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말라
슬픔의 날 참고 견디면 기쁨의 날이 오리니
- 푸시킨
알렉산드르 푸시킨(1799∼1837)
무식하면 용감한 법이라고 흔히들 말한다네.
그건 바로 나 같은 사람을 두고 하는 말 아닐까.
푸시킨의 운문소설 한 편 읽고 드디어 나도 따라
운문으로 감히 서평글을 쓰려 하다니 말일세.
운문이라곤 오십줄이 넘도록 여태 쓴 게 없는데도?
그래도 수업시간에 졸진 않았다네, 특히 국어 시간엔.
그러니 시인들을 모르는 것도 아니라네, 진달래꽃 김소월도
광야의 이육사도 별 헤는 밤 윤동주도 가슴으로 외웠었지.
단지 내가 못 해 본 건 다짜고짜 운문시를 종이 위에 써보는 일.
호메로스도, 오비디우스도, 고대 그리스의 이름난 비극 시인들도
모두들 이야기를 운문시로 읊었다네, 뮤즈의 힘을 빌어.
그러나 뮤즈와 사귄 적 없는 나 같은 사람은 무대뽀로 운문을 짓는다네.
그러니 용서하시게, 운율도 모르는 사람이 에멜무지로 글줄을 읊더라도.
초입부터 말 많으니 내 글이 어딜 가려나, 이제부터 슬슬 달려볼 때 되었네.
여기서 소개할 작품은 그 이름도 특출난 푸시킨의 『예브게니 오네긴』이라네.
이래저래 한두 번쯤 들어는 봤을 테지만, 다 읽은 이 많지는 않을 그런 작품.
나 역시도 이 작품은 귀로만 들었다네, 클래식을 틀어주는 FM을 통해서지.
차이코프스키가 만든 3막극 오페라는 본 적 한 번 없지만 음악은 들었거든.
오페라의 스토리도 모르고 귀로 듣는 음악은 감동조차 약하더군.
풋치니의 아리아 <별은 빛나건만>을 《토스카》도 안 보고 들은 셈이지.
『예브게니 오네긴』은 공들여 만든 작품이라네, 7년 세월 바쳤으니.
작가도 기존 형식에 없었던 운문소설의 가치를 새삼 강조했다네,
<지금 내가 쓰는 것은 운문소설일세. 그 차이란 엄청난 것이지!> 하고.
그러니 아무리 무대뽀라지만, 어설픈 흉내라도 쥐어짜볼 참이라네.
이야기는 아주 단순하다네, 등장 인물도 두 손가락이면 충분하다네.
남자 주인공인 예브게니 오네긴은 시인을 꿈꾸지만 별 직업이 없다네.
운이 좋았던 건 친척 아저씨가 일찍 죽고 그의 유산 상속인이 된 것.
시골의 영지에서 한가로이 책이나 읽으며 산보나 즐기는 신세였다네.
어느 날 이웃 지주이자 시인 지망생인 렌스끼를 만난 게 사건의 단초라네.
렌스끼는 이웃에 사는 올가와 애인 사이였고, 올가에겐 참한 언니도 있었다네.
렌스키는 오네긴을 꼬드겼네. 시골 자매가 사는 집에서 밥 한 번 같이 먹자고.
그때 만난 시골 처녀 따찌야나는 첫 눈에 그만 오네긴에게 반하고 말았다네.
여기까지 쓰고 보니, 무대뽀가 휘갈기는 엉터리 운문은 그만 집어 치우고,
지금 당장 푸시킨의 멋진 싯구절부터 좍좍 인용하고 싶은 마음 굴뚝 같지만,
그래도 소설의 스토리가 아주 간략 하거니와, 그 이야기부터 마무리하세.
오네긴을 만나자 말자 부푼 가슴 억누르지 못한 따찌야나는 편지를 쓴다네.
그대의 신비한 시선에 애간장을 태웠고
제 영혼에선 그대의 음성 울려 퍼졌죠
벌써 오래 전부터…… 아니, 그건 꿈이 아니었어요!
그대가 들어오신 바로 그 순간 저는 알았어요.
얼굴은 달아오르고 온몸이 마비되어
저는 속으로 말했어요, 바로 저분이다!
그렇죠, 제가 들은 건 그대의 음성이었죠.
그녀의 편지는 전부 다 펼치기엔 너무 길다네, 무려 80줄이나 되니까.
아, 그러나 산전수전 다 겪은 오네긴은 이 처녀의 사랑을 거절하고 만다네.
혹여나 순진한 처녀와 결혼까지 이르면 그녀를 불행하게 만들까 걱정되어.
가슴에 멍이 든 따찌야나는 온 세상이 무너지는 충격 속에 빠진다네.
오네긴은 그 처녀를 잊지만, 그녀는 오매불망 오네긴 생각뿐이었다네.
기회를 엿보던 렌스끼가 영명축일 빌미삼아 친구와 함께 그 자매를 찾는다네.
