몫"을 되찾고 부자들에게 복수하려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결과는 모든 노동자들에게 파괴적이었다. 가난한 여성에 대한 국가후원 강간은 반봉건투쟁을 통해 얻은 계급연대의토대를 침식했기 때문이다. - P93

반란이 실패한 것은 봉건권력의 모든 세력들(귀족, 교회, 부르주아지)이 전통적인 차이에도 불구하고 프롤레타리아트의 반란에 대한 공포로 합심하여 공동보조를 취했기 때문이다. 전해져 내려오는 부르주아지의 상은 진정으로 왜곡된 것이다. 이 상에서 부르주아지는 언제나 귀족과 전쟁상태에 있으며 평등과 민주주의의 기치를 높이 들고 있다. 그러나 중세 말기 토스카나에서 잉글랜드, 그리고 저지대40에 이르기까지 어디를 보나 이미 그들은 하층계급을 억압하기 위해 귀족과 연합하고 있었다. 41 부르주아지는 농민과 도시의 민주적 직조공 및 수선공이 귀족보다 더 위험하다고 인지했고, 그 위험은 시민계급이 소중히여기던 정치적 자율성을 희생해서라도 막아야 할 것으로 보였다. 그리하여 절대국가로 가는 첫걸음인 군주의 지배에 자발적으로 복종하면서귀족의 권력을 재수립한 것은 바로 도시 성벽 내의 자치권을 얻기 위해두 세기 동안 투쟁해 온 부르주아지였다. - P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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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노 유목제국사 - 기원전 209~216 유목제국사
정재훈 지음 / 사계절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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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노는 기원전 3세기 중반 등장하여 중국과 겨룰 만큼 강력한 유목제국으로 오랜 시간 존속했다는 인상을 남겼고, 유목제국의 '원상原象'으로서 이후 초원 유목민을 대표하는 통칭이 되었다. 이는 중국과 같은 하나의 '역사 단위'로서 초원의 유목 세계, 즉 북아시아사의 '시작점'에 흉노가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흉노 유목제국사의 전개 과정을 이해함으로써 '고대 유목제국'의 성격에 새롭게 접근해볼 수 있다. 흉노는 이후 유목 세계의 중요 전통이자 영광스러운 '유산'의 하나가 되었다. - P379

이 책은 저자가 쓴 고대 유목제국에 대한 연구서 중 앞선  ⌜위구르 유목제국사 744~840⌟, ⌜돌궐 유목제국사 552~745⌟에 이어 세 번째로 출간된 책이다. 지난 달 ⌜돌궐 유목제국사 552~745⌟를 읽고 나서 이 책이 마침 출간된다는 것을 알게 되어 이렇게 연이어 읽게 되었다. 저자는 2010년부터 흉노 연구사업(부경대)에 참여하여 몽골과 러시아 바이칼 남부, 중국 신장의 관련 유적을 답사하면서 한문 기록과 발굴 성과를 연결하는 작업을 고민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흉노의 존속 기간은 400년 정도로 존속 기간이 길었음에도 불구하고 시작은 2천년도 더 된 일이라 그 기록이 아주 적다. 게다가 흉노 스스로 남긴 기록이 없기 때문에 중국 측의 한문 기록만 남아 있다. 그마저 사마천의 ⌜사기⌟, 반고의 ⌜한서⌟, 범엽의 ⌜후한서⌟와 진수의 ⌜삼국지⌟ 같은 정사의 열전에서만 볼 수 있을 뿐이다. 그 주요 내용도 전쟁과 화친 등 외교 관계에 집중되어 있다. 흉노만의 독특한 습속이나 유목국가 자체에 관한 내용은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게다가 중화주의적 입장에 근거한 중국 측 기록을 온전히 믿기 어려운 부분도 있다. 특히 반고는 흉노를 '오랑캐'라고 하면서 강한 반감을 드러냈고 이는 이후 역사가들에게도 영향을 주어 부정적 편견이 자리하게 만드는 요인이 되었다. 물론 사마천은 ⌜사기⌟에서 최대한 객관적 태도로 정보를 가공해 흉노의 역사를 기록하였고, 유목 습속과 국가 체제에 관한 내용을 유일하게 남겼다는 점에서 가치 있는 작업을 일구어 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문사료를 기초로 연대별 역사를 연구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는 인식이 많았다. 그래서 최근에는 고고학적 발굴 성과 자료에 의한 연구가 주목을 받고 있다. 다만 이 자료는 지역적으로 편중되어 있어, 기원전 1세기부터 기원후 1세기 정도의 시기만 보여줄 뿐 흉노 전사를 설명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

