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끼리 왕 바바 네버랜드 Picture Books 세계의 걸작 그림책 13
장 드 브루노프 지음, 김미경 옮김 / 시공주니어 / 199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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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내용에 앞서 책 크기에서 부터 이 책은 유별나다. 굉장히 크다. 이 책을 보노라면 "개그콘스트"의 한 코너가 생각난다. 사람들이 보통크기의 책을 들고 보고 있으면 통 큰 어떤 남자는 "이 정도는 되어야지!"하면서 엄청나게 커다란 책을 펼친다. 이 책을 그때 소품으로 내도 손색이 없을거다.(흐흐.. 과장 좀 심하다)

그 이유만으로도, 이제 막 책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하는 서 너살의 꼬마에게 선물할 일이 있으면 나는 이 책을 적극 추천한다. 일단은 크기부터 심상찮아서 꼬마들은 단박에 책에 관심을 보여준다. 실제로 나는 지금 세살 난 우리 조카에게 이렇게 큰 책을 시리즈로 다섯 권을 선물해 주었었다. 그랬더니 "언니,**가 지금 책 속에서 잠자고 있어." "하루종일 책 집에서 놀아, 간식도 그 속에서 먹고."하며 동생이 전화 한다. 다섯 권으로 벽도 세우고 지붕도 덮으면 아기가 들어갈 수도 있다? 허걱.사실일까? (그대로 믿지 마세요^^)

내용이야 고만고만하다. "바바라는 코끼리가 있었는데, 사람들이 바바엄마를 총으로 쏘아 죽였어요. 그래서 바바는 무서워서 도망치다보니 어라? 도시까지 온 거예요. 엄마를 죽인 사람들이 바글바글 모여사는 바로 원수같은 도시말예요. 그런데 바바는 다행히 맘씨 좋은 귀부인을 만나 도시생활에 정착하게 되었어요. 초록색 멋진 양복도 있고 구두도 신고, 백화점에도 가면서....그리고 나중에 바바는 자동차를 타고 자신이 고향 정글로 돌아와요. 사랑하는 여자친구코끼리(샐린느였던가?)와 결혼도 하고 결국엔 코끼리의 왕으로 추대되어요."하는 빠져들면 재미있을만한 아기자기한 이야기이다.  어려움 속에서도 용기를 버리지 않으면 끝엔 좋은 일이 생긴다라든지, 바바가 영원히 사람을 원수로 여기지 않고 좋은 사람(귀부인을 비롯한..)도 있다는 걸 알아서 참 다행이다..라는 이야기를 아이와 함께 나눌 수 있을 것이다.

1920년대 프랑스에서 씌인 책이기 때문에 어쩌면 내용이 고루할 수도 있을 것이다. 또 작가가 직접 그린 그림이라 세련된 구성은 아닐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난 작가 장 드 브르노프가 결핵요양차 가족과 따로 떨어진 채로 사랑하는 아들을 그리며 만든 책이라니 소박한 아빠의 마음이 담겨 있는 것 같아 좋게 본다.

이 책은 글자를 모르는 서너 살 부터 시작해서 유치원생까지 넓게 볼 수 있는 책이고 오랫동안 소장할만한 책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책읽기는 단순한 문자의 해독과 이해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책을 집으로 만들어 그 속에서 놀았던 어릴 적의 추억이 있는 아이라면 그 아이는 책을 사랑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그러니까 이 책은 내용 뿐만 아니라 판형자체도 한 몫한다고 생각하며, 일찍 세상을 떠나며 못다한 아빠의 사랑을 실은 작가의 사랑이 구석구석 묻어 있어서 (약간의 허술한 내용임에도 불구하고)나는 후하게 점수를 주고 싶다. 그리고 책값도 무지 싸다. (여담으로, 선물하면 멋진 외형에 눌려 받는 사람이 너무나 황공해한다..)

2005. 5. 12. 찬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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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박사 2005-05-12 12: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의겸이 사 주어야겠네요.. ^^

진주 2005-05-12 12: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의겸이는 그 집에 못 들어가요....(울 조카는 겨우 돌 지난 것이 넘 조고만해서리..^^;;;)

미네르바 2005-05-12 20: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읽어 봤어요. 저희 조카 어릴 때 선물해 준 책이거든요. 조카도 참 좋아했었는데... 그나저나 요즘, 진주님 리뷰가 술술 나옵니다요^^

진주 2005-05-12 21: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미네르바님께서 또 검증을 해 주시니 더욱 신나네요!

