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식주는 인간생활의 기본토대이다. 환경에 맞게 의식주를 맞춰 개발해왔고, 의식주에 맞게 삶의 방식을 바꿔왔다. 음식 역시 문화, 환경의 기본 조건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음식의 경우는 맛 위주로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어 보인다. 아마도 사람들의 관심이 음식하면 맛이 떠오르기 때문일텐데 음식과 진화를 다룬  흥미로운 책이 출간되었다. 음식을 익혀먹게 된 것이 진화의 큰 역할을 하였다는 것이다. 특히 음식이라는 과정을 통해 남녀의 역할 구분과 필요성이 대두되었다는 것이 흥미롭다.
 
요리 본능
리처드 랭엄 지음, 조현욱 옮김/사이언스북스ㆍ1만7000원

"랭엄은 침팬지 연구자로 유명한 제인 구달의 학문적 후계자로, 인류의 진화를 자기 학문의 주제로 삼아왔다. 그가 생각하는 인간 진화의 결정적 요인이 바로 ‘요리’다. 인간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전환점이 바로 ‘불의 발견’인데, 이 불을 이용해 인간이 이룩해낸 가장 중요한 것이 불로 음식을 요리하는 ‘화식’의 발견이며, 이 화식이 인간의 모든 것을 바꿨다는 것이 ‘요리 본능 학설’이다. 랭엄은 이 요리 본능 학설을 이어받아 이 책으로 정리했다. 인간의 정의는 ‘불로 요리하는 동물’이란 것이다. 인간 말고도 사회를 이루고 협동하는 동물도 있고, 도구를 사용하는 동물도 있지만 불로 요리하는 동물은 오로지 인간뿐이기 때문이다. 책은 불로 음식을 익혀 먹는 화식이란 열쇳말을 통해 인간 진화의 역사를 탐구해간다.

....
 
오스트랄로피테쿠스에서 지금 인류와 해부학적 특징이 거의 비슷한 ‘직립원인’이 나온 것은 ‘육식’ 덕분이었을 것으로 인류학자들은 추정하고 있다. 이전보다 뇌가 커지고 협동 사냥 능력이 발달한 덕분이었을 텐데 그러면 왜 구강구조는 약해졌을까? 그 근거가 화식이다. 음식을 익히면 얻을 수 있는 에너지의 양이 늘어나고, 녹말이 젤라틴화되는 등 음식이 부드러워져 소화가 쉬워지며, 음식섭취에 들이는 에너지를 줄이는 동시에 많은 에너지가 소비되는 소화과정도 에너지 효율이 좋아진다. 화식 덕분에 내장이 작아진 인간은 대형 유인원에 견줘 하루 에너지 소모량의 10%를 절약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인간은 다른 활동에 투입할 시간과 능력을 얻게 되었고, 신체와 사회 모두 화식에 맞게 변했다는 점을 책은 역설한다. 침팬지의 경우 음식을 씹는 데 하루 6시간 정도를 소비하는데, 만약 인간도 날 음식만을 먹는다면 적어도 하루 5시간 이상을 음식을 씹으며 보낼 것이라고 랭엄은 말한다.

특히 화식이 인간 진화에 가장 중요하게 영향을 미친 부분으로 지은이는 뇌가 커진 점을 든다. 뇌는 인간의 몸무게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5%에 불과하지만 소비하는 에너지양은 먹는 음식의 5분의 1에 이른다. 인간이 음식의 질을 높이는 화식 요리 문화를 통해 에너지 소비 효율이 좋은 구조로 진화한 덕분이란 가설이다.

책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요리로 인해 남성과 여성 노동 사이에 분업과 차이가 생기면서 이게 하나의 문화로 지금 우리에게 전해지게 되었을 것이라고 설명하는 장이다. 머나먼 옛날 불에 익힌 고기가 맛있다는 것을 깨달은 한 무리가 화식을 통해 직립원인으로 진화하고, 창자와 이빨이 작아지고 털은 사라지는 자연선택 과정을 거치며, 여성은 남성을 위해 음식을 요리하고, 남성은 고기와 꿀을 구하러 다닐 시간을 더 많이 확보하게 되며 남녀 결합이 새로운 중요성을 갖게 되었을 것이란 게 책의 결론이다."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501932.html 


경제학콘서트로 일상사례를 통해 경제이론을 설명했던 팀 하포드가 실패한 사례를 담은 책을 출간하였다. 그래서 실패하지 않기 위해서는 진화해야 한다고 하는데 읽을 만 할 것 같다. 다만 기업의 성공이나 실패사례가 너무 급변하고, 이런 종류의 책들이 미래를 이야기해주지는 않는다는 점은 분명히 짚어야 할 부분이다. 대신 과거에 대해서는 자세하게 혹은 새로운 시각으로 제시해주는 만큼 미래는 독자가 알아서 판단해야 할 것이다. (팀 하포드의 책을 뒤지다 보니 The undercover economist라는 책이 눈에 띈다. 영문본으로 가지고 있는 책인데..)

어댑트
팀 하포드 지음·김유리 옮김/웅진지식하우스·1만5000원

"팀 하포드는 가계도를 연상케 하는 조직도를 그려놓고 일사불란한 리더십을 열망할수록 실패는 불을 보듯 뻔하다고 단언한다. 그 사례로 이라크에서 고전을 면치 못했던 미군을 꼽았다. 베트남전에서 민심에 기반한 북베트남군의 게릴라 전술에 완패를 당했음에도 미군은 이라크에서 주민 지지를 얻는 데 소홀했다. 베트남전 때와 마찬가지로 미군의 이라크 민간인 학살이 잇따랐다. 자신이 모든 것을 안다고 믿었던 도널드 럼스펠드 당시 국방장관 등을 비롯한 군 수뇌부는 이런 실수를 바로잡기 위해 현장에서 올라온 각종 혁신적인 아이디어에 대해 “나대지 마라”며 묵살했다.

지은이는 수많은 변수들로 넘쳐나는 복잡한 현실에서 ‘완벽한 3중 안전장치’ ‘전지전능한 리더’ 따위의 환상은 도태를 불러온다고 경고한다. 1979년 미국 스리마일 원자력발전소 사고나 2008년 미국 금융위기도 그런 환상 때문에 생긴 실패다.