저자는 이렇게 공간적 범위와 문화적 복합성에 따라 발굴 자료와 문헌 기록이 불일치하는 것을 해소하기 위해 흉노의 역사는 재구성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흉노의 역사와 문화에 관해서는 앞서 다양한 연구가 있었다. 이 가운데서 기존에 '제국'의 개념에 초점을 맞춰 다양한 작업이 이루어져 왔다. 이 책은 그 연장선상에서 '유목제국' 흉노의 사적 전개 과정을 정리하고, 그 성격을 재검토하였다. 앞선 흉노 역사에 대한 기록을 바탕으로 건국 이전부터 소멸 시기까지 다섯 파트로 나누어 설명한다.

흉노는 그의 선조가 하후씨의 먼 자손으로 순유라고 한다. 당[요]과 우[순] 이전부터 산융, 험윤, 훈육이 있었는데 북쪽 족속[의 땅]에 살았다. [흉노는] 길들인 짐승을 풀어 먹이며 따라다니는데 [계절에 따라 일정한 곳을] 맴돌며 옮겨 다닌다. 길들인 짐승의 많은 수는 말, 소, 양이고, 쉽게 보기 어려운 길들인 짐승은 낙타, 나귀, 노새, 버새, 뛰어난 말, 무늬가 있는 말이다. 물과 풀을 따라 옮겨 다니며 살아 성곽, 붙박여 사는 곳, 농사를 짓는 땅에서 먹고 사는 것이 없지만 각자 나누어 가진 땅이 있다. - P70
이는 사마천이 그린 흉노의 모습을 저자가 재해석하여 복원한 모습이다. 사마천은 흉노의 선조와 기원이 되는 사람들이 북쪽 족속에 살았다고 표현했고 뒷부분에는 유목에 대한 정의, 가축 종류, 생활 모습 등을 기술하면서 흉노를 한과는 완전히 다르며 중국에 대응할 만큼 독자적인 존재였음을 명확히 인식하고 기술하였다. 흉노가 단순히 유목 민족으로 떠돌며 수렵으로 생활했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그게 아님을 분명히 알 수 있다. '융'과 '호'에 대한 구분은 어떻게 해야 할까. '융'은 목축을 주업으로 하면서 농사도 병행하는 사람들이었다. 환경이 열악해지면 살림살이를 이동하며 옮겨 다녔음을 알 수 있다. '호'는 사육한 말을 타고 활을 쏘는 기마궁술에 특화된 사람들로 초원에서 계절에 따라 순환 이동을 하며 가축을 사육하는 목축을 했다.

기원전 210년 진시황이 죽고 진한 교체의 혼란이 본격화되자 흉노는 세력을 확장하면서 묵특 시기에 중국을 상대할 정도의 거대한 유목제국으로 발전하며 209년 국가를 건설한다. 흉노는 이 때 초원의 유목 세력만이 아니라 장성 주변에 흩어진 융까지 확보했다. 그 뿐 아니라 진한 교체기 중국의 혼란이 확대되면서 이탈한 중원 출신의 주민도 다수 포섭하였다. 선우는 '크다'를 뜻하는 군장 칭호로 묵특 이후 호와 융 모두를 통합한 유목국가를 다스리는 '하늘의 아들'을 의미한다. 그리고 체제 안정을 위해 만기장 24인을 두어 국가를 운영했다. 선우 이하 24명의 만기장은 세습 관료로 선우를 배출하는 연제씨 출신이거나 이와 연합한 특정 씨족 출신이었다. 묵특 시기 흉노의 영역은 동으로는 요동, 남으로는 텐산 부근의 오아시스와 그 주변 초원에 이르는 범위에 걸칠 정도로 넓게 퍼져 있었다. 묵특 사후에는 한과의 사이에서 어느 일방도 우위를 확보하지 않는 방향으로 나아갔지만 무제가 들어선 후에는 양국 간 전면전이 시작되었다.

