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주토끼 (리커버)
정보라 지음 / 아작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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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총 10개의 단편이 들어 있다. 개인적으로 좀 모호했던 2~3개 정도 이야기를 제외하고는 불합리하고 부조리한 현실을 잘 그려낸 이야기들이 실려 있다는 생각을 했다. 


현실 속에서는 내가 멍청해서, 못나서, 억울한 일을 당해도 울분을 참아야 하거나 허벅지 꼬집으며 넘어가야 하는 경우가 많다. 현실에서는 감히 해보지 못하는 것들을 소설 속에서 어떤 결말로(!) 대리만족시켜준다는 느낌을 받아서 좋았다.


기억에 남는 단편들을 짧게 정리해본다.


<저주토끼>에서는 좋게 이야기하면 정직하고 성실히 사는 사람이지만 반대로 이야기만 어리숙하고 순진한 사람이 나온다. 현실에서는 이들이 바보 취급을 받는다. 약삭 빠르게 이 기회를 노려 잘 뺏어가는 이들이 승자가 된다. 더럽고 치사하지만 이런 경우는 너무 많아서 열거할 수가 없다.


할아버지의 친구는 더 좋은 기술을 개발해서 더 맛있고 몸에 좋은 술을 만드는 데만 신경을 썼다. 정부 인사와의 친분, 인맥, 접대, 필요에 따라서는 뇌물이나 뒷거래가 제품과 기술보다 중요한 시대라는 사실을 할아버지의 친구는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리고 이미 전혀 다른 방식으로 변해버린 술 시장을 넘보는 더 큰 회사가 있었다. 인맥과 연줄에 강하고 접대에 능한 회사였다. 이 회사에서는 자신들이 만들어 파는, 알코올에 물과 감미료를 섞은 액체가 ‘서민들이 선호하는‘, ‘정통의 그 맛‘이라 광고했다. 앞에서는 정당하게 언론매체에 광고했지만, - P13


<머리>를 보면서 내가 사용하는 것들에 과한 것는 없는지 생각해보게 되었다. 내가 만들어낸 산물이 결국 나의 몸에서 나오는 것이니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을 이르게 한다. 결코 내 몸에서 나오는 어떤 것도 자유롭지 않다는 것 말이다. 


"은혜라니, 무슨 은혜란 말이냐? 내가 언제 태어나고 싶어네게 부탁한 적이라도 있더란 말이냐? 네게서 비롯된 피조물이라 하여 네가 한 번이라도 따뜻이 돌보아준 적이라도 있었더냐? 너는 내가 원하지도 않았는데 나를 태어나게 했고 이후에도 나를 혐오하고 역겨워하여 줄곧 없애고자 하지 않았느냐? 내게 베풀어준 것이라고는 있어 봤자 네게는 백해무익할 따름인 배설물과 오물뿐이 아니었느냐? 그나마 받아먹으며 사람다운 외양을 이루기 위해 나는 네게서 갖은 수모와 박해를 받아야 했단 말이다. 하지만 드디어 나는 몸을 이루었다. 어두운 구멍 속에서 이날만을 기다려왔다. 이제 나는 네가 되었으니 너의 자리를 차지하여 살아가리라." - P57


<안녕, 내 사랑>를 보고는 인조 반려견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인간은 기술의 발달로 더 오래 살게 되었으나 주변의 이들과 언제까지나 함께할 수는 없다. 언젠가 그들은 자신의 곁을 떠나기 때문에 반려견이나 반려묘를 키우는 인구가 급증하는 거라고 본다. 하지만 문제는 있다. 살아 있는 반려동물도 결국 언젠가는 주인 곁을 떠난다는 것. 나는 반려동물을 키워보지는 않았지만 그들이 죽고 난 이후 주변의 사람들이 죽었을 때와 마찬가지의 감정을 느낀다고 들었다. 최소 10년 이상을 내 곁을 지키는 것이니 가족처럼 끈끈한 관계가 될 수 밖에 없다고 본다. 그런 인조 반려동물이 실망감과 서운함을 드러낼 때가 언젠가는 올 것이다. 정교한 3D 프린터 등의 기술로 얼마든지 피부와 비슷한 조직을 만들어내고 학습으로 인간의 사고 능력을 뛰어넘을 수 있는 기계를 만들 수 있게 되었다. 이제 더 이상 사람과 비슷하게 생긴 인조 반려견은 먼 미래가 아니라 가까운 시기에 구현될 수 있다. 대부분의 인간에게 첫사랑이 각별하듯 주인공의 '1호'에 대한 사랑은 각별했다. 인간이 나이들듯 기계도 노후가 되고 금방 교체된다. 사랑의 감정이 시간에 따라 변하듯 기계도 한 인간에게 머무는 시간이 3~5년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 묘하게 연결되었다. 


1호는 달랐다. 내 첫사랑. 그는 내게 ‘인공‘이 아닌 진짜반려자였다. 평균적인 사용 연한이 지난 뒤에도 나는 1호를버릴 수 없었다. 기종이 오래되어 네트워크에 접속할 때마다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서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도 중단했고 나중에는 오류가 계속 나서 네트워크 접속 자체도 포기하고 차단해버렸다. 결국 1호는 ‘반려자‘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게 스마트 책상이나 냉장고보다도 기능이 떨어지게 되어버렸다. 그래도 내게 1호는 언제나 1호였다. - P128


<즐거운 나의 집>은 읽고 너무 화가 났다. 내가 견딜 수 없는 조합들로만 가득한 구성이어서 그랬다. 자본주의 사회에 살면서 자본주의에 구속되지 않는 대안적 삶의 방식이라는 것이 가능한가? 남편의 저 허울 좋은 말은 핑계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소설에서는 결말이 그렇게 되었지만 과연 현실에서는 어떨까. 다른 형태의 비관적인 결말만 떠오를 뿐이었다. 집을 구할 때 최대한 알아보고 해도 사기를 당하는 마당에 저리 허술하게 들어간다고 하는 생각도 들었다. 어릴 적부터 나는 돈으로 시달림을 많이 받아봐서인지 돈은 빌리지도 말고 빌려주지도 말자 주의로 바뀌었다. 아무리 친한 사이라도 돈 관계는 하지 않는다. 사람 자체도 믿을 수가 없는데 돈과 얽히면 사람은 더욱 믿을 수가 없는 존재가 된다고 생각한다. 이 단편을 읽는 내내 한숨만 나왔다.


남편은 ‘자본주의에 매몰되지 않는‘, ‘대안적인 삶의 방식‘을 추구했다. 그녀 또한 대학 시절에 학점과 스펙에 매달리고대기업이나 공무원 취업으로 대표되는 안정적인 직장을 최고로 치는 주위 사람들의 천편일률적인 압박을 지겹게 여기고경멸했기 때문에 남편이 원하는 삶의 지향점이 자신과도 잘 맞는다고 생각했다. - P250


인생은 문제의 연속이다. 결혼해서 가정이 있는 경우에는더욱 그렇다. 집 밖의 문제를 피해 가정으로 돌아와도 가족이집 안에서 또 문제를 일으키기 때문이다. - P259


자본주의, 기술의 발전에 따른 인간과 다른 물질과의 상호 관계, 환경 문제에 대해서 곱씹을 점이 많았다. 오늘날 우리 사회가 직면한 과제들에 대하여 감정을 배제하고 '건조한' 문체로 담아내고 있어서 좋았다.


이 책을 읽기 전 겁이 나서 읽기 주저스러웠다. 공포 장르와는 친하지 않아서다. 하지만 읽기 잘했다 싶다. 현실에서 발견할 수 있는 일상의 공포들을 잘 그려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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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2-08-14 21:2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이 책 제목때문에 손해보는듯요. 우리처럼 무서운거 못 읽는 사람들이 주저하잖아요. ㅎㅎ

거리의화가 2022-08-14 21:34   좋아요 3 | URL
ㅎㅎㅎㅎㅎ 차라리 다른 단편을 제목으로 끌고 왔으면 더 나았을까요? 진입 장벽이 높은 제목이에요ㅠ 다음에 작가님 소설 내실 때는 저희 같은 독자들을 위해서 제목 좀 고려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ㅋㅋ

그레이스 2022-08-14 22:43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담겨있는 주제들이 생각할 지점이 많네요. 제가 무서움을 이겨내고 읽기로 결정한다면 이 리뷰때문일 듯요. 그래도 공포물은 제게 장벽이 높네요.^^

거리의화가 2022-08-15 09:37   좋아요 3 | URL
오~ 그레이스님 영광입니다^^ 읽고 있으면 정말 등이 서늘해지는 느낌을 받는 그런 이야기들이 모여 있습니다. 주제가 우리 현실을 담아낸 것들이라서 생각할 거리를 많이 던져주어서 좋은데 그걸 풀어내는 방식도 흥미로웠습니다. 공포라 권해드리기는 어렵습니다만 읽으신다면 여름이 지나기 전 읽기를 추천드립니다^^

얄라알라 2022-08-15 01:51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저주토끼]는 꼭 읽어볼 마음이기에 일부러 거리의 화가님 리뷰 처음과 마지막 단락만 읽었는데, ˝읽기 잘했다˝하시니, 더는 미루지 말아야겠네요. 소설 읽은지 꽤 오래 지난 마당에 동기 부여받고 갑니다^^

거리의화가 2022-08-15 09:38   좋아요 4 | URL
소설 읽기 전 저도 가능한 스포를 보지 않고 읽는지라~ 얄라알라님의 생각과 같아요ㅎㅎ 읽으신다면 여름이 지나기 전에 읽으시길...^^ 동기부여받으셨다고 하니 뭔가 뿌듯합니다^^ 감사합니다.

책읽는나무 2022-08-15 09:31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재밌죠??^^
울집 딸 중 한 명은 근 한 달을 잡고 읽더니 어제 다 읽었대요. 어떠냐고 물으니까 본인은 스릴러물 무서워서 못읽을 것 같다네요ㅋㅋㅋ
그래도 모래나라 이야기는 좋았다고 그러구요^^
저는 손가락에서 반지 빼 가는 이야기도 다 읽고 뒤늦게 소름 돋기도 했어요.
처음 한 두 편만 읽었을 때는 왜 부커상 후보일까? 싶었는데 다 읽고 나니 그 이유를 좀 알 듯도 하더라구요^^

거리의화가 2022-08-15 09:41   좋아요 3 | URL
10편의 단편이 서로 다 달라서 시간을 들여서 읽어도 괜찮은 책인듯 싶어요. 저도 대출한 책이 아니었다면 띄엄띄엄 읽었을수도ㅋㅋㅋ
어떤 단편이든 건져낸 것이 있었다면 작가님의 의도가 독자에게 가 닿은 것이겠죠. 저는 <저주토끼>랑 <안녕, 내사랑>이 짠하면서도 슬프기도 하고 여러 감정이 복합적으로 들었습니다^^

얄라알라 2022-08-15 09:5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실은 [저주토끼]를 작은 도서관에서 빌리려고 했었는데, 사서 선생님께서 정말 무섭다고 겁을 주셔서 망설망설 다음으로 미룬게 한 달은 지난 것 같은데, 낮에 읽으면 되겠죠?^^ 거리의 화가님, 이해해주셔서 고마워요 전 지금 NOPE개봉만 기다리고 있는데 spoiler 안 보려고 검색도 자제중입니다. ㅎ

거리의화가 2022-08-15 21:00   좋아요 0 | URL
낮에 읽으면 괜찮을겁니다^^ 저도 스포 진짜 싫어해서 영화, 책 등 이야기류는 스포를 안보려고 합니다. 보면 역시 재미가 반 이상 날아가서요^^

얄라알라 2022-08-20 13:22   좋아요 1 | URL
드뎌!!!!
[저주토끼] 읽고나서 거리의화가님 리뷰 제대로 보니
확실히 들어오는 게 많습니다.