대신 그는 진화의 알고리즘에 주목하라고 말한다. 진화의 핵심은 ‘변이’와 ‘선택’이다. 진화는 어떤 의도를 가지고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수많은 유전자의 교합을 통한 변이는 실시간으로 이뤄지고 그 결과물 가운데 가장 최적의 생명체만이 살아남는다. 지은이는 이런 이유로 생명체나 기업은 사라지기 위해 존재한다고 말한다. 따라서 진화는 필연적인 실패를 수반하고 생존을 위해서는 실패의 교훈을 받아들여야만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많은 이들은 실패의 교훈을 거부한다. 이는 우리 뇌가 실패를 인정하지 않는 탓이다. 심지어 뇌는 실패마저 아름답게 기억하도록 편집해주는 보상체계까지 갖추고 있다.
그러면 우리가 살아남는 방법은 무엇일까? 지은이는 자신만의 갈라파고스 섬을 만들라고 충고한다. 갈라파고스섬은 대륙과 떨어져 있는 물리적 거리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먹이에 따라 부리가 달라지는 핀치새들처럼 병렬적이고 다양한 가능성을 실험하는 공간을 의미한다. 혁신과 함께 실패를 동시에 경험할 수 있는 공간을 뜻한다.

록히드마틴이 1950년대 스컹크워크스(사무실이 냄새나는 플라스틱 공장 앞에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라는 별도의 팀을 운영해 당시로는 파격적인 스텔스 전투기와 유2(U2) 정찰기를 고안해냈듯이 혁신은 늘 예상치 않은 곳에서 나온다. 구글은 ‘갈라파고스섬’을 회사 내부로 끌어들인 대표적 기업이다. 구글은 모든 직원들에게 근무시간의 20%를 자신이 원하는 일만 할 수 있게 해주는 20% 시간의 법칙을 적용했다. 그리고 이 시간을 통해 구글의 강점이 된 많은 아이디어가 쏟아졌다. 이런 아이디어는 실패해도 회사 경영에는 전혀 문제가 없었지만 채택된 경우 막대한 이익을 안겨주는 경우가 많았다. '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503025.html 

           
 


대상 혹은 생각을 대변할 짧은 말을 선택하는 것은 중요하다. 제품에서 부터 정보까지 넘쳐나는 시대에 짧은 말은 더욱 주목받고 있다. 일전에 읽은 '1초만에 읽는 메시지'라는 부제의 <스틱>이라는 책 역시 이런 점에 주목했던 책이다.

마이크로스타일
크리스토퍼 존슨 지음· 옮김/반비·1만5000원


"‘마이크로메시지’는 시인, 카피라이터, 네이미스트(상품이나 브랜드, 기업 이름을 짓는 사람)들이 주로 쓰는 짧은 언어를 가리킨다. 한 단어, 한 음절 같은 ‘문체의 원자’에 의미를 담고, 요리저리 뒤바꾸며 창조한 새로운 언어라 말할 수 있다. 저자는 마이크로메시지를 활용하는 글쓰기 전략과 방식을 공식 글쓰기인 ‘빅스타일’에 빗대 ‘마이크로스타일’이라고 부른다.

마이크로스타일은 한순간에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신속하게 의사 소통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는다. 짧은 메시지에 많은 생각을 담아내는 것이 관건이다. 저자는 마이크로스타일에서 “표현의 경제성이 가장 중요하다”면서 “언어적 관심의 경제학” “인터넷 시대의 수사학”이라고 정의한다. 또 마이크로스타일은 “일상 언어의 창조성, 구어로 쓰는 시의 토대”이다.

책의 줄기는 “우리 주변에 포진해 있는 작은 언어들의 다채로움”의 사례들이다. 저자는 마이크로스타일 사례와 여러 준칙을 함께 소개한다.

...
“올바른 단어 선택”도 원칙이다. 고대 영어에서 유래한 ‘Kiss’(키스)는 친숙하고 내밀하게 들린다. 라틴어에서 파생한 ‘osculate’(구강접촉)는 어떤가. 무감각적이고 의학적인 느낌의 단어다. 키스란 단어를 써야 할 때 구강접촉을 쓰는 일이야 봐줄 만하다. 리복이 1995년 내놓은 여성용 조깅화의 이름은 ‘Incubus’(인큐버스)다. 그런데 인큐버스는 중세 민담에서 잠들어 있는 여성을 강간하는 악마의 영혼을 뜻하는 단어였다.
......
저자는 펜티엄, 블랙베리를 작명한 렉시콘의 네이미스트이자 시카고대학의 언어학 교수다.

책은 재미있는 사례들로 넘쳐나지만, 가볍지만은 않다. 언어를 매개로 한 의사소통의 기본이 되는 ‘의미’ ‘소리’ ‘구조’ ‘사회적 맥락’의 네가지 층위에서 사례들을 분석한다. 영화 <에일리언>의 슬로건이었던 ‘우주에서 찍은 <죠스>’를 ‘개념혼합’이나 ‘심적공간이론’으로 설명하듯 언어학, 수사학, 심리학을 아우른다. "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110141934245&code=900308 



영화소개 프로그램에서 <청원>이라는 영화 소개를 보았다. 최고의 마술사에서 사고로 몸을 움직일 수 없는 주인공은 많은 이들에게 희망의 대상이 되었다. 그러나 그의 내면의 고통으로 그가 죽음을 원했다는 사실에 사회는 그를 위선자라고 공격한다. 하지만 반면 인간의 존엄성을 위해 죽음을 선택할 수 있어야 하지 않냐는 반론도 제기되는 영화였다. 영화와 연계될만한 책이 발간되었다. 사회적 현안을 키워드 중심으로 풀어내는 한겨레지식문고 시리즈로 <안락사는 살인인가>인데,  <인종주의는 본성인가>와 더불어 소개되었다.


