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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와비평 창간호 세번째 꼭지는 "이상문학상"을 주제로 한다. 여러 문학상 중에 가장 인지도가 높은 것이 "이상문학상"이고, 수상집을 출간하고 그 수상집이 항상 베스트셀러라는 점에서 상업적인 면에서도 가장 성공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이상문학상"은 또한 서울대 국문과 출신, <문학사상> 학맥의 편파성이 심하다는 점에서 "문학권력논쟁"의 한 가운데 있고, 또한 수상작의 출판권을 <문학사상>이 소유하는 공정성의 위배가 심각하다는 점에서 문제가 크다.

 시장과 우상 : "이상문학상"을 비판한다.

고봉준(문학평론가) 연구공간 <수유+너머> 연구원

 
문학상과 문화산업

오늘날 문학은 작가와 작품을 배출하는 "생산"시스템과 그것을 배포, 소비시키는 "유통" 시스템으로 구성된 하나의 제도로 자리잡았다. 90년대 이후의 문학은 "스타 시스템"을 통해 성장해 왔으며, 그 성장의 동력 대부분을 문학상이라는 제도적 장치로 부터 공급받아 왔다.

이상문학상을 둘러싼 몇 가지 잡음들

"문학성"과 "대중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음으로 지금까지 문학상의 성공사례로 평가받던 이상문학상은 2000년 1월 24회 이인화의 "시인의별"의 수상과 더불어 공정성논란이 제기 되었다.

논란의 초점은 첫째, 심사대상작품의 조건에 대한 문제로 심사대상작이 되지 않는 작품을 선정한 채 추후 변명식 해명으로 논란이 시작되었다. 둘째, 심사위원에 대한 문제로 서울대 국문과 출신에 주관출판사인 <문학사상> 학맥으로만 이루어져 편파성이 심하다는 점이다.

 

상업주의와 문학상

이상문학상의 상업성을 그대로 드러보이는 대목은 바로 이상문학상 수상집을 낸다는 점에 있다. 한 해 동안 주목받았던 작품을 한권에 실어낸다는 데 부터 베스트셀러의 요건을 갖추게 되는 이상문학상은 수상자들로 하여금 수상작의 소유권을 향후 몇년간 출판사가 소유하고 수상작이 다른 출판사에서 출간될 경우 <문학사상>의 동의를 받게 하고 있는데, 이는 공정한 문학 시장 형성에 있어 심각한 문제를 초래한다.

이런 문제는 2000년  김승옥, 박완서, 이청준, 조세희, 김주영, 김원일 등의 작가에 의해 "이상문학상 수상작품집 제작-배포 금지 및 그간의 저작권사용료 청구"소송이 발생한데서 문제의 심각성이 드러난다.


광장의 축제를 위하여

문학상 제도의 본질적인 문제는 문학상을 주관하는 출판사들이 문학상 제도를 통해 자신들의 문학적 권력을 강화시키려 하는데 있고, 문학상을 수여하는 대가로 스타작가들에게 암묵적인 계약을 강요한다는 데 있다.

이런 문제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문학상 자체의 이름에 맞는 작품을 선정해야 하며, 해마다 수상작을 선정해야한다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나 수상작을 내지 않거나, 수상을 거부하는 건설적인 방향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2004.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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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와 비평] 창간호의 두번째 꼭지는 '동인문학상'을 다루고 있다. '동인문학상'은 수상 거부 등 논란이 많은 문학상이다.

개인적으로도 <조선일보>의 비도덕성으로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다 '동인문학상'의 '동인'이 친일 문인이라는 점에서 별로 좋아하지 않는 상이다. '동인문학상'을 얼씨구나 하고 수상하는 작가들을 보면 한편으로는 한심하다는 생각까지 든다. 물론 '동인문학상' 수상하시는 분들이 다 고명하신 분들이지만,,, 특히나 이문구의 동인문학상 수상 당시 이문구의 감격에 찬 수상소감은 평소 이문구가 보여주었던 행동과는 반대되어 보였기에 상당히 실망스러웠다.(이때 평론가이자 시인인 김정란교수가 아웃사이더에 그 실망감을 표현한 글을 실었었다.)


