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마 이 모든 것을 윌리엄이 썼다고 믿습니까?”


이 말은 '미국의 셰익스피어'로 불리는 마크 트웨인이 내뱉은 말이었습니다. 셰익스피어는 문인 집안 출신도 아니고, 옥스퍼드나 캠브리지 대학을 나온 적도 없는 시골 출신 청년이었는데, 그런 인물이 어떻게 갑자기 그토록 많은 걸작을 쏟아낼 수 있었는지 도저히 믿지 못하겠다는 뜻이 담긴 말이었지요.


셰익스피어라는 인물이 진짜로 원작자가 맞느냐는 가짜 논쟁은 예로부터 자주 있었으며, 그 가운데 가장 유명한 인물은 미국 여성 델리아 베이컨이었습니다. 그녀는 영리했지만 가난 때문에 대학에 진학할 수 없었다고 합니다. 열다섯에 소녀가장이 되어 가족의 생계를 떠안은 채 교사로 일하던 즈음에 그녀는 셰익스피어에 빠져들었는데, 각종 기록을 세밀히 검토한 그녀는 셰익스피어 작품의 원작자가 ‘프랜시스 베이컨’이라는 놀라운 결론을 내리게 됩니다. 이 유명한 얘기는 제임스 조이스의 소설 『율리시스』에도 고스란히 실려 있습니다.


선량한 베이컨: 곰팡이 냄새 어린 채. 셰익스피어가 베이컨이라는 황량한 논법.251)


251) Shakespeare Bacon's wild oats. 미국의 여류 소설가 델리아 베이컨(1811∼1859, 영국의 철학자 프랜시스 베이컨과 인척관계라 주장함)은 그녀의 저서인 『드러난 셰익스피어 연극의 철학(Philosophy of the Plays of Shakespeare Unfolded』에서 프랜시스 베이컨이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썼다고 주장함. 또한 셰익스피어 작품은 그보다 학식이 많은 어떤 사람에 의하여 씌어졌을 것이라는 부정적 설도 있음.


 - 제임스 조이스, 『율리시스』, <제9장 국립도서관(스킬라와 카립디스)>


이보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수많은 '셰익스피어 전문가들'조차 델리아 베이컨의 의견에 대해 동조 내지는 지지했다는  사실입니다. 셰익스피어를 극찬한 대표적 인물인 랠프 왈도 에머슨은 단정 짓지는 못해도 프랜시스 베이컨 등 주변 인물의 도움이 분명 있었을 거라며 델리아의 의견을 옹호했으며, 에머슨과 오랜 우정을 쌓았던 토머스 칼라일도 델리아의 작업을 지지했습니다. 에머슨과 헨리 데이빗 소로우 등과 함께 콩코드에서 살았던 너대니얼 호손은 델리아의 책 출간을 은밀하게 지원했다고도 합니다. 그러니 마크 트웨인이 저런 말을 했다고 해서 별로 놀랄 일도 아닌 셈이지요. '음모론적 시각'은 무슨 일에든 이처럼 끼어들기를 좋아하는 법이지요.


셰익스피어는 20여 년간 무려 37편의 극작품과 154편의 소네트를 썼습니다. 그는 무려 1,100여 명의 캐릭터를 창조하였고, 등장 인물들이 느꼈던 수만 가지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 2만여 개의 단어를 자유자재로 다룰 줄 알았습니다. 우리가 그에게 압도되는 건 작품의 분량 때문만은 아닙니다.