거기서 사소한 일로 화가 치민 오네긴이 언니는 제쳐두고 올가한테 치근대고,
그 꼴을 참을 수 없었던 렌스끼는 불같이 화를 내고 결투를 신청한다네.
권총에 실린 총알이 렌스끼의 가슴을 꿰뚫으니, 애통하구나 젊은 청춘이여.
올가는 시름 잊고 창기병 만나 시집가네, 불쌍한 따찌야나는 마음 둘 곳 없다네.
세월이 좀 더 흘러 따찌야나는 모스끄바 사교계로 진출한다네, 시집은 가야 하니.
운 좋게도 그녀는 공작 부인이 되었다네. 퇴역 장군 만나서 그의 마음 사로잡아.
운명의 여신은 하릴없는 오네긴을 모스끄바로 데려가네, 따찌야나가 있는 그곳으로.
얄궂게도 에로스의 화살은 오네긴을 맞혔다네, 몰라보게 달라진 따찌야나 보고 나서.
<설마, 설마 저 여성이?
그런데 닮았어……. 아니야…….
이럴 수가! 그 촌구석에서>라고 생각하며
이번에는 오네긴이 당할 차례, 그녀는 그를 보고도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는다네.
그렇다! 오들 오들 떨지도 않았고
핏기를 잃지도, 얼굴을 붉히지도 않았다…….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심지어 입술을 깨물지도 않았다.
아무리 열심히 살펴보아도
오네긴은 전에 알았던 따찌야나의
흔적을 발견할 수 없었다.
그녀와 얘기를 풀어 나가고 싶었지만
영…… 되지가 않았다. 그녀가 물어 왔다.
여기 온 지는 오래 되었는지, 어디에 다녀왔는지,
혹시 전에 살던 곳에서 올라왔는지?
그러더니 남편에게 피곤한
시선을 돌리고는 미끄러지듯 가버렸다…….
그는 그 자리에 못 박힌 듯 서 있었다.
이제는 오네긴 차례, 의혹의 여지없이 그 남자는 어린애처럼 따찌야나를 사랑했다.
밤이고 낮이고 사무치는 연모의 정에 괴로울 뿐, 아무리 발버둥처도 뾰족한 수는 없다.
오네긴은 나날이 수척해져 환자처럼 변했고, 남들은 입을 모아 <온천>을 가라 한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죽은 게 낫겠다고 버틴다, 그리곤 편지를 쓴다, 허약한 손으로.
내 생명이 다해 간다는 건 나도 압니다.
그러나 이 목숨이나마 부지하려면
아침마다 오늘도 당신을 볼 수 있다는
확신이 필요합니다…….
이 겸허한 간원 속에서
당신의 엄격한 시선이
무슨 비열한 간계라도 발견할까 두렵습니다.
당신의 격노한 질책이 들리는 듯합니다.
사랑의 갈망으로 열에 들떠 괴로워하는 것이.
끊임없이 이성으로 끓는 피를 억제하는 것이
얼마나 끔찍한 일인지
당신이 알아주신다면.
그러나, 그러나, 답장은 오지 않는다, 기다려봐도. 하루 이틀 사흘~ (송창식의 노래가?)
어느 모임에서 우연히 만난 그녀는 차갑기 한량 없다. 딱 마주치는데 서릿발 같은 모습!
도대체 곤혹은, 동정의 빛은 어디에 있는가?
눈물 자국은 어디 있는가……? 없다, 없다!
그 얼굴에는 분노의 흔적밖에 안 보인다…….
희망을 잃은 그는 이제 서재 속으로 침잠한다. 다시 한 번 세상과 연을 끊고.
그는 또다시 닥치는 대로 책을 읽는다, 아무 것도 가리지 않고.
기번, 루소, 만초니, 헤르더, 샹포르, 스탈 부인, 비샤, 타소
그래서? 눈은 글자를 읽고 있지만 마음은 언제나 <그녀>에게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는 거의 미쳐 가는 듯했고, 그랬으면 진짜 시인이 될 뻔했다고, 작가는 농을 한다.
<우둔한 내 제자 하나도 최면술의 힘을 빌어 러시아 시 작법을 터득할 뻔했다.> 라면서.
해골 같은 모습으로 그가 마지막으로 찾아 간 곳은 그래도 여전히 공작 부인의 저택뿐.
평상복 차림의 공작 부인이 창백한 모습으로 혼자 앉아 있다. 무슨 편지 같은 걸 읽으며.
아, 이 짧은 순간에 그녀의 말없는 고뇌를
알아차리지 못할 자 누구냐!
지금의 공작 부인에게서 예전의 따냐,
그 불쌍한 따냐를 못 알아볼 자 누구냐!
미칠 듯한 연민에 가슴이 아파
오네긴은 그녀의 발 아래 몸을 던졌다.
……
오네긴 님, 저는 그때 더 젊었고
아마 더 예뻤을 겁니다.
저는 당신을 사랑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되었죠?
당신의 가슴속에서 제가 찾은 게 무엇이었죠?
어떤 대답이었죠? 단지 냉혹함뿐이었죠.
