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4월 우리는 끔찍한 경험을 했다. 그리고 그 경험은 아직 현재진행형이다.

 

학살, 전쟁, 테러, 고문, 성폭행, 자식의 죽음 ···· 인간이 겪을 수 있는 최악의 경험엔 공통점이 하나 있다. 바로 경험이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세상은 보통 지독할 정도로 선형적이다. 과거가 현재를 만들었고, 현재는 미래를 만든다. 하지만 트라우마를 경험한 뇌는 다르다. 과거, 현재, 미래가 모두 송두리째 한 번의 순간으로부터 영원한 지배를 받게 되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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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끝없이 많고 복잡한 정보들의 합집합이다. 이 많은 정보를 인간의 1.5킬로그램짜리 작은 뇌가 실시간으로 받아들이고 처리하며 이해하기엔 한계가 있다. 모든 경험을 있는 그대로, 왜곡하지 않고 기억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단 말이다. 그렇다면 기억한다는 것은 언제나 무언가가 왜곡되고 압축돼야 한다는 말과 동일하다.

'순간'이란 경험을 압축하고 왜곡하는 과정은 해마라는 뇌영역을 통해 이뤄진다고 많은 전문가가 믿는다. 우리가 경험하는 많은 순간은 우선 '기억할 가치가 있는 정보'와 '기억할 필요가 없는 정보'로 나뉜다. 이 때 나뉨의 기준은 무엇일까? 많은 기준이 가능하겠지만 대부분 '예측 코드 predictive coding'를 통해 분류된다는 가설을 세울 수 있다.

 

예측코드란 무엇인가? 뇌(특히 대뇌피질)의 핵심 기능 중 하나는 미래 예측이다. ... 뇌는 앞으로 보일 것, 들릴 것, 느껴질 것, 경험하게 될 것 등을 예측한다.

끝없는 예측을 통해 뇌는 '예측한 세상'과 '경험하는 현실' 차이를 계산한다. 예측과 현실에 차이가 없다면 그 정보는 무의미하다. ... 그렇다면 반대로 트라우마야말로 일상적인 삶을 사는 인간이 기대하기 가장 강한 기억을 내리는 경험이라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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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의 예측과 현실의 가장 큰 차이, 만약 그것이 트라우마의 정체라면 트라우마는 그 어느 경험보다 더 많은 '정보'를 갖고 있다. 아니 어쩌면 예측과 현실의 차이가 너무도 크기에 뇌가 도무지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의 정보와 기억을 남기는지도 모른다. 너무 밝은 빛에 노출된 카메라로는 더이상 아무것도 구별할 수 없는 것 처럼 트라우마는 뇌에 다양한 손상을 끼친다. 기억을 만들어내는 해마, 감정을 조절하는 편도체, 그리고 판단역을 좌우하는 전두엽 등 다양한 뇌 영역의 조직적·기능적 구조 그 자체가 변하기에 트라우마는 단순히 시간이 해결해줄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139-142쪽)

 

처음에는 잠잠하던 이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공격성을 보인다. 잊자고 하자고 하고, 조롱하기도 한다. 공감능력이 부족한 인간들이 너무 많다. 시간이 지난다고 해결되지는 않는다. 일단 진상규명이 제대로 이뤄지고, 상처받은 이들의 마음을 보다듬어 주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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