안락사는 살인인가
토니 호프 지음·김양중 옮김/한겨레출판·9800원 

"<안락사는 살인인가>는 안락사, 의료자원 분배, 정신질환자 강제치료, 환자에 대한 비밀유지 등 의료윤리 문제를 다룬다. 지은이 토니 호프는 영국 옥스퍼드대 의료윤리학 교수로, 친숙한 영화, 유명사건을 실마리로 복잡한 주제를 차분하게 설명한다. 예를 들어 안락사. 죽음을 앞둔 류머티스 관절염을 앓는 노인이 극심한 통증을 못이겨 의사한테 죽여달라고 요청한다. 의사는 이를 불쌍히 여겨 환자를 위한 행동이란 믿음으로 치사량의 약물을 주입해 사망케 한다.

의사는 유죄인가? 답은 ‘그렇다’다. 인공적으로 수명을 연장하는 상황에서 처치를 중단하는 소극적 안락사와 달리 시술을 통해 죽음을 앞당기는 적극적 안락사는 현실적으로 위법이다. 실제로 적극적인 안락사를 시행한 영국의 의사는 살인미수죄를 적용 받았다. 하지만 지은이는 ‘살인하지 말라’는 율법에 이의를 제기한다. 죽음이 당사자한테 이로울 수 있다면 적극적 안락사를 반대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한국은 ‘안락사’ 대신 ‘존엄사’라는 용어를 쓰며, 소극적인 안락사까지는 법률이 아닌 판례로 인정하는 추세다.  

   
 
인종주의는 본성인가
알리 라탄시 지음·구정은 옮김/한겨레출판·9800원
 
<인종주의는 본성인가>는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인종차별과 갈등의 원인을 짚어보고 인종주의의 허구성을 지적한다. 인종주의는 대체로 피부색으로써 우열을 구분짓고 자신과 다른 인종을 차별하는 것을 말한다. 지은이는 콜럼버스 이후 ‘이방인’을 금수로 보는 시각이 생기고, 노예무역을 거치며 인종에 대한 편견이 굳어지고 민족주의가 이를 고착화했다고 말한다. 1960~70년대 인종차별을 철폐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됐으나 최근 세계경제가 악화돼 가난뱅이 유색 이주민에 대한 차별이 노골화하고 있다. 지은이는 인종주의가 비합리적인 일탈이 아니라 특수한 환경에서 성장해 마치 그것이 인류문화의 본질인 양 외피를 둘러쓰는데 성공했다고 말한다.

지은이는 인종차별에 반대하는 법안을 만들기 위한 기초조사를 하면서도 기존의 인종분류에 따르는 게 현실이라면서, 인종주의적 관념의 틀에서 벗어날 것을 주문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의학이 아니라 문화적·정치적 프로젝트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50193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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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하반기에 들어서 대한민국은 격랑의 시대를 맞고 있다. 무상급식 주민투표, 오세훈 전 서울시장의 사퇴, 서울시장 재보궐선거까지. 부자가 되게 해주겠다던 대통령에 이어, 부자가 되는 방법인 뉴타운을 공약으로 내건 국회의원들에 질린 서울시민들은 지난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을 거부했다. (민주당을 선택했다기 보다는 반한나라당 정서가 강했다.) 복지가 현재 이슈가 되고 있는데 이에 대한 책이 한권 소개되었다. 바로 얼마전 <복지국가>,<대한민국복지7가지 거짓과 진실>을 읽은데 이어 <복지국가 스웨덴>을 읽을 참이었는데 <우리는 중산층까지 복지확대를 요구한다>까지 엮어서 읽고 한꺼번에 후기를 올려야 겠다.
우리는 중산층까지 복지확대를 요구한다
경향신문 특별취재팀/밈ㆍ1만3900원

"“죽을 만큼 발버둥치지 않아도 최소한 사람같이 살 수 있으면 좋겠는데, 그게 복지 아닌가?” 이 책의 저자들이 인터뷰한 ‘삼포세대’ 젊은이들의 물음이다. 과도한 삶의 비용으로 연애도, 결혼도, 출산도 포기한 ‘삼포세대’의 출현은 복지 부재의 사회가 저출산과 고령화로 이어지며 한국사회의 지속가능성을 위협함을 보여준다.

시민들은 ‘트리클 다운’이라는 세련된 용어로 포장된 ‘선성장 후분배’의 개발주의를 지적한다. ‘트리클 다운’은 대기업과 부유층의 세금을 감면해 투자를 이끌어내면 경제가 성장하고 그 혜택이 중소기업과 국민 전체에 돌아간다는 이론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대기업에 전자부품을 납부하는 하청업체 사장은 “원자재 가격이 2010년에 40% 이상 올랐는데 단가를 후려쳐서 수익 내는 대기업에서 이런 하청업체 사정을 봐주지 않는다”고 푸념한다. 그 결과로 10대 대기업은 2010년 사내 유보금이 57조원에 달했지만 전체 일자리의 90%를 제공하는 중소기업들은 점점 고사하고 있다.

저임금노동자와 비정규직의 확대는 가계의 시장임금을 낮춰 결국 장시간 노동과 가계부채 증가로 이어진다. 또 그것은 삶의 질과 경제의 성장잠재력을 약화시킨다. 그래서 저자들은 “복지국가는 양극화된 노동시장과 조세제도, 대기업 위주의 경제성장 정책을 바꾸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지속가능한 복지국가가 되려면 우선적으로 최저임금을 현실화하고 장기적으로는 동일노동에는 동일임금을 지급하는 ‘공정임금’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

보편적 복지는 복지국가를 만들기 위한 ‘사회적 연대’를 위해서도 중요하다. 빈곤층이 아니라는 이유로 세금을 내면서도 복지에서 소외된다면 복지 확대를 위한 증세에 동의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110141913305&code=900308 


정치적 이슈에 묻혀 있었지만 교과서에 '민주주의'를 '자유민주주의'로 대체하는 논쟁이 있었다. 이 과정에서 일부 보수(국회의원포함)측에서는 '자유를 거부하는 사람들은 북한으로 가라'고 말을 했는데, '자유민주주의'를 주장하는 사람들 의심스럽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부정하는 사람들이라는데 그 네들 말대로 반대로 해보면 '자유민주주의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친일파'라는 말이 될 수도 있고, 대한민국 자체를 거부하는 사람들일 수도 있다. 헌법에 이미 임시정부를 계승한다고 되어 있으니 그럼 '자유민주주의'이야기하는 사람들은 도대체 뭠미? 