흉노는 한과의 전쟁으로 막북 초원으로 밀려난데다 전쟁 대응으로 내부 체제를 안정시키지 못한 상태에서 개별 세력의 성장을 용인한 결과 대선우 즉위 과정이 합의가 아닌 정변을 통해 이루어지며 내부 결속력이 약해졌다. 내부 세력의 갈등은 흉노 체제의 약점과 대선우 권력의 한계를 드러내며 많은 사람들이 한에 투항하였다. 이로써 흉노는 오아시스에 대한 통제력을 상실하고 한 이외 주변 세력에도 도전을 받으며 세력이 약화되었다. 반면 한은 흉노의 막북 고립과 무력 정벌을 이끌어냈다.
기원전 57년을 전후로 흉노에서는 대선우 계승을 둘러싼 지배 집단 내부의 갈등이 폭발하며 5명의 대선우가 쟁립하는 내전이 벌어진다. 혼란 속에서 대선우가 된 호한야는 일시적으로 상황을 수습하는 듯 했으나, 형 질지골도후에게 쫒겨난다. 그는 고비 이남으로 내려와 한에 도움을 요청했다. 남하한 호한야는 한의 도움을 받으며 세력을 회복한 반면 질지골도후는 막북에서 세력을 유지하려다 끝내 실패했다. 흉노는 호한야 사후 대선우 자리를 연장자 우선 원칙에 따라 형제들이 상속하기로 한다. 흉노는 계속 한과 평화 관계를 유지하면서 물자 지원을 받으며 한에 강하게 의존하게 된다.

48년 흉노는 사촌 간 계승 분쟁으로 남북 분열이 되며 후한이 주도하는 세계 질서에 포섭되었다. 이후 계승 방식에 불만을 품은 일부 세력이 한의 도움으로 흉노를 형성한다. 이후 북흉노와 남흉노의 분열이 고착화되었다. 한은 기미를 받아들이고 신하가 되겠다고 한 남흉노를 군사적으로 활용해 북흉노와 선비, 오환에도 대응하면서 자신들을 유리하게 이끈다. 막북 초원에서 흉노의 권위가 완전히 소멸하자 선비가 흉노를 따르던 유목민을 통합하여 신세력으로 등장했다. 후한 말 대선우를 비롯한 지배 집단의 일부는 남흉노에 대한 통제력을 잃고 중국 내지로 들어온다. 이 중 일부는 조조의 견제를 받아 축소되다 소멸하고 다른 일부는 흩어져 각자도생의 길을 걷는다. 흉노는 216년 이렇게 완전히 소멸하고 해체되었다.

흉노의 활동과 영향 범위는 몽골 초원 뿐 아니라 오아시스, 중국 북변에 걸쳐 있었다. 이 공간을 하나로 묶어낸 흉노는 유라시아 대륙 전반에 영향을 남겼다. 6세기 돌궐, 13세기 몽골 유목제국도 자신의 뿌리를 설명하는 기제로 흉노를 끌어왔고 오호십육국 시대 흉노의 계승 국가를 자처한 '후계'가 계속 등장하는 것에서도 이를 확인할 수 있다. 흉노는 서진 말 군사적 수요가 커진 상황에서 서진 정권이 내분으로 붕괴하자 부활할 기회를 얻는다. 유연은 세력을 키웠고, 304년 새로운 국가를 세웠고 "홍방복업"이라는 명분을 내걸며 흉노의 나라를 '재건'한다 선언한다. 유연의 지향성은 새로운 통합제국 한漢의 건설로 연결되었다. 그러나 중국 내지에서 초원과 중국의 전통을 하나로 엮으려는 흉노 후예의 이 시도는 오래가지 못했다. 이 움직임은 이후 300여 년간 전개된 분열의 시작, 이른바 오호십육국의 '전주국'으로 이해되었다. 흉노의 이런 움직임은 이후 오랫동안 전개된 북중국 혼란의 책임을 뒤집어쓰면서 부정적으로 인식되었다.