참...리뷰쓰기가 힘들어요. 원래는 여기가 서평하는 곳이었잖아요? 뭘 안다고 책을 평한다고 설치냐 싶기도 하고...또 평을 제대로 하자면 신랄하게 비판도 많이 해야하는데 애써 글쓰는 작가들한테 미안하기도 하고....그래서 처음엔 서평이라서 좀 피했었고요....
그리고 요즘은 그야말로 게으름 때문에 리뷰는 잘 안 썼어요. 써야지 써야지 하면서도요...밀렸던 것 조금씩 쓰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늘,.추천해 주신 님들 고마워요. 누가누가 한 줄 제가 다 안다니까요 ㅎㅎ
 
도서관 네버랜드 Picture Books 세계의 걸작 그림책 119
사라 스튜어트 지음, 데이비드 스몰 그림, 지혜연 옮김 / 시공주니어 / 199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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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어제 오후 다 늦게 우리집에 꼬마 손님이 왔다. 아파트 단지 안에서 나를 만나면 까딱까딱 인사를 참 이쁘게 하는 아이다. 하루는 그 엄마가 애가 책을 안 좋아한다고 걱정하길래 우리집에 영이가 안 보는 책을 물려 줄테니 애를 보내 보라고 했었다. 그말을 듣고 찾아 온 것이다.

꼬마 여자애는 이제 초등학교 1학년, 영이가 안 읽는 책을 서가에서 뽑는데, 이런, 내가 좋아하는 그림책이 많아 아까워서 골라내는 손이 부들부들 떨리는 것이었다.

앗! 게다가 내가 아주 좋아하는 그림책은 뺀다고 뺐는데 <도서관>이 나와 있는게 아닌가....어머, 이건 안 돼요. 제가 너무 좋아하는 책이라..이럴 수도 없고, 하긴 책 한 권 한 권마다 애착이 안 가는 책이 있으랴. 내 피같은 돈으로 사서  책을 끼고 우리 아이들과 행복하게 읽던 추억이 갈피마다 남아있으니. 나는 내심 아까운 맘을 꾹꾹 눌러 이 책을 계기로 책을 싫어한다는 꼬마가 책읽기의 즐거움을 알게 되면 좋겠다는 선한 마음으로 고쳐 먹기로 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도서관>과 이별식이라도 해야 서운한 마음을 누를 수 있을 것 같아서 "내가 책 읽어 줄게."하며 자처했다.

우리 아들 영이, 책 싫어하는 꼬마,  그 엄마가 졸르라미 앉아 있고 나는 책을 펼쳤다. 나는 침을 한 번 꼴딱 삼키고 <도서관>을 읽기 시작했다.

어느 날 하늘에서 뚝 떨어진 엘리자베스 브라운이라는 여자아이가 있었어요. 엘리자베스 브라운은 책을 너무너무 좋아해서 늘 책만 읽었어요. 책을 너무 많이 읽어 두꺼운 안경을 쓰고 얼굴의 반쪽은 언제나 책에 가려져 있었어요. 그녀는 책 수레에 항상 많은 책을 싣고 다니며 읽었어요.  엘리자베스 브라운은 잠 잘 때도 책을 읽고, 텐트 속에서 책 읽는 것 처럼 이불을 밑에서도 손전등을 켜고 책을 읽었어요.

책을 싫어한다는 꼬마,  책장 앞으로 바투 다가와 책에 조금씩 빠져 들어갔다. 아이는 물구나무서기를 하면서 책을 읽고 걸어가면서도 쉬엄없이 책에 빠져드는 책 속의 엘리자베스 브라운의 옷자락을 꼭 잡고 정신없이 따라가고 있었다. 엘리자베스 브라운이 길을 잃어버려 낯선 동네에 살게 되고 거기서 다시 책을 열심히 보고 모으며 온 집안 가득 책으로 채워지는 장면에선 책 바깥에 있던 우리 모두가 그 집 안으로 초대되어 가 있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그녀가 자신의 책을 마을 사람들이 다 읽을 수 있도록 책이 가득찬 집을 기증하고 남은 여생동안 친구집에서 살며 도서관이 되어버린 자신의 집앞을 책을 읽으며 산책하였어요. 하고 이야기는 끝이 났다.