비록 톨스토이는 '셰익스피어의 대사'가 '너무 비현실적'이라고 혹독한 비판을 가하기도 했지만, 수많은 작가와 비평가들은 '천재가 빚은 예술작품'에 여전히 경탄을 금치 못하고 있습니다. 그 많은 작품들이 골고루 걸작이기 때문이지요. 고대 그리스 시인들조차도 각자 서사시, 비극시, 희극시 등으로 그 분야를 나뉘어 작품을 썼지만 이 인물에게만은 그런 '영역 구분'조차 아무런 장애가 되지 못했습니다. 그는 희극 · 비극 · 사극 · 로맨스 · 소네트 · 시 등에 전방위적으로 두루 걸출했습니다. 또한 모든 작품들이 고유의 색깔과 독특한 분위기를 지니고 있습니다. 심지어 10편의 사극에서조차 인물의 성격 뿐만 아니라 작품의 분위기와 구성 등이 모두 다르지요.


셰익스피어는 소년 시절 문법학교에 다닌 게 교육의 전부로 알려져 있습니다. 소년 셰익스피어는 이 단계에서 로마의 희극 작가 테렌티우스나 웅변가 키케로뿐 아니라 오비디우스, 베르길리우스, 호라티우스 등 로마 시인들의 작품을 두루 접했습니다. 나중에 런던으로 진출하여 극작품을 쓰기 시작하면서 그는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와 플루타르코스의 『영웅전』, 몽테뉴의 『수상록』등으로부터 특히 많은 영향을 받았습니다. 문학의 천재답게 '하나를 배우면 열을 아는' 놀라운 재능 덕분에 그는 '원전'과는 또다른 분위기를 지닌 온갖 독창적인 작품들을 쏟아낼 수 있었습니다.

단적인 예가 초창기에 쓴 『비너스와 아도니스』란 작품이지요. 오비디우스가 약 70행으로 읊은 이 짧은 이야기를 셰익스피어는 무려 1200행가량의 장시로 늘렸습니다. 이 무렵 셰익스피어는 사극 『헨리 6세』3부작과 『리처드 3세』의 창작을 마친 신출내기 극작가였습니다. 이처럼 사극을 쓰다가 느닷없이 오비디우스풍의 서사시를 쓴 것도 놀랍지만 더욱 놀라운 건 이 작품이 출판되자마자 당대의 베스트셀러가 되었다는 점과 셰익스피어가 시인으로서 일약 명성을 얻었다는 점이었습니다.

바로 이 무렵에 로버트 그린이라는 작가가 셰익스피어의 극작가로서의 성공을 시기하여 그를 "벼락출세한 까마귀"로 비하한 일이 있었는데, 셰익스피어가『비너스와 아도니스』를 써서 보기 좋게 한 방 제대로 먹인 셈이었지요.

그 작품의 제사(題詞) 또한 흥미롭습니다. 그는 로마 시인 오비디우스의 <사랑의 노래>에서 인용했습니다.

속물들은 잡것에 혹하게 놔두고
금빛 머리 아폴로여, 저에게는
영감이 가득한 샘물 잔 내리소서.

셰익스피어가 살았던 시기(1564∼1616)는 엘리자베스 여왕 치세였습니다. 또한 유럽 사회 전체가 중세에서 근대로 넘어가는 시대이기도 했습니다. 이탈리아에서는 르네상스의 거대한 물결이 휩쓸고 지나간 후였고, 에스파냐에서는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 소식이 온 유럽으로 퍼져 나갈 무렵이었습니다. 루터의 종교개혁(1517년)도 시작된지 그리 오래 지나지 않은 때였습니다. 『돈키호테』의 저자인 세르반테스는 그 무렵 레판토 해전(1571년)에 참가했고, 몽테뉴(1533∼1592)는 『수상록』(1580년)을 간행했습니다.


이 무렵 우리나라에서는 과연 어떤 일이 있었을까요? 황진이가 『청산리 벽계수야』(1565년)라는 시조를 지었고, 정철이 『관동별곡』(1580년)을 발표했으며, 셰익스피어가 『로미오와 줄리엣』, 『한여름 밤의 꿈』을 완성했을 땐 임진왜란이 터져 이순신 장군이 한산대첩과 노량대첩을 벌일 때였고, 『리어 왕』(1605년)과 『맥베스』(1606년)을 발표할 무렵에는 허균이 『홍길동전』(1607년)을, 허준이 『동의보감』(1613년)을 간행할 무렵이었습니다.