우리나라의 문학에 있어서 신문매체와의 관계는 상당히 밀접하다. 신문매체는 문인들로 하여금 작품 발표의 기회를 많이 제공하였고, 또한 칼럼이나 기자의 형태로 경제적 안정에도 상당한 기여를 했다. 신춘문예를 통해 젊은 작가들의 등용문 역할을 한 것이 사실이다.

이런 모습을 통해 신문매체의 기사를 통해 문학에 미치는 영향이 상당해졌고, 결국은 한국문학의 권력화를 조장하기에 이르렀다. 문학권력논쟁에 조선일보가 주요 대상중의 하나였던 것은 이런 점 때문이다. 즉, 신문매체가 작가-비평가-출판사로 조직화되고 위계화된 한국문학의 불합리를 정당화시켜 문학권력과 신문매체간의 문언유착을 확대시켜 나갔다.

 

2. 신문매체 문학상과 문학권력

신문매체들의 문학상은 한국문학의 상징권력인 문인들을 이용하여 신문의 특권화된 지위를 보장받으려는 전략을 쓰고 있다는 데 큰 문제가 있다. 또한 신문매체들의 문학상이 ‘동인문학상’, ‘미당문학상’, ‘팔봉비평문학상‘ 등 친일문인들의 이름을 빌리고 있다는 점 또한 그들의 친일행동을 은폐시키려는 문학권력과 연계되어 있다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

 

3. 조선일보와 동인문학상

특히 이런 문제를 안고 있는 신문매체의 문학상중에 가장 많은 논란이 일고 있는 것이 <조선일보>의 ‘동인문학상’이다. 이런 논란 속에서 ‘동인문학상’은 2000년 종신심사위원제 도입과 단편이 아닌 단행본 소설집으로 심사대상을 변경하고 나섰다. 그러나 종신심사위원제는 그 자체가 문학권력의 권력화를 가속화한다는 점에서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 심사위원들 자체에서도 이념적으로 한쪽으로만 편향되어 있다는 점에서 ‘동인문학상’ 자체가 이념적으로 한 쪽 문인들을 중심으로 문학권력을 구성하겠다는 의도가 엿보인다.

이런 문제들 속에 2000년 이후 황석영, 공선옥, 고종석이 ‘동인문학상’의 후보작이 되는 것을 거부하면서 ‘동인문학상’의 문제는 더 큰 논란을 일으켰다. 황석영은 ‘동인문학상’ 후보작 거부와 관련하여 세가지 이유를 드는데, 첫째는 <조선일보> 자체가 반개혁적 수구 세력이라는 점, 둘째는 ‘동인문학상’이 문언유착을 통해 한국문단을 종속화시키려는 언론권력의 속성, 셋째는 친일문인인 ‘동인’에 대해 문학적으로 다른 판단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황석영의 이런 거부이유는 동인문학상이 가지고 있는 본질적인 문제를 그대로 지적하고 있다.

특히 ‘동인문학상’의 경우 근래 들어 문인들 사이에 거세게 일고 있는 안티조선운동에 대해 권위있는 문인을 심사위원으로 만들고 또한 조선일보에서 수여하는 문학상을 수상케 함으로 안티조선운동에 대한 방어막을 형성하려 한다는데 문제가 있다.

 

4. 문학상 제도의 혁신을 위하여

신문매체의 문학상은 공정성과 객관성을 잃어버리고 문언유착의 연결고리로 사용되고 있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문학상 자체에 대한 본질적인 검토를 통해 공정성과 객관성을 찾는 일이 시급하고, 문인들 또한 그런 문학상에 대해 좀 더 고민하고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겠다.

부록....

