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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학의 - 시대를 아파한 조선 선비의 청국 기행 ㅣ 서해문집 오래된책방 1
박제가 지음, 박정주 옮김 / 서해문집 / 2003년 3월
평점 :
박제가라면 조선후기의 대표적인 실학파 학자라고 국사시간에 외우던 인물이다. 그의 저서 <북학의>를 실제로 읽어보진 못 했더라도 박제가가 청나라로 다녀 온 후 문물을 배워 가난에 빠진 민중으로 하여금 이용후생의 삶을 살게 하려는 의지로 쓴 책이란 것쯤은 중고교를 거치며 배워 알 것이다.
북학의를 펴면 그 시대의 실상과 실학자인 박제가의 사상이 한 눈에 들어 온다. 성리학에 사상적 기저를 둔 조선왕조가 미처 껴안을 수 없었던 민중들의 생활고는 책을 읽는 동안 명치 끝이 묵직하도록 실감할 수 있었다.
만리길을 가면서 사람에게 걸어서 따라오기를 강요하는 것은 오직 우리나라뿐이다. 단지 걸어서 따라갈 뿐 아니라, 항상 행렬의 곁을 떠나지 못하게 한다. 그래서 빨리 가든 천천히 가든 말이 걷는 속도와 같아야 한다. 때문에 마부로 중국에 들어가는 자는 모두 죄수들처럼 쑥대머리를 하고 있으며, 맑거나 비가 오거나 상관없이 걸어서 가야한다. 이국 땅에서 부끄러움을 당하는 것은 이보다 더 큰 것은 없을 것이다. 또 지나치게 땀을 흘리고 숨이 차도 감히 쉬지 못한다. 우리 나라의 하인이나 일꾼들이 자주 병드는 이유는 모두 여기에 있는 것이다.(77쪽)
대체로 배라는 것은 물에 빠지는 것을 막기 위함인데 우리나라의 겨우 배 안은 항상 새어드는 물로 가득하다. 배에 탄 사람은 냇물을 건널 때처럼 정강이를 걷어올려야 한다. 또 배 안에 고인 물을 퍼내느라 날마다 한 사람의 힘을 허비한다. 그런 까닭에 곡식도 바로 싣지 못하고 짚으로 만든 거적 위에 올려 놓는데, 이때 거적의 양이 곡식의 두 배 정도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밑에 있는 곡식은 젖어 썩을 염려가 있다.....중략...그래서 비만 오면 배는 물 담는 그릇이 된다. 더구나 배를 대는 언덕에 다리가 없어서 사람은 업어 태우고 말은 힘껏 뛰게 해서 태운다. 가로판자도 없는 깊은 바닥으로 뛰어들게 하면 어떻게 말 다리가 부러지지 않겠는가?(45~46쪽)
하숫물이 빠져 나가지 못해 변소는 항상 오물로 가득차고, 비가 조금만 와도 빗물이 모두 부엌으로 흘러 들어온다.(77쪽)
우리나라 영세민들은 모두 먹을 것이 없어서, 10가구가 사는 마을에서 두끼니를 먹을 수 있는 사람이 몇 안 된다. 이른바 비상용 음식이라는 것도 그저 옥수수 몇 개 고추 몇 십 개를 시커멓게 그을음이 낀 부엌 한 구석에 매달아 놓았을 뿐이다(229쪽)
사극을 통하여 말을 탄 조선시대 사대부 옆의 말고삐를 잡은 하인을 볼 수 있었지만 박제가가 서술한 저만큼 큰 고초가 있는 줄은 몰랐었다. 77쪽에서 기술하는대로 수행하인들은 이국땅까지 머나먼 여정을 오로지 도보로만 가야했고 게다가 말고삐를 잡고 자신의 임무를 수행하자면 몰골이 극형에 처한 죄수꼴이었으니 우리나라의 위신은 땅에 떨어진 것도 말할 나위 었을 것이다. 말 안장을 바꾸고 고삐를 바꾸고, 사대부도 말을 몰 수 있다는 생각만 바뀐다면 이런 망신스럽고 불쌍한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물을 퍼내며 타야하는 배와 진흙을 맨 손으로 대충 이겨 발라 세운 집에 개가죽이나 버선 조각으로 바람을 이리저리 막아내며 굶기를 밥먹기보다 더 자주 하는 곤궁한 민초들의 삶은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의 힘겨운 삶의 현장이란 것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
박제가는 참으로 세밀하게 생활의 자질구레한 불편까지 살폈고, 이를 개선할 수 있는 편리한 중국문물을 보고 와서 소개하였다. 그 범위는 넓어서 비단 생활의 한 부분만이 아니라 우리나라 전역의 구조까지 파헤쳐 내려간 이력이 보인다. 상업과 농공업, 유통구조, 성벽 쌓기, 도로망, 화폐, 과거제도, 도량형 등 주자성리학의 이념만 중시하느라 도외시한 실생활의 편리를 깨우치고 싶어 했다. 이것은 조선왕조의 폐단을 개혁하여 부국강병을 이루려는 젊은 선비의 충정이었다.