셰익스피어가 위대한 점은 당대의 독특한 시대적 배경을 '훨씬 뛰어넘는' 작품들을 썼다는 데서도 찾을 수 있습니다. 셰익스피어는 언제나 '살아 있으면서 고민하거나 괴로워하거나 기뻐하는 인간 그 자체'에 흥미를 느꼈습니다. 그의 비극이 고대 그리시 비극시인들의 '운명적 비극'과 달리 '성격적 비극'으로 불리는 이유 또한 지극히 현대적입니다. 『햄릿』을 비롯한 그의 수많은 희곡 작품들이 현대에 와서도 활발하게 연극 무대에 올려지고 있다는 자체가 셰익스피어 작품의 탁월한 예술성을 증명하는 셈이지요.


그의 희곡이 빛나는 또다른 이유는 문장이 너무나 절묘하고도 아름답다는 점입니다. 그는 음악처럼 그 다음이 듣고 싶어지는 대사를 쓰기 위해 '운문' 형식을 특히 많이 사용했습니다. 또한 리듬이 넘치는 말을 사용해서 극적 효과를 높였습니다. 가령 '적의 아들인 로미오를 사랑하다니 어찌된 일인가'라고 말할 상황에서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아아, 로미오, 로미오, 어째서 당신의 이름은 로미오인가."

뒷날 『리어 왕』을 썼을 때, 그는 짧은 한 문장을 주인공에게 말하게 했다. "부탁하네, 이 단추를 풀어주지 않겠는가?" 이 글은 겨우 다섯 단어로 되어 있으면서 적어도 세 가지의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실제로 옷의 단추를 풀라는 의미와 현세의 허영의 상징인 의복을 벗어버린다는 의미, 그리고 이 삶의 고뇌를 벗고 떠나고 싶다, 즉 죽고 싶다는 주인공의 비통한 소망을 포함한 의미이다. 등장인물의 성격과 상황에 대응한, 유연한 살아있는 말을 쓰는 능력을 셰익스피어는 긴 세월 동안 창작 활동을 통해 습득하고 있었던 것이다.


뛰어난 시란 어떤 것일까? 간결한 말에 여러 의미를 포함시킨다. 말에서 각각의 이미지가 넓어진다. 읽는 이가 분명 그러하다고 납득하게 만든다. 그러면서도 저마다 나름대로 해석하는 자유를 방해하지 않는다. 이런 시가 있다면 그것은 뛰어난 시라고 평가될 것이다. 셰익스피어는 그러한 작품을 썼다. 그의 희곡작품은 극이면서 동시에 시인 극시인 것이다. 결국 셰익스피어는 시인이었고, 그가 시성(詩聖)이라고 불리는 이유와 작품의 끝없는 깊이도 거기에서 나온다.


 - 동서문화사,『햄릿/오델로/리어 왕/맥베드/로미오와 줄리엣』, <셰익스피어의 생애와 사상> 중에서


셰익스피어의 작품들이 후세에 끼친 영향을 우리는 얼마만큼이나 파악할 수 있을까요? 문학, 연극, 음악, 미술, 영화 등 수많은 예술 분야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지만 이걸 종합적으로 조망하는 그림을 그려내기란 결코 쉽지 않을 듯합니다. 셰익스피어는 심지어 정치학과 철학, 심리학과 정신분학석 등에도 깊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왜냐하면 마르크스도 『자본론』과 『경제학·철학수고』에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인용했고,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편지'에도 셰익스피어가 자주 등장하기 때문이지요. 프로이트 또한 '오이디푸스 이론의 근간을 마련하기 위해 소포클레스의 희곡과 셰익스피어의 햄릿을 탐닉했다고 하지요. 프로이트 역시 한미한 집안에서 태어난 셰익스피어가 그려낸 작품들이 지나치게 높은 문화수준을 갖추었다는 점 때문에 '원작자'가 따로 있다고 보았던 인물이었습니다.


