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기를 잃는다는 것은 철저한 패배를 의미한다. 철저한 패배를 원하는가?그렇지 않다면 용기만은 잃지 말아야 한다.
- 플루타르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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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을 소개합니다.
이 유명한 책을 쓴 플루타르코스는 그리스 사람이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한때 영어식으로 번역해서 『플루타크 영웅전』으로도 많이 소개되었었지요. 탁월한 문장가이자 철학자이자 역사가였던 플루타르코스에게 붙은 별명은 '최후의 그리스인'이었습니다. 플루타르코스가 죽은지 1,800년도 더 지나서 그리스의 소설가였던 니코스 카잔차키스가 『그리스인 조르바』라는 멋진 인물을 등장시키지 않았더라면 플루타르코스는 여전히 '최후의 그리스인' 타이틀을 굳건히 움켜잡고 있었을 테지요. 이 탁월한 고대의 인물은 기원후 46년경 태어나 120년경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는데, 그가 살았던 시대의 그리스는 사실 로마의 속주가 된 지도 2백 년이나 지난 상태였습니다.
훗날『로마제국 쇠망사』를 쓴 에드워드 기번이 '인류 역사상 가장 행복한 시대'라고 절찬한 '5현제의 시대'를 살았던 그가 '최후의 그리스인'이라는 영광스러운 별칭으로 불리게 된 까닭은 무엇일까요? 그는 고대 그리스의 주요 작가들에 아주 통달한 끝에 그리스어로 쓰여진 수많은 작품들을 쏟아냈기 때문이었습니다. 또한 생애의 마지막 30년을 '고대 그리스의 상징'인 델포이 신전에서 사제 노릇을 하며 헌신적으로 일한 점도 그런 별명을 얻는데 보탬이 됐을 듯합니다. 그가 오랜 세월 동안 신관으로 일했던 건 아폴론의 신탁을 받던 유서깊은 델포이 신전이 더 이상 황폐해가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고 하지요. 그런 그에게 '최후의 그리스인'이라는 별명 만큼 멋진 타이틀도 없었을 듯합니다.
그는 아폴론 신전으로 유명한 델포이에서 가까운 도시인 카이로네이아에서 명문가의 자제로 태어났습니다. 스무 살부터는 아테네로 건너가 아카데미에서 철학을 배웠습니다. 그런 뒤에 이집트와 이탈리아 등 지중해 연안의 여러 지방을 여행하고, 로마에도 두세 차례 방문해 강의도 하고 집정관 등 고위층의 명사들과도 친분을 쌓았다고 합니다.
그가 쓴 대표작은 저 유명한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인데, 원래 제목은 『비교 열전』(Bioi paralleloi)이었습니다. 스물세 쌍의 그리스 영웅과 로마 영웅을 '비판적으로 비교'하고 있기 때문에 그런 제목이 붙었습니다. 애초에 그 책엔 이들 마흔여섯 명의 영웅들만 담겼으나, 나중에 그가 따로 쓴 「로마 황제전」에서 두 사람을 더 보태고(갈바와 오토), 또 다른 제왕전 중에서 남아 전해지던 두 사람(아라토스와 아르타크세르크세스)를 후세 학자들이『영웅전』에 포함시킴으로써 그 책은 모두 50명의 영웅들의 전기를 담은 방대한 책이 되었습니다.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을 펼치면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영웅들인 알렉산드로스, 카이사르, 브루투스, 폼페이우스, 안토니우스 등을 두루 만날 수 있지만, 그 영웅전에 반드시 포함되어 있어야 마땅할 인물들이 몇몇 제외되어 있어서 조금 아쉽기도 합니다. 4세기경에 작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람프리아스 목록'에는 테바이의 영웅 에파메이논다스(키케로는 그를 '최초의 그리스인'이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제2차 포에니 전쟁 때 자마 전투에서 한니발에게 결정타를 가한 대(大)스키피오의 전기도 포함되어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전해지지 않기 때문이지요.
방금 언급했던 '람프리아스 목록'에는 플루타르코스의 작품으로 모두 227개의 제목이 발견되는데, 그 가운데 지금까지 남아 있는 작품은 50편의『영웅전』과 78편의 『윤리론집』뿐이라고 하지요. 그가 쓴 작품 가운데 대략 절반 정도만 남은 셈입니다. 그런데 그가 쓴 그토록 많은 작품 가운데 그리스어로 쓰여진 원전을 우리말로 직접 번역한 책은 과연 얼마나 될까요? 제가 알기로는 대략 다음의 네 권쯤 되는 듯합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우리나라에서는 아직까지도 그리스어 원전을 완역한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이 없는 셈이지요.
방금 소개했던 네 권도 모두 그리스어 원본을 저본으로 삼아 번역한 책이긴 하지만 한결같이 '완역'이 아니라 '발췌 번역'으로 출간되었다는 점이 특징입니다. 플루타르코스의 원전이 워낙 방대하다보니 발췌 번역으로나마 번역본을 읽을 수 있다는 게 반갑긴 하지만, 원전의 명성이 워낙에 우뚝한 만큼이나 독자들로서는 완역본에 대한 갈증도 클 수밖에 없는 게 사실이지요.
