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며칠 속이 괜히 부글부글 끓었다. 특별한 일도 없었는데......그런데 원인 없는 일이 어딨겠는가! 사안은 두어 가지. 그 중 하나는 우리집을 제 집처럼 드나들며 나의 만화를 빌려다 읽는 모 여인 때문.
나는 너무 재밌게 읽은 만화는 메모해 두었다가 좋은 기회가 있으면 사는 편이다. 20세기 소년도 갤러리 페이크도 그렇게 샀다. 항상 읽을 책이 밀려있으니 그렇게 배달된 책은 래핑도 뜯지 않고 주구장창 책꽂이에 꽂혀있기도 한다. 처음에 책을 빌려갈 때 조심스럽던 그녀. 이젠 내가 아직 개봉하지도 않은 책까지 예사로 집어간다. 1년 정도에 걸쳐 우리집 책꽂이의 만화를 대부분 읽은 그녀. 급기야 며칠 전엔 내가 부산 여동생에게도 아직 빌려주지 않은 히로카네 겐시 모 전집을 준비해온 쇼핑백속에 집어넣는 것이 아닌가! (살 수도 없는 책이다!)
나는 속으로 "어어!" 비명을 질렀을 뿐 나머지 책을 꺼내어 그녀의 쇼핑백에 직접 넣어주기까지 했다.
그녀가 가고 나서 무척 허탈했다. 만화를 빌려다 읽으라고 먼저 제안한 건 나였다. 래핑 뜯지 않은 책도 먼저 가져가서 읽는 판에 그리고 그것은 하나도 속상하거나 이상하지 않았는데 정말 무지하게 속이 쓰렸다.
"xx 엄마, 그 책은 빌려주기 싫어! 나도 그런 책 하나쯤은 있어야지!"
아니 웃으면서 왜 그렇게 말을 못했단 말인가!
내가 인간관계에 두려움을 갖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별 대수로울 것도 없는 일이 꼬투리가 되어 불편해지고 어색해지는 것. 원인제공자가 누구이든 간에......
그녀는 지금 죄도 없이 나에게 미움을 받고 있다. 나는 '그깟 책, 닳는 것도 아닌데 좀 빌려가 읽으면 어때?' 하고 마음을 다잡으려고 노력중이다. 만화 문제만이 아니다. 사람과 친하게 지내다보면 생각지도 않은 장면에서 꼭 이 비슷한 일이 발생한다.
어쩌면 인생에서 소중한 것이 너무 없는 나의 허무와 퇴폐 때문에 만화책 스물몇 권에 그렇게 혼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