저는 <머리>가 가장 오싹했는데 모녀 관계, 혹은 부모-자식 관계로 생각하며 봤거든요
거리의화가님 말씀처럼 확장해서 생각할 수도 있겠네요^^ 우리가 남기는 글이라든지...

좋은 리뷰 감사드립니다

거리의화가 2022-08-20 16:34   좋아요 0 | URL
얄라알라님 이 책 다 보셨군요^^ 머리는 어떤 면에서는 충격적이기도 하다는 생각을 했는데 말씀하신대로 그렇게 볼 수도 있기도 하겠네요ㅎㅎ 저는 아무래도 자식이 없어서인지 그렇게는 못봤는데^^; 같은 책이라도 보는 각도에 따라서 다르게 느껴지는 게 있어서 다른 리뷰 속에서 배우는 게 있는 것 같아요. 알라님의 리뷰도 읽어볼게요^^

mini74 2022-08-15 10:5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전 공포물 아주 좋아하고 고어도 잘 봅니다. 그런데 이 단편들이 더 무섭던걸요. 일상적인 삶 속에서 만날 수 있는 소재들이 공포스럽게 다가와서인지 특히 전 머리가 무서웠어요. ㅎㅎㅎ

거리의화가 2022-08-15 21:03   좋아요 1 | URL
와 미니님 강자!!!ㅎㅎ 전 공포 잔혹물 이런거 너무 싫어해요. 옆지기는 그런 거 잘보는데 저는 그런거 볼 때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나갑니다ㅋㅋㅋ 하지만 말씀처럼 일상에서 부딪치는 공포가 실제하는 거라 더 무섭게 다가오는 것 같기도 합니다ㅠㅠ 점점 사회가 각박해지니 공포의 종류도 다양화되는듯해요ㅡㅡ

새파랑 2022-08-15 11:0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돈은 빌리지도 않고 빌려주지도 않는다가 가장 인상적이네요 ^^ 책 제목과 표지의 중요성을 다시한번 느낍니다~!!!

거리의화가 2022-08-15 21:05   좋아요 2 | URL
ㅋㅋㅋ 돈에 얽히면 사람이 돌 수 밖에 없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늘 대출과는 거리를 둡니다 없으면 없는대로 사는 게 맞다고 생각해요^^
책 표지와 제목이 이 책의 진입장벽을 높이는데 한몫을 하는 것 같아요.

페넬로페 2022-08-15 14:5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제가 공포물을 아주 싫어하는데 저주토끼는 생각보다 무섭지 얺고 시작하자마자 단숨에 읽었어요 그만큼 작가의 스토리텔링이 탄탄하게 느껴졌어요~~

거리의화가 2022-08-15 21:07   좋아요 2 | URL
맞습니다 페넬로페님 정보라 작가 글 잘 풀어나가는 힘이 있더라구요 이야기의 설득력이 없으면 읽기 어려웠을텐데 그렇지 않아서 만족스러웠습니다. 좀 불쾌하거나 싫은 느낌들도 잘 그려내서 그런 감정을 받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희선 2022-08-17 02:1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자신이 만들어낸 것, 버리는 것이 많겠습니다 그런 게 자기 모습을 하고 나타나면 무척 무섭겠네요 <안녕, 내 사랑>은 《클라라와 태양》 <쵸비츠> 만화도 생각나는군요 기계도 끝이 있고 시간이 가면 바뀌죠


희선

거리의화가 2022-08-17 11:06   좋아요 1 | URL
네. 내가 버린 것들이 뒤에 떡하니 서서 나를 바라본다고 생각한다면? 쓰레기도 줄여야겠다라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습니다.
<클라라와 태양>이 비슷한 내용이군요? 오... 관심이 갑니다. 핸드폰만 해도 2~3년을 넘기지 않고 자주 바꾸는 듯 싶습니다.
 
인류본사 - 오리엔트-중동의 눈으로 본 1만 2,000년 인류사
이희수 지음 / 휴머니스트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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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최초의 문명의 역사는 아나톨리아 반도와 메소포타미아 반도이다. 동서양의 교차점이었던 아나톨리아 반도는 동서양이 만나면서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는 세계였다.
책에서 여러 번 강조하지만 19세기 이후 유럽 지역은 자신들을 중심으로 문명을 바라보면서 타 문화는 야만과 미개로 치부했다. 저자는 1983년 이스탄불에서 중동 역사와 이슬람 문화를 공부하며 동서양을 양분하는 인식론에 대해 의문을 가졌고 이 책이 탄생하게 되는 배경이 되었다.

아나톨리아와 메소포타미아 지역에는 괴베클리 테베-차탈회위크-아카드-바빌로니아-트로이-히타이트-페니키아-프리기아-헤브라이-아시리아-우라르투-신바빌로니아-리디아-메디아-페르시아-파르티아-사산조 페르시아가 7세기 중엽까지 이어졌고, 이후에는 이슬람 시대로 접어들면서 우마이야-압바스-셀주크-호라즘샤-티무르-나스르-사파비-말리와 송가이-오스만-무굴 제국에 이르는 역사가 이어졌다. 이 기나긴 역사를 650 여페이지에 압축시키기 어려웠을 듯하다.

먼저 책의 장점부터 기술해보겠다. 각 단락의 서두에 한 제국의 일대기를 담은 도표와 설명이 무엇보다 도움이 되었다.(시간이 지나서 재독 시 이 부분만 참고해도 좋을 것 같다.) 또 영토의 분화 과정을 담은 지도, 문화재 같은 경우 사진이나 그림이 첨부되어 있어 좋았다. 그리고 저자가 문화 유적을 직접 답사한 여행기는 독자의 간접적인 여행 체험처럼 느껴지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코로나가 여전한 상황인데다 답사 지역이 상대적으로 우리에게 친숙하지 않은 곳이기 때문에 더 그렇다). 마지막으로 문명과 관련하여 한반도의 역사와 연관성을 가지는 다양한 예시를 흥미롭게 설명해주어 저자에게 감사했다(이것은 국내 작가가 아니라면 경험해보기 어려운 것이다.).

단점은 많지 않다. 이 책을 읽기 전 궁금했던 질문이었는데 다양성을 존중한 이슬람 문화를 기반으로 한 이 곳이 왜 현대에 와서는 분쟁이 끊임없는 지역으로 변모했는지였다. 하지만 그 부분에 대한 설명은 아무래도 핵심 범위에 포함되지 않아서 짧게만 언급되는 정도라 아쉬웠다.(이 부분은 다른 책을 통해서 공부를 이어가야할 것 같다. - cf: 현대 중동의 탄생)
이건 책의 단점이 아니지만 익숙하지 않고 비슷한 듯한 인명, 지명들의 복잡도가 가져오는 피로도가 있다. 이건 어느 역사도 마찬가지이므로 감안하고 볼 수 밖에 없다. 때문에 집중해서 읽는수밖에 없다.

1994년 독일 출신의 고고학자 클라우스 슈미트가 이끄는 발굴조사단은 괴베클리 테페를 20 년간 집중탐사했다. 조사 결과에 의하면 이곳은 인류 최초의 신전 유적으로 기원전 1만 2천년경 건설되었다. 수렵 채집시대에도 문명이 존재했음이 밝혀져 고고학계에 일대 사건이었다고 한다.
차탈회위크는 9,500년 전 인류 최초의 계획도시로 선사시대 거주지가 남아 있으며 도시문명의 기원인 장소이다. 특히 이곳은 남녀의 역할이 구분되지 않고 차별이 거의 없었던 공동체 사회여서 주목하게 된다. 이는 차탈회위크의 가옥이나 테라코타 모신상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기원전 2350년경 아카드 왕국은 바빌로니아 북부에서 시작하여 최초로 오리엔트 전역을 통합했다가 구티인에 의해서 멸망당한 후 기원전 1895년경 바빌로니아 왕국이 오리엔트를 재통일한다. 바빌로니아는 아카드를 기반으로 수메르 문명과 오리엔트 신앙을 받아들였다. 함무라비 왕때 전성기를 누렸으나 기원전 1595년경 히타이트 제국의 침략으로 멸망했다.

히타이트 제국은 아나톨리아에서 인류 최초로 철기문명을 일으킨 500년 제국이다. 히타이트법은 함무라비법을 발전시키면서도 여성의 권리를 이전에 비해 신장시키는 등 제국을 떠받치는 근간이 되었다. 히타이트는 영토 팽창을 가속화하면서 이집트 람세스 2세와의 정면 충돌하면서 카데시 전투(B.C. 1274)가 벌어졌다. 전투는 이집트의 판정패였지만 람세스 2세가 승리를 선전했고 이집트는 이후에도 살아남으면서 히타이트의 승리는 묻히고 말았다. 히타이트 제국의 멸망의 원인은 여전히 미스터리다. 천재지변, 기후변화, 전쟁, 화재 등을 꼽지만 가설일 뿐 밝혀진 것은 없다.

프리기아 왕국은 기원전 1200년경 수립되었으나 기원전 8세기 미다스 왕 때 아나톨리아 중서부를 장악하면서 전성기를 맞이한다. 프리기아는 그리스와 오랫동안 교류하여 그리스적 색채가 강한 문화를 띠었다. 미다스 왕이 사망한 후 기원전 620년이 되면 리디아가 프리기아를 빼앗고 기원전 540년에 페르시아군이 리디아를 빼앗으면서 결국 페르시아가 지역의 주인이 된다.

아케메네스조 페르시아는 우리에게 상대적으로 익숙하다. 그리스와 전쟁을 벌인 역사로 여러 문헌이나 영화를 통해서 익숙한 탓이다. 페르시아는 인류 최초의 대제국이었고 이후 페르시아 국가와 구분하기 위해 아케메네스조 페르시아라고 칭한다. 페르시아는 관용정책을 표방하며 지방분권 정책을 실시하였고 종교적으로는 유일신 기반인 조로아스터교를 받아들인 특징을 가지고 있다. 현재는 수도 페르세폴리스가 세계유산으로 남아 있다. 페르시아는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드로스에 의한 침략으로 멸망하고 이후 파르티아가 이곳을 통일한다.

파르티아 제국은 로마 제국에 맞선 나라로 지금의 이란을 중심으로 500년을 이은 제국이다. 부끄럽지만 파르티아 제국은 이번에 처음 알게 된 듯하다. 로마 제국의 위용이 있었다고는 해도 우리가 얼마나 서양 중심의 인식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수용했는지 절감하는 대목이다. 파르티아는 오늘날의 이란과 이라크, 터키 일대를 포함하는 핵심 지역으로 로마와 중국, 동아시아 간 중개무역을 통해 화려한 문명을 꽃피웠다고 한다. 한반도 문명과도 관련이 있는 곳이라 잘 기억해둘 필요가 있겠다.

