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더워져 거실 창을 아예 열어놓고 지낸다.
다른 아파트로 치면 2층 같은 높이의 1층이라 방충망만 제대로 닫는다면
창을 열어놓아도 무방하다.
주말에는 치킨집이며 중국집이며 음식들을 많이 시켜먹는지
사람들이 쉴새없이 벨을 누르고
인터폰을 향해 "음식 배달 왔습니다!" 고함 지르는 소리가 들려온다.
그런데 지난주 토요일엔 "엇!" 혹은 "꺅!" 하는 괴성과 함께
이상한 소리가 수시로 귀에 잡혔다.
"이, 이거 똥 아니야? 개똥인가?"
"개똥 맞는 것 같네. 그런데 주인이 누구야, 왜 안 치웠지?"
내려다보니 색깔이며 모양이며 정말 그 물건으로 추정되는 것이
아파트 입구 바닥에 널부러져 있다.
어떤 사람은 개주인에 대해 불평을 터뜨리며 관리실에 연락해야겠다고
언성을 높였다.
아빠와 함께 그 앞을 지나던 어린 소녀는 비명을 지르며 멀찌감치 달아났다.
나는 소동이 일어날 때마다 창쪽으로 다가가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점점 마음이 불편해졌다.
'개똥, 나도 싫은데......'
그것에 자꾸 신경이 가 텔레비전을 틀어놓아도 화면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날이 조금씩 어두워 오고 있었다.
개똥은 얼핏 보면 오래 된 바나나 껍질처럼 보였다.
문득, 모르고 지나던 사람이 그것을 밟고 미끄러져
뇌진탕을 일으킬지도 모른다는 데 생각이 미쳤다.
그러고 보니 우리집 부녀도 아직 외출중이다.
나는 벌떡 일어나 검은 비닐봉지와 신문을 주섬주섬 챙겼다.
망설인 시간이 꽤 긴 것에 비해 나의 행동은 재빨랐다.
신문을 크게 두세 겹 접어 구기는 순간 숨을 멈추고 재빨리 손으로 그것을 끌어모았다.
흔적이 최대한 남지 않게.
그런데 미끄덩~ 감촉이 이상하다.
약간의 물기만 남고 바닥에 아무 흔적이 없다.
비닐봉지 속에 집어넣기 전에 자세히 살펴보니, 그것은 가지였다.
보라색 껍질을 벗겨낸 시든 생가지 두어 토막.
굵기며 색상이며 정말 똑같았다.
가까이에서 살펴본 사람들도 감쪽같이 속았을 정도로.
비로소 나는 콧구멍을 열고, 만세를 부르며 집으로 들어왔다.
검은 비닐봉지를 덜렁이며......
'콧구멍을 벌렁이며 만세삼창' --'개똥'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