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식의 빅퀘스천 - 우리 시대의 31가지 위대한 질문
김대식 지음 / 동아시아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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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달 전에 읽었는데, 이제야 후기를...)

 

갈릴레오 갈릴레이는 태양계의 중심이 지구가 아닌 태양이라고 주장해 가혹한 탄압을 받았다. 하지만 갈릴레이가 진정으로 '위험한 인물로 찍힌 이유는 따로 있다. '원인'이 더 이상 철학과 과학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된다고 주장한 첫인간이기 때문이다. 그에 따르면 과학이 탐구할 것은 '원인'을 의미하는 '왜'라는 질문이 아니다. 관찰한 현상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변할지 에측하는 것이 과학이다.(37쪽)

 

오해할 수도 있는 말인데, 내용을 잘 읽어보면 이전에는 '그래서 이건 신의 섭리야'라는 논리가 강했다. '해가 뜬다. 왜 닭이 우니까'라는 논리로 신의 섭리를 강조했다. 물론 신의 섭리라고 이야기하는 이들의 이야기는 결국 권력을 가진 자들이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가져다 쓰는 논리지만(지금이 기독교도 비슷하다. 하나님의 뜻이라고 하는데, 성경을 보면 그렇게 보지 않을 수도 있는 것 같은데)

 

과학적으로 육체와 분리되어 영원히 존재할 수 있는 영혼에 대한 가설은 불필요하다. 하지만 인류가 그런 영혼의 존재를 믿지 않았다면 예술도, 종교도, 철학도 없었을 것이다. ...인간에게 세상은 끝없이 불안하고 두려운 곳이었을 것이다. 인간의 유일한 무기는 다른 동물들보다 큰 뇌이고, 뇌는 원인을 추구하는 기계이다. 그래서 인간은 항상 원인과 인과관계를 추론하려 한다. 천둥은 왜 칠까? 밤은 왜 어두울까? 표범은 왜 우리를 잡아먹는 것일까? 내가 보고, 느끼고, 기억하듯 어쩌면 태양도 영혼과 자아가 있어 아침에 뜨기를 원해 세상이 밝아지는 것일 수 있다. 비가 내리는 것도 구름의 영혼이 원해서인지도 모른다.
이제 모든 것이 설명된다. 우리의 삶을 위협하는 모든 존재들은 그들만의 의지와 영혼을 가지고 있으며, 그 영혼들의 마음을 얻으면 우리는 오들 또 하루는 살아남을 수 있게 된다. 또한 인류는 영혼을 가지고 태어난 것이 아니다. 영혼은 발명한 것이다. 영혼은 먼 미래에 지구를 정복하게 될 원시시대 인류가 최초로 개발한 '킬러 애플리케이션'이었던 것이다.(114쪽)

 

그런 인간은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런데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이 생겼다. 영혼. 영혼의 발견으로 인간은 설명할 수 없는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역사를 지배하기 시작했다. 실제 그랬는지 모르지만, 역사에 대한 해석권을 갖게 되었다.

 

세상은 복잡하다. 사소한 우연의 일치가 거대한 변동의 원인이 될 수 있고, 역사를 바꾸어놓을 것 같던 사건이 아무 이유없이 사라져버릴 수 있다. 세상은 언제나 무한의 가능성과 무의미한 우연 사이의 싸움이다.
서양은 오늘날 세상을 지배한다. 하지만 서양의 과거는 현재의 논리적 원인이 아닌 포스트 훅posthoc, 그러니까 이미 일이 벌어진 후 제시된 '편한' 해석일 분이다. 어쩌면 세상을 지배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과거 정복인지 모른다. 우연과 가능성들의 합집합인 과거를 재해석하고 평가함으로써 우리는 '왜'라는 질문에 답을 얻는다. 과거를 소유하는 자만이 무질서한 역사를 질서로 재탄생시킬 수 있다는 말이다. (175쪽)

 

역사에 대한 해석은 중요하다. 예를 들어, 역사 해석을 통해 서양이 동양보다 우월했음을 증명한다. 고로 현재 서양이 동양보다 우월하다는 배경이 형성된다. 그런데 정말 그럴지는 모른다. 결국 지금의 패권을 가지고 있는 서양이 서양의 시각으로 그렇게 해석을 했으니까.