사산조 페르시아는 224년 건국되어 로마와 동로마 제국과 이웃하여 교역과 전쟁을 하면서 651년 이슬람 세력에 의해 멸망할 때까지 번영을 누린 이란계 제국이다. 사산조 페르시아 멸망으로 이란 민족에서 아랍 민족으로 지배 세력의 중심이 이동하게 된다.

압바스 제국은 610년 무함마드가 알라로부터 계시를 받은 이후 651년 사산조 페르시아를 정복하고 이슬람 제국을 건설하면서 시작되었다. 압바스 제국은 아랍인 중심에서 벗어나 피정복지 인재를 골고루 등용하는 등 글로벌 국가의 면모를 보였다. 제국의 수도인 바그다드에는 세계 최초이자 최고 수준의 종합 아카데미 '바이트 알히크마'가 있었다. 이 때 신라와 고려에 관한 기록이 담긴 필사본이 작성되는 등 동시애 각지에 대한 연구가 적극적으로 이루어졌다. 하지만 10세기 이후 지방의 총독들의 힘이 커지면서 북아프리카 서부에는 파티마 왕조가 세워지고, 이베리아 반도에는 후우마이야 왕조가 칼리프를 자칭하게 도어 3인 칼리프 체제가 만들어진다. 10세기 중반이 되면 시아파의 부와이 왕조가 수도를 점령하고 실권을 장악하게 되어 압바스 왕조의 칼리프는 종교적 권위에만 의존하게 되는 신세가 된다. 11세기 중반 셀주크 튀르크가 바그다드를 통합하지만 몽골이 1258년 바그다드에 침입하면서 500년 압바스 제국은 멸망하게 된다.

티무르 제국은 정치적으로는 몽골 제국을, 종족적으로는 튀르크를, 문화적으로는 이슬람을 표방하는 독특한 체계를 가진 제국이었다. 티무르는 이슬람 문화와 고도로 발달한 과학기술에 기반하여 14세기 중앙사이아 르네상스를 이끌었다. 티무르는 정복지의 기술자와 장인을 수도에 데려와 학문의 발전에 밑받침하는 전략을 취하며 발전된 문화의 기반을 이끌었다. 티무르 사후 제국이 분열되고 16세기 초가 되면 우즈베크인의 무함마드 샤이바니가 중앙아시아 대부분을 가져가면서 멸망하였다(이 때 권력투쟁에서 밀린 자히르우드딘 바부르가 1526년 인도를 정복하면서 무굴 제국의 황제가 된다.).

이베리아반도에도 이슬람 문화가 번성한 시기가 있었다. 시리아의 우마이야 왕조가 750년 멸망하고 살아남은 왕족 일부가 이베리아반도로 넘어가 왕조를 세우는데, 그것이 후우마이야 왕조가 된다. 코르도바를 중심으로 번영하면서 이슬람 문화를 전하는 창구로 기능했다. 1031년 후우마이야 왕조가 해체되고 나서 여러 이슬람 공국들이 난립하다 나스르 왕조가 1492년 에스파냐에 의해 통합되기까지 이어진다. 나스르 왕조의 역사적 건축물은 현재 그라나다의 알함브라 궁전으로 남아 있다. 나스르 왕조는 수도 그라나다를 중심으로 수준 높은 문명을 이루었으나 가톨릭교도에 의한 레콩키스타로 인해 국토가 축소되다 무함마드 12세가 모로코로 망명하면서 1492년 멸망한다.

사파비 왕조는 오늘날 이란의 중심도시인 이스파한을 수도로 오스만, 인도의 무굴 제국과 맞섰던 제국이었다. 시아파 이슬람을 국교로 하면서 기존의 순니파 이슬람 왕조 통치자들이 사용하던 '칼리프', '술탄', '아미르' 대신 '샤'라는 용어를 사용하였다. 압바스 1세 전성기에 군제를 영국식으로 개혁하고 오스만의 영향을 받았다. 이스파한은 실크로드 중심도시로 세계 최대의 국제도시로 성장한다. 현재 이스파한에 남아 있는 유적 대부분이 사파비 왕조 때 것이라 이란인들이 굉장히 자랑스럽게 여기는 장소라고 한다.

오스만 제국은 페르시아 제국, 로마 제국과 함께 세계 3대 제국으로 불렸고 20세기까지 존속하면서 인류 역사상 최대의 제국으로 불린다. 1299년 수립되어 1922년 제국이 종말을 맞을 때까지 장장 623년의 역사를 영위하였고 1923년 터키 공화국이 설립되면서 오스만의 문명은 터키로 이어지게 되었다. 소수집단에 자치권을 부여하고 인재를 다양하게 등용하였고, 예니체리를 통해 남동부 유럽, 서아아시아, 북아프리카를 포함한 넓은 영토를 확보하였다. 이스탄불은 동서양, 이슬람과 기독교, 흑해와 지중해가 만나는 문명의 접점인 곳이어서 발전에 유리하기도 했으나 매너리즘이 만연하고 내부 권력의 다툼, 산업혁명 이후 서구 자본주의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18세기 이후 급격히 쇠퇴하게 된다. 1922년 마지막 술탄 메흐메드 6세의 폐위로 제국은 종말을 맞이한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이슬람 문화의 다양성을 존중하는 포용이었다. 공존과 다양성은 문명을 발전시키지만 반대로 다른 종교를 탄압하거나 자국의 문화만을 강조하게 되면 문명은 쇠퇴하는 길을 걷게 된다. 이는 반복되는 역사의 흐름이라고 보여지는데도 불구하고 오늘날 수많은 종교, 민족의 갈등으로 인해 내전과 전쟁이 끊임없이 발생하는 것은 바뀔 수 없는건가 의문을 갖게 한다. 

이 책을 통해서 그동안 외면해온 문명의 역사를 정리하면서 세계를 다양한 각도로 바라보고 거시적으로 통합할 수 있는 기반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세계는 동양과 서양으로만 이루어져 있는 것이 아니다. 고대 유럽인들이 '오리엔트'라고 불렀던 중간문명이 존재한다. '해가 뜨는 곳'이란 의미의 라틴어 '오리엔스'에서 유래한 오리엔트는 지역과 시대에 따라 아나톨리아, 레반트, 중동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렸지만, 인류 최초로 문명이 발아하고 성숙해 간 인류역사의 중심 무대였다. 그럼에도 우리가 배우는 세계사에서 고대 오리엔트나 중세 이후 중동의 역사는 동양사와 서양사 양쪽으로부터 외면당하는 보잘것없는 지역사에 불과하다. - P15

인류문명의 시원과 역사발전의 맥락을 제대로 이해한다면, 왜 세계 4대 문명 중 세 곳이 아나톨리아반도를 중심으로 중동 일대에서 탄생하게 되었는지, 어떻게 지중해를 통해 인류의 찬연한 역사와 문명이 꽃필 수 있었는지에 대해 좀 더 신선한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 P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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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브 (반양장) 창비청소년문학 111
단요 지음 / 창비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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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2057년의 대한민국이다. 


책의 표지가 말해주듯 처음에는 기후위기를 떠올렸다. 생태계가 파괴된 지구, 기후 변화로 해수면이 상승하면서 2042년 대한민국의 대부분은 물 속에 잠긴다. 나처럼 수영을 못하는 사람은 죽겠구나 생각했다. 물 속에서 숨조차 쉬지 못하는 사람이 이런 환경 속에서 어찌 살아남을 수 있을까. 하지만 인간의 적응은 놀랍기만 하다. 변화한 생태계 속에서도 살아남은 사람들이 있었다. 


세상의 얼음이 모두 녹아서 바다 높이가 한참을 높아졌다고. 그래서 한국 주변에 댐을 세우게 되었다고. 그런데 전쟁이 일어나면서 댐이 무너지고 서울도 물에 잠기게 되었다고. 그게 벌써 십오 년 전의 이야기라고. - P25


수호는 서울을, 서울에 살던 사람들을, 그리고 인간 양육키트의 주인을 상상했다. 일흔살 먹은 할아버지도, 자라나는 아이들도, 작고 부드러운 살덩어리로밖에는 보이지 않을 그 누군가를. 만약 그런 게 실제로 있다면, 이 나라의 반절이 물에 잠긴 것도 그 때문이라면, 세상의 모든 고통은 원래부터 이토록 초라했던 게 아닐까 싶었다. 그렇게 믿어야마음이 편했다. 미사일이 날아다니고 댐이 무너지면서 도시를 휩쓰는 장면을 눈앞에 그리기보다는.

뉴스로만 보았던 화제들이 머리 뒤편에서부터 빠르게 풀려 나왔다. 세종시로 옮겨 가는 정부 청사와 뚝뚝 떨어지는 서울 집값은 물론이고 세 번째 세계 대전마저 사소하게만 느껴지더니 그러면 자신의 평생은 또 어땠을지 궁금해졌다. 2042년의 지구에는 육십칠억 명의 인간이 있었으므로 불행도 그만큼 있을 터였다. 따라서 살아남은 사람들의 십오 년에 비하면 자신이 잠들어 있던 시간은 오히려 행운이 아닐까, 싶다가도 그건 또 아닌 것 같았다. - P135


이 세계에도 변하지 않는 것은 존재했다. 내가 속한 세계는 달라야 한다는 것. '우리는 당신들과 달라요.' 


멀쩡한 데가 하나 있긴 하다. 나도 듣기만 했는데, 강원도는 산이 높아서 바닷물이 안 넘어갔다는 거야. 예전에는 거기에서 우릴 구하러 오기도 했다는데, 요즘은 못 오게 막는대. 같이 살기 싫다고. - P30


대한민국의 사람들에게 물이 주는 이미지란 2014년 이후 세월호 사고를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다. 개인적으로 원래도 물에 대한 공포가 강했으나 나는 이 사고 이후 세월호의 침몰과 바다 속에 수장된 사람들. 아픈 기억이 떠올라 몇 년동안 나를 침잠하게 했다.


"내가 몇 번을 말하냐. 사고는 예전에 났어도 사람 마음은 속에서 끝이 안 난다니까." - P131


이후 이야기의 주제는 나를 다른 곳으로 이끌었는데 이는 죽음과 영생, 기억이었다.


현재, 죽은 사람의 기억과 의식을 구현하는 기술이 있다. 내가 죽은 후 이런 기술에 맡길 수 있다면 당신은 어떻게 하겠는가? 


"열두 살부터 병원에서 누워만 지냈어. 방사선 치료니, 척추 주사니, 온갖 치료는 다 받으면서. 나아지지도, 아예 끝나지도 않는 상태로. 이렇게까지 열심히 살아 있을 필요는없다고 생각했지."

