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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상은 책상이다
페터 빅셀 지음, 이용숙 옮김 / 예담 / 2001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이런 책을 만났을 때 나는 기분이 좋다. 이 책은 얇고 가벼운 덩치 때문에 갖고 다니기가 쉽다. (덤으로 책값도 저렴한 편) 즉, 한 번 읽고 책장에 꽂히는 그런 책이 아니기 때문에 기분이 좋다는 말이다. 쉽게 읽혀지면서 오랫동안 되새김질 할 있는 책이다. 심오하고 중요한 만큼 책의 외형이 두껍고 무거운 것은 당연히 예상하는 일이겠지만, 쉬운 문체와 간결한 이야기에 삶의 가장 본질적인 의미있는 내용이 실려 있다면 무척 반가운 일이다.
지은이 피터 빅셀이 인상적이었다. 이 책을 읽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그의 단순하면서 명료한 문체에 주목할 것이다. 군더더기라곤 전혀 없는, 지극히 축약된 문장. 그리고 그가 구사한 단어들은 아주 쉬운 것이라고 했다. 역자의 말에 의하면 독일어의 기본만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읽을 수 있을 것이라고 한다. 아무리 좋은 내용이라도 현학적인 글에 머리가 뽀개지는 고통을 겪어야 한다면, 나같이 부실한 독자는 지은이의 의도를 100% 이해하지 못할 지도 모른다. 피터 빅셀은 자신의 의사를 독자에게 소통시키기 위해 가장 노력한 사람으로 보인다.
피터 빅셀의 감칠맛나는 문장에 못지 않게 빛나는 것이 세상을 보는 그의 시선이다. 동시대를 살고 있는 생존작가로서 산업화와 정보화로 삭막해질대로 삭막해진 세상을 정확히 인식하는 것으로부터 그의 문학세계는 시작된다. 산업화 이후로 물질적으로는 풍요를 누리고 있지만 정신적으로 황폐한 모습. 그로 인해 사회성의 극심한 저하현상. 서로간의 소통이 잘 안 되는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다. 나는 이 책을 중학생들과 함께 공부하였는데 요즘 아이들이 겪고 있는 가장 큰 문제점이 그의 작품 속에 있었다.
요즘 아이들은 인터넷의 영향권 속에 살고 있다. 친구와의 우정이 한참 아름답게 싹틀 시기이지만 그들은 친구와 노는 것 보다는 혼자서 게임하고, 사이버 세상에서 자신만의 세계에 은둔하는 시간이 많다. 심지어 자신을 대신하는 아바타와 닉네임으로 채팅하는 것으로 친구사귀는 것을 대신하기도 한다. 1년이 지나도록 40명이 안되는 한 반 친구의 이름을 다 알지 못하는 것과 이 책의 주인공들이 겪는 세상과의 단절이 무엇이 다른단 말인가?
세상이 둥글다는 것을 직접 확인하기 위해 똑바로 앞으로 나간 "이젠 아무 것도 더 할 일이 없는 남자". 날마다 똑같이 되풀이 되는 일상에 진저리가 나서 사물의 이름을 자신만의 언어로 재창조 작업을 하는 "어떤 나이 많은 남자". 기차를 너무나 좋아하여 열차시간표까지 달달 외우지만 결코 열차를 타지 않는 "기억력이 좋은 남자" 등등 이들은 모두 세상과 단절되었으며 다른 사람들과 소통이 막힌 사람들이다. 우화의 형식 속에 비록 과장된 모습이지만, 오늘날의 청소년 그리고 어른들 사이에서 아주 낯선 모습은 아니다. 우리도 여전히 스스로를 고립시키고, 상호간에 소통이 안 되는 세상에 살고 있다.
이런 상황을 우린 비판하거나 절망에 빠지기 쉽다. 그러나 작가 피터빅셀은 그들을 향하여 애정어린 시선을 보내는 것을 잊지 않았다. 지구를 한바퀴 돌려고 떠난 여든이 넘은 노인을 십년 넘게 기다린다는 책 속의 직접화법에서 그의 애정어린 시선이 일시적인 동정심이 아니란 생각이 든다. 그는 "이야기가 존재하는 한 이 세상은 아직 가능성이 있다"라고 외치는 것 처럼 희망을 잃지 않는 작가이다. 그의 신념처럼 가능성 있는 세상을 위해 그의 작품들은 따뜻한 눈빛이 깔려 있어 좋았다.
서평을 중고등부 카테고리로 넣는 것이 망서려졌다. 중고생들 뿐 아니라 어른들에게도 아주 의미있는 책이기 때문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주인공들도 모두 중년 남성이 아닌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책을 학생들과 함께 공부하고 자주 추천한다. 단지 동화에 자주 사용되는 우화형식-지나친 비약과 비현실적인 인물설정이란 것 때문도 아니고, 쉽게 읽혀지는 평이성 때문도 아니다. 어른들보다 더 심각한 요즘 학생들의 의사소통 모습에 적잖이 걱정이 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