친일파는 살아있다
정운현 지음/책보세ㆍ1만9000원

"<한국방송>은 6월24~25일 백선엽 특집방송을 내보냈다. 시민단체들이 우려한 대로 백씨의 친일행적은 제대로 다루지 않고 그를 전쟁영웅으로 만들었다.

백씨는 1942년 만주군 소위로 임관해 3년 동안 간도특설대에서 복무했다. 이 부대는 간도 지역에서 활동하던 항일 세력들을 토벌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해방 뒤에는 국군 중위로 변신해 한국전쟁 때 최일선 부대를 지휘해 1953년 전쟁이 끝날 무렵엔 별 네개를 달았다. 육군참모총장, 연합참모부 의장(현재 합참의장)을 끝으로 예편한 그는 같은 만주군 소위 출신의 박정희 정권에서 대사와 교통부 장관, 국영기업체 사장을 지냈다.

오랫동안 친일파를 연구해온 언론인 정운현씨의 새 책 <친일파는 살아 있다>는 왜 공영방송이 앞장서 친일파 백선엽을 미화하고, 왜 조중동이 이승만을 ‘건국의 아버지’로 추앙하는지를 짚으면서 친일파가 미디어는 물론 사회 곳곳에 똬리 틀고 있음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최초의 친일파였던 구한말 김인승부터 을사오적들, 해방 이후 친일전력에도 불구하고 사회 지도층이 된 역대 대통령과 국무총리, 각료와 정치인들, 독립유공자로 변신한 친일파들, 국립묘지에 안장된 친일파들까지 다양한 이야기들을 소개한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왜 친일파 선정 대상에서 빠졌는지, 이승만 전 대통령과 친일세력은 친일파 청산을 위해 만들었던 반민특위를 어떻게 와해시켰는지 등의 이야기들도 흥미롭다. 책을 읽다 보면 친일파들이 어떻게 역사를 비틀어 국민들을 속여왔으며, 그들의 행적을 숨기는 동조자들이 이들을 영웅으로 미화하면서 어떻게 정치적 이익을 누리고 있는지 실감할 수 있다."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499826.html 


한국사회에서 박정희를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다. 아직도 선거 때면 박정희를 활용하기도 한다. 하지만 배고픈 시절이라는 경제성장 시절을 경험하지 못한 30대 이하의 세대에서는 윗세대만큼의 관심은 없는 것 같다. 오히려 경제성장이라는 혜택아래 누구나 쉽게 취업할 수 있었던 것에 비해 IMF 이후 취업난에 허덕이는 세대에게 박정희는 낯설어보인다.
박정희의 공과에 대해서는 어디에 방점을 찍느냐에 따라 그 인식이 다르다. 경제성장에 방점을 찍게 되면 정치를 희생하더라도 성공했다는 평가인 반면, 형식적 실질적 민주화 관점에서 본다면 지금 현재의 대기업위주와 정경유착의 비정상적인 자본주의를 낳았다는 평가이다.
개인적으로 박정희의 경제성장은 운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7-80년대에 압도적인 경제성장을 한 나라는 세나라밖에 없다. 한국, 대만, 이스라엘. 냉전과 중동이라는 화두아래 자유경제진영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았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게다가 금융경제사 측면에서 보더라도 1960년대 서구의 투자를 받아왔던 남미에 좌파정부가 들어서고, 1970년대 중동 오일머니가 서구 은행에 넘쳐나면서 미국의 보증아래 한국, 대만, 이스라엘에 엄청난 투자가 이루어졌다. 박정희가 아니더라도 경제성장 할 수 밖에 없지 않았을까라고 생각한다.
하여간 박정희의 경제적 공과에 대한 연구를 담은 책이 출간되었다.


박정희의 맨얼굴
유종일 엮음/시사인북ㆍ1만5000원

‘박정희 신화’라고 한다. 그 신화는 ‘그래도 우리가 이만큼 살게 된 것은 박정희 덕’이라고 결론낸다. 신화는 과거를 필연화하고, 현재를 과거에 종속시킨다. 한국 사회의 최대 화두인 양극화, 이 양극화를 추동하는 재벌 문제가 박정희 시대에 배태됐지만, 박정희 신화는 오히려 양극화에 대한 불만과 재벌에 대한 환상으로 자라난다. 경제학자 8명이 <박정희의 맨얼굴>에서 실증하려는 것이다. 책을 엮은 유종일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는 ‘경제성장의 신화의 허와 실’에서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절의 최대 정책 실패로 거론되는 양극화가 이미 1990년대 전반에 본격화됐고, 이는 박정희의 유산임을 실증한다. 유종일은 1980년대 이후 지니계수 등 소득분배 추이, 학력별·성별·기업규모별 임금격차 추이, 산업별·기업규모별 생산성 격차에 대한 실증적 통계를 내밀며, ‘외환위기발 양극화’를 반박한다. 그가 활용한 통계들을 보면, 분배추이는 1991~1994년 사이에 악화로 방향을 틀며, 고착화된다. 이는 양극화를 외환위기와 민주정부의 정책 실패에서 찾아야 할 것이 아니라 1990년대 이전 시기로 거슬로 올라가야 함을 의미한다.

이정우 경북대 교수는 ‘개발독재가 키운 두 괴물, 물가와 지가’에서 박정희 시절인 1963~1979년 지가는 100배가 올라, 막대한 불로소득으로 인한 양극화 체제가 완성됐음을 실증한다. 이런 지가 상승을 통한 불로소득은 326조원으로 생산소득 131조원의 250%가 된다. 그 시절 연평균 9.1%의 경제성장률 속에서 상위 5~10%는 평균성장률 이상의 생산소득 분배에 더해 거대한 불로소득까지 챙긴 반면 땅과 집 등 자산이 없는 하위계층들은 평균성장률 이하의 생산소득을 배분받았음을 고려하면, 그 시절에 양극화의 물질적 토대는 완성됐다."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503020.html 


정당한 위반
박용현 지음/철수와영희ㆍ1만3800원

"‘공정사회’라는 단어가 비웃음을 사고,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제목의 책은 불티나게 팔린다. 정의에 대한 대중들의 불신이 커졌음을 보여주는 단면이다.