이후 북중국을 무대로 전개된 분열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호와 한의 '대결'과 '융합'에만 초점을 맞춘 기존의 '이분법적 설명'과는 다른 접근이 필요하다. 장성 안쪽으로 한정된 중국의 범위와는 다른, 초원과 북중국이 하나로 연결된 새로운 판도에서 비한非漢 세력들이 서로 얽혀 '다원적' 성격을 보여주었다는 부분에 초점을 두고 역사의 전개 과정을 이해해야 한다. 이런 면모는 남흉노의 후예인 유연과 그 뒤를 잇고자 했던 다른 집단들이 보여준 '복합적' 성격의 국가 건설 움직임에서도 엿볼 수 있다. 이런 점에 주목해 흉노를 비롯한 유목민에 대한 편견을 넘어 오호십육국시대 이후 오랜 분열기에 명멸했던 국가들의 사적 전개과정과 성격을 다각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 P396~397



최근 몇 개월동안 ⌜사기⌟와 ⌜통감절요⌟를 비롯하여 고대 중국사를 공부했다. 덕분에 흉노의 역사는 돌궐의 역사보다는 아는 이름과 사건이 많았다. 이름과 사건만 알고 있어도 그 이면의 접근은 더 수월해진다는 것을 다시금 깨닫는다. 사마천이 궁형을 당하는 데 배경이 되었던 이릉, 한의 서역 원정의 시초가 된 장건(장건의 원정이 당시에는 실패했지만 이후 한이 서역의 오아시스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던 일), 흉노와 한의 결혼 관계 설정으로 흉노에 시집을 가야 했던 왕소군 등이 있었다.

이 책은 한문 텍스트 기록 뿐 아니라 흉노의 역사 전개 과정에 따른 지도, 선우 승계 과정의 표 등을 실어 흐름을 파악하는데 도움을 주고 유물이나 유적 자료 사진을 실어 문화적인 이해도 가능하게 하였다. 흉노 관련 역사서를 읽을 때 레퍼런스로도 활용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이 책을 읽으며 가장 반가웠던 소식은 고대 유목제국사 3부작 중 절판된 ⌜위구르 유목제국사⌟ 가 내년 재출간을 목표로 작업 중이라는 내용이었다. 절판되어 구할 수도 없는 책이었기에 너무 안타까웠는데 다시 출간된다니 무척 기대가 된다. 3부작을 읽음으로써 기원전 3세기부터 9세기까지 유목제국사 읽기를 한 흐름으로 완성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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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가를 오늘부터 2일간 썼다. 차주에 광복절이 껴 있어서 잘만 보낸다면 알차게 보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이번에 지방에 짧게 다녀오는 것을 제외하고는 정해진 일정은 없어 방콕하면서 아래와 같은 책을 읽으며 보낼 듯하다. 


<캘리번과 마녀>는 이번 달 여성주의 책 함께 읽기 책에서 base로 언급되는 책이고 <그 많은 개념어는 누가 만들었을까>는 그동안 계속 찜해 놓고만 있던 책이었는데 도서관에 마침 있길래 두 권 모두 대출을 했다. 태풍이 올라온다 하여 화요일에 빌렸으나 <캘리번과 마녀> 시작만 하고 아직 몇 페이지 읽지 못했다. 


<흉노 유목제국사>와 <젠더와 역사의 정치>는 얼마 전 구입한 책들인데 읽고 싶은 우선순위가 높았던 책들이라 기운이 올랐을 때 읽는 것으로 해야겠다.




아! 그리고 현재 보고 있는 중드가 있어서 그것도 머리 식힐 때 볼 것 같고. 원작 소설이 나와 있더라. 도서관 인기 대출 순위에도 높은 것이 놀라웠다.







태풍 전 하늘이 계속 예뻐서 볼 때마다 사진을 찍었다. 태풍 전날은 동네에 무지개가 떠 있어서 눈이 즐거웠다(오랜만에 본 무지개였다). 