플루타르코스의 『윤리론집』 또한 『영웅전』못지않게 방대한 저작인데, 무려 78편의 작품이 담긴 원전의 완역본을 기대하기란 힘들 듯합니다. 국내엔 원전에서 딸랑 6편만 추려 뽑아 번역한『수다에 관하여』(천병희 번역, 279쪽)라는 책과 5편만 추려 뽑은 『플루타르코스의 모랄리아』(허승일 번역, 418쪽) 정도가 나와 있을 뿐인데, 두 권의 발췌번역본을 합치더라도 전체 작품의 겨우 14%(11/78) 정도만 번역된 셈이니까요.
이런 사정들만 대충 살펴보더라도 플루타루코스의 『영웅전』과 『윤리론집』이 얼마나 방대한 저작이며, 그 두 작품의 원전 번역이 나오기 위해서는 얼마나 풍부한 주석 작업이 뒤따라야 하는지를 능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비록 지금까지 국내에 나와 있는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이 그리스어 원전의 완역본이 아니거나 혹은 원전의 발췌 번역본이라고 하더라도, 이 위대한 작품의 가치를 제대로 음미하기 어려울 정도로 형편이 나쁘진 않은 듯합니다.
우선, 지금까지 국내에 번역되어 나온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은 도대체 얼마나 많을까요? 누가 그런 걸 일일이 다 헤아리고 있겠습니까마는, 제가 읽은 어느 책에서 발견한 간략한 '참고문헌'에 의하면 대략 다음과 같았습니다.(앞에서도 잠깐 언급했던『두 정치연설가의 생애』라는 책의 말미에 실린 목록입니다.)
김병철 옮김, 『플루타르코스 영웅전』1∼8, 범우사, 1999.
박시인 옮김, 『플루타르코스 영웅전』1∼6, 을유문화사, 1966.
이다희 옮김, 『플루타르코스 영웅전』1∼6, 휴먼앤북스, 2010∼2012.
이성규 옮김,『플루타르코스 영웅전』1∼2, 현대지성사, 2000.
외국어번역연구회 옮김,『플루타르코스 영웅전』1∼9, 한아름, 1994.
천병희 옮김,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선집), 숲, 2010.
홍사중 옮김, 『플루타르코스 영웅전』1∼2, 동서문화사, 2007.
제가 이 책들을 모조리 살펴볼 재간은 없습니다. 다만 이 가운데 휴먼앤북스에서 나온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은 '번역의 문제' 보다는 '주석' 때문에 독자들로부터 신뢰를 크게 잃은 책인 둣합니다. 번역자가 고(故) 이윤기 선생님의 딸이어서 더욱 세간의 기대와 주목을 받았었지만, 오랜 세월 동안 '대작 번역'에 매달린 끝에 마침내 내놓은 번역 작품이 독자들로부터 기대밖의 푸대접을 받는 듯해서 볼 때마다 안타까운 생각이 드는 책입니다.
플루타르코스의 영웅전은 한때 서유럽에서 거의 천 년 동안(5∼15세기)이나 실종된 상태였다고도 하는데, 프랑스의 성직자 아뮈요가 1559년에 프랑스어로 번역하고, 1579년에는 아뮈요의 프랑스어 번역을 중역한 영문판이 나옴으로써 일약 서양에서 가장 많이 읽히는 작가가 되었다고 하지요.
플루타르코스의 영향을 많이 받은 작가는 단연 몽테뉴였습니다. 그는 자신의 저서인 『수상록』에서도 자신이 얼마만큼 플루타르코스의 문장들을 좋아하는지를 여러 차례 거듭해서 밝힐 정도였지요.
나는 플루타르코스의 저서는 여간해서 놓지 못한다. 그는 너무나 보편적이며 충실하기 때문에, 모든 경우에 우리가 어떠한 하찮은 일을 처리할 때도 그는 우리 일에 참견해 오며, 풍부와 미화의 무궁무진하고 관후한 손을 내밀며 거들어 준다. 나는 그를 애독하는 자들의 글에, 그에게서 따온 부분이 지나치게 눈에 띄어서 울화가 터진다. 그리고 그를 읽어 보기만 하면 내 글의 날개와 허벅다리를 거기서 따오지 않을 수 없다.
- 몽테뉴, 『몽테뉴 수상록』
역사가들은 내게는 입에 맞는 떡이다. 그들은 재미나고 평이하다. 그들은 또 인간의 내적 조건들의 잡다성과 진실성의 전부와 세부적인 것, 그가 총체로 가진 여러 방법의 다양성과 그를 위협하는 사건들, 즉 내가 알고 싶어하는 인간 전체가 다른 어떤 데서보다도 여기서 더 생기 있게 나타난다. 그런데 인물들의 전기를 쓰는 자들은 그 인물들이 겪는 사건보다도 그 목적에, 또 외부에서 닥쳐오는 것보다도 그들 내부에서 나오는 것에 더 흥미를 갖기 때문에 플루타르크는 특히 나의 마음에 드는 작가이다.