마지막 장면을 펴 놓고 우린 너무 아쉬웠다. "아유, 정말 재밌네요"라고 말한 건 애 엄마였다. 반짝반짝 빛나는 꼬마의 눈을 보면 이 애가 책을 싫어한다니 믿기지 않았다. 나는 그 눈빛을 알아 볼 수 있다. 책에 취해 아련하게 반짝거리는 눈망울-지금 겉으로는 책을 가슴에 안고 인사를 하고 신발을 신지만 그 애는 지금 엘리자베스 브라운의 도서관에서 엘리자베스와 함께 책읽기에 골몰하고 있는 중 일것이다.

베란다로 나가 책을 가슴에 꼭 안고 가는 꼬마에게 손을 흔들어 주는데, 옆에서 영이가 칭얼거린다 "엄마, 우리 <도서관>다시 사요." 아마도 그래야 할 것 같다.

/2005. 5. 11. 찬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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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5-05-11 10: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도서관이라는 책 제목만으로도 좋네요^^

조선인 2005-05-11 10: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당연히 다시 사야죠. *^^*

울보 2005-05-11 10: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요,,
저도 저책너무너무 좋아해요,,
엘리자베스의 모습도 너무 귀엽고 이쁘고 류도 이다음에 커서도 그런모습이었으면 하느 작은 바람이지요,....ㅎㅎ

진주 2005-05-11 10: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벌레들은 책냄새를 알아본다니까요 ㅎㅎㅎ책왕벌레 물만두님ㅋㅋ
그래야겠죠? 참. 그 여자애가 마로랑 좀 닮았어요. 아주 귀여워요.^^마로는 책을 좋아하겠지만^^;
울보님, 그..그래도...류가 집을 잃어버리는 건 원치 않으시겠죠? ㅎㅎ

하이드 2005-05-11 16: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너무 좋아요 ^^

icaru 2005-05-11 16: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저도 너무 좋아요 ~

아영엄마 2005-05-11 22: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저 책.. 절대 못 줘요!!(애들도 집에 있는 책은 누구 못 주게 해요. ^^*)

진주 2005-05-11 22: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스 하이드님, 이카루님도 좋아하시는군요^^방가 히ㅎ^^;
아영엄마님...우리집도 거의 엘리자베스 브라운집이 될 지경이라서(남편 책이 무지 많아요)많이 쌓아두는 것도 힘들고요.. 그리고 또, 고 예쁜 꼬마가 책을 싫어한다니 괜히 오지랖은 넓어가지고 구제해 주고 싶다는 열망에 그만 ㅠㅠ

2005-05-11 23: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진주 2005-05-12 09: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게만 보이는 님..그러게 말여요....쩝.....^^;

clavis 2005-05-12 13: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음도 예쁘시네요^*^

진주 2005-05-12 13: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반갑습니다. clavis님..마음이 이쁘다기 보다..오지랖이 넓은거지요 ㅡ.ㅜ
(그래도 착한 구석이 좀 있긴 하죠? 헤헤^^;;)

다소 2005-06-22 19: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너무너무너무 좋아해요.^^
5년전쯤 샀는데..책장에 꽂아놓고 심심하면 꺼내봐요.
사랑스러운 동화예요.

진주 2005-09-02 07: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malzza님, 너무 늦게 답글을 달아서 보실런지는 모르겠지만....
님의 표현이 정확해요 <사랑스러운 동화>!^^
 
북학의 - 시대를 아파한 조선 선비의 청국 기행 서해문집 오래된책방 1
박제가 지음, 박정주 옮김 / 서해문집 / 200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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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제가라면 조선후기의 대표적인 실학파 학자라고 국사시간에 외우던 인물이다. 그의 저서 <북학의>를 실제로 읽어보진 못 했더라도 박제가가 청나라로 다녀 온 후 문물을 배워 가난에 빠진 민중으로 하여금 이용후생의 삶을 살게 하려는 의지로 쓴 책이란 것쯤은  중고교를 거치며 배워 알 것이다.