 

* 황석영<동인문학상 후보작을 거부한다> (한겨레신문 2002.7.20)

....요즈음 <조선일보>는 정치, 경제, 사회면에서는 종전보다 더 반개혁적이면서도, 문화면에서는 ‘다양성’을 보여 주려고하는 교묘함을 보이고 있으며, 보다 이질적인 문인들에게는 단 몇 매짜리의 칼럼 한 편에 다른 신문의 무려 다섯 배나 가까운 원고료를 지불하고 있다..... 문학상의 상업주의와 사이비 권력놀음 따위의 문제점이 지적된 것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실상은 <조선일보>가 특정 문인 몇 사람을 동원하여 한국문단에 줄 세우기 식의 힘을 ‘종신토록’ 행사하겠다는 것이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문학상이 세계관의 표현일진대 나는 <조선일보>측의 ‘동인문학상’ 뿐만 아니라 현대문학에서의 동인의 위치에 대하여도 이견이 있는 사람이며, 따라서 귀측의 심사대상이 되는 것을 거부한다는 입장을 일단 밝혀두려고 한다.

 

 

* 고종석<동인문학상 생각> (한국일보 2003.12.25)

나는 왜 안티조선에 공감하는가? 언젠가 다른 자리에서 썼듯, 그 신문이 수구 냉전 복고 세력의 선전국일 뿐만 아니라, 신문 지면에서 일반적으로 나타나기 쉬운 글쓰기의 권력화를 가장 비도덕적으로, 현저히 정치적으로 드러내왔다는 판단 때문이다.

나는 왜 동인문학상에 비판적인가? 역시 다른 자리에서 지적했듯이 그 상이, 특히 심사위원단의 종신화와 상금의 파격적 인상 그리고 상시적 독회 평가의 기사화를 뼈대로 한 세 해 전의 개편 아래, 한국 문단에 대한 조선일보의 아귀 힘을 강화하는데 크게 기여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2004.5.30)

문언유착과 문학권력의 제도화 : <조선일보>와 ‘동인문학상’을 중심으로
- 하상일(문학평론가)

1. 한국문학과 언론권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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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과응보 2014-03-20 03: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특히나 이문구의 동인문학상 수상 당시 이문구의 감격에 찬 수상소감은
평소 이문구가 보여주었던 행동과는 반대되어 보였기에 상당히 실망스러웠다. ))

정말 작가 이문구가 감격의 찬 수상 소감을 했는지 직접 보셨습니까?

뱉으면 말이고 쓴다고 글이 아닙니다. 작가가 고인이 된 지 11년이 지났습니다.

당시 작가는 위암 말기에 투병 중 이었죠. 대부분의 생활을 중환자실을 오가는 힘겨운 시간이었습니다.

그가 기뻐서 상을 받았다는 그 당시 작가의 체충은 20kg나 줄어들어 제대로 서있기도 힘들어 할 때이나,

주변에 본인의 병환을 알리려고 하지 않았고, 수상에 대한 부분도 마지막까지 통보를 병원에서 받은 분입니다.

동인문학상으로 온갖 험한 말들을 쏟아졌고, 험한 말을 내뱉으며 이름을 알리려는 무명씨들이 들러붙었죠.

그렇게 3년간 투병끝에 돌아가신 분입니다. 수 많은 수상자들 중에 궂이 해당 작가를 거론하며,

10년이 넘은 지금까지도 이런 글을 보아야 한다는 사실이 씁쓸합니다.
 

문학비평 잡지 중에 새로운 잡지가 하나 창간되었다. [작가와 비평] 편집진이 최강민, 이경수, 고봉준 등 잘 모르는 사람들인데다가 화남출판사라고 귀에 익지 않은 곳이라 한켠 흘리려다 본 창간호 주제가 "문학상 제도의 빛과 그늘"이라 마음이 쏠렸다. 
 