마르크스가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자주 읽었고, 이를 굉장히 좋아하여 매우 높게 평가했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다. 그는 셰익스피어를 그리스의 아이스퀼로스와 함께 인류가 낳은 가장 위대한 극작가 중 한명으로 존경했다. 또한, 그는 작품에 등장하는 단역까지 알고 있었다고 한다. 그의 저서에도 셰익스피어의 대사가 상당히 많이 인용되고 있다.


"볼테르는 셰익스피어를 술 취한 야만인이라고 했다. 이처럼 프랑스인에게 반발심을 불러 일으킨 영국 비극의 특성 중 하나는 숭고한 것과 저속한 것, 두려운 것과 익살스러운 것, 영웅과 광대가 독특하게 어우러져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셰익스피어는 그 어떤 상황에서도 영웅극의 서두를 이야기하는 역할을 광대역에게 맡기지는 않았다." <의회에서의 전쟁토론>(1854년)


 - 오다시마 유시, 『셰익스피어가 내가 찾아왔다』, <괴테, 톨스토이, 마르크스가 읽은 셰익스피어>


이토록 온갖 분야에 두루 영향을 끼친 셰익스피어는 과연 자신의 작품들을 통해 어떤 '사상이나 철학'을 설파하고자 했을까요? 놀랍게도 셰익스피어는 어떤 문제에 대해서든 '항상 열린 자세로' 독자들의 판단에 맡길 뿐 자기 스스로 '결론'을 내리는 법이 없었습니다. 달리 말하자면, 그의 작품에 제시된 세계는 '모색(摸索)으로 가득 찬 세계였습니다. 그래서 그의 작품에서 어떤 사상을 배우려고 하는 건 헛된 노력일지도 모릅니다.

『평생독서계획』을 쓴 클리프턴 패디먼도 이 점을 간파하고 명쾌하게 결론내렸습니다. "그는 위대한 독창적 사상가는 아니다. 시인들은 대개 독창적 사상가가 아니다. 이것은 그들의 주특기가 아니다. 세상을 바꾸어 놓은 사상을 찾는 사람은 셰익스피어에게 물어보면 안 된다."라고 말이지요. 좀 더 쉽게 말하자면 그는 당대의 인기 최고의 드라마 작가였습니다. 오늘날도 사정은 비슷합니다. 우리가 '인기 최고의 드라마'를 보면서 거기서 무슨 고매한 철학이나 사상을 배우려고 하지는 않으니까 말이지요. 셰익스피어의 이런 경향은 그가 '철학'을 두고 표현하는 '극중 인물들의 대사'에서도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셰익스피어에게는 논리에 맞지 않는 것이 인간의 진짜 모습이다. 그는 'Philosophy(철학=논리적인 것)'이라는 말을 그의 모든 작품을 통틀어 14번 사용했는데, 모두 부정적인 의미로 쓰고 있다.


예를 들어, 『로미오와 줄리엣』을 보자. 줄리엣의 사촌을 죽여 베로나에서 추방당한 로미오는 자신을 위로하려고 논리로 설득하는 로렌스 신부에게 이렇게 말한다.


"아직도 '추방' 얘깁니까? 철학 따윈 개나 줘버려요! 철학으로 줄리엣을 만들 수 있나요, 마을 전체를 뒤집어엎을 수 있나요, 아니면 영주님의 판결이 뒤바뀔 수 있게 하나요. 철학 따윈 아무 필요 없어요, 그러니 더 말씀 말아 주세요."


그리고 햄릿은 아버지의 망령에게서 친동생이 자신의 목숨과 왕관과 부인까지도 빼앗아갔다는 말을 듣는다. 그때까지 갖고 있던 인간관이 모두 무너진 그는 친구 호레이쇼에게 이렇게 말한다.