북학의를 펴면  그 시대의 실상과 실학자인 박제가의 사상이 한 눈에 들어 온다. 성리학에 사상적 기저를 둔 조선왕조가 미처 껴안을 수 없었던  민중들의 생활고는 책을 읽는 동안 명치 끝이 묵직하도록 실감할 수 있었다.


만리길을 가면서 사람에게 걸어서 따라오기를 강요하는 것은 오직 우리나라뿐이다. 단지 걸어서 따라갈 뿐 아니라, 항상 행렬의 곁을 떠나지 못하게 한다. 그래서 빨리 가든 천천히 가든 말이 걷는 속도와 같아야 한다. 때문에 마부로 중국에 들어가는 자는 모두 죄수들처럼 쑥대머리를 하고 있으며, 맑거나 비가 오거나 상관없이 걸어서 가야한다. 이국 땅에서 부끄러움을 당하는 것은 이보다 더 큰 것은 없을 것이다. 또 지나치게 땀을 흘리고 숨이 차도 감히 쉬지 못한다. 우리 나라의 하인이나 일꾼들이 자주 병드는 이유는 모두 여기에 있는 것이다.(77쪽)


대체로 배라는 것은 물에 빠지는 것을 막기 위함인데 우리나라의 겨우 배 안은 항상 새어드는 물로 가득하다. 배에 탄 사람은 냇물을 건널 때처럼 정강이를 걷어올려야 한다. 또 배 안에 고인 물을 퍼내느라 날마다 한 사람의 힘을 허비한다. 그런 까닭에 곡식도 바로 싣지 못하고 짚으로 만든 거적 위에 올려 놓는데, 이때 거적의 양이 곡식의 두 배 정도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밑에 있는 곡식은 젖어 썩을 염려가 있다.....중략...그래서 비만 오면 배는 물 담는 그릇이 된다. 더구나 배를 대는 언덕에 다리가 없어서 사람은 업어 태우고 말은 힘껏 뛰게 해서 태운다. 가로판자도 없는 깊은 바닥으로 뛰어들게 하면 어떻게 말 다리가 부러지지 않겠는가?(45~46쪽)


하숫물이 빠져 나가지 못해 변소는 항상 오물로 가득차고, 비가 조금만 와도 빗물이 모두 부엌으로 흘러 들어온다.(77쪽)

우리나라 영세민들은 모두 먹을 것이 없어서, 10가구가 사는 마을에서 두끼니를 먹을 수 있는 사람이 몇 안 된다. 이른바 비상용 음식이라는 것도 그저 옥수수 몇 개 고추 몇 십 개를 시커멓게 그을음이 낀 부엌 한 구석에 매달아 놓았을 뿐이다(229쪽)



사극을 통하여 말을 탄 조선시대 사대부 옆의 말고삐를 잡은 하인을 볼 수 있었지만 박제가가 서술한 저만큼 큰 고초가 있는 줄은 몰랐었다. 77쪽에서 기술하는대로 수행하인들은 이국땅까지 머나먼 여정을 오로지 도보로만 가야했고 게다가 말고삐를 잡고 자신의 임무를 수행하자면 몰골이 극형에 처한 죄수꼴이었으니 우리나라의 위신은 땅에 떨어진 것도 말할 나위 었을 것이다. 말 안장을 바꾸고 고삐를 바꾸고, 사대부도 말을 몰 수 있다는 생각만 바뀐다면 이런 망신스럽고 불쌍한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물을 퍼내며 타야하는 배와 진흙을 맨 손으로 대충 이겨 발라 세운 집에 개가죽이나 버선 조각으로 바람을 이리저리 막아내며 굶기를 밥먹기보다 더 자주 하는 곤궁한 민초들의 삶은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의 힘겨운 삶의 현장이란 것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



박제가는 참으로 세밀하게 생활의 자질구레한 불편까지 살폈고, 이를 개선할 수 있는 편리한 중국문물을 보고 와서 소개하였다. 그 범위는 넓어서 비단 생활의 한 부분만이 아니라 우리나라 전역의 구조까지 파헤쳐 내려간 이력이 보인다. 상업과 농공업, 유통구조, 성벽 쌓기, 도로망, 화폐, 과거제도, 도량형 등 주자성리학의 이념만 중시하느라 도외시한 실생활의 편리를 깨우치고 싶어 했다. 이것은 조선왕조의 폐단을 개혁하여 부국강병을 이루려는 젊은 선비의 충정이었다.



