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저녁 태권도 교육비를 체육관에서 보내온 봉투에 넣으며
목에 걸 수 있는 비닐 코팅 봉투가 좋던데 왜 이걸로 바꿨을까, 궁시렁대며
반으로 잘 접어서 아이 손에 들려 보냈다.

그런데 5분 후 태권도장에서 전화가 왔다.
"봉투 속에 만 원짜리 한 장밖에 없는데요?"
"예?그럴 리가! 확인해 볼게요."

봉투를 미리 준비해 놓았던 화장대 서랍을 샅샅이 뒤져보아도 돈은 안 보인다.
그제서야 아이가 평소 학교에 갈 때 신발주머니를 공중으로 번쩍 360도로 돌리며
걸어가는 와일드한 모습이 생각났다.
돈봉투를 한쪽 귀퉁이만 잡고 그렇게 돌리며 갔다면 지폐는 낙엽처럼 흩날렸을 것이다.

혹시나 싶어 계단을 뛰어내려가 아이가 태권도장에 가는 코스를 절반쯤 눈으로 훑었다.
역시 지폐는 안 보인다.

태권도를 마치고 돌아온 아이에게 태권도장에 가던 모습을 재연시켜 보았다.
내 짐작이 맞았다.
아까워라, 8만 원!
알라딘에 책을 열 권 주문할 수 있는 돈인데.....

아이에게 앞으로는 그러지 말라고 단단히 주의를 준 후 일단 그 건을 끝냈다.
그런데 텔레비전을 보다가 문득  길거리에 뿌린 배추벌레 여덟 마리를 생각하니
뒷골이 땡겨왔다.

"아이고, 8만 원! 주하야, 생각할수록 아까워 죽겠다!"

그랬더니 마이 도러, 내게 이런다.

"엄마, 자꾸 생각하면 뭐해. 다른 좋은 일을 생각해야지. 기분만 나쁘잖아."

"너는 그 돈이 아깝지 않냐? 누군지 몰라도 땡잡았겠다. 한 장 주웠더니 앞에 또 한 장이......"

"어떤 좋은 사람이 주워서 경찰서에 맡겼는지도 모르지!"

허거거걱이다.

아이가 봉투를 빙빙 돌리며 나비처럼 달려간다.
봉투에서 빠져나온 지폐가 공중에서 몇 번 돌다가 보도블럭 위에,
길가의 파밭에 사뿐 내려앉는다.

지폐 한 장이 너무너무 아쉬운 사람의 눈에 띄어, 쌀 한 봉지와 바뀌어지기도 한다.
그랬으면 정말 좋겠는데......

나중에 시장 가는 길에 파밭을 집중 조사해야겠다.
주인의 품에 돌아오고 싶어서 몸을 숨기느라 납작 엎드린  녀석이 한 놈이라도 있을지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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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딧불,, 2006-07-06 10: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도 주하 이쁘다!
(그러게 아깝긴 합니다..)

물만두 2006-07-06 10: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아까워요 ㅠ.ㅠ

mong 2006-07-06 10: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주하의 대답은 정말 의젓한데요?
(주하는 뭘해도 이쁘다는...)
=3=3=3

oldhand 2006-07-06 10: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하 주하의 대사를 들으면 마치 돈을 잃어버린 사람이 엄마인것 같네요. ^-^

라주미힌 2006-07-06 10: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8만원 벌려면... 흰머리카락 몇 개를 뽑아야 하며, 신발장 몇 번을 정리해야 하는지를 알려준다면~!! ^^;;;;;; ㅎㅎㅎㅎㅎㅎㅎ

착하네요. 나도 그런 대답을 했을겁니다. (음화화)

해리포터7 2006-07-06 11: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까버라 로드무비님~ 저같으면 그밤을 쏙쓰림으로 꼴딱샐텐데....아이의 학원가는 모습을 재현시키신님...좋은일에 쓰였다고 생각하십시오..주하는 정말 의젖하네요..

건우와 연우 2006-07-06 11: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구 아까워라. 그치만 아이들은 정말 천진해요^^
참고로 저는 모든 학원비를 이체합니다^^

sweetmagic 2006-07-06 11: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정같은 주하 ~
말도 참 밝고 이쁘게 하네요 ^^

2006-07-06 11: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sandcat 2006-07-06 13: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적반하장의 주하 못지않게 쌀 봉지 운운하시는 님도 낙천적..이라고 말하면 화내시려나...=3=3
주하의 귀여운 표정 왈 : 도대체 뭐가 문젠데?