<정당한 위반>은 2008년부터 올해 초까지 시사주간지 <한겨레21> 편집장을 지낸 지은이가 잡지에 썼던 편집장 칼럼 ‘만리재에서’를 묶은 책이다. 매 주 다른 주제로 써 내려간 글이고 다양한 글쓰기 형식을 선보이지만, 밑바탕에는 언제나 법학을 전공한 필자의 ‘법대로 실천하지 못하는 법조계’를 향한 문제의식이 흐르고 있어 책 전체가 한 주제를 다룬 것처럼 읽힌다.

책은 법치와 상식의 실종을 묻는다. 경찰버스로 둘러싸였던 서울광장과 미네르바 사건, 천안함 사건 등을 접하며 느낀 우리 사회의 모습을 얼굴 붉히지 않으며 간결하게 꼬집어 나간다. 풍성하게 인용하는 역사 속 인물과 사건, 해외 판례 등이 지금 한국 사회를 느끼고 이해하는 데 힘을 보탠다. 지은이는 “나쁜 세상에 대한 기록이자, 그 나쁜 세상에서 살아가는 법에 대한 모색”이라고 책을 설명한다. 그래서 책의 부제도 ‘나쁜 세상에서 살아가는 법을 묻는다'"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501928.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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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즈를 듣게 되면서 조금씩 관심이 넓어졌다. 재즈에 대한 책도 몇 권 들쳐보고 유명한 작품들도 손에 들어보고 그러면서 만나게 된 이가 아트 블레이키와 재즈메신저스이고 그들의 Moanin은 내 귀를 홀리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기마타 마코토의 재즈 연재 첫번재는 아트 블레이키에 대한 내용으로 채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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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시는 흑인 재즈와 백인 재즈가 분명히 나뉘어 있었다. 뉴욕을 중심으로 하는 이스트 코스트는 흑인이 우세했고 로스앤젤레스를 중심으로 하는 웨스트 코스트는 백인 지역으로 명확하게 갈려 있었다. 흑인 재즈의 리더로는 디지 길레스피, 아트 블레이키, 맥스 로치, 호러스 실버, 백인 리더로는 제리 말리건, 쳇 베이커, 빌 퍼킨스 등이 활약을 하면서 재즈계를 이끌었다. 그 이후 흑인 뮤지션들이 서서히 세를 넓히게 되면서 웨스트 코스트를 압도하게 된다. 그 선두에서 활약을 한 것이 ‘아트 블레이키 & 재즈 메신저스’였다.

1954년 아트 블레이키는 호러스 실버와 만난다. 그리고 클리퍼드 브라운, 루 도널드슨, 컬리 러셀과 새로운 퀸텟을 결성한다. 바로 이 그룹이 재즈 메신저스 탄생의 실제 계기가 되었다. 그 뒤 몇 번의 멤버 교체를 거쳐 1958년부터 아트 블레이키와 재즈 메신저스의 세계 제패가 시작된다.

리더인 아트 블레이키의 목표는 젊은 뮤지션을 기용하고 육성하는 것이었다. 당시 차세대 유망주로 기대를 모았던 트럼펫의 리 모건이나 피아노의 바비 티먼스, 테너색소폰의 베니 골슨, 웨인 쇼터 등을 기용하면서 재즈 메신저스로서의 길을 확실하게 다져 나갔다. 1958년 펑키재즈 붐의 발화점이 된 곡인 ‘모닌’(Moanin)을 ‘블루노트’에서 리코딩했는데 발매와 동시에 폭발적인 반향을 일으키며 전세계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재즈 메신저스가 만들어내는 멋진 멜로디에 열광하게 되었다. 
 
내가 블레이키와 처음 만난 것은 그로부터 20여년 뒤인 1982년이다. 재즈 메신저스는 1950년대 후반부터 10년 이상 질풍같이 세계를 누비며, 그야말로 황금시대를 만들어 갔다. 하지만 펑키 붐은 그리 오래 계속되지 못했다. 1970년대 들어서면서 일렉트릭 사운드, 퓨전뮤직이 등장하자 인기는 나날이 떨어져 갔다. 그래도 블레이키는 오로지 자신의 길만 걸어갔지만, 재즈 메신저스한테 1970년대는 암흑시대였다고 말할 수 있다.  

...... 

아트 블레이키의 당시 첫인상은 지금도 강렬하다. 멤버 한 사람 한 사람을 살펴가면서 전원에게 최고의 연주를 이끌어내고자 하는 강한 집념의 모습이 지금도 확실히 기억에 남아 있다. 나는 리더란 어떤 것인지 그 전형을 아트 블레이키를 통해서 확실하게 알 수 있게 됐다. 그래서 35년이라는 긴 세월에 걸쳐 재즈 메신저스의 역사를 쌓을 수 있지 않았나 생각해 본다. 이런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하는 아트 블레이키도 일을 떠나서는 자애로움이 가득하고 재치가 넘치는 성품이었다.

1984년 겨울, ‘아트 블레이키 & 올스타 재즈 메신저스’ 팀은 일본 투어를 위해 도쿄에 체류하고 있었다. 2월의 어느 날, 그들이 묵고 있던 호텔의 커피숍에서 베니 골슨과 그의 다음 리코딩에 대해 미팅을 하고 있었다. 그때 아트 블레이키가 말을 건네왔다. “합석해도 될까요?”

그와의 이야기가 무르익어, 예전 이야기나 지금까지 가장 인상에 남았던 일들, 이번에 특별 편성한 올스타 재즈 메신저스에 관한 얘기 등을 한 시간 이상에 걸쳐 들을 수 있었다. “당신에게 있어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뭐죠?” 내가 물었다. “클리퍼드(클리퍼드 브라운)가 교통사고로 죽었을 때의 충격은 지금도 잊을 수 없어요. 클리퍼드와는 언젠가 함께 그룹을 결성할 생각이었기에 더욱 안타까웠어요. 그 뒤 리 모건이나 프레디 허버드 등 훌륭한 트럼펫 연주자가 나왔지만 그들의 롤모델은 브라운이었어요.” 블레이키는 쓸쓸하게 말을 이었다.