 

그런데, 과학의 발전으로 이런 인류의 행보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인공지능의 발전으로 인간의 직관이라는 것도 결국은 치밀한 계산앞에서 무용지물이라는 것이 드러났다. 실은 그전부터 과학의 발전으로 인간의 생각에 균열이 발생했다.

 

그렇다면 한발 더 나아가 이런 주장도 해볼수 있겠다. 우주 그 자체가 수학이라고, 수학적으로 가능한 모든 실체들이 물리학적으로 존재하며, 모든 존재들은 하나의 거대한 존재라는 함수를 계산해내는 컴퓨터의 부분이라고, 우리들의 '이해' 그 자체가 우조라고 불리는 컴퓨터 안에서 끊임없이 계산되고 있는 단 하나의 존재함수의 계산과정이라고 인정한다면 우리는 세상을 조금은 더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이다.(253쪽)

그렇다면 마음은 무엇일까? 위스콘신 대학의 신경과학자 줄리오 토노니 교수는 마음을 '신경회로망 계층들을 지난 가장 높은 층 전두엽으로 모이는 정보들의 형태'라고 이야기한다. 아래층 뇌 영역들이 망가지면 자아와 마음은 유지되지만 정보를 계층적으로 모을 수 없고, '높은 층' 영역들이 파괴되면 우리는 마음과 의식과 마음을 잃는 것이 그 이유이다. 그렇다면 '깊은 학습'이 가능한 인공두뇌는 어떨까. 우리는 인공두뇌를 진화적으로 한정된 인간의 10층보다 더 많은 층계를 갖도록 설계할 수 있다. 곧 '깊은 학습'이 된 인공지능은 인간보다 1,000만배 더 고차원적인 패턴을 이해하고, 1,000만배 더 큰 아픔과 기쁨을 느끼고, 1,000만배 더 깊은 마음을 가지게 될 것이다. (292쪽)

 

이제 우리는 인간이 갖는 우월성에 의문을 갖기 시작했다. 인간의 우월성이 과연 얼마나 갈까?

 

기계에게 일자리와 삶을 모조리 빼앗길 수도 있다는 러다이트의 걱정처럼, 오늘날 인간은 이대로 안심해도 되는 것일까? 구글은 무인자동차를 개발하고 아마존은 드론을 이용한 택배서비스를 계획하고 있다. 공장은 완벽하게 자동화되는 중이고, 머지않아 전쟁에 참여하는 전투로봇까지 나타날 전망이다. 우리는 새로운 기계혁명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다. 반도체 집적회로의 성능이 18개월마다 2배로 증가한다는 '무어의 법칙', 지구의 모든 존재들을 연결시켜 줄 사물인터넷, 데이터 마이닝, 기계학습, 뇌 모방, .. 개개인의 능력으로는 완벽하게 이해할 수 없는 최첨단 기술들의 조합된 지능을 인류는 기계에 심고 있다.
이해불가능한 기술은 마법과 별 차이가 없다. 그런 마법같은 기술로 기계에 생각과 인지능력이 주어진다면? 인간이 뇌만이 할 수 있었던 일을 기계가 하기 시작할 것이다. 두개골이라는 공간적 한계에 구속받는 인간과 달리 기계는 무한의 지능과 인지능력을 가질 수 있다. 더 저렴하고, 더 빠르고, 더 완벽하게 생각하는 기계가 등장하는 순간 수많은 화이트 칼라, 비서, 변호사, 교수, 기자들이 일자리를 잃을 것이다.(299쪽)

 

지금까지 로롯의 발달로 단순노동계층만 위험하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인공지능이 체스에서 인간을 앞도하고, 퀴즈쇼 재퍼디에서 승리하고, 바둑에서의 성과는 전문직의 자리도 생각보다 안전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고도의 지식산업이라 할 수 있는 부분이 인공지능에 자리를 내줘야 할 수도 있다.

그래서 이제 본격적인 질문을 던져야 한다. 과연 인간이란 무엇인지, 인간다움이란 무엇인지. 그리고 그 인간다움을 어떻게 유지할지.