- 몽테뉴, 『몽테뉴 수상록』
사실 몽테뉴가 쓴 수상록은 플루타르코스가 쓴『윤리론집』을 본따서 만든 작품이지만, 그가 다루는 소재와 주제들이 플루타르코스의 작품에 비해 훨씬 더 다양하고 독특했기 때문에 플루타르코스의『윤리론집』과는 전혀 다른 놀라운 작품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들 두 사람이 살던 세상이 대략 1,500년의 간극이 있을 만큼 서로 확연히 달랐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다루는 인물들과 작품들에는 겹치는 부분이 아주 많습니다.
그들은 아주 단순하게 표현한다면 '고대 그리스·로마 시대의 인물과 작품들'에 너무나 매료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에 대한 이야기를 끊임없이 쏟아낸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두 사람이 공통적으로 아주 좋아한 인물들은 고대 그리스 시인과 철학자들이었으며, 호메로스, 소포클레스, 아이스퀼로스, 에우리피데스, 소크라테스, 플라톤 등이 대표적이었습니다.
플루타르코스는 그저 역사적 인물들에 대한 흥미로운 전기를 남긴 일만으로 그토록 유명한 인물이 된 건 결코 아니었습니다. 그는 당대를 대표하는 지식인이자 철학자였으며 문장가였습니다. 그의 책 속에는 숱한 인물들의 생애를 탁월하게 묘사하는 격조높은 문장들과 두고 두고 기억할 만한 유명한 일화들 말고도 아주 매혹적인 옛 시인들의 싯구들과 당시의 세태를 풍자하는 구수한 속담들과 작가 특유의 날카로운 안목과 비판이 가미된 역사 비평들이 차고 넘칩니다. 몽테뉴가 쓴 수상록이 그토록 흥미진진한 옛 이야기들을 가득 담아낼 수 있었던 것도 그 책의 저자가 플루타르코스를 그만큼 열심히 탐독했기 때문이었습니다.
플루타르코스의 영웅전 속에는 우리가 이미 영화 등을 통해 어려서부터 익히 알고 있는 유명한 인물들도 꽤나 등장합니다. 가령 테미스토클레스(영화『300』과 『제국의 부활』등에 나왔던 '살라미스 해전'의 영웅), 알렉산드로스(영화『알렉산더』에서 훌륭하게 묘사된 것처럼 역사상 가장 뛰어난 영웅), 율리우스 카이사르, 안토니우스, 클레오파트라 등등이 대표적이지요. 이런 인물들을 플루타르코스의 '온전한 전기'를 통해 아주 디테일하게 만나는 반가움은 영화와는 또다른 묘미가 책 속에 가득 숨어 있음을 느끼게 해줍니다.
플루타르코스가 쓴 영웅들의 전기 속에 등장하는 너무나 유명한 문장들, 가령 "주사위는 던져졌다",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 "브루투스! 너마저..." 등을 '플루타르코스의 작품 전체'를 통해 '각색없이' 아주 디테일하고도 생생하게 마주치는 기쁨은 때로는 격한 감동마저 불러 일으킬 때도 있습니다.
셰익스피어 또한 플루타르코스의 영웅전을 읽고 그의 탁월한 문장력과 인간 심리 묘사 등에 깊은 감명을 받은 나머지 자신의 손길로『줄리어스 시저』, 『안토니와 클레오파트라』, 『코리올라누스』등의 작품을 재창조했습니다. 베토벤의 작품「코리올란 서곡」은 셰익스피어의 희곡 때문에 작곡되었다고 전해지지만, 그 영웅적인 인물의 전기가 플루타르코스의 작품 속에 담기지 않았더라면 셰익스피어나 베토벤의 작품은 결코 탄생하기 어려웠겠지요.
미국의 사상가였던 랄프 왈도 에머슨은 "전세계의 모든 도서관에 불이 날 경우 목숨을 걸고라도 꺼내고 싶은 책"으로『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을 꼽았던 적이 있었지요. 서양의 숱한 인물들이 플루타르코스의 영웅전을 읽고 깊은 감명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들을라치면, '그리스어 원전 완역본'이 지금까지도 출간되지 않았다는 핑계를 앞세워 이 유명한 고전을 독파하는 일을 계속 외면할 수도 없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 책의 가치를 단번에 알려주는 랄프 왈도 에머슨의 명언을 인용하면서 이 작품에 대한 소개를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만일 전 세계의 도서관이 불타고 있다면 나는 뛰어 들어가 『셰익스피어 전집』과 『플라톤 전집』 그리고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을 구해낼 것이다”
- 랄프 왈도 에머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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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 링크 주소는 ☞ https://youtu.be/d6ZoU1IYlA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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