열심히 살 필요. 열심히 살아 있을 필요. 선율은 세 음절을 빼고 더하는 것만으로도 느낌이 단번에 바뀐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병원은 흔적으로만 보았어도 병에 걸리는게 어떤 일인지는 잘 알았다.  - P43


아이가 아프다면 부모의 입장에서 이를 바라보는 것이 고통일 것이다. 그럴 때 그 기술에 의존하려 시도하지 않을까? 근데 과연 아이에게 그것은 행복일까? 불행일까? 


컴퓨터와 기계가 얼마든지 추억을 저장하고 편집할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하지만 아이를 다른 형태로 살리려 했던 부모의 선택은 한 아이에게 또 다른 형태의 고통이었다. 


고통을 견디며 살아가는 사람들은 그 시작을 찾아 헤매곤 한다. 나무의 밑동을 자르면 가지도 말라 죽듯이, 그것하나만 쳐내면 다른 아픔은 한순간에 사라질 거라는 믿음때문이다.  - P169


어머니는, 예전이었으면 그냥 죽었을 텐데 기술이 쓸데없이 좋아져서 사람을 괴롭힌다고 했다. 살아야 할 사람이나 죽어야 할 사람이나 나는 그게 쓸데없이도 아니었고 괴롭히는 것도 아니었다고 생각해. 여전히 그래. - P180


연명 치료에 대해서 현재도 많은 논란이 있다. 100세 시대가 되었으나 아프지 않고 온전히 사는 기간 사이에는 20여 년의 차이가 있다고 한다. 20년의 시간을 아프면서 보내야 하는데 과연 그 시간을 잘 견뎌낼 수 있을까? 나의 고통보다는 주변인들이 나를 보는 고통이 커서 그것을 견뎌내는 것이 더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얇지만 생각할 거리가 많은 소설이다. 그래서 좋았다. 어떤 순간이 오더라도 인간은 그 안에서 적응할테지만 지금의 기후 위기를 되도록 천천히 겪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인간의 의식과 기억이 기술의 발전으로 어떤 형태로 바뀌게 될까 생각해보는 기회가 되었다. 


뾰족뾰족한 기억 위에 시간을 덧붙여서, 아픔마저도 다른 것으로 바꿀 수 있다는 것. 고통을 지우는 게아니라, 잊는 게 아니라, 피해 가는 게 아니라, 그저 마주보면서도 고통스럽지 않을 방법이 있다는 것.

그리고 그건 다시, 다른 시간의 발판이 된다는 것. - P1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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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괭 2022-08-06 14:1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오 이런 내용이군요? 생각할 거리를 많이 던져주네요. 제게는 100세 넘으신 할아버지가 계신데 이제는 가실 때가 되지 않았나 싶어요.. 시아버지를 사십년 넘게 모시고 사는 숙모 생각하면 더욱요 ㅠ 그래도 막상 자기 일이 되면 아직 갈 때가 아니라고 생각한다던데.. 전 책을 더이상 못 읽게 되면 삶의 의미가 확 사라질 것 같습니다(듣는 건 더 먼저 어려워질 것 같고요)

거리의화가 2022-08-07 13:14   좋아요 2 | URL
100세 넘으시다니 저는 주변에 그런 분이 없으셔서. 어쨌든 돌봄이라는 문제가 얽혀 있으니 참 뭐라 말하기는 무엇합니다. 여러 감정도 혼재하구요~ 저도 책을 못 읽게 된다면 그 어떤 것으로도 슬픔이 채워지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스마트폰도 좀 덜 봐야 할 것 같네요(눈 건강을 위해)~

미미 2022-08-06 18:0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발췌문이 의미심장하네요. 남편과 얼마전에 연명치료에 대해 이야기했는데 저랑 완전 반대더라구요. 저는 가까운 이들의 죽음을 경험한 뒤로 되도록 깔끔?하게 가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했어요. 되도록 피해주지 않고, 되도록 좋은 기억으로 남기위해서요. 이런 책들을 읽으면 의식,무의식적으로 피하던 주제들을 자연스럽게 마주할 수 있어서 좋은 것 같아요^^*

거리의화가 2022-08-07 13:16   좋아요 2 | URL
저도 미미님과 비슷해요~ 주변에 피해가 안갔으면 좋겠어서 최대한 조용하게 가고 싶은데 하… 그게 쉽지는 않겠죠ㅠㅠ 옆지기도 저와 비슷해서 둘이 한날 한시에(!) 가지 않는다면 좀 피곤할 것 같기도 합니다^^; 제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생각해볼 거리가 많은 책이었습니다.

mini74 2022-08-06 18:4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죽음앞에서만은 주객이전도되는 것 같아요. 차마 살릴 수 있는데 보낼 수 없어 부모가 혹은 자식들이 택하는 다양한 방법과 치료들, 그 속엔 정작 아픈이의 선택은 무시되는 경우도 있죠 책 속 어머님 말씀처럼요 ㅠㅠ 뭔가 슬프네요. 어느게 정답인지 모르겠어요 ㅎㅎ

거리의화가 2022-08-07 13:18   좋아요 2 | URL
어머니 말씀 슬프죠. 저 문장이 저는 좀 울컥하기도 했어요. 그 마음이 이해가 되서~ 흠… 정답은 없는데 자식과 부모의 마음도 일면 이해가 되어서 결론 도출이 어렵네요. 죽음의 문제는 생각할수록 더 복잡하고 결론이 안나오는 문제입니다.

희선 2022-08-07 02:1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누군가는 지금은 약이 좋아서 사람이 오래 산다고 합니다 그 말도 맞기도 하네요 오래 사는 게 좋으면 좋겠지만, 그게 힘든 사람도 있겠습니다 아프지 않고 살면 괜찮지만... 한국뿐 아니라 어디나 물에 잠겼겠네요 빙하가 다 녹으면 사람이 살 수 있을지...


희선

거리의화가 2022-08-07 13:20   좋아요 2 | URL
약이 더 좋아지고 기술도 좋아져서 얼마든지 삶을 이어갈 수 있게 되긴 했지만 반대로 아프기 전에 가고 싶다라는 생각을 이끌게도 하는 듯합니다. 건강하게 오래 사는 게 쉬운 건 아니잖아요.
기후 위기는 전 세계 공통이죠. 기존의 섬나라는 해수면 상승으로 가까운 시일 내에 피해가 발생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새파랑 2022-08-07 08: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sf 소설이긴 한데 왠지 언젠가는 이런 일이 일어날거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수영이 생존에 필수가 될거같아요 ㅋ

거리의화가 2022-08-07 13:21   좋아요 2 | URL
현실적이어서 오히려 섬뜩함이 있는 소설입니다. 요즘은 이런 소설들이 많이 나오네요. 아무래도 기후 위기와 무관하지는 않아 보입니다ㅠㅠ
저는 수영을 전혀 못하고 물을 무서워하는데 진짜 생존수영이라도 배워야 하는거 아닌지ㅜㅜ

프레이야 2022-08-31 18:5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 책 의미심장하네요. 땡스투유~^^
다이브. 전 다이빙은커녕 수영도 못 배웠어요
물이 너무 겁나더라구요. 생존하려면 배워야할지도요.

거리의화가 2022-08-31 21:36   좋아요 1 | URL
물 무서워해서 수영은 시도조차 해보지 못했습니다. 저도 생존헤엄이라도 배워야하지 않을까 싶어요. 프레이야님은 이 책에서 더 많은 것을 느끼고 공유해주시지 않을까 기대가 됩니다. 감사합니다^^*

희선 2022-09-08 03:2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물, 2022년 8월에 내린 비도 기억하겠습니다 며칠전에 지나간 태풍도... 예전에도 피해가 있었지만, 지금은 더하네요 거리의화가 님 축하합니다


희선

거리의화가 2022-09-08 08:52   좋아요 2 | URL
2022년 8월 내린 비가 아마도 오래 기억될 듯 싶어요. 점점 이런 일이 늘어나는데 인간의 힘으로는 역부족이지만 최소한의 보완대책이라도 세워야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희선님도 당선 축하드립니다^^

mini74 2022-09-08 09:1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언제 봐도 반가운 화가님 요즘 제 책지름신으로 강림하신 화가님 ㅎㅎ
축하드립니다~

거리의화가 2022-09-08 09:16   좋아요 1 | URL
미니님의 책 지름신이 되다니 영광입니다~ㅎㅎㅎ 항상 미니님 리뷰 보고 저도 장바구니가 쌓여가고 있어요. 감사합니다^^

그레이스 2022-09-08 09:5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거리의 화가님 축하드려요~~

거리의화가 2022-09-08 10:52   좋아요 2 | URL
감사합니다^^ 그레이스님도 당선 축하드립니다! 명절 잘 보내세요.

겨울호랑이 2022-09-08 11:5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미래에 물이 잠긴 세상이라고 하니 개인적으로 케빈 코스트너 주연의 <워터월드>가 생각납니다. 한동안 유니버설 스튜디오에서 이와 관련된 쇼도 했었던... <워터월드>의 세계는 물에 잠긴 이후 현재와 단절된 양육강식의 미래인데 반해, <다이브>의 세계는 현재의 연장선상에 있는 미래라는 생각을 잠시 해봤습니다. 어느 미래가 더 현실적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우리가 상상하는 미래가 최소한 유토피아는 아니라는 점에서는 공통점이 있어 보여 조금 어두워집니다... 거리의화가님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려요!

거리의화가 2022-09-08 12:49   좋아요 2 | URL
이 책을 읽다 보면 미래 세대가 살기 더 팍팍해진 세계가 될 것 같은 암울함이 느껴집니다. 요즘 SF소설들은 기후 위기라는 주제를 많이 담고 있는데 실제로 얼마 전 우리가 겪기도 한 일이지요. 최대한 위기를 지연시키는게 현재 세대의 책무일텐데 최근 에너지 위기로 정책이 후퇴하거나 지지부진한 것 같습니다.

scott 2022-09-08 12:3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2057년의 대한민국
어떤 모습일지

화가님 리뷰 읽으며 예측하는 중 ㅎㅎㅎ

이달상 축하 합니다

오늘 지나면
낼 추석 연휴 시작
해피 추석 ^^

거리의화가 2022-09-08 12:51   좋아요 2 | URL
좋은 예측이 되어야 하는데 좋지 않은 생각만 드는건ㅠㅠ 그때 연금이라도 타먹을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ㅋㅋ

스콧님도 추석 연휴 즐겁게 보내세요*^^*

새파랑 2022-09-08 16:2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화가님 당선 축하합니다~!! 추석때도 열독하시길 바라겠습니다 ^^

거리의화가 2022-09-11 10:54   좋아요 2 | URL
열독 오늘 저녁부터 가능할 것 같아요ㅎㅎ 남은 명절 편안하게 보내세요^^*

페넬로페 2022-09-10 01:0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거리의화가님,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려요.
시댁 잘 다녀오시고, 즐겁고 행복한 추석 보내시길 바래요**

거리의화가 2022-09-11 10:55   좋아요 2 | URL
감사합니다 페넬로페님. 시댁 갔다오니 이틀이 후딱 갔네요. 남은 연휴는 책읽으면서 보내야겠어요. 연휴 잘 보내세요^^

책읽는나무 2022-09-10 08:3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오~오늘 알았습니다^^ 축하드려요. 화가님^^ 행복한 추석 되시길 저 또한 기원합니다.