 

30년, 50년, 100년 후 기계가 드디어 정보를 이해하고 인간의 지능을 대체하는 순간, 인간은 더 이상의 발명도, 혁신도, 노동도 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아니, 누구도 인간의 노동·혁신·발명을 필요로 하지 않을 것이다. 얼마든지 기계가 더 빠르고, 더 완벽하게 그리고 더 저렴하게 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지구의 모든 물건과 서비스를 실리콘밸리에 위치한 10개의 인공지능 회사들이 만들어낼 수 있다면? 지구는 무한으로 부자가 되겠지만 99% 이상의 사람들은 직업도, 소득도 없어지지 않을까? 지구에서 소득세를 낼 수 있는 사람들이 단 10명 뿐이라면? 100년 후 인공지능 시대에 과연 민주주의가 여전히 존재할지 궁금해진다.(155쪽)

 

 

카네기멜론 대학의 인공지능학자 한스 모라비치 Hans Moravce는 인간보다 빠르고 뛰어나며 영원히 존재할 수 있는 기계가 인간을 지구에서 불필요한 존재로 판단해 멸종시킬 것이라고 예측한다. 그리고 덧붙인다. 뭐 그다지 슬픈일이냐고, 기계는 어차피 우리의 후손이라고, 인류의 모든 역사와 지식을 그 누구보다 완벽하게 보존할 기계들이기에, 인류의 기억만큼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호모사피엔스가 네안데르탈인을 멸종시켰듯, 기계도 호모사피엔스를 멸종시키는 것 뿐이라고. 그것이 자연의 법칙이라고(3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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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 우리는 끔찍한 경험을 했다. 그리고 그 경험은 아직 현재진행형이다.

 

학살, 전쟁, 테러, 고문, 성폭행, 자식의 죽음 ···· 인간이 겪을 수 있는 최악의 경험엔 공통점이 하나 있다. 바로 경험이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세상은 보통 지독할 정도로 선형적이다. 과거가 현재를 만들었고, 현재는 미래를 만든다. 하지만 트라우마를 경험한 뇌는 다르다. 과거, 현재, 미래가 모두 송두리째 한 번의 순간으로부터 영원한 지배를 받게 되니 말이다.

....

세상은 끝없이 많고 복잡한 정보들의 합집합이다. 이 많은 정보를 인간의 1.5킬로그램짜리 작은 뇌가 실시간으로 받아들이고 처리하며 이해하기엔 한계가 있다. 모든 경험을 있는 그대로, 왜곡하지 않고 기억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단 말이다. 그렇다면 기억한다는 것은 언제나 무언가가 왜곡되고 압축돼야 한다는 말과 동일하다.

'순간'이란 경험을 압축하고 왜곡하는 과정은 해마라는 뇌영역을 통해 이뤄진다고 많은 전문가가 믿는다. 우리가 경험하는 많은 순간은 우선 '기억할 가치가 있는 정보'와 '기억할 필요가 없는 정보'로 나뉜다. 이 때 나뉨의 기준은 무엇일까? 많은 기준이 가능하겠지만 대부분 '예측 코드 predictive coding'를 통해 분류된다는 가설을 세울 수 있다.

 

예측코드란 무엇인가? 뇌(특히 대뇌피질)의 핵심 기능 중 하나는 미래 예측이다. ... 뇌는 앞으로 보일 것, 들릴 것, 느껴질 것, 경험하게 될 것 등을 예측한다.

끝없는 예측을 통해 뇌는 '예측한 세상'과 '경험하는 현실' 차이를 계산한다. 예측과 현실에 차이가 없다면 그 정보는 무의미하다. ... 그렇다면 반대로 트라우마야말로 일상적인 삶을 사는 인간이 기대하기 가장 강한 기억을 내리는 경험이라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

뇌의 예측과 현실의 가장 큰 차이, 만약 그것이 트라우마의 정체라면 트라우마는 그 어느 경험보다 더 많은 '정보'를 갖고 있다. 아니 어쩌면 예측과 현실의 차이가 너무도 크기에 뇌가 도무지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의 정보와 기억을 남기는지도 모른다. 너무 밝은 빛에 노출된 카메라로는 더이상 아무것도 구별할 수 없는 것 처럼 트라우마는 뇌에 다양한 손상을 끼친다. 기억을 만들어내는 해마, 감정을 조절하는 편도체, 그리고 판단역을 좌우하는 전두엽 등 다양한 뇌 영역의 조직적·기능적 구조 그 자체가 변하기에 트라우마는 단순히 시간이 해결해줄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139-142쪽)

