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 정치를 만나다 - 위대한 예술가 8인의 정치코드 읽기
박홍규 지음 / 이다미디어 / 2007년 8월
평점 :
절판


박홍규 교수의 책은 남다른 의미를 지닌다. 법학을 전공했지만 예술의 사회적 관계에 주목하고 글을 쓰는 그의 책은 분명 여타 예술관련 책들과는 궤를 달리한다. 흔히 예술과 관련된 책들은 예술을 전공한 학자 혹은 예술가들에 의해 씌여지는 것이 상식처럼 여겨진다. 그런 영향인지 예술을 전공하지 않은 사람이 예술에 관련된 글을 쓸 때는 무게감이 떨어져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바로 이런 시각은 이미 정치에 종속되어 버린 우리 예술의 모습을 보여주는 한 예라 할 수 있다.

지은이는 정치라는 주제로 8명의 예술가의 삶을 살펴본다. 물론 우리가 갖고 있는 기존의 사고에서 괴테는 소설가, 사르트르는 철학자라는 인식이 더 강하다. 예술이라는 단어가 정치와 결합하면서 예술은 미술과 음악으로만 한정지어버리는 결과의 소산이 아닌가 생각된다.

바로크 시대의 화가 루벤스는 예술과 정치의 조화를 이룬 행복한 인물이고 삶 또한 다른 예술가들과는 달리 고단하지 않았다. 그의 조화로운 삶의 기본은 정치에 종속되지도 않았지만 그렇다고 에둘러 정치를 멀리하지 않았다. 스스로 외교관이 되기도 하고 사교의 중심인물이 되기도 했던 그는 정치와 예술을 함께 이룬 흔치 않은 예술가이다.

괴테 또한 루벤스와 같이 예술과 정치를 조화롭게 이룬 예술가이다. 이런 측면에서 당시 예술가들이 시대와 떼어 놓을 수 없는 상황이었음을 보여준다. 괴테가 비 정치적이라고 주장할지라도 괴테는 공직의 역할을 충실히 했음을 보면 예술가의 정치가의 경계를 무색케한다. 그러나 그는 국수주의와 민족주의의 매도되는 것을 극복하고, 시민적인 생활형태를 사회의 몽매주의와 비합리주의로부터 보호하려고 한 르네상스형 인간이었다.

그러나 바그너의 경우는 정치에 경도된 한 예술가의 삶을 보여준다. 몇 해 전 '니벨룽겐의 반지'라는 거대한 오페라로 우리나라를 찾은 바그너가 새로운 유행이 되었지만 우리사회에서는 그 예술뒤의 정치성을 보여주지 못했다. 그의 작품이 심하게 중세와 신화에 몰입했던 것은 바그너 스스로가 철저한 반유대주의이자 국가주의자였기 때문이었다. 그의 오페라의 정치성은 결국 나치와 결탁한다.

오페라하면 빼놓을 수 없는 베르디는 이탈리아의 통일을 노래했다는 점에서 그리고 무솔리니의 파시즘과 연계했다는 점에서 바그너와 비교될 수 있고, 그의 오페라에서 보이는 모습들이 민중들의 실패를 대변한다는 점에서 한계를 드러내 보이지만, 베르디는 그의 오페라를 통해 이탈리아의 자유와 정치적 실패를 인간적 고뇌로 승화시키는 예술가다운 면모를 보였다.

천재화가 피카소는 예술의 상업성을 간파해 살아서 부와 명예를 거머쥔 몇 안되는 예술가이다. 그러기에 그의 작품이나 정신보다는 외적인 부분이 많이 작용하는 것이 사실이다. 어떤 경우에는 천재라는 이름으로 모든 것이 덮혀지기도 한다. 그러나 스페인 내전을 다룬 '게르니카'는 작품속에 담겨있는 의미를 강조한다. 피카소의 기행이 아니라 그의 정신 즉, 시대정신에 투철한 반항적 예술정신을 보여준다.

이 시대의 최후의 광대로 남을 채플린은 그 우수꽝스러움 뒤에 냉철한 사회비판 의식이 스며있다. '모던타임즈'를 통해 인간성을 말살해버린 미국의 자본주의를 비판하고 있으며 '독재자'를 통해 히틀러를 비판한다. 그가 사회주의자라는 의견이 있지만 중요한것은 그가 빈부 갈등을 반대하며 자유와 평등을 믿는 민주주의자였다는 점이다. 우리는 그의 작품속에서 그런 그의 정신을 만날 수 있다.

실존주의자로 알려진 사르트르의 삶은 성찰적 예술가의 삶의 전형을 보여준다. 어떤 권력도 부정하고 노벨상과 같은 권위도 부정하는 그의 철학은 그의 작품 뿐만 아니라 그의 삶을 통해 그대로 드러난다. 유행지난 작가라고 치부되던 시절에도 굿건히 그의 삶과 예술을 일치시켰으며 이념이 개인의 개체성을 희생하거나 헌신을 요구해서는 안된다며 자유로운 지식인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비틀즈의 멤버로 잘 알려진 존 레논의 '이매진'은 분명 새로운 사회를 꿈꾸는 자들의 노래이다. 전쟁과 권력을 거부하고 평화와 공존을 전하는 메시지는 단순한 노랫말이 아니다. 자본의 힘에 지배된 물신주의와 냉전이라는 사회적 구도속에서 가해지는 사회적 압박에 대해 그의 정치성을 그는 노래에 담아 실천한 예술가였다.

우리나라 문학계에서 끊임없이 제기되었던 논쟁중의 하나가 바로 '참여문학' 논쟁이다. 정치적이지 않은 문학은 예술성이 높다라는 정치적 의도가 짙은 명제를 굳게 걸어 놓은 우리나라의 현실에서 예술에서 정치성을 찾는 행위는 일종의 저급한 일이었다. 예술 그 자쳬만을 최고로 놓는 예술계의 모습은 예술이라는 개념자체가 형성된 우리의 역사를 애써 무시하고 있다. 애초부터 권력에 의해 주도된 예술, 때로는 정치에 봉사하고 때로는 현실을 무시하면서 현실정치에 면죄부를 주고자 했던 예술은 과연 정치와 예술의 분리를 증명하는 것일까? 모든 예술은 정치적이다라는 말은 사실은 예술에 대한 모든 의미를 담고 있다. 현실이라는 사회에 발 딛고 서있는 예술가들은 현실정치라는 테두리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런 현실을 인간적인 고뇌로 승화시키거나 현실과의 타협을 거부하거나, 현실에 순응하는 것 모두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 이제 예술성이라는 가면뒤로 정치를 반영하는 예술가보다는 모든 예술은 정치적이라는 사실을 인식하고 그 속에서 사람들의 삶과 고뇌를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박홍규의 '예술, 정치를 만나다'는 큰 의미를 갖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