거리의화가 2022-09-11 10:56   좋아요 2 | URL
ㅎㅎㅎ 나무님 인사 감사합니다^^ 연휴 때 고생 많으셨지요. 남은 연휴는 휴식하며 보내시길 바랍니다^^

하나의책장 2022-09-12 12: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려요^^

추석 연휴 행복하게 보내셨나요?
특히나 짧게 느껴지는 연휴라서 그런지 연휴 마지막 날이라 너무 아쉽지만, 마지막날도 행복하게 보내세요^^
 
조선총독부박물관과 식민주의 - 식민지 역사의 재현과 문화재 관리 일제 식민사학 비판 총서 2
오영찬 지음 / 사회평론아카데미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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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중앙박물관 이전의 역사는 어떠했을까. 과거의 유물이 일부는 이왕가 박물관으로, 조선총독부박물관으로 옮겨지는 동안 역사는 빠르게 변화하였다. 

종종 국립중앙박물관을 찾곤 했다. 상설전시장은 물론이고 특별전이 있을 때면 1년에 한 두번 정도는 먼 걸음이지만 찾아가 보았다. 지금도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박물관에서 평일 수요일 낮에 무료 강의를 열기도 했는데 그것도 몇 차례 들었었다.

전국의 많은 박물관이 있지만 국립중앙박물관은 특히 대한민국 이전의 많은 유물을 확인할 수 있는 곳이다. 


식민지에도 박물관이 설립되었다. 그 배경은 무엇일까. 선전과 홍보에 최적화된 탓일 것이다. 근대화의 바람을 타고 서구 문명이 최고라고 선전되던 때다. 자신들의 문명을 과시하면서 식민통치의 정당성과 합리성을 제시하는 장으로 박물관은 철저히 이용되었다. 식민지 조선에도 이에 부응하는 목적으로 조선총독부박물관이 세워졌다. 1915년 한일강제병합 이후 시정 5년 성과를 위한 조선물산공진회가 개최되었는데 공진회가 끝나고 난 뒤 미술관 건물을 전용하여 개관한 것이다. 총독부박물관은 경복궁 내 세워지면서 과거 왕조의 공간에 근대 공간인 박물관 건물을 세워 식민자 중심의 논리를 펼치는 장으로 이용되었다. 


이 책은 조선총독부박물관의 설립 과정과 목적, 조직의 운영, 박물관이 벌인 조사 사업, 시기에 따른 변화 과정을 상세히 소개하고 있다. 




총독부박물관은 조선총독부 내의 과 단위에 소속된 하부 기구로 출발했다. 때문에 관장직은 존재하지 않았고 운영 실무 책임자는 과장 아래에 위치한 주임급 정도였다. 박물관 인력은 제국대학 출신의 주임, 전문 기술자가 하부를 맡는 이원 구조였고 조선인의 참여는 배제되었다. 


총독부박물관을 설립하는 데는 초대 총독인 데라우치 마사타케의 역할이 컸다. 그는 총독 재임 기간 중 조선에서 많은 문화재를 수집하였는데 그가 수집한 유물은 1916년 조선총독부박물관의 초기 주요 컬렉션으로 자리매김할 정도로 양이 많았다. 데라우치가 박물관 설립을 결정하고 추진하는 데 영향을 끼쳤던 인물은 미술사학자인 오카쿠라 덴신, 역사학자 도쿄제대 구로이타 가쓰미, 건축사학자 도쿄제대 세키노 다다시이다. 실무자로는 오다 미키지로와 바바 제이치로가 총독부박물관 설립과 운영을 주도했다. 


총독부박물관 초기 전시물은 식민지 조사사업으로 이루어진 물품과 조선주차군사령부에서 받은 조선의 재래 병기, 데라우치 총독의 기증품을 기반으로 이루어졌다. 총독부박물관 상설전시는  재질별 전시에서 출발하여, 1921년 고대사 전시부터 시대사 전사가 이루어졌고 1926년이 되면 시대별 전시로 완전히 정착되는 흐름을 보인다.


조선에서 이루어진 문화재 조사사업은 고적조사라는 이름으로 조선총독부 통제 하에 이루어졌다. 고적조사란 식민지배를 위한 조사의 일환이자 식민지 문화재의 보존과 관리의 성격을 지녔다. 고적조사는 여러 부서에서 개별적이고 산발적으로 시행되었는데 1920년대 초반을 기준으로 제국대학 교수 주도에서 재조 일본인 주도로 주체의 변화가 일어난다. 고적조사는 총독부박물관의 주요 사업이었지만 재정난으로 인해 민간 모금을 통한 조사가 이루어진 경우도 많았다. 


1920년대 이후가 되면 박물관에 대한 확장 논의가 일어난다. 일제의 정당성 확보의 선전을 확보하고 박물관의 기능과 역할을 확대하기 위한 필요성이 높아진 탓이다. 결국 확장 계획은 1935년 시정 25주년 기념사업으로 추진된 종합박물관 건립계획으로 귀결된다. 하지만 태평양전쟁의 시작으로 박물관 소장품조차 공출의 대상이 되면서 확장 계획은 수포로 돌아간다. 


전쟁 피해 방지를 위한 박물관의 대응책 마련에는 일제와 조선 간의 차이가 있었다. 일본은 전쟁 피해로부터 박물관과 문화재 보호를 위해 적극적 대책을 마련하고 실행에 옮겼으나 조선 총독부와 행정 관료들은 소극적 태도를 취했고 오로지 박물관 식무 직원들의 노력에 의존하였다. 총독부박물관은 일본 제국대학 교수를 비롯한 일본인들의 전유물이었고 조선인 직원들은 초기에 일시적으로 차출되거나 1930년대 이후에는 말단으로 행정 보조 업무에 종사할 수 있을 뿐이었다. 당시 문화재 뿐 아니라 보호시설에 설치된 금속도 회수당하였고 사찰 문화재의 공출 피해도 컸다. 국내에서는 아직 일제 말 금속 공출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가 진행되지 않았는데 이는 심각한 전쟁 범죄이므로 반드시 체계적인 조사가 이루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총독부박물관 관람은 1937년 이전까지는 일본인 관람객이 많았고 이후에나 조선인 관람객이 급증한다. 이는 학교를 중심으로 한 단체 관람이 늘어났기 때문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초기에 조선인 관람객이 적었던 이유는 박물관 관람 문화가 생경했던 이유도 있겠지만 식민권력이 만들어낸 장소에 대한 의구심과 거부감도 존재했을 것으로 보인다. 


총독부박물관 주변에는 조선에서 생산된 고적조사의 결과를 자체적으로 소비하던 소수 계층이 존재했다. 일본 제국대학 교수와 총독부박물관을 중심으로 한 관변 고고학과는 다른 경성제대에 있었던 민간 학자들 중심의 경성고고담화회가 그것이다. 경성고고담화회가 나올 때쯤이면(1941년 이후) 관변고고학에서 축적된 고고학 지식이 유통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된다. 단, 이는 폐쇄적 성격을 지닌 단체였다. 여기에 참여한 조선인 김재원은 해방 후 국립박물관 관장을 맡게 되고 한국의 박물관계를 주도하게 된다. 김재원은 해방 이전 박물관 주임을 맡은 아리미쓰 교이치 등과 교분 관계를 유지하면서 인맥을 넓혔다.


꼭 기억해야 할 인물 두 명을 소개한다.


먼저, 구로이타 가쓰미다. 그는 일본 고문서학 체계를 수립하고 문화재의 보존과 조사에 지대한 역할을 한 도쿄제대 교수로, 일본 역사학계의 거물이다. 그는 1912년부터 국립박물관에 관한 구상을 강력히 펼쳐 박물관과 고적조사사업 및 보존관리가 하나의 기관에서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한 사람이다. 1915년부터는 한반도 고적조사에 관여하기 시작했고, 1916년 고적조사위원회를 발족시키는데 중심적인 역할을 했다. 1922년 조선총독부 정무총감인 아리요시 주이치와 대학 동창의 인연으로 조선사 편수작업을 진두지휘했다.


두 번째는 후지타 료사쿠다. 그도 도쿄제대 출신으로 1922년 조선총독부 고적조사 사무 촉탁으로 부임한 후 1923년이 되면 박물관 주임으로 임명되어 박물관 운영에 대한 실질 책임을 맡게 된다. 1926년 6월 경성제대 법문학부 조교수로 임명되었지만 촉탁 신분으로 박물관 주임직은 이후에도 계속 유지한다. 1932년이 되면 경성제대 조선사학 제1강좌를 맡게 되는데 이는 1945년까지 이어진다. 


둘은 조선 총독부박물관의 시작부터 끝까지를 책임진 핵심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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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2-08-02 13:2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YS 가 여러 실정을 했지만,
조선총독부 폭파 및 철거 진행
한 것 하나만큼은 속이 다 시원
했습니다.

거리의화가 2022-08-02 13:45   좋아요 2 | URL
그때 국민들의 열망이 컸었던 기억이 납니다^^; 저는 그때 크게 관심도 없었고 잘 모르던 때여서 감정이라는 것 자체도 없었던 것 같아요. 지금은 생각해보면 양가 감정이 듭니다. 건물을 존치시켰어도, 폭파 및 철거시켰어도 둘 다 만족스럽지는 않은데 굳이 선택하라면 존치를 하되 자리를 옮기는 방향을 바랐을 것 같습니다~ 어쨌든 역사의 기록이니 후학 연구를 위해서라도 남겨두는 게 좋지 않았을까 싶어서요. 어쨌든 한 왕조의 정궁 안에 떡하니 있었으니 언짢기는 했죠~;;;

독서괭 2022-08-02 13:4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호, 1995년에야 철거되었군요? 선전과 홍보에 최적화.. 우리 민족을 완전히 흡수해버리려던 거였겠죠? 잊으면 안 될 역사로군요. 덕분에 알고 갑니다^^

거리의화가 2022-08-02 13:52   좋아요 2 | URL
네. 그때 김영삼 정부의 역사 바로세우기 정책에 의하여 폭파 및 철거가 진행되었죠. 건물 자체가 정궁 안에 있다보니 국민들의 공분이 컸었던 기억이 납니다~ 철저히 일제는 조선 왕조의 기를 낯추면서 자신들의 우월성을 강조하려는 효과를 주기 위함이었을 겁니다.