 

처음에는 잠잠하던 이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공격성을 보인다. 잊자고 하자고 하고, 조롱하기도 한다. 공감능력이 부족한 인간들이 너무 많다. 시간이 지난다고 해결되지는 않는다. 일단 진상규명이 제대로 이뤄지고, 상처받은 이들의 마음을 보다듬어 주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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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머릿속에선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 카이스트 김대식 교수의 말랑말랑 뇌과학
김대식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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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보는 것은 사실일까? 아래에 답이 있다. 우리가 본다고 하지만 결국은 내 몸의 감각기관들이 뇌에 전달한 정보를 뇌는 새석할 뿐이다. 실제 눈이 세상을 보는 것은 다르다고 한다. 눈은 전혀 잘 만들어진 기관이 아니다. 정반대로 상이 맺히고 게다가 여러 방해물들이 상에 맺힌다. 뇌는 시각정보를 토대로 우리가 보는 것을 다시 재현해낸다. 즉, 우리의 감각기관이 보고 느끼는데로 뇌가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래서 인간은 시각적 착시를 한다. 드레스 색깔 논라에서부터, 길이가 같지만 화살표의 위치에 따라 선분의 길이를 다르게 인식한다.

 

시각적 착시는 단지 빙산의 일각이다. 현대 뇌과학에서는 우리 인간이 가지고 있는 대부분의 믿음, 사상, 의견, 신념, 생각, 감각이 어쩌면 세상에 대한 뇌의 착시적 해석일수도 있다고 말한다.(33쪽)

 

뇌는 머리 안에 있다. 다시 말해 뇌는 두개골이라는 어두운 감옥에 갇혀 바깥세상을 직접 볼 수 없는 죄인과 같다. 세상에 대한 모든 정보는 눈, 코, 귀, 혀 같은 감각센서들을 통해서만 들어올 수 있고, 뇌는 그런 정보들을 기반으로 세상에 대한 답을 찾아내야 한다. 하지만 아무도 정답을 제시해줄 수 없는 이런 상황에서 뇌가 신뢰할 수 있는 것은 예전부터 알고, 믿고, 경험했던 편견들뿐일 수도 있다. (33쪽)

 

뇌는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기계가 절대 아니다. 뇌는 단지 감지되는 감각센서의 정보를 기반으로 최대한 자신의 경험과 믿음을 정당화할 수 있는 해석들을 만들어낼 뿐이다. 그리고 그렇게 해석된 결과를 우리에게 인식시킨다. 세상을 본다는 것은 결국 우리 뇌의 '착한 거짓말'에 속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35쪽)

 

뇌가 세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외부에서 들어오는 사실과 이미 내부적으로 갖고 있는 믿음을 적절히 조합해야 한다. 하지만 믿음과 사실이 일치하지 않으면 어떻게 해야 할까? 과학에서는 이럴 경우 믿음을 바꾸라고 가르친다. 하지만 뇌는 과학자가 아니다. 뇌는 지금 한순간 얻은 데이터보다 오래전부터 가진 고정관념을 더 신뢰하고, 사실을 왜곡하기 시작한다. (60쪽) 

 

책은 뇌에 대한 많은 것들을 알려준다. 실제로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뇌와의 간극은 너무나도 크다. 뇌는 익숙한 것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인간을 더 인간답게 만들어주는 것은 지속적인 노력이다.

 

뇌는 비논리적이고 그룹 이기주의로 가득찼지만 민주주의는 개인에게 현명함과 타인에 대한 인내심과 배려를 요구한다. 그래서 민주주의는 그렇게 어렵고 우리의 지속적인 노력이 필수적인 것이다. (191쪽)


뇌에 대해 신비가 밝혀지는 만큼 세상의 변화도 너무 빠르다. 기계가 뇌의 기능을 갖추고 인공지능이라는 이름으로 우리앞에 성큼 다가왔다. 이 때 우리의 역할은 무엇일까.