불편한 점을 하나라도 고칠 수 있는 방법을 소개한다면 두 손을 들고 환영하여야 할 터인데, 당시에는 환영은 커녕 오히려 무시당한 것 같다. 그것은 신분을 중시여기는 사회에서 그의 출신 성분이 서얼출신(그는 우부승지 박평의 서자로 태어났다)이라는 것 때문에 그의 놀라운 문장력도(그는 빼어난 문장가중의 한 사람이기도 하다) 다재다능한 넘치는 재능도, 깨어서 세계를 바라볼 줄 아는 식견도 기존 세력들이 무참하게 짓눌러 버리진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해 본다. 다행히 정조가 인재를 알아보고 당시로써는 파격에 가까운 인사였던 규장각의 검서관으로 발탁되기도 했지만 말이다.



책을 읽는 내내 나는 박제가의 현실감각이 두드러진 명쾌한 대안에 속이 후련해 지기도 했다. 그러나 책을 덮으며 이것이 허구가 아닌 역사의 일부였고 뒷 세대를 살아가는 후세로서 그가 우려하고 아파하던 점들이 그다지 개선되지 못했던 점이 못내 아쉬웠다. 뿌리깊이 내린 성리학과 당쟁의 소용돌이는 박제가의 참신하고 간곡한 충언 따위가 감히 뛰어넘지 못할 벽이었을까.



지금 우리 나라는 관리를 임용함에 있어 오로지 문벌만을 따진다. 고관의 아들이라야 고관이 되며 서민의 자식은 항상 서민이 된다. 모든 사람은 원래의 신분에서 한 발자국도 못 벗어난다. 이미 오래전 부터 그러했다.(136쪽)


어떻게 시험장이 난잡해지지 않을 수 있겠는가? 심지어는 몽둥이나 막대기로 서로 치고 찌르기도 한다. ...중략...그러니 시험을 치르는 그 하루 동안에도 머리가 하얗게 된다.(145쪽)



그리고 그 썩어 문드러진 환부는 오늘 날까지도 치유되지 못하고 갈수록 악화되고 있음을 본다. 입시제도만 봐도 그 때와 별반 달라진 것 같지 않다. 수능이니 내신이니 입시의 겉모습은 달라질지라도 박제가가 탄식하며 "이미 오래전 부터 그러했다"가 아직도 답습되고 있는 것 같아 답답하다. 벽 여년 전에 시대를 아파한 조선의 깨어있는 젊은 선비 박제가를 통해 오늘날에 사는 우리도 의식에 영향을 받아야할 것이다.


그리고 여러 사람의 <북학의>번역본이 있는데, 나는 "박정주"님이 옮긴 이 책이 참 맘에 든다.


내용이 자질구레하여 보는 사람이 업신여기기 쉽다.(7쪽)


서문에서 박제가가 자신의 글을 그렇게 표현했던 것 처럼 박제가가 상당한 문장가였음에도 불구하고 <북학의>는 직접화체의 솔직하고 단순한 문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말하고자 하는 실용주의 사상을 문장으로도 표현한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보면 박정주님의 번역은 박제가의 사상을 잘 반영한 듯 싶다. 중학교에서 역사과 교편을 잡고 있다고 들었는데 어느 번역본 보다, 쉽고 간결하여 이해가 빠르다. 읽어야 할 거리도 많도 공부할 것도 많은 학생들에게 한 편의 고전이라도 더 읽히려는 선생님의 습성이 몸에 배인 것 같아 나는 이 책이 좋다.



책엔 좌우로 여백을 많이 두어 노트필기를 할 수 있을 만큼 여유가 있고, 단락이 눈에 쏙쏙 들어 오도록 배치되어 있다. 옆에 달린 주석도 무척 긴요하다. 책 내용에 따른 도표와 사진, 그림 자료가 풍부하여 누구라도 유익하고 재미나게 읽을 수 있다. 그러니까 고전의 맹점을 다소나마 뚫은 셈이다. 고전이 좋다는 건 들어서 알지만 어려워서 손도 못 대는 독자들이 있거든 나는 이 책부터 읽기를 권한다.