당시 리코딩에 대한 느낌을 물었더니, 경쾌한 대답이 돌아왔다. “아주 즐거웠어요. 모두가 메신저스 출신이고 지금은 각자 자신의 영역에서는 내로라하는 사람들이라 음악이 환상적인 것은 당연하겠죠. 게다가 연주를 즐길 줄 아는 여유가 있다는 게 최고라고 생각해요. 연주하는 사람이 즐기지 못하는데 듣는 사람이 즐길 수 있을 리가 없잖아요. 이것이 내가 지향하는 재즈의 에센스랍니다. 생큐, 기마타! 앞으로도 기회가 있으면 꼭 리코딩 합시다.” " 

http://www.hani.co.kr/arti/SERIES/332/49850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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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신문 esc를 보다가 재즈 연재 기사를 읽었다. 4번째 연재물 쳇 베이커를 중심으로 하고 있었다. 인터넷으로 지난 연재물을 찾아 다시 읽다 문득 정리를 해두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마타 마코토는 '유러피안 재즈 트리오'를 기획했다고 한다. 편안한 재즈에 대해 이야기하던데 유러피안 재즈 트리오와 같이 연결되는 부분이다.  

"기마타 마코토(68). 1970년대부터 40여년 동안 재즈 음반 500여장을 제작·발표한 일본의 세계적인 프로듀서이다. 아트 블레이키, 케니 드루, 쳇 베이커 등의 앨범을 제작했고, 국내에서 인기가 높은 유러피언 재즈 트리오를 직접 발굴한 당사자이기도 하다. 재즈의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1996년 빌 클린턴 대통령에게서 감사장을 받기도 했다.  

재즈 음반만 고집스럽게 만들어왔던 그가 이번에는 연필을 들었다. 많은 사람들이 재즈를 좀더 쉽게 접할 수 있도록 돕겠다고 나섰다. 지난 40여년간 유명 재즈 음악가들과 만나 음반을 제작하며 겪은 일화를 그가 직접 소개한다. ‘재즈는 편안한 선율’임을 강조하는 기마타 마코토. 선율과 함께하는 가을 여행이 더욱 편안해지도록 이제 그가 다섯 차례에 걸쳐 길을 안내한다. "  http://www.hani.co.kr/arti/SERIES/332/498501.html 

재즈매니아까지는 아니지만 심심찮게 재즈를 듣곤 하는데 2000년대 초반 재즈로 연주한 클래식을 컨셉으로 재즈를 찾아 들었다. 그 때 유러피안 재즈 트리오를 듣곤 했다. (함께 자크 루시에, Eugene Cicero 등을 들었다.) 시간이 좀 지나서는 별 흥미가 생기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유러피안 재즈 트리오'는 듣기 편한 재즈라는 것은 분명하다.

           

"지난 21일 한국 공연을 마친 유러피언 재즈 트리오는 기마타 마코토와 인연이 더욱 깊다. 1990년 이들 그룹의 발굴과 첫 앨범 제작을 기마타 마코토가 진행했다. “그는 유럽의 젊은 재즈 트리오를 찾고 싶어했죠. 그와 함께 첫 앨범 <노르웨이의 숲>을 만들었고요. 일본에서 큰 인기를 끌어 공연을 하러 일본을 직접 방문하기도 했어요.” 이제 벌써 그들이 데뷔한 지도 22년째이지만, 그와의 인연은 아직도 이어지고 있다. 21일 한국 공연을 마치고 일본에 가서 기마타 마코토를 만나게 될 것이라는 이야기도 꺼냈다.

그들이 이처럼 끈끈한 관계를 이어오고 있는 데는 역시 기마타 마코토의 성품이 영향을 미쳤다. 이 트리오에서 베이스를 맡고 있는 프란스 판 데르 후번은 “그는 모든 음악 장르에 열린 마음으로 다가서는 자세를 갖고 있다. 이 때문에 서로 영감을 줄 수 있는 다른 성향의 음악가들을 한데 모아 새로운 것을 추구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한다”고 말했다. 이런 성품이 창의적인 발상을 가능하게 하기도 했다. 유러피언 재즈 트리오가 재즈 클래식에 다가서게 된 계기도 기마타 마코토의 제안 때문이었다. 이들은 “기마타 마코토가 없었으면 유러피언 재즈 트리오도 없었을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http://www.hani.co.kr/arti/SERIES/332/49850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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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도가니를 통해 장애인, 사회복지 문제가 새삼 대두되고 있다. 광주 인화학교와 같은 문제는 사실 오래된 문제이다. 언론에서도 많이 다루어졌지만 시간이 지나면 다시 묻히고 말았다. 그러나 영화를 통해서 사회복지라는 탈을 쓴 그들의 악랄함이 드러났고 사람들은 분노했다. 당시 책으로 나오면서 잠깐 이슈화가 되었지만 영화화 되면서 전 국민의 관심사가 되었다.

광주 인화학교 말고도 에바다 농아학교, 성립재단 등이 문제가 되는 대표적 사회복지 법인이다. 

도가니가 전부가 아니다  ← 기사클릭

이런 사회복지 법인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노무현 정부는 사회복지법인에 대한 감시를 강화하는 법안을 만들려고 했지만 한나라당의 거센반대의 부딪혔다. 대표적으로 한나라당의 고경화의원, 김충환 의원 등이 반대했다. 그들은 도가니 사건을 두고 국민앞에 나와 사죄 해야 할 것이다. 

정말 몰랐다고?'도가니'의 '불편한 진실' ← 기사클릭

노무현 정부 만들려 한 '도가니 방지법' 반대한 한나라당 의원들은 바로... ← 기사클릭

장애인에 대한 정책은 한 사회의 복지 수준을 가늠하는 중요한 잣대이다. 우리사회는 산업사회를 거치면서 장애인을 걸림돌인 존재로 여겨왔다. 고려, 조선사회에서도 관심의 대상이었던 장애인은 현대사회 특히 산업사회를 거치면서 없어져야 할 존재가된 것이다. 지금은 어떠한가? 이명박, 오세훈이 서울시장이던 시절 서울시청사와 시청역 주변에서는 농성중인 장애인을 쉽게 볼 수 있었다. 장애인에 대한 정책을 호혜성이라며 그 혜택을 줄여갔던 장본인들이었다. 복지문제를 논하면서 망국을 이야기하지만 고려, 조선시대보다 못한 그들의 생각은 너무 구식이다. 장애인에 대한 이덕일의 글이 중앙일보에 실렸었다. 

