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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주석의 한국의 美 특강
오주석 지음 / 솔출판사 / 2005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아주 강렬한 호랑이 한마리가 나를 응시하고 있다. 그 모습이 너무 강렬해서 쉽게 잊혀지지 않는다. 오랫동안 책 꽂이에 꽂혀있던 '오주석의 한국의 미 특강' 손길을 주기가 쉽지 않았다. 이유는 바로 그 안에 들어있는 비결들을 내가 너무 값없이 받아들이게 될 까 걱정되었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한국미의 성찬을 단순히 결혼식 부페 음식 먹듯 만족할까봐 염려스러웠다. 그러던 중 오주석 선생의 별세소식을 들었다. 물론 '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이라는 책을 통해 그 분의 가르침을 받았었지만 이제는 죄스러움이 그를 대신했다.
문화예술을 즐기기 위해 발품을 팔던 나에게 어느 때 부터인지 한가지 물음표가 마음 속에 자리잡았다. 우리문화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는가? 나는 과연 우리나라의 미가 중국, 일본과 어떻게 다른지 설명할 수 있을까? 그 대목에서 나는 꽉 막혀버렸다. 물론 이것은 나의 잘못만은 아니다. 일제시대를 거쳐 우리문화는 난도질 당했고, 선생이 지적하던 바와 같이 조선의 그림이 일본식 표구에 달려 그 참 맛을 잃어버리듯 의미를 잃어버렸다. 또한 12년 그리고 대학이라는 공간에서 누구하나 나에게 우리문화의 참맛을 전해준 사람은 없었다. 단순히 '우리 것이 좋은것이여' 라는 구호 하나면 그만이다.
화려한 신라의 금관이나 씩씩한 고구려의 사신도, 신비로운 고려청자의 빛과는 달리 어딘가 모잘라 보이는 조선의 문화들. 자랑스럽게 문화를 생각하던 나는 항상 조선의 백자 등을 보면 잠시 쉴 곳을 찾았다. 단순히 소박미라고 에둘러 생각해보았지만 소박미라는 게 쉽게 납득이 가지 않는 것이었다.
'오주석의 한국의 미 특강'은 바로 그 머뭇거림의 올가미를 벗겨준 책 이다. 한국의 미에 대한 눈을 틔워주는 바로 그런 책이다. 왜 그동안 우리는 조상들의 문화를 줄을 늘어서 돌아보곤 곧 '어 별로 볼 것 없어'라고 말해던 것일까? 우리 조상들의 문화를 즐길 준비가 되어 있지 못했고, 보는 눈을 갖지 못했기 때문이다.
강의를 옮긴 이 책은 그래서인지 쉽게 우리문화를 즐길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한다. 첫째, 작품 대각선의 1 내지 1.5배 거리를 두고 둘째,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또 오른편 위에서 왼편 아래로 쓸어내리듯이 셋째, 마음을 열고 찬찬히 바라보는 것이다. 작품과의 거리가 작품에 대해 마음을 여는 것은 직접 작품앞에서 해야 겠지만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읽어내리는 것은 쉽게 적용할 수 있는 부분이다. 물론 쉽지는 않을 것이다. 이미 서양식이 익숙해져버려 무의식중에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그림을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주석 선생의 설명을 통해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내려 읽으니 경이로운 조상의 멋스러움이 얼추 느껴졌다. 씨름도와 같은 풍속화 뿐만 아니라 기로세련계도와 같은 그림에서 왠지 모를 안정감과 여유와 미의 맛깔스러움을 얼핏 느낄 수 있었다. 특히 주상관매도와 마상청매도는 책에 담겨있는 그림만을 볼 뿐인데도 자연스레 시선이 오른쪽 위에서 왼쪽 아래로 내려가며 여백이 빈 공간이 아니라 여백으로 채워진 공간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이제 우리그림의 맛은 여백을 넘어 송하맹호도의 표현에 까지 이르런다. 실바늘 같은 선들로 이루어진 세부적인 호랑이이의 얼굴, 그림 앞에서 쉽게 넘어갔던 예전의 발걸음이 죄스러워졌다. 혼신의 힘을 다해 보이지 않는 곳까지 펼쳐진 이 세심함이 그림의 참 맛을 전해준 원동력이었다. 우리 조상들은 그렇게 문화를 만들어냈던 것이다. 이재, 체제공, 강세황의 초상화 역시 그 세심한 표현력에 감탄할 수 밖에 없다. 모나리자나 렘브란트의 초상화로만 가로새겨진 우리의 인식을 깨뜨린다. 눈가의 작은 검버섯까지도 표현했던 조상들의 표현력은 극사실주의의 극미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조상들의 미를 알기 위해서는 우리의 사상이 바탕이 되어야 함을 저자는 역설한다. 천지인 등 조상들의 사상, 주역이 바탕이 된 사상으로 하늘로 뻗은 탑의 층은 홀수, 땅과 연결된 부분의 면은 짝수 면을 갖췄던 것은 탑을 제대로 볼 수 있는 눈을 제공할 것이다.
물론 이런 미를 제대로 누리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우리문화의 상당수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를 정도로 일제시대에 빼앗겼고, 일제시대와 격동의 현대사를 보내며 우리조상의 멋은 일제와 서양의 것에 씌워 볼 것 없고, 촌스러움이 되어 버렸으니까 말이다. 그래서 더욱 이 책이 빛을 발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제 선생은 우리에게 숙제를 던져준다. 이제 곧 박물관에 가서 작품의 1내지 1.5배 거리에서 마음을 열고 작품을 보는 것을 해 보라고.
유홍준은 '남의 문화유산 답사기'에서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명쾌한 지적을 하였다. 맞다. 아는 만큼 보인다. 그리고 선생의 말처럼 마음을 열어야 작품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