그레이스 2022-08-02 14:1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 그 박물관 갔었습니다.
조금 음침하고 사람들이 없어서 으스스했던 기억이!^^;;

거리의화가 2022-08-02 16:08   좋아요 2 | URL
95년 이전에 가보신거군요^^ 왜 저는 가볼 생각을 못했을까요. 유물들은 다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옮겨졌으니 딱히 볼 것도 없고 건물만 덩그러니 있었을테니 음침하긴 했을것 같네요~ㅎㅎ

새파랑 2022-08-02 16:0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조선총독부 박물관 건립에 저런 목적이 있었군요. 저도 저게 폭파했다는 뉴스를 어렴풋이 본 기억이 납니다 ㅋ

거리의화가 2022-08-02 16:11   좋아요 2 | URL
식민지 박물관이라면 모두 저런 목적이 깔려 있을겁니다^^ 식민 지배 체제의 선전도구로 딱 좋거든요.
저도 조선총독부 건물 폭파 영상은 어렴풋하게 기억이 납니다.

mini74 2022-08-03 22: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궁궐을 떡 하니 가로막고 있던 그 건물 ㅠㅠ 요즘 미니어처로든 뭐든 새로 만든다는 소리에 뭐지? 하고있습니다. 총독부박물관의 설립이유, 문화재 공출 등에 열받지만 그래도 화가님덕에 자세히 알게 돼서 좋아요 ~

거리의화가 2022-08-04 09:15   좋아요 1 | URL
네~ 의도도 뻔히 보이고 국민들이 보면 열받을 만했죠~ 2년 넘게 국립중앙박물관을 방문하지 못했네요. 요새도 특별전 할텐데~ 날씨 선선해지면 한 번 들러봐야겠어요. 미니님 공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중국철학사 -상 - 완역판 까치글방 154
풍우란 지음, 박성규 옮김 / 까치 / 199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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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 오랜동안 역사를 읽어오면서 자국의 역사 뿐 아니라 이웃 나라인 중국과 일본에 대한 역사를 공부해야겠다 마음먹었던 기억이 난다. 구체적인 계기는 생각이 안나지만 아마도 차곡차곡 필요성이 누적된 것이라 여겨진다. 

이 책을 도전하기로 했던 이유는 결국 그것에서 출발한다. 중국의 역사를 들여다보면 결국 사상가들, 즉 철학자들에 주목할 수 밖에 없다. 그들이 중국사, 나아가 한반도와 일본 등지에 끼친 영향이 크고 심지어 이들은 동양 사상을 대표한다 여겨지기도 한다. 때문에 이들을 공부하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럽다 할 수 있을 것이다.


저자인 풍우란은 20세기 중국을 대표하는 철학자로 특히 이 책을 펴냄으로 인해 큰 족적을 남겼다 할 수 있다. 무려 27쇄다. 지금은 더 추가됐을 수도 있겠다. 한 권의 책이 20쇄가 넘어가도록 꾸준히 읽힌다는 것은 정말 가히 놀라운 일이다. 


저자가 사료를 선택한 기준은 다음과 같다. 

- 토론한 내용이 철학에 존재하는 문제들의 범위 내에 있는 것

- 새로운 “소견”이 들어있는 저술

- 철학자의 소견, 즉 중심 관념이 있는 것

- 이지적 논변으로 표출된 것

- 한 철학자에 관한 서술 가운데 인격을 드러내는 것

이렇게 선택한 자료를 헤겔의 정반합 관점과 연결시켰다는 것이 흥미로웠다. 정은 전통적 견해, 반은 실증을 찾을 수 없는 경우, 합은 실증은 찾을 수 없지만 상당수 발생원인이 있다고 여겨지는 경우다. 

이 책에 등장하는 여러 사상의 기초 저작을 싣고 저자의 견해를 밝힌 것이 대부분이다. 때문에 그대로 수용하지 않고 독자가 비판적으로 읽는 지혜가 필요하다. 관심이 가는 저작이 있다면 원전(또는 번역본)을 찾아 읽는 것이 필요하리라 생각된다.


철학이라는 용어는 서양에서 온 것이다. 중국 철학은 논증의 측면에서 서양 철학에 비하여 뒤떨어진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중국 철학자들은 지식을 위한 지식 추구를 하지 않았을 뿐 철학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중국인의 사상 속에는 한번도 "아"에 대한 뚜렷한 자각이 없었기 때문에 역시 한번도 "아"와 "비아"가 뚜렷이 분리된 적도 없었고, 따라서 인식의 문제(협의의)는 중국철학에서 한번도 큰문제가 되지 못했던 것이다. 철학자는 논변하지 않으면 몰라도 변한다면 반드시 논리학을사용해야 한다고 이미 말했다. 그러나 중국철학자들은 대체로 주장을 수립하는 데에 진력하지 않았기 때문에, 일어났다가 금방 사라진이른바 명가(名家)를 제외하고는, 사상과 논변의 과정 및 방법 자체를 의식적으로 문제시하거나 연구한 사람이 드물었다.

중국철학자는 또 인간사를 특별히 중시한 까닭에, 우주론에 대한 연구 역시 매우 간략했다. - P11


춘추시대부터 한나라 초에 이르기까지 중국역사는 정치, 경제, 사회 모두에 근본적인 변화를 맞이하며 해방의 시대(자학시대)를 맞았다. 봉록의 세습과 정전제가 무너지면서 서민이 사유재산을 획득하면서 부호가 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공자는 이전 제도가 무너져 가던 시기 등장하여 구제도를 옹호하기 위해 나선다. 이후 유가 학파가 공자의 사상을 계승한다. 자학시대는 전국시대 말이 되면 끝난다. 한 무제(140-87B.C.) 때 재상인 동중서는 공자를 숭상하며 유학을 제도권의 학문으로 끌어올리게 된다. 이 때부터 공자는 신이 되고 유가는 유교가 되었다. 


공자(551-479B.C.)는 중국 역사에 있어서 어떤 위치에 자리할까. 공자는 서양 철학으로 말하면 소크라테스와 비견되는 인물이라 할 것이다. 제자가 그의 사상을 정리하여 출판했다는 것도 비슷하고 사상 면에서도 유사성을 엿볼 수 있다. 공자는 주의 문화를 추종하여 주례를 잘 알았고 또 깊이 이해한 사람이기도 했다.


공자는 소크라테스와 흡사했다. 소크라테스도 원래 "소피스트였지만, 그들과 다른 점은 학생들에게 학비를 받지 않았고 지식을 팔지 않았다는 점이다.

소크라테스는(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귀납법으로써 정의(定義)를 구했고, 정의로써 우리 행위의 기준으로 삼았다. 공자 역시 정명(正名)을 주장했고, 명(名)에 대한 정의로써 우리 행위의 기준으로 삼았다. 소크라테스는 인간의 도덕성을 강조했다. 공자도 인간의 "인(仁)"이 "정치담당(從政)" 능력보다 더욱 중요하다고 보았다. - P92

소크라테스 사후에 그의 학파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선양, 발전 과정을 거쳐 마침내 서양철학의 정통이 되었다. 공자의 학파도 맹자와 순자의 선양, 발전 과정을 거쳐 마침내 중국철학의 정통이 되었다. - P93


공자는 각각의 이름들에 정의가 있고 정의가 뜻하는 바는 이름이 지칭하는 사물의 본질이라고 보았다(정명론). 공자는 정명론을 통해서 당시의 혼란상을 바로잡으려 했다.


공자는 당시에 이름이 바르지 못해서 어지러워졌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이름을 바룸으로써 당시의 폐단을 구제하고자 했다.  - P103


공자의 직, 인, 충, 서, 의, 리, 성 또한 밝혔다. 공자의 철학은 인간의 심리(마음의 도리와 이치) 측면을 매우 중시했다. 그래서 그후 유가는 모두 심리학을 중시했다.


정직이란 안으로 자신을 속이지 않고 밖으로 남을 기만하지 않고, 심중의 좋고 싫음을 그대로 나타내는 것을 말한다. - P113

인이란 우리 마음의 진실되고도 예에 맞는 발로로서, 동정심을 바탕으로 자기 마음을 미루어 남을 헤아리는 것을 말한다. - P117

"자기가 서고 싶으면 남도 세워주고 자기가 통하고 싶으면 남도 통해주는 것"이니 곧 충이다. "자기가 싫어하는 것은 남에게 강요하지 않는 것"이니 곧 서이다. 충과 서를 실행한다고 함은 인을 실행한다는 말이다. - P121

공자는 다섯 가지를 세상에 실천할 수 있으면 인이다고 했는데, 공손하면 남에게 모욕당하지 않고, 관대하면 많은 사람의 지지를 얻을 수 있고, 미더우면 남의 신임을 받고, 기민하면 공을 이룰 수 있고, 은혜로우면 남을 부릴 수 있다’는 것이다. - P124

"군자가 벼슬함은 자기의 의를 행하는 것일 따름인즉", "그 옳은 도리를 바룰 따름"이며, "그 도를 밝힐 따름"이다. 도가 과연 행해질지의 여부는 결과로서, "이익"이고 "공(성과)"이니, 반드시 "꾀하고" 반드시 "계산할" 필요는 없다. - P127

군자는 의리에 밝고 소인은 잇속에 밝다.

이것이 공자와 맹자의 일관된 주장이고 묵가와의 근본적인 차이점이다. - P127


묵자(475?-396B.C.)는 묵가 사상의 중심 인물로 귀족을 반대했고 주의 문물제도를 반대했기 때문에 당연히 유가와 대척점에 있는 입장이었다. 그의 사상의 핵심은 공리주의와 겸애 사상이라고 할 수 있다.


"모든 주장에는 반드시 세 표준이 있다.

첫째, 그것의 근거; 둘째, 그것의 실증성; 셋째, 그것의 응용성이다. 어디에 근거해야 하는가? 위로 옛 성왕의 사적(事: 과거에 경험한 역사적 교훈)에 근거해야 한다. 어디에서 실증되어야 하는가? 아래로 뭇 사람의 이목의 실제 경험에서 실증되어야 한다. 어디에 응용할 수 있어야 하는가? 정치제도에 응용하여 국가와 모든 이익에 적중할지를 살펴야 한다."

"국가와 모든 인민의 이익"은 바로 묵자가 모든 가치를 평가하는 표준이다. 모든 사물은 반드시 쓸모가 있고, 주장(言論 : 학설)은 반드시 행할 수 있어야만 가치가 있게 된다. - P144

겸애의 도는 타인에게 유리할 뿐더러겸애의 도를 행하는 사람 자신에게도 유리하다. 즉 "타인에게 이로울" 뿐더러 "자신에게도 이롭다." 즉 순전히 공리적인 측면에서 겸애의 필요성을 증명했다. 이것이 묵가의 겸애설이 유가가 주장한 인(仁)과 다른 까닭이다. 천하의 큰 이익은 사람들이 겸애하는 데에 있고, 천하의 큰 해악은 사람들이 서로 투쟁하는 데에 있기 때문에 우리는 전쟁을 배격해야 한다. - P157


맹자(371-289B.C.)는 인간의 본성이 선하다 생각했고 호연지기를 통해 덕을 함양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는 공자의 사상을 계승했으나 기존의 귀족을 위한 제도를 넘어서 백성을 위한 정치/경제 제도를 시행하려 했다는 점이 다르다. 모든 정책은 인민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는 생각이 마음에 들었다. 내가 공자를 읽을 때와 맹자를 읽을 때 태도가 달랐던 이유가 이것에서 온 게 아닌가 생각한다


인이란 "사람"이면 지녀야 할 마음이요, 의란 "사람"이면 따라야 할 길이다. 만약 "인에 거하지 않고 의를 따르지 않으면" 곧 사람이 아니다. - P204

"임금이 신하를 자신의 수족처럼 여긴다면 신하는 임금을 자신의 몸처럼받들 것입니다. 임금이 신하를 개나 말처럼 대한다면 신하는 임금을 일반인처럼 대할 것입니다. 임금이 신하를 초개처럼 취급한다면 신하는 임금을 원수처럼 여길 것입니다." - P206

인간에게 4단이 있는 까닭과 그리고 성이 선한 까닭은, 바로 성이 "하늘이 내게 부여한 것", 즉 인간이 하늘로부터 얻은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성선설의 형이상학적근거이다.

