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아침, 리모컨을 누르다가 모처럼 KBS TV <체험 삶의 현장>에
채널을 고정시켰다.
탤런트 임현식이 된장인지 고추장인지 전통장을 순 우리 식으로 만드는 곳에 나가
특유의 너스레를 떨고 있었다.
그런데 일당 7만 원, 성금 15만 원, 도합 22만 원이 든 두 개의 봉투를 흔들며
공중의 목마에 올라타는 게 아닌가.
<체험 삶의 현장>은 <전국노래자랑>과 함께 내가 꽤 오래도록 좋아한
프로그램 중 하나였다.
사회 저명인사나 인기 연예인이 허름한 옷으로 갈아 입고, 혹은 앞치마를 두르고
땀을 뻘뻘 흘리며 논밭에 엎드려, 혹은 식당 같은 데서 일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일에 서툰 그들이 실수라도 할라치면 일당에서 제하겠다느니 호통을 치고 놀려먹는
주인이나 관리자의 모습도 유쾌했다.
하루의 노동에서 풀려난 연예인이 꼬질꼬질한 모습으로 몇 푼 안 되는 일당을 받고
환호하는 모습이나, 함께 일한 사람들과 얼싸안고 악수하는 모습은 또 어떤가.
(그 중에서도 내가 제일 고대한 장면은 점심이나 새참이 나오는 순간이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한 개 두 개 거슬리는 점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자기 가게나 공장 등 일터로 직접 왕림한 연예인의 '딱 하루 혹은 한나절 노동'에
지나치게 감읍하는 태도라든지, 너무나 작위적으로 인간적인 모습을 연출하는
출연자의 모습은 그렇다고 치고.
제일 수상한 건 언제부턴가 등장한 일당 외의 봉투이다.
땀을 뻘뻘 흘리고 궂은 일을 하고 돌아가는 연예인에게 미안해서인지,
혹은 불우이웃돕기라는 프로그램의 정신에 공감해서인지 일당 외에
목욕값, 맥주 한잔 등의 명분으로 의뢰자들이 봉투를 하나 더 챙기기 시작한 것이다.
내가 기억하기로는 처음에 1만 원 내외였다.
그런데 점점 그 액수가 커지더니 이번주 오랜만에 봤을 땐 일당의 두 배를
거뜬하게 뛰어넘은 것이 아닌가.
임현식에 이어 뻘밭에서 연근 캐는 일을 하고 돌아온 방송리포터 조영구와
그 멤버들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불우이웃을 돕는 데 한푼이라도 더 보태는 건 좋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좀 이상하다.
유명인사의 육체노동, 정당한 노동의 댓가로 불우이웃을 돕는다는 게
이 프로그램의 취지였다.
일당보다 높은 성금 액수 때문에 마음이 불편한 사람도 적지 않을 듯.
아무도 모르게 슬금슬금 잠식해 들어와 뿌리를 내리는 잘못된 전통은
대부분 이런 방식으로 구축되는 것일까.
그 또 하나의 봉투는 '성금'이라는 이름으로 예쁘게 포장되었지만,
내 눈엔 상품값보다 비싼 팁을 지불하는 것처럼 어리석고 우스워 보인다.
모쪼록, 그들이 자기 일터의 식구들도 그렇게 후하게 대접하기만 바랄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