 

밀려오는 디지털 세상의 변화는 그 누구도 막지 못한다. 그렇다면 우리 디지털 이주자들이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역할은 대한민국의 미래 세대가 이 세상 누구보다 더 멋지고 의미 있는 디지털 세상을 살아갈 수 있도록, 이 세상의 최고의 사회적 원칙과 조건을 만들어주는 게 아닐까.(280쪽)

 

* 책은 다양하게 뇌와 디지털 세상을 다루고 있지만, 앞 부분에서 읽은 뇌에 대한 부분이 너무 강하게 다가왔다.

 

현대 뇌과학이 제시하는 우리 인간의 모습은 아름답기만 하지는 않다. 아니, 상당히 추하다. 아니, 대부분 어이 없다. 하지만 그 어이없는 뇌의 모습은 현실이고, 우리는 그런 뇌를 가지고 살아야 한다.(14쪽)

세상은 뇌가 보는 것이 아니다. 뇌가 아는 것을 본 것이 세상이다.(28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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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제인가 서울시청에 갔다가 스피커 크게 틀어놓고 빨간 조끼 입고선 박원순 시장을 비난하는 기독교인들을 본 적이 있다. 동성애 문제 때문이었다.

 

순간 드는 생각은 이거였다. 과연 예수 그리스도가 다시 오시면 뭐라 하실까? 외려 동성애자들에게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고 하시고 동성애자들을 핍박하던 기독교인들에겐 "왜 나를 핍박하느냐?"고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책을 읽다가 든 생각인데, 만약 2차대전이 연합국의 승리로 끝나지 않고, 아직 우리가 일제치하에 있다면 그 기독교인들은 그냥 말만 바뀐 사람들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전범으로 가득한 신사참배에 앞장서고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머리에 스친다.

 

 튜링은 콜로서스라는 세계 최초의 컴퓨터를 개발해 에니그마의 메시지를 판독하는데 성공한다.
에니그마의 판독이 없었다면 노르망디 상륙작전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노르망디 상륙작전이 성공하지 못했다면 어쩌면 제2차 세계대전은 독일의 승리로 끝났을 수 있다. ... 연한군이 승리하지 못했다면 우리는 여전히 '대일본제국'의 2등 시민으로 일왕을 섬기고 아베 신조 총리 밑에서 살고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독일과 일본의 세계 정복 망상에서 우리를 구해준 튜링의 삶은 비극적이었다. 당시까지 영국에서 불법이었던 동성애자였던 튜링은 제2차 세계대전 후 체포되어 화학적 거세를 당한다. 미국 입국이 금지되고 더 이상 국가 안보 프로젝트에 참여할 수 없게 된 튜링은 1954년 자살을 선택하고 만다. (187-188)

김대식의 말을 한번 더 고민해야 한다.

 

뇌는 비논리적이고 그룹 이기주의로 가득찼지만 민주주의는 개인에게 현명함과 타인에 대한 인내심과 배려를 요구한다. 그래서 민주주의는 그렇게 어렵고 우리의 지속적인 노력이 필수적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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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의 기계 시대 - 인간과 기계의 공생이 시작된다
에릭 브린욜프슨 & 앤드루 맥아피 지음, 이한음 옮김 / 청림출판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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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과 10년전만 하더라도 전문가들은 인공지능에 대해 그다지 크게 평가하지 않았다. 2004년의 책에서는 운전이라는 것이 모든 정보를 집합해서 순간적인 판단을 해야 하기 때문에 컴퓨터가 쉽게 대체할 수 없다고 했다. 실제 그 후에 있었던 자율주행차 경주에서 아주 조악한 모습을 보였다. 그런데 불과 10년만에 실제 운행하는 자율주행차를 마주하고 있다.

 

'모라벡의 역설'이 있다. 인공지능과 로봇공학이 인간에게는 아주 간단한 일이 엄청난 연산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인공지능, 로봇에는 어렵다는 것인데, 생각보다 개선이 빠르게 되고 있다.

 

이에 저자들은 체스판의 후반부라는 예를 들어 순식간에 인공지능과 결합된 기계화의 시대가 올 수 있다고 본다. 체스판의 후반부란 체스판 한칸에 정확히 두배씩 늘어나는 원리인데, 후반부에 들어서면 예상할 수 없도록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 그것을 눈으로 보고 있다. 2000년대 후반 퀴즈게임 제퍼디에서 IBM의 인공지능 '왓슨'이 우승하는 것을 경험했고, 그리고 2016년 바둑에서도 인공지능의 경이로움을 경험했다.