불편한 점을 하나라도 고칠 수 있는 방법을 소개한다면 두 손을 들고 환영하여야 할 터인데, 당시에는 환영은 커녕 오히려 무시당한 것 같다. 그것은 신분을 중시여기는 사회에서 그의 출신 성분이 서얼출신(그는 우부승지 박평의 서자로 태어났다)이라는 것 때문에 그의 놀라운 문장력도(그는 빼어난 문장가중의 한 사람이기도 하다) 다재다능한 넘치는 재능도, 깨어서 세계를 바라볼 줄 아는 식견도 기존 세력들이 무참하게 짓눌러 버리진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해 본다. 다행히 정조가 인재를 알아보고 당시로써는 파격에 가까운 인사였던 규장각의 검서관으로 발탁되기도 했지만 말이다.
책을 읽는 내내 나는 박제가의 현실감각이 두드러진 명쾌한 대안에 속이 후련해 지기도 했다. 그러나 책을 덮으며 이것이 허구가 아닌 역사의 일부였고 뒷 세대를 살아가는 후세로서 그가 우려하고 아파하던 점들이 그다지 개선되지 못했던 점이 못내 아쉬웠다. 뿌리깊이 내린 성리학과 당쟁의 소용돌이는 박제가의 참신하고 간곡한 충언 따위가 감히 뛰어넘지 못할 벽이었을까.
지금 우리 나라는 관리를 임용함에 있어 오로지 문벌만을 따진다. 고관의 아들이라야 고관이 되며 서민의 자식은 항상 서민이 된다. 모든 사람은 원래의 신분에서 한 발자국도 못 벗어난다. 이미 오래전 부터 그러했다.(136쪽)
어떻게 시험장이 난잡해지지 않을 수 있겠는가? 심지어는 몽둥이나 막대기로 서로 치고 찌르기도 한다. ...중략...그러니 시험을 치르는 그 하루 동안에도 머리가 하얗게 된다.(145쪽)
그리고 그 썩어 문드러진 환부는 오늘 날까지도 치유되지 못하고 갈수록 악화되고 있음을 본다. 입시제도만 봐도 그 때와 별반 달라진 것 같지 않다. 수능이니 내신이니 입시의 겉모습은 달라질지라도 박제가가 탄식하며 "이미 오래전 부터 그러했다"가 아직도 답습되고 있는 것 같아 답답하다. 벽 여년 전에 시대를 아파한 조선의 깨어있는 젊은 선비 박제가를 통해 오늘날에 사는 우리도 의식에 영향을 받아야할 것이다.
그리고 여러 사람의 <북학의>번역본이 있는데, 나는 "박정주"님이 옮긴 이 책이 참 맘에 든다.
책 내용이 자질구레하여 보는 사람이 업신여기기 쉽다.(7쪽)
서문에서 박제가가 자신의 글을 그렇게 표현했던 것 처럼 박제가가 상당한 문장가였음에도 불구하고 <북학의>는 직접화체의 솔직하고 단순한 문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말하고자 하는 실용주의 사상을 문장으로도 표현한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보면 박정주님의 번역은 박제가의 사상을 잘 반영한 듯 싶다. 중학교에서 역사과 교편을 잡고 있다고 들었는데 어느 번역본 보다, 쉽고 간결하여 이해가 빠르다. 읽어야 할 거리도 많도 공부할 것도 많은 학생들에게 한 편의 고전이라도 더 읽히려는 선생님의 습성이 몸에 배인 것 같아 나는 이 책이 좋다.
책엔 좌우로 여백을 많이 두어 노트필기를 할 수 있을 만큼 여유가 있고, 단락이 눈에 쏙쏙 들어 오도록 배치되어 있다. 옆에 달린 주석도 무척 긴요하다. 책 내용에 따른 도표와 사진, 그림 자료가 풍부하여 누구라도 유익하고 재미나게 읽을 수 있다. 그러니까 고전의 맹점을 다소나마 뚫은 셈이다. 고전이 좋다는 건 들어서 알지만 어려워서 손도 못 대는 독자들이 있거든 나는 이 책부터 읽기를 권한다.
/2005. 5. 10. 찬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