/2005. 5. 10. 찬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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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보 2005-05-10 18: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열심히 읽었습니다,,저도 읽어보고 싶어지는데 좀 어려울것 같기도 하고,,하지만 기회가 되면 꼭 읽어보겠습니다,,

진주 2005-05-10 18: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게 리뷰를 (더럽게)어렵게 썼네요. 책은 너무너무 쉬워요. 특히 <북학의> 중에서 박정주님꺼는요. 중고등학생들 앉혀 놓고 조곤조곤 가르치는 것 같아요. 재미있어요. 가까이 계시면 제 책을 좀 빌려 드리고 싶은데....
(추천 고맙습니다. 다른 두 분은 누군지 몰라 인사도 못하겟네요)

바람돌이 2005-05-10 23: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을 읽고 싶게 만드네요. 책중에 그런 책이 많죠. 많은 사람이 책 제목을 알고 지은 사람도 알지만 아무도 안 읽는 책! 북학의도 그런 책중의 하나겠죠. 시험에 나온다고 제목만 달달 외던 책!
이런 책의 리뷰를 보면 부끄러워져요 묵직한 채무감이...
아프면서 이런 리뷰를 쓰시다니.... 세상에서 제일 소중한건 건강이예요. 건강 챙기세요.

2005-05-11 23: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진주 2005-05-12 09: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람돌이님, 저도 이 리뷰를 써야지하고 맘 먹은 것만 한 달이에요..다른 책들은 앉으며 길어도 1시간 내로 금새 써지는데 이 책은 맘 잡는데 1시간이 더 걸리더라니까요 ㅎㅎㅎ 긴글 읽어 주셔서 고마워요. 저기..내 리뷰가 딱딱하거나 어렵진 않죠? 최대한 쉽게 쓴다고 쓴게 왜 이리 더럽게도(ㅡ.ㅡ;) 어렵게 쓰인 느낌이 날까나.....ㅡ.ㅜ

제게만 보이시는 님, 현기증과 두통 그리고 온 몸이 나른하게 퍼지는 걸 애써 참고 써서...그게 보이시나봐요? 에궁....컨디션이 좋을 때 쓸 걸 그랬어요...근데...리뷰를 너무 오래 미루면 나중엔 할 말이 없어져서 시간 있을 때 빨리 쓴다고 고만...(고마워요^^)
 
노래나라 동동 비룡소 창작그림책 6
조은수 글, 이혜리 그림 / 비룡소 / 199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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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지렁이와 굼벵이가 길을 가다가 커다란 바위를 만났대요. 바위가 말하길 노래를 불러주면 점점 작아질거라나요? 그래서 둘이는 아는 노래들을 부르기 시작했지요.

원숭이 똥구멍/ 나팔 똥구멍/ 나팔 한 대 불다가/ 코가 깨져서/

병원에 갔더니 / 안 고쳐 주기에 / 경찰서 갔더니 / 뺨만 맞고 /

집에 와서 생각하니 / 분해 죽겠네

라는 대목에선 책을 읽던 우리 모자는 깔깔거리고 웃었어요. 이 엄마가 울 아들이 만큼 어렸을 적에 친구들이랑 놀면서 부른 낯익은 노랫말이라 목에 힘을 주어 멋드러지게 한판 불렀거든요. 그리곤, 이 노래는 말야, 일제시대에 불렀던 노래야, 일본 사람들을 원숭이에 빗대어 부른 건데-어때 속이 시원하지? 식민지 치하에서 우리나라 어린이들은 그런 방법으로 스트레스를 풀었나봐. 하며 설명도 곁들이지요.

이 책은요, 아이가 유치원생이라도 괜찮고요, 초등학교 저학년이라도 엄마랑(혹은 아빠랑) 같이 읽을 수 있어요. 할머니나 할아버지가 같이 사는 집이라면 책을 더 재미있게 즐길 수 있어요. 책 속에 있는 전래동요는 동네에서 흔히 들려 오던 노래가락이거든요.