 

제2의 기계 시대의 기하급수적 성장, 디지털화, 재조합 혁신 능력 덕분에 인류가 역사상 가장 중요한 유례없는 사건 중 두가지를 일으킬 수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쓸모있는 인공지능을 출현시키고 공통의 디지털망을 통해 세계 대부분의 사람을 연결한 것이다.

이 두가지 발전은 그중 하나만으로도 우리의 성장 전망을 근본적으로 바꾸어놓았을 것이다. 하물며 둘은 결합함으로써 육체노동이 이루어지는 방식을 영구히 바꾸어놓은 산업혁명 이래로 가장 중요한 것이 되었다.

인지적 작업을 완수할 수 있는 기계는 물리적 작업을 해낼 수 있는 기계보다 더 중요하다. 그리고 현대 인공지능 덕분에 우리는 지금 그런 기계를 갖고 있다. 우리의 디지털 기계는 협소한 틀을 벗어나 패턴인지, 복잡한 의사소통 등 오로지 인간만이 독차지하던 영역들에서 다방면으로 능력을 보여주기 시작했다.(118쪽)

 

그러나 이런 자동화, 인공지능화는 소득불균형을 더 가속화 시킬 수 있다.

 

우리 대다수는 어떤 원형을 참조해 추론하는 데 익숙하다. 정치가는 '평균적인 유권자'를 이야기하고, 마케팅담당자는 '전형적인 소비자'를 이야기한다. 그런 태도는 가장 흔한 값이 평균 근처에 놓일 때, 더 공식적으로 말하면 분포의 최빈값과 평균이 같거나 거의 같은 정규분포를 보일 때 잘 작동한다. 하지만 멱법칙 분포의 평균은 대체로 중앙값이나 최빈값보다 훨씬 더 높다. 예를 들어, 2009년에 미국 메이저리그 야구 선수의 평균 연봉은 324만 206달러로, 중앙값인 115만 달러의 거의 세배에 달했다.

실질적으로 이 말은 소득분포가 멱법칙을 따른다면, 대다수의 사람들은 소득이 평균보다 낮을 것이라는 의미다. .. 더군다나 시간이 흐를수록 평균소득은 증가해도 중위소...득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을 수 있다. 다시 말해, 대다수 사람들의 소득은 전혀 증가하지 않을 수 있다. 멱법칙 소득분포는 소득불평등만 키우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직관도 혼란에 빠뜨린다. (206쪽)

 

이런 환경변화에서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

기계와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리고 인간만의 장점을 찾아야 한다. 저자들의 권유는 '아이디어 떠올리기' '큰틀의 패턴인식', 복잡한 의사소통 기능'을 갖추는 것이다. 뻔한 답이긴 하지만 이 것 말고 다른 건 잘 생각하기 어렵다. 하지만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 기술의 발전을 예측하기는 힘들다는 것이다.

 

우리의 예측과 권고를 일종의 복음처럼 받아들여서는 안된다는 점을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컴퓨터와 로봇이 언제라도 곧 아이디어 떠올리기, 큰 틀의 패턴인식, 고도로 복잡한 의사소통 같은 일반 기능을 획득할 것이라고 예상하지 않으며, 모라벡의 역설이 조만간에 완전히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우리가 디지털 발전을 연구하면서 배운 것이 하나 있다면, '결코 안된다고 말하지 말라'는 것이다. 다른 많은 연구자들과 마찬가지로, 우리도 과학소설에서 곧바로 튀어나온 듯한 기능과 능력을 보여주는 디지털 기술의 발전에 거듭 놀라고 있다.

사실 인간 특유의 창의성과 기계의 능력을 나누는 경계선은 계속 바뀌고 있다.  ... 때로 인간의 창의성은 기계의 강력한 분석력과 동일해질 수 있다.(257쪽)

 

 

두 저자들의 전작이 있다. 바로 <기계와의 경쟁>이다. <제2의 기계시대>는 큰 틀에서 <기계와의 경쟁>과 다르지 않다. 오히려 증보판의 느낌이 강하다. 그리고 전작의 저자 표기가 다른데,(전작은 앤드루 매카피, 이 책은 앤드루 맥아피)이는 전작에 맞추는 것이 좋지 않았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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