'다산 정약용은 유배지에 왔다가 돌아가는 아들 ‘학유(學遊)에게 노자(路資) 삼아 집안의 계율을 써 주는데[贐學遊家誡]’ 여기에 옛날 선왕들이 사물을 활용하는 지혜가 있었다면서 장애인 등용 방식을 설명했다. 즉 “맹인에게는 음악을 관장하게 하고, 다리를 저는 사람에게는 대궐문을 지키게 하고, 환관(宦官)들에게 궁궐 안을 출입하게 하고, 다른 여러 장애인들에게도 모두 적당한 임무를 맡겼다”면서 “그 이유를 깊게 생각하고 연구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말했다.

 왕정(王政)이 제대로 펼쳐지는지는 홀아비, 과부, 고아, 자식 없는 늙은이를 뜻하는 환과고독(鰥寡孤獨)과 장애인 정책 여부로 판명 났다. 장애인 우대 정책은 조선보다 고려가 더 나았다. 고려 성종(成宗)은 재위 10년(991) 10월 서도(西都·평양)에 행차하면서 민정을 살펴 “중병이 든 자[篤疾]와 장애인[癈疾者]에게 약을 내려 주었다”는 기록이 있고, 고려 예종(睿宗)도 재위 원년(1106) 9월 80 이상 노인과 의부(義夫)·절부(節婦)·효자·순손(順孫) 같은 의행자들과 함께 환과고독과 중병 든 자, 장애인을 대궐 마당으로 초청해 직접 잔치를 베풀고 물품을 하사했는데, 이런 기록이 많다. 그래서 성호 이익(李瀷)은 ‘고려 때의 진휼정책[高麗賑政]’에서 “환과고독은 모두 관에서 구휼하고 이외에도 온갖 장애인도 모두 국가에서 부양했으니 백성들을 우대하는 정사가 지금(조선)에 비해 조금 나은 정도가 아니었다”고 높게 평가하고 있다 .' 

 http://joongang.joinsmsn.com/article/aid/2011/10/07/6007456.html?cloc=olink|article|default 

장애에 대해 본격적인 연구를 한 활동가가 있다. 김도현이다. 장애학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이다. 

  당신은 장애를 아는가

“장애인이기 때문에 차별받는 것이 아니라, 차별받기 때문에 장애인이 된다.” 뼈아픈 말이다. 아프리카 끔찍한 흑인 노예무역 역사를 읽다 보면 닮은 생각이 절로 난다. “아프리카가 엉망진창이어서 유럽 제국주의에 당한 게 아니라, 유럽 제국주의에 당했기 때문에 아프리카가 엉망진창이 됐다.” 우리 근현대사에도 적용할 수 있다. “조선이 형편없었기 때문에 일제 식민지가 된 것이 아니라, 일제 식민지가 됐기 때문에 조선이 형편없는 나라가 됐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형편없었기 때문에 나라가 분단당한 것이 아니라, 미국 소련이 우리나라를 분단했기 때문에 우리가 형편 무인지경이 된 것이다.”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205541.html 

우리가 아는 장애는 없다.

'장애에 대한 문화인류학적 접근을 담은 <우리가 아는 장애는 없다>가 나온다. 북유럽 출신 인류학자인 베네디크테 잉스타와 수전 레이놀즈 화이트가 쓴 이 책을 번역한 사람은 오랫동안 장애인 차별철폐 운동의 현장에서 일해 온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활동가 김도현(37·사진)씨다. 학교가 아닌 현장에서 장애학을 배우고 고민해 온 활동가로서, 그는 이전에도 몇 권의 저작을 통해 장애학 담론의 필요성을 제시한 바 있다. 
  
 
29일 만난 김씨는 “장애학 담론 소개라는 벅찬 작업에 착수하게 된 데에는 두 가지 목적이 있다”고 말했다. 하나는 장애 차별에 맞선 사회운동에 필요한 담론적 기반을 찾는 것이다. 여성운동이 여성학 담론을 부르고 그 담론이 다시 여성운동을 풍부하게 해주는 것처럼, 장애운동도 담론과의 상호작용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장애운동·담론은 여러 이유로 그런 상호작용을 본격적으로 겪지 못했다고 그는 진단한다.

두번째 목적은 장애 문제를 장애인의 문제라고 치부하고 낯설게만 대하는 사회에 대해 확장된 고민과 소통을 제안하는 것이다. 그는 “‘인간다움’이란 과연 무엇이냐 하는 우리 사회의 근본적 고민을 놓고, 결코 장애 문제를 생략하거나 우회할 수 없다”고 말했다. 오히려 우리가 사는 사회를 풀이하고 인간다움이 뭔지 밝히는 일에서 “장애는 중요한 연결점이자 매개점”이라고 했다. 컬렉션 출간은 떨어져 있던 장애-비장애의 연결고리를 다시 복구하려는 시도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장애학의 주요 내용은 무엇인가? 여성학에도 다양한 성격과 견해의 담론들이 있는 것처럼, 장애학 역시 마찬가지라고 한다. 따라서 컬렉션에서도 다양한 견해와 방법을 담은 책들이 소개될 예정이다. 그 가운데에서 굳이 하나의 일관된 흐름을 찾자면, “장애를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적 관점으로 다룬다는 것”이라고 김씨는 말했다. 곧 ‘장애는 만들어진 개념’이자 ‘사회적으로 구조화된 억압’이라는 인식이다.