구전되던 동요들을 아이와 한 곡 한 곡 부르며 책의 주인공 지렁이와 굼벵이의 이야기를 따라가다보면 아련한 향수가 느껴지고요,삭막한 현대의 아이들에겐 푸근한 옛 정과 옛날 아이들의 놀이들을 재미있게 보여줄 거예요.

책 제작자에게 아쉬운 점은요, 이 책에 실린 노래들을 CD로 재작을 했더라면 더 좋았을 텐데하는 바램이 있어요. 모르는 노래도 많이 있더라구요. 그렇게 했더라면 잊혀져 가는 구전동요의 맥을 좀 더 이을 수도 있었을 텐데요.

/2005. 5. 9. 찬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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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네르바 2005-05-09 23: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저도 이 책 보고 싶어요. 저도 노래 부르고 싶어요. 저학년의 아이들이랑 보면 재밌겠는 걸요? 초등학교 1학년인 조카에게도 사 줘야겠어요. 일단 탱스투도 누르고 보관함에도 넣겠어요.

진주 2005-05-10 1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쓴 동화리뷰의 대부분의 땡스투는 미네르바님이 하신 걸거예요^^
 
마법천자문 4 - 울려라! 소리 음音 손오공의 한자 대탐험 마법천자문 4
시리얼 글 그림, 김창환 감수 / 아울북 / 2004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작은 애가 한자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는데, 지혜로운 엄마라면 이 때를 놓치지 않아야 한다. 그래서 나는 괜찮은 한자교재를 찾기 시작했다. "마법천자문"에 대해 주위 여러사람에게 물어 보았더니 어떤 이는 너무너무 좋은 책이라고 했고 어떤 이는 한자를 배우는 책으론 부족한 책이라고 했다.

내가 직접 사서 작은애한테 줘 본 결과, 나는 대체로 만족하는 편이다. 아이가 이 책을 보면서 한자에 대한 흥미가 더욱 높아졌고 한자를 익히는 속도가 엄청나게 빠르도록 학습에 지대한 동기를 부여했다. 한자의 음과 글자의 모양을 익힐 때 강력한 흡인력이 있는 만화 스토리를 사용했기 때문에 한 번 보면 한자의 음과 훈이 뇌리에 박히도록 잘 만든 책이다. 부록으로 딸린 한자 카드로 놀이로 연장할 수도 있고 공부할 때 좋은 도구가 되기도 하였다.

한자공부에 입문하는 아이에게 적절한 책이라고 생각한다. 처음에 나는 한자연습장은 안 샀었는데 이걸 사보니 더욱 효과적이었다.

그런데 흠이라면 한 권에서 익힐 수 있는 한자의 수에 대비하면 책값이 비싸다. 만화책인데 지질이 너무 좋은 걸 사용했다(앗, 그럼 만화책은 질 나쁜 종이로만 만들란 말이야?하며 만화팬들의 원성이..) 만화책이 아니더라도 책을 만들 때 질좋은 종이로 만드는 것을 나는 반대하는 입장이다. 그만큼 나무도 많이 베야하니 환경파괴의 주범이며, 소비자에겐 비싼 책값을 감당해야 하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학습을 효과적으로 하려면 [한자연습장]까지 산다고 치면 책값이 너무 비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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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oninara 2005-04-22 18: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림이 너무 크고, 색이 화려해서 눈이 아프더군요.
좀더 순한 색을 쓰고..그림도 작게 만들면 한자도 더 넣을수가 있을텐데..
만들면 잘 팔리니 갈수록 책도 얇아지고..7편인가는 정말..너무 얇아서 돈이 아깝던데요..전 문고에서 구입하면 빌려서 보여주거든요.

진주 2005-04-23 12: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금 8편이 나왔다지요? 수니님 말씀대로 돈이 아까워요. 앞으로도 계속 시리즈로 나올 모양인데 좀 더 저렴하게 만들면 좋을텐데요..그리고 수니님 지적대로 색감도 강한 것 맞아요. 아무래도 화려해야 손님을 끌 수 있으니까...쩝....
그런 단점들이 있지만, 저는 흥미유발과 학습에 톡톡히 효과를 봤기 때문에 별을 넷으로 추천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