마음이 인간의 "대체(大體)"이므로 "자기의 마음을 다 발휘한 사람"은 "인간의 본성을 알게 된다." 이 본성은 바로 "하늘이 내게 부여한 것이기" 때문에 "자신의 마음을 다 발휘하고" "인간의 본성을 아는 것"은 또한 "하늘을 아는 것"이다. - P210


양주는 맹자와 동시대 인물로 위아 사상을 주장하며 자신을 존중하자 말하였다. 맹자는 양주가 일신을 께끗하게 하기 위해대륜을 어지럽혔다며 비판하였다. 하지만 노장은 양주의 사상을 계승함으로써 그의 사상은 이어질 수 있었다.


양주(일파)가 말한 것은 주로 우리 스스로 자신의 생을 손상시키지 않을 방법(道)이다. 그러나 이 세계에서 살면서 스스로 자신의 생은 손상시키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나를 손상시키는 다른 사람과 다른 사물은 항상 있는 것이다. 우리는 진실로 자신을 손상시켜서도 안 되지만 또한 나를 손상시키는 다른 사람과 다른 사물에도 대처해야 한다. 이 측면에서의 양주의 방책은 오직 피(避 :도피)라는 한 글자의 비법이있었을 뿐인 듯하다. 예컨대 "은자"의 "피세(避世)"가 그 예이다. 그러나 인간사는 변화 무궁해서 피하지 못할 해는 늘 있는 것이다. - P231


‘노자’라는 책은 초나라 사람인 이이가 쓴 전국시대의 저작으로 알려져 있다. 사마천은 이이를 전설 속의 노담으로 병치시켰는데 노담의 모습은 신령과도 같아 전설 속 인물의 모습이다. 이이가 쓴 기록에 노담의 전설이 더해진 후 순자, 장자 이후에는 노자학을 노담의 학문으로 자리하게 된다. 노자학과 장자학의 학설은 같은 듯 다르다. 노자가 말하는 이상적인 사회는 원시 사회가 아니라 소박함을 지키는 사회이다. 야만을 함유한 문명의 경지로 오래 지속 가능한 문명이었다. 노자는 도에 형이상학적 의미를 부여하며 만물의 생성에는 원리가 있는데 그것을 도라 한다 했다.


"초연히 홀로 신명과 더불어 거했다"는 말과 "홀로 천지의 정신과 더불어 교류했다"는 말만이 같은 의미이다. 이외에, 『노자』학은 여전히 선후(先後), 자웅(雌雄), 영욕(榮辱), 허실(虛實) 따위의 분별에 주목하여, "단단하면 깨지고 예리하면 꺾임"을 인식하고, 깨지지 않고 꺾이지 않을 술(術)에 주목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장자학은 "사생을 도외시하고 시종을 무시한다." 『노자』학에서 주목한 내용은 장자학에서 주목할 가치가 없다고 여긴 것들이었다." - P279

도가라는 명칭은 한나라 사람이 수립했다. 그들이 노장을 같은 도가로 여긴 것은, 『노자』학과 장자학이 서로 다르기는 하지만 다같이 당시의 모든 전통적인 사상과 제도에 대한 반대파였기 때문이고, 또『노자』학과 장자학이 논한 도·덕의 두 근본 관념도 같았기 때문이다. 이것이 한나라 사람이 그들을 도가로 통칭한 이유였다. - P281

사물은 유(有)라고 이름할 수 있지만, 도는 사물이 아니므로 다만 무(無)라고만 일컬을 수 있다. 그러나 도는 천지만물을 생성할 수 있기 때문에 유라고도 일컬을 수 있다. 따라서도는 유무를 겸한 말인데, 무는 도의 체(體)를, 유는 도의 용(用)을일컫는다. - P285


“변자”는 당시의 “유명 학파”로 “유명 학파”를 통칭하는 말이기도 했다. 변자 학설은 명리(이름에 근거한 판단, 논리학)에 근거를 둔 것이다. 혜시(350?-260B.C.)는 변자 중 하나로 그리스로 따지면 소피스트와도 같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장자의 학설은 “말”과 “지식”의 측면에서는 혜시와 일치한다. 그러나 장자는 혜시가 논변으로 명성을 추구하여 끝내 아무것도 성취하지 못하였기에 재능이 아깝다고 평했다. 


혜시는 단지 지식(知識)으로써 "만물은 어느 면에서는 모두 같고, 어느 면에서는 모두 다르다", "천지는 한몸이다"는 설을 증명했지만, 우리가 어떻게 해야 실제로 "천지와 한몸인" 경지를 경험할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 그러나 장자는 말(言) 외에 또 "무언(무言)"을 말했고, 지식(知) 외에 또 부지(不知)를 말했고, 이른바 "심제(心齋)", "좌망(坐忘)"을 통하여 실제로 망인아(我), 제사생(齊死生), 만물일체(萬物一體), 절대소요(絶對逍遙)의 경지에 도달했다. 따라서 「천하편」은 장자를 일컬어 "위로는 조물자와 더불어 노닐었으며 아래로는 사생을 도외시하고 시작과 끝을 무시하는 자와 더불어 벗했다"고 한 반면, 혜시는 "도덕수양이 빈약하고 사물의 해설 따위에 뛰어났은즉 매우 협착한 길이었다"고 평했다. 이로써 보건대 장자의 학문은 참으로 혜시에서 다시 진일보한 것이었다. - P324

혜시의 관점은 개체를 강조한 것임을 알 수 있다. 개체는 항상 변한다. 따라서 혜시의 철학은 변화의 철학이라고 할 수 있다.- P353


장자학은 전통적 사상과 제도에 반대하는 태도를 견지했는데 유묵을 공박했으나, 노담은 우러러 공경했다. 맹자와 장자(369?-286?B.C.)는 동시대인이었다. 장자의 학문은 양주의 학문이 진일보한 것으로 맹자의 관점에서 보면 장자도 양주의 추종자였고 장자 역시 맹자를 공자의 추종자로 보았다. 장자학이 논한 도와 덕은 노자와 같았으나 그는 천지만물이 변화 가운데 존재한다고 보았다. 본성을 따르는 것이 행복이고 사물은 모두 동등하므로 도와 합일할 수 있다면 하나의 경지에 이를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의 우주론이 신비주의로 여겨지는 것은 우주와 합일하는 경지에 이르는 것을 최고의 경지라 보았고 그곳에 이른 이를 지인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만물의 생성은 마치 말이 질주하는 것과 같다. 움직여 변하지 않는 것은없고, 잠시도 변천하지 않는 것은 없다. - P363

정치적, 사회적 각종 제도는 장자학의 관점에서 보면 모두 다만 인간에게 고통을 주기에 충분한 것일 뿐이다. 사물의 본성은 지극히 상이하여 사물마다의 취향(所認爲之好)이 존재하기 때문에, 꼭 같을 필요도 없고 강제로 같게 해서도 안 된다. 사물이 한결같지 않으니, 한결같지 않은 대로 맡겨두어야 한다. 이른바 한결같게 하지 않음으로써 한결같게 한다(以不齊齊之)는 말이다. 정치적, 사회적 각종 제도는 모두 하나의 취향(一好)을 정하여 행위의 기준으로 삼아 사람들로 하여금 따르게 한 것이므로, 한결같지 않은 것을 강제로 한결같게 만든 것으로서 사랑이 오히려 해가 된 경우이다. - P366

맹자의 철학 속에 존재하는 신비주의의 경우, 신비주의적 경지에 도달하는 맹자의 방법은 "자강불식 서를 실천하여(強恕)" "인을 구함(求仁)"으로써, "만물이 다 내게 구비되어 있으니, 자신을 돌이켜 참될(誠) 수 있으면 그보다 더 큰 기쁨은 없다")는 경지에 이르는 것이라고 말했다. 장자학이 사용한 방법은 인식의 측면에서 모든 분별을 없애고, "천지는 나와 더불어 생겼고 만물은 나와 더불어 하나이다"는 경지에 이르는 것이다. 이 두 방법은 중국철학사상 분파하여 나란히 대치하여 상당한 이채를 띠었다. 그러나 장자학의 방법은 위진(魏晉) 이래로 다시 거론한 사람이 없게 된 반면, 맹자의 방법은 송명(宋明)의 여러 철학자들에 의해서 발전되고 제창되었으니, 두 파의 운명은 이렇게 달랐다. - P391


묵가의 묵경은 유가의 순자, 정명편처럼 변자의 학설을 논박한 것이다. 묵가는 유가보다 더욱 논변을 중시했고 묵가의 제자는 4개의 파로 나뉘었다(상리씨 유파, 상부씨 유파, 등릉씨 유파, 송견과 윤문 일파).각 파들은 서로 달랐고 상대를 별묵이라고 부를 정도로 자기들이 정통이라 주장했다. 묵경에서도 공리주의를 논하면서 이익이 행위의 기준이 되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또한 묵경은 인간의 인식 능력을 인간 생명의 본질로 여겼다.


욕망사항은 항상 그 이익을 놓고 올바로 가늠(正權)해야 하고, 혐오사항은 항상 그 손해를 놓고 올바로 가늠해야 한다. 「경설」 : 권이란 두 가지 이익과 손해를 치우침 없이 고려하는 것이다." - P400


순자(298?-238?B.C.)는 공자를 존숭한 반면 맹자에 대해서는 비판적 태도를 견지했다. 손자는 맹자와 기질적으로도 학문적으로도 차이가 있었다.


공자는 어질고 슬기로웠으며 가로막히지 않았다. 따라서 천하통치에 대한 그의 학술은 선왕(先王)에 비해서 손색이 없었다. 일가(一家)의 언설로서주도(周道:周의 정치철학)의 핵심을 파악했고, 나아가 그것이 널리 앙양되고 통용되게 된 것은 그가 어떠한 기성의 잡설에도 가로막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공자의 덕은 주공에 비견되었으며, 이름은 삼왕(하의 우왕, 은의 탕왕, 주의 문왕 또는 무왕)과 더불어 드날리게 되었으니, 이것이 바로 편견 없는(가려막히지 않은) 인식 체계의 복이다. - P451

단지 선왕(先王)의 지엽적인(피상적인 것만 본받고 선왕의 근본정신을모르면서도, 오히려 재주를 과시하고 뜻만 커서 견문은 잡다하고 해박했기에, 옛것에 빗대어 새 학설을 조작하여 오행(五行:五常)이라고 했다. 그들의 견해는 기묘하고 모순되어 기준이 없고, 불분명하여 논리적 근거가 없고, 난삽하여 해명할 수 없는 것들이었다. 그런데도 그 말들을 수식하고 찬양하면서 "이야말로 진정한 선배 군자(즉 공자의 말씀이다"고 말한다. [이 사조는] 자사(子思)가 창도했고 맹가(孟軻)가 동조했다. 세속의 어리석고 눈먼 유생들은 그저 떠들고 있지만 그것의 그릇됨을 모르고 있다. 드디어 서로 전수하면서 공자와 중궁이 그들 덕분에 후세에 더욱 추존되었다고 주장한다. - P452


순자는 자연지천을 주장했고 이는 노장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순자는 공맹과는 다르게 성악설을 주장했다. 또한 왕도정치와 패도정치를 구분한 맹자와는 달리 순자는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종류의 차이가 없다고 여겼다. 공맹의 정명은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관점에 치우쳐 있었으나 순자의 정명론은 묵자의 관점과 오히려 비슷했다(인간이 가진 인식능력이 지이고, 지가 외물과 접촉하는 것이 인식이며 이름을 통해서 실제 사물에 지위를 부여하는 것이다.).