"호레이쇼, 이 세상에는 우리들의 철학으로는 도저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 많다네." (58∼59쪽)


 - 오다시마 유시, 『셰익스피어가 내가 찾아왔다』, <셰익스피어의 인간관·역사관의 형성>


시정이 이렇더라도 셰익스피어의 위대함이 훼손될 일은 없습니다. 셰익스피어는 여전히 문학의 최고봉으로 우뚝 솟아 있기 때문입니다. 셰익스피어 이후에 활동한 수많은 작가들은 결코 그로부터 자유로울 수가 없었습니다. 그에게 영향을 받은 작가들과 작품들을 구체적으로 나열하기조차 힘들 정도입니다. 오죽하면 괴테가 이런 말을 남겼을까요.

"셰익스피어를 연구하면 그가 인간의 본성 전체를 모든 면에서, 그리고 모든 깊이와 모든 높이에서 철저히 연구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결국, 그 이후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이제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괴테가 이런 말을 했다고 해서 극작가나, 소설가, 시인이 모두 펜을 접어야 하는 건 물론 아니지요. 이미 셰익스피어 스스로도 다른 사람이 쓴 책을 여럿 참고해서 자신의 작품을 썼습니다. 매사가 그런 식이지요. 괴테는『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썼는데 그 작품은 괴테가 쓴 『햄릿』이라고 평가받는 작품입니다. 체호프의 <갈매기>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누구에게나 자기만의 『햄릿』을 다시 쓸 수 있는 자유마저 박탈당한 건 아닌 셈이지요. 물론 세익스피어의 작품에 그만 압도된 나머지 작가가 되는 길을 지레 포기한 사람도 있을 테지요. 그런 사람들 가운데는 셰익스피어를 연구하는 데 평생을 바친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그토록 우뚝 솟은 '문학의 거인'이 자신의 품 안에서 먹여 살릴 사람들의 숫자는 얼마나 많을까요. 이 또한 오래 전부터 반복된 '익숙한 전통'이자 당연한 귀결이긴 하지만 말입니다.

플루타르코스의 판단에 의하면, 호메로스는 독자에게 언제나 전혀 다르게 나타나며, 항상 새로운 우아미로 개화하며, 결코 사람들을 물리게 하거나 염증 나게 하는 일이 없는, 세상에 단 하나뿐인 작가라는 특별한 찬사를 받는다장난하기 좋아하는 알키비아데스는 학자로 자처하는 어떤 자에게 호메로스 한 권을 달라고 요구했더니, 가진 것이 없다고 하자, 따귀를 한 대 갈겨 주었다. 그것은 마치 우리 신부님들 중에 성무 일과서(聖務日課書)를 갖지 않은 자를 보는 식이다.


크세노파네스가 어느 날 시라쿠사의 폭군 히에론에게 자기는 하인 둘을 먹여 살릴 거리도 갖지 못했다고 불평을 하자, 그가 대답했다. "뭐? 그대보다 훨씬 더 가난하던 호메로스는 아무리 죽을 지경이언정 만 명 이상의 학자들을 먹여 살리고 있다." 파나이티오스가 플라톤을 철학자들의 호메로스라고 말했을 때에, 이 말에 무슨 부족한 것이 있었던가?


 - 몽테뉴, 『수상록』, <가장 탁월한 인물들에 대하여>


셰익스피어의 삶이 미스터리에 둘러싸인 까닭은 그가 '작품' 말고는 다른 흔적을 거의 남기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친필 원고는 전무하고 그가 서명한 서류 몇 건과 출생 및 사망 증명서가 있을 뿐이니까요. 그러니 그의 작품을 통해 거꾸로 '작가의 삶'을 연구하고 밝혀 보려는 시도는 앞으로도 끊임없이 이어질 듯합니다. 정답이 없는 문제만큼 마음놓고 계속 떠들 수 있는 주제도 드물기 때문이지요. '셰익스피어 전기'만 하더라도 이미 셀 수도 없을 만큼 쏟아져 나왔으니까요. 