우리가 아는 장애란 개념은 근대 자본주의 문명의 발달과 연관되어 나타났다고 한다. 자본주의 이행기에 공장제 노동이 정착되는 과정에서 수많은 부랑인들이 출현하게 되었는데, 이들의 ‘훈육’을 맡았던 국가가 이들을 분류·관리하는 과정에서 ‘일할 수 없다고 판단된 사람’(the disabled bodied)이라는 기준을 적용하게 됐다. 이것이 근대적 장애 개념의 시초라고 한다. 그 뒤 이들에게 사회적 배제·격리가 가해졌고, 이들을 다시 노동하게 만드는 ‘재활’이란 개념도 등장하게 됐다는 것이다. 문화인류학적 접근인 <우리가 아는 장애는 없다>는 아프리카, 아시아, 북유럽, 미국 등 다양한 문화권에서 나타나는 장애의 저마다 다른 양태를 보여준다. 신체의 일부나 전부가 불완전하다는 ‘손상’의 개념이 손상을 지닌 사람을 사회 활동으로부터 배제시키는 ‘장애’라는 개념으로 확장되고, 그런 낙인 효과에 의해 인간 존재에 대한 차별과 배제가 구조화된다. 이런 방식으로 장애를 둘러싼 역사, 문화, 사회적 관계 등을 두루 읽어내는 것을 장애학이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 

http://www.hani.co.kr/arti/culture/religion/470734.html 

장애학 함께 읽기 

'말이 나온 김에 우리 사회가 장애에 관해서 얼마나 찌질한 사회인지 떠들어 보자. 왜 찌질하다고 하냐면 저열함을 감추기 위해 그럴듯하게 포장하고 있는데, 그 포장지가 너무 천박하기에 하는 말이다. 우리나라 곳곳에는 아직도 장애인의 집단 거주지가 있다. 시설이라고 하는 곳이 그것인데, 가끔 비인간적 운영 실태가 보도되곤 한다. 그런데 언제나 사건은 운영자와 관리자의 개인 비리, 그것에 대한 분노, 그걸로 끝난다. 장애인들을 왜 그런 시설에 격리 수용해야 하는지에 관해서는 논의조차 하지 않는다.

이유는 간단하다. 장애인들이 사회 속에서 같이 살아나가려면 이 사회의 구조가, 사회 구성원의 생각과 매너가 바뀌어야 하는데, 바로 그 비용 감당이 싫어서다. 시설에 두면 일단 내 눈앞에서 들어가는 비용과 노력이 없어도 되고, 그렇게 되면 장애는 오로지 장애를 가진 자, 그들만의 문제에서 멈춘다. 그래서 장애 운동 하는 사람들은 '탈시설'을 외치지만, 비장애인들은 두려워한다. 왜 나오려고 해? 그냥 그 속에서 편하게 살아, 걸리적거리지 말고, 이렇게 말이다.

간혹 기특하게도 어떤 종류의 장애인에게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이 주목하는 장애인들은 대개 스스로의 장애를 극복하고(혹은 부모가 극복시키고) 비장애인에 근접한 기술과 기능을 익힌, 의지의 인물들이다. 그래서 장하다고 상도 준다. 여당 국회의원도 장애극복상이라나 뭐라나를 만들어서 장애를 극복한 장애인을 국회로 초청해서 행사를 벌였었다. 그 행사 주체의 하나인 나모라는 의원도 장애아의 부모였다는 점에서 어이가 없었다.

장애인과 장애인 가족들은 누구도 장애인이 장애를 극복해야 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진정 극복되어야 하는 것은 장애인 살기를 불편하게 만드는 사회이지 장애를 가진 개인이 아니기 때문이다. 장애를 극복하라는 말은, 장애가 곧 자기결함이라고 인정하라는 윽박지름과 같다. 장애인이 왜 자신의 의지와 무관한 장애를 극복해내야 하는가. 이런 기본적인 의문도 갖지 않았었다는 말이니, 이는 장애부모의 임무와 사회인의 책임 둘 다를 저버린 것이다.

비장애인들이 자기들만의 출발선을 그어놓고는 바로 거기서부터 자기들은 출발하면서, 장애인한테는 그 출발선까지 가는 게 목표여야 한다고 말하는 셈이다. 왜 자기조건을 극복하고 이른바 일반인(그들만의 표준인을 말하는 것이겠지)처럼 살기가 목표여야 하는가 말이다. 이래서 웃긴다는 말이다. 그 인간 표준이라는 거. 낡아빠진 우생학적 발상 아닌가. 상품성에 미달되니 솎아내고자 하는. 비장애인들의 출발선까지 가기 위해 장애인들은 자신의 존재와 무관한 헛땀을 쏟아야 한다.

나는 그것은 비본질적 노동이라고 부르고 싶다. 내 존재를 풍요롭게 하는 일과 상관없는 허상의 포장을 위한 헛땀 말이다. 금칠 범벅한 고층 빌딩이 강줄기를 차고 세워질 때, 수초 우거진 아름다운 강변이 시멘트 길로 메워질 때, 밤새도록 현란한 조명이 한강다리에서 번쩍일 때, 아, 삶의 터전이던 온 나라가 저들의 돈놀이와 유원지로 변해 가는 것을 볼 때, 그것들을 위해 내 땀과 내 수고가 얼마라도 쓰였구나 하고 생각하면 억울하기 짝이 없다. 바로 그게 비본질적 노동이 아닌가. 장애인들에게 자기 조건을 극복하고 표준화된 이 사회에 적응해서 네가 해야 할 몫의 노동을 하라는 것도, 바로 그 헛땀을 강요하는 셈법에서 나온 것이다.

다소 감상적인 이러저러한 내 소박한 장애관(이라고 말하니 좀 쑥스럽기도 하지만)이 바야흐로 '이론 학습'을 통해 한 단계 업그레이드할 기회를 가졌다. 김도현의 책 <장애학 함께읽기>를 접하면서 장애학이라는 분야가 따로 있으며 그것은 여성학처럼 여러 분과를 통섭하는 학제적 의미를 갖는 분야로 있어야 하는 걸 알게 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장애 자체에 대한 논의가 사회복지학, 특수교육학, 의학 내에 분산되어 있는데, 바로 그 점 때문에도 장애 문제가 체계성을 갖고서 논의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늦었지만 이론적 기반과 실천운동의 기반을 제공하는 독립적 체계로서 장애학이 반드시 있어야 하는 때이다.'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1017073634&Section=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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