배울 수 없고 도모할 수 없는 천성적인 것을 성이라고 한다. 배워서 얻을 수 있고 도모하여 성취할 수 있는 인위적인 것을 위라고 한다. 이것이 바로 본성과 인위의 분별이다. - P461

우리는 무엇으로써 도를 인식하는가(知道)? 그것은 바로 심(心)이다. 심은어떻게 하여 [도를] 인식하는가? 허일이정(虛壹而靜 : 허심, 전일, 평정)함으로써 인식한다. 심은 잠시도 [생각을] 저장하지 않을 때가 없지만 거기에는 이른바 허(虛: 비어 있음)가 존재한다. 심은 대립적인 것들이 없을 때가 없지만 거기에는 이른바 전일함(一:專一)이 존재한다. 심은 잠시도 활동하지 않을 때가 없지만 거기에는 이른바 평정(靜)이 존재한다. - P468

성취하는 데에 재능을 다 발휘하여 도야된 성품을 지속시켜 처음 상태로 되돌아가지 않으면 교화된 것이다. - P471

○ 임금이란 공동체(사회)를 잘 경영하는 사람이다. 공동체의 도리가 정당하면 만물은 각기 그 적합성을 획득하고, 육축이 잘 자랄 수 있고, 뭇 생물이제 명을 다할 수 있게 된다. 따라서 제때에 기르면 육축은 잘 자라고, 제때에벌목하고 식목하면 초목은 번성하고, 제때에 정령이 발해지면 백성들은 단결하고 어진 인재들은 복종하는데, 이것이 바로 성왕의 제도이다. - P480


법가의 학설은 제나라와 삼진(한, 위, 조)에서 성행했다. 당시 현실은 귀족정에서 군주정으로 가던 때였는데 인민은 독립하고 자유로워지고 국가 범위는 넓어지고 조직이 복잡해지면서 사람 간의 관계가 이전보다 친밀하지 않게 되면서 인물로 사람을 다스리는 정치는 먹히지 않게 되었다. 법가는 한대에 와서 사상으로 자리하게 된다. 법가하면 한비자만 있는 줄 알았는데 그 전에 세 파가 존재했다. 신도(395?-315?B.C.), 신불해(385?-337B.C.), 상앙(390?-338B.C.)이 그 중심 인물이다. 세 파는 각각 세(임금은 위세가 있어야 신하를 부릴 수 있다)와 술(군주가 신하를 제어해야 한다), 법(신하가 준수할 법규가 있다)을 중시하는 점이 달랐다. 이 세 파를 하나로 집대성한 사람이 한비자(279?-233B.C.)다. 


법이 통일되지 않으면 군주에게 불길하다.…………즉 법이란 고정불변적이지않으면 안 된다는 말이다. 법이란 존망(存亡)과 치란(亂)이 갈라지는 근원이요, 성군(聖君)이 천하의 대(大)의표가 되는 수단이기 때문이다.……………만사만물은 법에 규정된 것이 아니면 행해서는 안 된다. 따라서 법이란 천하의지극한 도술(道)이요, 성군에게 가장 실용적인 기물이다.………법을 만드는이가 있고, 법을 수호하는 이가 있고, 법에 복종하는 이가 있다. 무릇 법을만드는 이는 군주요, 법을 수호하는 이는 신하요, 법에 복종하는 이는 일반백성이다. 군신(君臣), 상하(上下), 귀천(貴賤)을 막론하고 모두가 법을 따르는것, 이것이 바로 태평성세(大治:太平)이다. - P511

일은 사방에 있지만 관건은 중앙에 있다. 성인(聖人 : 명철한 군주)이 관건을 쥐고 있으면 사방의 신하들이 저마다 공력을 바친다. 군주가 허심한 태도로 신하를 대하면 신하들은 각자의 능력을 운용한다. 군주는 이미 온 천하를 품에 안았으면 은밀한 가운데서 신하들의 동태를 관찰한다. 좌우에 보필하는 신하가 세워졌으면 문을 열고 모든 것을 맞아들이기만 하면 그만이다. 군주가 변경하거나 바꾸지 않고 오직 두 가지(二: 形, 名)를 바탕으로 행하여, 중단 없이 행하는 것이 바로 "법도의 실천(履理)"이다. - P525


진한 무렵 예기, 효경, 대학, 중용을 통해서 이론을 뒷받침하는 저작이 정리된다. 예기에는 주로 예를 논하고 있는데 사람과 사람 간의 충돌을 막기 위해 든 예라는 이론은 차별을 낳고 분리를 낳아 구조적 폐쇄성을 낳는다고 보인다. 오랜동안 이것이 고착화되었고 이는 오늘날로 보면 고리타분한 이론으로 느껴질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예란 인간의 성정(人之情)에 의거하여 그것을 절제하고(節) 격식화하여(文) 인민의 단속(民坊)을 도모하는 것을 말한다. 예의 기능(禮之用)에는 두 측면이 있는데, 하나는 "인간의 성정"을 "절제하는" 측면이고, 하나는 "인간의 성정"을 "격식화하는" 측면이다. 먼저 "인간의 성정"을 "절제하는" 측면에 대해서 논한다. 인간의 정욕의 발로(情欲之流露)는 적당한 절도와 본분(分限)에 맞아야 한다. 절도와 본분에 맞는 것이 곧 중도(中)에 맞는 것이다. 중도란 인간의 정욕발로의 적절한 한 지점으로서, 이 지점을 넘으면 남혹은 자기 자신의 다른 측면과 충돌이 생긴다. 예란 인간에게 중도를 얻게 하는 표준적인 외부규범이다. - P538


전국시대 말이 되면 유가의 육예인 시, 서, 예, 악, 춘추, 역이 정립된다. 진한은 통일 후 정치나 사회상으로 각종 제도를 정립할 때 유자의 힘을 빌렸는데 유자는 이전의 제도에 밝았고 공자 이래 기존 제도에 부여한 각종 이론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 여러 사람의 사상이 포함된 유가의 사상은 탄력성이 있어 흡수할 수 있는 범위가 넓었던 이유도 있다. 따라서 진한 통일 이후에는 유가에 필적할 수 있었던 사상은 없었다.


○음양이 교대로 작용하는 것이 도(道)이다(一陰一陽之謂道). 도를 이어받은 것이 선(善)이고, 도에 의해서 성취된 것이 성(性)이다. [이 도는 어진 이가 보면 어질다고 하고, 지혜로운 이가 보면 지혜롭다고 하며, 또 백성들은 날마다 도를 사용하면서도 인식하지 못한다. 따라서 군자의 도를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도는 만물을 생육하는 인(仁)에 드러나 있지만, 그 작용은 은밀하여 감추어져 있다. 만물을 약동시키지만 즉 만물에 생명을 불어넣음] 성인처럼 걱정하지 않는다. 그 도의 성덕(盛德 : 왕성한 능력)과 대업(大業 : 즉 만물)은 지극하다. 우주간의 모든 존재가 대업이고, 끊임없는 혁신(日新)이 성덕이고, 끝임없이 낳고 또 낳는 것이 "역(易)"이다. - P607

고인은 얼마나 완벽했던가(備)! 신명(神明)에 짝하고 천지를 본받아 만물을 양육하고 천하를 화평시켰다. 그 은택은 모든 백성에 미쳤고, 본수(本數:본질적인 법도)에 밝았고, 그것들을 말도(度 : 말단적인 제도)와도 연계시켰다. 상하 사방 모든 곳과 대소(大小), 정조(精粗: 심오한 것과 조잡한 것)를 막론하고 그들의 영향은 무소부재했다. 그 가운데 명확히 본수와 말도(數度)에 해당되는 것들은 옛날의 법도와 사관들의 기록 속에 아직 많이 보존되어 있다. 그리고 『시』, 『서』, 『예』, 『악』속에 기록된 가르침들은 추노의 선비(鄒魯之士)와 진신선생(搢紳先生)들 대부분이 통달하고 있다. - P642


중국철학사 상권은 자학시대의 사상을 역사적 흐름에 따라 고찰하였다. 하권은 경학시대로 청나라 시대까지를 다룬다. 

사실 철학사 책이 재밌을 수는 없다. 읽다가 졸기도 하고 정리하느라 애를 먹었으나 이렇게 한 번 훓고 나니 유가, 도가, 법가 사상 등의 등장 배경과 이론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앞으로 중국 문학과 역사를 읽을 때도 이해의 깊이를 넓힐 수 있는 기회가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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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74 2022-07-30 19:1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우와 화가님!!👍변자 혜시 새로운 걸 많이 알아갑니다 ㅎㅎ 전 묵자가 좋더라고요. 실제 얼굴이 검었다고 노동자계급이었을거란 글 생각납니다. 잘 읽고 갑니다 화가님 *^^*

거리의화가 2022-07-30 20:02   좋아요 1 | URL
미니님 저는 묵자 하면 겸애만 떠올렸는데 공리주의를 주장한 것이 흥미롭더라구요. 저는 노자가 이야기한 이상 사회가 가장 마음에 와 닿았어요. 안분지족? 소박함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라는 생각이 들어서요. 변자, 혜시 저도 이번에 처음 알았답니다^^ 이리도 다양한 학파들이 나와서 오늘날까지 전해지는 걸 보면 당시 사람들도 세상을 개혁하고자 하는 꿈과 이상이 있었던거겠죠. 감사합니다^^

희선 2022-08-01 02:0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래전 사람이어도 지금까지 책이 읽히기도 하는군요 제대로 읽어본 건 하나도 없지만... 공자나 노자는 여러 사람이 말하기도 한 듯합니다 장자도... 이 책 보기 쉽지 않았겠습니다 상권 다 보셔서 뿌듯하시겠습니다 거리의화가 님 남은 하권도 끝까지 보시기 바랍니다


희선

거리의화가 2022-08-01 15:26   좋아요 2 | URL
몇 천년전의 학자와 철학자들의 사상이 지금까지 영향력을 미치는 것을 보면 놀랍죠^^ 아마도 여기 나온 사상가들의 철학을 제대로 공부한 이들은 드물 듯 싶습니다. 각 저작들의 부피도 상당하고 일단 한문이라 쉽지 않죠. 상권을 읽은 김에 하권도 이어서 보려고 계획은 잡았는데 상권보다는 덜 어려웠음 좋겠습니다ㅎㅎ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