출근하고 난 뒤 회사 근처 산책을 하다가, 집에 돌아오는 길에 찍은 것들이다. 


이런 일상의 순간들이 나를 미소짓게 만든다.



이제 책을 읽으러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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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3-08-11 09:5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늘부터 휴가시군요! 저도 14일은 연차낸 터라, 오늘 밤부터 왕창 책 읽고 영화 볼 계획입니다!(계획만 ㅋㅋㅋㅋ)
암튼 많이 읽고 많이 보는 알찬 휴가 보내세요!

거리의화가 2023-08-11 21:21   좋아요 1 | URL
ㅎㅎ 잠자냥님도 14일에 연차 쓰셨군요. 책 보고 영화도 보고 냥이들하고 꿀 같은 휴가 보내시길!

서곡 2023-08-11 10: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예쁜 무지개 잘 봤습니다 남은 팔월 건강히 잘 보내시길 바랍니다!!!

거리의화가 2023-08-11 21:23   좋아요 1 | URL
별 생각 없이 지나갔다면 못 봤을 풍경이었는데 그날 하늘이 워낙 예뻐 계속 쳐다보고 있어서 무지개를 포착할 수 있었네요. 감사합니다.

은오 2023-08-11 10:1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충격.... 화가님 직장다니시는데 책을 그렇게 많이 읽으셨던 건가요? 저 지금 알았어요 😱 어떻게 그렇게 어려운 책들을 출근하시면서 많이 읽으실 수가 있죠?!

거리의화가 2023-08-11 21:27   좋아요 1 | URL
그래서 주중에는 몇 페이지 못 읽고 주말에 몰아서 읽습니다^^

바람돌이 2023-08-11 10: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휴가를 책과 함께. ^^ 맛난거 드시면서 꽉찬 휴가 보내세요.
어제 저녁에 운동나갔다가 태풍 뒤의 하늘이 너무 예쁘던데 사진을 안 찍었네요. 화가님이 찍어준 하늘 사진으로 아쉬움을 달래봅니다. ^^

거리의화가 2023-08-11 21:32   좋아요 1 | URL
바람돌이님 베트남 여행 잘 하고 돌아오셨군요^^
저도 귀찮아서 사진 안 찍고 지나가는 경우가 많지만 요새 하늘이 예뻐서 자꾸 보게 되더군요. 실물보다야 못하지만 사진으로 남기면 나중에라도 볼 수 있으니 찍으려고요. 감사합니다.

단발머리 2023-08-11 10:1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무지개를 정말 오랜만에 거리의 화가님 사진으로 보네요. 알찬 휴가 보내시기 바래요~~ 맛난 것도 많이 드시구요.
잠자냥님 댓글처럼 책도 왕창 많이 읽으시기를^^

거리의화가 2023-08-11 21:37   좋아요 0 | URL
저도 오랜만에 무지개를 본 거였어요. 하늘을 쳐다보고 올라가기 망정이지 못 볼뻔 했네요. 요새 하늘이 참 이쁩니다^^ 감사해요.

청아 2023-08-11 10: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달의 책 읽으면서 <캘리번과 마녀>를 같이 읽을까 뒤이어 읽을까 고민하며 일단 꺼내두었습니다. 정말 폭풍전 구름은 막 잡힐듯 말듯 선명하더군요!
휴가 즐겁게 보내세요 화가님^^

거리의화가 2023-08-11 21:39   좋아요 1 | URL
폭풍 전 구름 뭉게뭉게하더라구요. 특히나 땅 가까이에 있는 듯 해서 더 잡힐 것 같이 보였습니다. 미미님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책읽는나무 2023-08-11 11: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무지개를 직접 눈으로 본지가 몇 년 된 듯한데 화가 님 사진에서...^^
즐거운 휴가 되시길 바랍니다.♡

거리의화가 2023-08-11 21:40   좋아요 1 | URL
무지개를 찰나에서 포착할 줄이야. 몇 개월 전이었나 무지개를 볼 기회가 있긴 했는데 그 때는 달리는 차 안이어서 찍을 수가 없었어요.
나무님 편안한 주말 보내시길!