로드무비 2006-07-06 14: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올리브님, 물론 야단은 쳤죠. 화도 냈고.
다르긴 뭐가 달라요.
지금도 생각하면 아까워 죽겠습니다.^^

샌드캣님, 주하가 나비처럼 가벼운 몸으로 돈봉투를 돌리며
달려가는 모습을 상상해 봤어요.
빠져나온 지폐가 바람에 휘날리고.
저도 모르게 헤벌쭉.
그 기분 아시죠?^^

따우님, 2.는 얄미운 주하로 바꿔 주세요.^^

그런 일 생기면 님, 사실 오백 원 동전 하나 잃어버려도 아깝잖아요.
액수도 그렇지만.
그래도 돈 잃고 엄마가 미친듯이 신경질 내는 모습 보여주면
이중의 손해라고 생각합니다.
교육비를 아이 손에 들려보내는 건 좀 거시기하다고 생각해요.
다른 방법을 생각해 봐야 할 듯.^^

스윗매직님, 호호~ 전 좀 무식하게 말했죠?
요정 같은 주하에 비하면.^^

건우와 연우님, 교육비를 직접 들려 보내는 건 역시 좀 그렇죠?
귀찮아서 그냥 따라하거나 냅두는 일이 너무 많습니다. 반성!

해리포터님, 학원 갈 때 어떻게 하고 갔냐고 재연시킨 건 좀 웃겼어요.ㅎㅎ
그런데 그렇게 하니 아이가 자신이 어떻게 해서 돈을 잃었는지
바로 깨닫더군요.^^

라주미힌님, 8만 원어치의 노동, 노예소녀 탄생입니다.
그건 그렇고 님의 말씀 안 믿겨요.=3=3=3

올드핸드님, 어떤 말은 하면서도 유치하다 생각해요.
그러면서도 결국 내뱉는다니까요.
맞습니다, 어제 대화는 모녀 역할이 바뀌었습니다.^^

mong님, 곰돌이 비누 예쁜 주하 줄게요.
전 절대 손도 안 대고요.^,.~

물만두님, 흐흑.

반딧불님, 아깝고 이쁘고. 헤헤~~


날개 2006-07-06 14: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같아도 한바탕 소리지르고 난리를 쳤을터인데......^^
그 와중에 재연이라니~ㅎㅎㅎ
신발주머니 돌리는건 남자애들만 하는 줄 알았더니... 주하도 하는군요!^^

sooninara 2006-07-06 14: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주하는 좋겠다. 우리집 아이들은 돈 잃어버렸다면..엄마에게 죽죠.

urblue 2006-07-06 17: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주하의 저런 반응은, 평상시 엄마의 태도에서 배운 거라고 사료됩니다만. =3=3

瑚璉 2006-07-06 20: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다 속이 쓰리군요(-.-;). 짜장이 몇 그릇인가.

플레져 2006-07-06 19: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도 만원 한 장 건졌잖아요 ^^
주하의 위로에 한 방 먹은 기분 ㅋㅋ
(에고... 팔만원...팔만원..팔만원...=3)

ceylontea 2006-07-06 2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도 사진을 보니, 주하는 역시 예쁘네요.. 그리고, 이럴 때 보면 돈에 물들지 않은 아이의 모습.. 그리고, 아이들이 오히려 어른들보다 삶을 살아가는 지혜가 더 있다고 생각해요. 오히려 문명이 인간을 바보로 만드는 것 같아요.. ^^

인터라겐 2006-07-06 21: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돈 잘 줍기로 유명합니다.. ^^ 아마도 어려운 사람이 주워서 요긴하게 썼을꺼예요.. 기뻐하소서...

울보 2006-07-07 09: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주하말은 점점 더 어른스러워지네요,
우리 옆지기가 할만한 말인데,,,,,
정말 아깝다,,,,,

기인 2006-07-07 18: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옷 저도 그런일 있을 때는, 어려운 사람이 가져가서 요긴하게 쓰면서 감사해했겠지.. 라고 생각합니다. :)

2006-07-10 13: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드무비 2006-07-10 18: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도 만 원 한 장 건졌지 않냐는 플레져님의 말씀이나
마이 도러가 똘똘하고 신통방통하다는 님들의 댓글에
힘이 불끈 납니다.
고마워요, 님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