1990년대 후반 부터 문단 평론계에 불어닥쳤던 주례사 비평에 대한 비판운동이 일어났고, 주례사비평에 대한 저항으로의 한 움직임이 지금은 좀 가라앉았지만서도 그래도 기존 평론단에 저항하는 모습은 보였고, 나름대로의 지평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의식있는 젊은 평론가들을 중심으로...

이번에 읽게된 작가와 비평 창간호도 그런 맥락속에서 이해해야 할 것 같다.
어찌되었건 젊은 비평가들 중심으로 그간 벌어졌던 누이좋고 매부좋고 식의 평론계에도 일단의 변화가 있을거라고 생각한다.


노년의 '현대문학상', 사망과 회춘의 기로에서

                                                                  - 최강민

한국의 문학상 중에 가장 역사가 깊은 것은 현대문학이 주최하는 '현대문학상'이다. 1955년 '현대문학상'과 '동인문학상'이 출범했다. (동인문학상은 원래 사상계가 주관하다 박정희정권시절 사상계에 대한 탄압으로 문학상 자체가 없어졌다가 부활, 현재는 조선일보사가 주최)

그러나 '동인문학상'은 중간에 공백기가 있었다는 점을 감한하면 '현대문학상'이 우리나라 최고(最古)의 문학상이다.

'현대문학상'의 탄생은 순수한 의도라기 보다는 전후 문단형성과 문학 헤게모니의 우위를 점하기위해서였다고 필자는 비판한다. 실제로 '현대문학상' 제정이후 차별과 배제의 모습으로 보수 문인들을 포섭하여 '현대문학' 대 비'현대문학'의 대립구도를 형성한다. 

사실 '현대문학상'은 애초 '현대문학신인상'으로 출발했다가 1980년도 부터 '현대문학상'으로 성격을 바꾼다. 그 때 까지 '현대문학신인상'의 수상자들은 '현대문학'을 통해 등단한 문인들이 대부분이었다. 69년 수상자인 유현종은 자신은 '현대문학'으로 등단하지 않았기 때문에 '현대문학신인상'의 수상자가 되리라고 생각하지도 않았고, '현대문학신인상'이 되었다는 사실도 나중에야 알았다고 한다.  이런 '현대문학' 출신자들로 '현대문학상'을 수상함으로 '현대문학'은 내부적으로 성골 출신들을 만들어 가며 문단에서의 입지를 곤고히 한다.

그러나 1970년대 이후 현실주의를 바탕으로 한 [창작과 비평], 자유주의를 바탕으로 한 [문학과 지성]으로 등장으로 가부장적 문단질서를 통해 입지를 강화해나갔던 '현대문학'의 위상이 무너지게 된다. 80년대 이후 '현대문학'이 '현대문학신인상'을 '현대문학상'으로 바꾼 것도 이에 기인한다. 점차 위상이 약해진 '현대문학'은 80년대 이후 중견급 작가를 중심으로 수상자를 선정하고, '현대문학' 출신이 아닌 작가들도 선정함으로써 입지를 잃지 않으려 노력한다. 이 후 '현대문학상' 수상자들은 '현대문학'의 위치가 점점 작아지고는 있지만, '현대문학상'이 배출한 작가들의 위상이 만만치 않기 때문에 수상이 되는 것에 만족해한다. 이는 '현대문학'이 자신들이 이름있는 문인들에 '현대문학상' 수상자라는 꼬리표를 달아줌으로 자신들의 권위를 보장받으려 하는 동기와 수상자들이 명망있는 작가들과 같은 상을 받았다는 데에서 자신의 위치를 높여보려는 의도가 맞물려 만들어진 현상이라고 필자는 비판한다.

필자는 '현대문학'이 애초부터 어떤 문학적인 평가가 아닌, 단순히 문인들을 '현대문학상'이라는 이름으로 묶어 문단의 권위를 유지하려는 한 그동안 닦아온 권위에 의지해 삶을 연명할 뿐이라면서 변화를 고언한다. 아울러 이런 권위에 의지하려는 문인들도 이에서 벗어나야 한국의 문학상이 본연의 모습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2004.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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