구매를 차일피일 미루면서 도서관에서 대충 훑어 보기만 했던 책들 가운데서도 '셰익스피어를 둘러싼 이야기'를 다룬 매력적인 책들은 꽤나 많았습니다. 가령 스티븐 그린블랫의 세계를 향한 의지와 리처드 폴 로의 셰익스피어의 이탈리아 기행 같은 책들이 그랬습니다. 그런데 이런 류의 책들은 잘만 읽으면 무척이나 유익하지만 너무 성급하게 달려들다 보면 도리어 쓰디쓴 맛만 안겨주는 고약한 책으로 돌변하기도 쉽습니다. 셰익스피어의 작품들이 지닌 아름다움과 감동을 두루 충분히 맛보지 않은 상태에서 읽으면 저자가 느낀 만큼의 깊은 감흥에 도달하기 어렵기 때문이지요. 마치 몸이 몹시 허약한 사람한테는 비싼 보약조차도 함부로 처방하기가 어려운 경우를 닮았다고나 할까요.

셰익스피어 원작자를 둘러싼 논쟁이나 음모론들은 사실 일반 독자들에겐 그다지 중요하지 않습니다. '셰익스피어 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겐 밥줄이 달린 문제이긴 하겠지만 말이지요. 셰익스피어에 관한 일반 독자들의 문제는 언제나 셰익스피어의 숱한 명작들을 직접 읽느냐 마느냐에 달렸다고 봅니다. 그것이 『햄릿』이든 『로미오와 줄리엣』이든 『한여름 밤의 꿈』이든 『겨울 이야기』든 말이지요. 선택은 언제나 독자들의 '뜻'에 달렸습니다.

『좋으실 대로(As you like 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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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크 주소는 ☞ https://youtu.be/JYDyrTfqX7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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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3-01 03:2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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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3-01 14:3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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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북사랑 2021-03-01 14: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oren님께서는 오래 활동 하셔서 변화를 감지하시고 계시나봅니다. 저는 알라딘 서재가, 이런 공간인 줄 모르고 줄창 독백하듯 리뷰만 올리다가 ˝북플˝기능 덕분에 작년부터 소통하게 되었거든요. 예전에는 더욱 화기애애하고 북적였나봐요 이 서재들이^^

oren 2021-03-01 15:07   좋아요 0 | URL
예전에는 좋은 글들이 올라오면 댓글이 순식간에 수십 개씩 붙었었죠. 인기 있는 알라디너의 글엔 수백 개씩 댓글이 붙은 적도 있었고요. 그런 글들을 보면 도저히 댓글을 안 달 수가 없어서(댓글을 안 달면 괜히 찔리는 기분까지도 들었을 정도니까요.) 반 강제로 댓글에 동참한 경우도 더러 있었던 듯하고요.^^

얄라알라북사랑 2021-03-01 14: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참! 처음에 몇번 oren님 영상 보다가 최근에는 죄송하지만 안 찾아봤는데 조회수가 10000대, 정말 축하드립니다! 꾸준히 듣겠습니다용

oren 2021-03-01 15:09   좋아요 1 | URL
유튜브 채널을 개설한지 1년 남짓 지났고, 아직까지도 동영상 제작에 많이 서툴긴 하지만, 제 채널 방문횟수만큼은 꾸준히 늘고 있어서 무척이나 고무적입니다. 초창기만 하더라도 제 채널 방문횟수가 하루 몇십 회가 고작이었는데, 요즘은 하루 1천회씩은 나오는 듯해요.^^ 갈수록 휑한 알라딘에 비하면 엄청난 조회수이긴 하죠.^^

2021-03-01 15:5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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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3-01 16:1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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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3-01 16:3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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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3-01 16:3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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