독서괭 2023-08-11 11: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하늘 넘나 예쁘네요^^ 무지개도 화가님 덕분에 보고요. 휴가라니 넘 좋으시겠어요! 알차게 보내실 거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ㅎㅎ

거리의화가 2023-08-11 21:41   좋아요 1 | URL
무지개 사진 찍어두길 잘했네요. 이리 다들 좋아해주셔서 저도 기분이 좋습니다.
괭님 주말 즐겁게 보내세요^^

다락방 2023-08-11 12: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사진 너무나 좋습니다. 그리고 휴가시라니, 그것도 너무나 좋네요. 휴가도 잘 보내시고 책도 많이 읽으시고 잘 쉬시길 바랍니다.

거리의화가 2023-08-11 21:42   좋아요 0 | URL
휴가는 역시나 좋은 것이죠^^* 잘 쉬고 책도 많이 읽고 하겠습니다. 다락방님도 주말 잘 쉬세요!^^

자목련 2023-08-11 18: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연휴를 책과 함께 보내시는 화가 님, 리뷰도 곧 올라오겠네요.
올려주신 하늘 넘 예뻐요!

거리의화가 2023-08-11 21:43   좋아요 0 | URL
휴가 때 어디 가는 것도 좋지만 읽고 싶은 책들 마음껏 읽으면서 보내는 시간이 제겐 더 좋네요^^
하늘 사진 좋아해주셔서 저도 기쁩니다. 감사해요^^

페넬로페 2023-08-11 19: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과 함께 휴가 보내시는 여유가 느껴집니다. 요즘 하늘이 넘 예쁘더라고요.
저도 계속 사진 찍고 있어요.

거리의화가 2023-08-11 21:45   좋아요 1 | URL
페넬로페님도 평상시 많이 걷고 하셔서 사진 많이 찍으실 것 같아요. 걷고 돌아다니다 보면 이런 일상의 풍경들을 마주하게 되더라구요. 그런 순간이 참 좋아요^^ 감사합니다.

희선 2023-08-12 02: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태풍 오기 전날 저녁에 하늘이 멋졌는데, 저는 그저 보기만 했네요 집에서는 하늘이 멋지게 나올 곳이 없어요 무지개 뜬 거 보셨군요 그날 무지개 뜬 것 같은 하늘색이었는데 저는 못 봤습니다 거리의화가 님 남은 휴가 즐겁게 편안하게 보내세요


희선

거리의화가 2023-08-12 17:48   좋아요 0 | URL
집 밖에 나와야 볼 수 있는 풍경들이 분명 있네요. 희선님 남은 주말 즐겁게 보내세요^^*

그레이스 2023-08-12 08: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알찬 휴가, 휴식같은 휴가, 행복한 휴가 되세요~~

거리의화가 2023-08-12 17:49   좋아요 0 | URL
그레이스님 감사합니다^^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나는 다시 방에 올라갔고, 그러나 이번에는 혼자가 아니었다. 누군가가 슈만의 곡을 감미롭게 연주하고 있었다. 물론 사람들은, 우리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조차도 우리로부터 발산되는 슬픔이나 짜증에 질릴 수 있다. 그렇지만 우리의 감정을 고조시키는 힘을 가진,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미치지 못하는 것이 바로 피아노다. - P334

사랑을 낳게 하는여러 요인에는 물론 누군가의 매력적인 모습보다는 "안 돼요. 오늘 저녁엔 시간이 없어요."와 같은 말이 더 빈번하게 작용한다.

몇몇 신경병과 마찬가지로 고통스러운 불감에 대한 부정확한 설명에서 생겨난다. 그리고 사랑이란 - P348

항상(그 원인이 무엇이든) 왜곡된 감정이기에, 적어도 사랑에 관한 한 그 설명을 바로잡을 필요는 없다. - P349

물론 이런저런 이론들이, 정치에서 종교 단체를반대하는 법령이나 동양에서의 전쟁을(자연에 위반되는 교육이나 황화론 같은)* 지지하는 것과 유사한 이론들이 이런 반작용을 한시적으로 지지해 왔다. 서두름의 시대에는 빠른 예술이적합하다고 말해졌는데, 이는 마치 미래의 전쟁은 이 주 이상지속되지 않을 것이며, 또는 기차를 타면서 합승 마차의 소중한 작은 구석들은 버려지겠지만 자동차에 의해 이 작은 구석 - P377

들은 다시 명예를 되찾게 될 거라고 말하는 것과도 같다.


