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와 오늘 아침은 울타리콩이 쌀알보다 많은 밥을 푹 끓여
죽도 아니고 누룽지도 아닌 묘한 형태로 먹었다.
2년 전인가는 잘 말린 시래기에 갑자기 필이 꽂혔는데 올해는 콩이다.
봄부터 여름까지 주로 서리태를 사서 물도 끓여 마시고 밥에 듬뿍 넣어 먹기도 했는데
검정콩을 삶아 갈아 우유와 섞어 마시는 건 딱 한 번 해보고 말았다.
고소하고 맛은 괜찮았는데 믹서기를 꺼내는 그 한 번의 과정이 몹시 귀찮았기 때문이다.
엊그제 아파트 단지 내에 장이 서서 가봤더니 잡곡을 파는 코너에
'울타리콩'이라는 팻말을 꽂은 통이 눈에 띄었다.
"앗, 울타리콩이다!"
나는 오래 전 헤어진 친구를 우연히 만난 듯 반가워 달려들었다.
울타리콩은 한달 전인가 얼마 전 나의 수첩 귀퉁이에 꼭 읽고 싶은,
한 권의 책제목과 함께 메모되었다.
잉마르 베리만 감독의 자서전 <마법의 등>.
무슨 책인가를 읽다가 지금은 절판된 베리만 감독의 책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급히 적어 넣은 것 같은데, 울타리콩이 왜 그 옆에 있는지는 알 수 없다.
아무튼 좋아하는 감독의 자서전 옆에 적혀 있다는 이유 때문에
울타리콩은 단순한 콩이 아닌, 뭔가 신비하고 다정하고 매력적인 존재로
내 안에서 격상되었다.
강낭콩과 비슷하게 생긴 울타리콩은 선명한 자주빛으로
눌러보니 손톱이 들어가지 않을 정도로 야물었다.
콩이니까 다 비슷하겠지 생각하고 검정콩처럼 10분쯤 미리 삶아
불려놓은 쌀과 함께 솥에 안쳤다.
그런데 따글따글 익지 않은 콩이 입 안에서 따로 논다.
쌀 반 콩 반으로 밥을 지어 아이들 밥을 따로 펐더니 어른들이 먹는 밥은
쌀알보다 콩이 더 많다.
할 수 없이 콩만 따로 긁어 솥 한 귀퉁이에 모아놓았다.
어제 아침 물을 부어 누룽지를 끓인다고 끓였는데 뚜껑을 열자
어마어마하게 몸을 불린 울타리콩의 크기에 깜짝 놀랐다.
밥으로 치면 한 공기 반 남짓이었는데 그 양이 어마어마했다.
그런데 단팥죽 맛이 살짝 나는 게 아닌가.
절반을 덜어 배불리 먹고, 절반은 밀폐용기에 담아 냉장고에 넣어놨다가
오늘 아침 물을 조금 붓고 다시 끓였다.
조금도 남기지 않고 다 긁어먹고 났더니 아주 흡족했다.
(별것 아님, 라면의 유혹을 이겼다는 것.)
그나저나 왜 울타리콩이 <마법의 등>과 함께 적혔을까?
설겆이를 하는데 갑자기 생각나는 게 있어 조금 전 수첩을 뒤져보았다.
그 페이지의 몇 장 앞에는 가을에 한 번 가봐야지 하고 적어놓은 삼청동의 식당과
가게 이름들이 있었다.
튀김집 '바삭'과 함께, 유명한 죽집 '서울서 둘째로 잘하는 집'......
그 집은 특히 단팥죽으로 명성이 자자한데 '곱게 갈은 팥앙금에 울타리콩을 삶아 넣은
것이 특징이다'라는 메모가 덧붙여져 있었다.
잉마르 베리만 감독의 부인 이름이 리브 '울'만이다.
베리만의 필모그래피에는 배우 리브 울만의 이름이 항상 따라다닌다.
그의 책 제목을 적어넣으며 나는 그녀의 얼굴을 떠올렸고
그 무렵 어떤 잡지에서 읽은 삼청동의 죽집과 '울타리콩'이 생각났던 것이다.
(이래서 요즘 우리 가족이 나를 사오정이라 부르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