이론과 유파란, 마치 미생물과 혈구처럼 서로를 잡아먹으며, 또 이런 투쟁으로 생명의 지속을 담보받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시간은 아직 오지 않았다. - P378

사람들이 전적으로 신뢰하는 비평가들의 극찬을 받으면서, 또 「펠레아스가 자아낸 감탄에 힘입어 쇼팽의 작품은 새로운 조명을 받았고, 쇼팽을 다시 들은 적 없었던 사람들조차도 그 곡들을 그렇게나 좋아하고 싶어 했으므로, 그들은 자기도 모르게, 그렇지만 뭔가 자유의 환상 같은 걸 가지고 쇼팽을좋아하게 되었다. - P380

나는 얘기를멈추고 우리 앞에서 멀리 서둘러 날아가는 외로운 새 한 마리를 바라보면서 알베르틴에게 그 새를 가리켰다. 날개를 규칙적으로 흔들며 허공을 때리던 새는 여기저기 잘게 찢어진 붉은 종잇조각처럼 보이는 반사로 얼룩진 해변 위를 날아가면서, 속도를 늦추거나 주의를 딴 데로 돌리거나 가던 길을 이탈하는 법 없이, 마치 매우 급하고 중요한 메시지를 멀리 운반하는 밀사(密事)처럼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해변을 전속력으로 통과했다. "적어도 저 새는 목적지에 곧장 가네요." - P404

그녀와 아무 관계도 없는 만성적인 광기와도 같은 나의 사랑을 고려하지 않고 나 자신을 그녀의 입장에 놓고 생각하니, 다정하고도 충실하게 대하는 데익숙한 그 착한 소녀 앞에서, 또 그녀가 좋은 친구라고 믿고있을 내가 몇 주 전부터 그녀의 뒤를 쫓아다니며 괴롭히다가,
마침내 이 괴롭힘이 절정에 이르렀다는 사실에 애처로운 마음이 들었다. 알베르틴에 대해 이런 깊은 연민의 감정을 느낀것은 내가 우리 두 사람과는 무관하며, 또 거기서는 나의 질투심 많은 사랑도 사라지는 그런 순전히 인간적인 관점을 취했기 때문으로, 만일 그녀를 사랑하지 않았다면 이 연민도 그리깊지는 않았을 것이다. - P405

고통을 구하자마자 곧 거기서 벗어나려고 하는 것이 인간이다. 이런 일의 성공을 가능하게 하는 제안은 진실처럼 보이기 쉬우며, 현재 우리몸에 작용하는 진통제에 대해서는 시비를 걸지 않는 법이다.
거기다 사랑하는 존재가 아무리 다중적인 인간이라 해도, 어쨌든 그 존재가 우리 것으로 보이느냐, 아니면 그의 욕망이 우리가 아닌 다른 곳을 향해 있느냐에 따라 그 존재는 우리에게두 개의 본질적인 인성을 제시한다. 그중 첫 번째 인성은 두 - P408

소녀들의 수보다 많지 않은 나의욕망은 서로 유사한 환멸이나 슬픔으로 그 모습이 바뀌었다.
나는 결코 몰약은 원치 않았다. 나는 그것을 쥐피앵과 게르망트 대공 부인을 위해 남겨 놓았는데, 왜냐하면 몰약은 "두 개의 성(性)을 가지고, 황소 울음소리를 내며, 잊지 못할 기이한축제를 수없이 행하고, 제물을 바치는 사제를 향해 즐겁게 내려오는" 프로토고노스의 욕망이기 때문이다. - P417

사랑하는 이의 말은 오랫동안 순수한 상태로 유지되지 못하는 법이다. 그 말은 상하고부패한다. - P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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