그렇지 않았나요? 당신에게는 수줍은 소녀의
사랑이 전혀 새로운 게 아니었죠?
……
그러나 당신을 탓할 맘은 없어요. 그 끔찍했던 순간에
당신은 고결하게 처신한 겁니다.
……
저는 결혼했습니다. 그러니 부탁입니다,
제발 절 그냥 내버려두세요.
당신의 가슴속에 자존심과
순수한 명예심이 있다는 걸 전 압니다.
저는 당신을 사랑합니다(감춰서 뭐 하겠습니까?),
그러나 저는 다른 사람과 결혼을 한 몸,
영원히 그이에게 성실할 겁니다.
이런 말을 남기고 그녀는 떠나갔고, 벼락이라도 맞은 듯이 서 있던 그의 앞에
따찌야나의 남편이 나타난다, 참으로 입장 곤란하게시리.
이 곤란한 장면에서 작가는 독자에게 참으로 친절을 베푸신다.
이쯤에서 독자 곁을 떠나겠노라고. 다음과 같은 말을 남기면서...
그러면 독자여, 나의 주인공이
매우 난처한 입장에 처한 이 시점에서
그를 떠나기로 하자.
오랫동안…… 아니 영원히. 그의 뒤만 좇아
우리는 꽤나 오랫동안
세상을 헤맨 셈이다. 이제 뭍에
다다른 것을 축하하자, 만세!
진작에 도착했어야 했다!(안 그런가?)
자, 어떠신가? 친애하는 벗님들이여. 무대뽀가 써내려 온 엉터리 운문 서평이?
푸시킨의 저 뛰어난 운문 소설이 엉터리 서평가의 운문을 만나 엉망이 되었다고?
사실을 말하자면, 푸시킨의 소설에도 '잡담'만 풍성할 뿐, 뾰족한 수는 없다네.
헐거운 구성, 미약한 주인공, 불분명한 주제가 이 작품의 특징으로 꼽힐 정도니.
그런데도 왜? 도대체 왜 이 작품이 그토록 드높은 평가를 받느냐고?
그건 이 작품이 <소설로부터 자유로운 소설>이기 때문이라더군. 이게 무슨 소리냐고?
푸시킨은 시의 리듬을 즐기면서도 자신의 방식대로 이야기를 전달하고 싶었던 거라네.
그는 시인이면서도 동시에 소설가였기 때문이라네. 그런 예는 예로부터 있었다네.
셰익스피어의 그 많은 희곡들도 9할이 시였다네, 오로지 시로만 쓴 설화시도 있었다네.
푸시킨이 좋아했던 바이런의 설화시 「돈 후안」도 그렇다는군, 읽어 보진 않았지만.
푸시킨의 위대성은 자신만의 독자적인 세계를 창조했다는 거지, 변변한 소설조차 없던 때에
이토록 유례없는 비범한 운문소설을 써냈으니, 그것도 기존의 모든 관례를 파괴하면서.
작가는 『예브게니 오네긴』 속에서 '전통적인 화자'로만 가만히 머물러 있지 않는다네.
때로는 등장 인물로, 때로는 푸시킨 자신으로, 때로는 소설의 저자로, 무시로 넘나든다네.
그는 오네긴의 친구이자 ㅡ
<번잡한 세상사에 작별을 고한 내가 / 그(오네긴)와 친교를 맺은 건 그 즈음의 일>
따찌야나와 매우 가까운 소설 속의 인물로 ㅡ
<따찌야나, 사랑스런 따찌야나! / 너와 함께 나도 지금 눈물을 흘리누나>
푸시킨 자신으로 돌아가 자신의 유배 생활에 대한 회한에 젖기도 하고 ㅡ
<자유의 순간이 내게도 오려나? / 어서 오려무나, 자유여!>
작가의 어린 시절을 회상하기도 한다네 ㅡ
<내가 리쩨이의 정원에서 / 한 송이 꽃처럼 피어나던 시절 ……>
그러니 알고 보면 『예브게니 오네긴』의 진짜 주인공은 화자인 푸시킨이라네.
등장 인물들은 어찌보면 순전히 문학에 관한 화자의 관념을 실현시키는 도구일 뿐이지.
낭만주의에 대한 푸시킨의 관념은 시인 지망생인 렌스끼를 통해서 나타난다네.
그가 오네긴의 총에 맞아 죽기 전에 쓰는 시는 낭만주의에 대한 패러디의 절정이라네.
서서히 흐르는 레테의 강물이
젊은 시인의 추억을 삼켜 버리고
세상은 나를 잊겠지. 그러나 그대,
아름다운 처녀여, 그대만은
청춘의 무덤을 찾아와 눈물 흘리며
회상하겠지, 그는 나를 사랑했노라고,
폭풍 같은 생애의 슬픈 새벽을
나 한 사람에게 바쳤노라고!
<청춘의 무덤>, <폭풍 같은 생애>, <슬픈 새벽> 등은 진부하기 짝이 없는 낭만주의의 언어인데,
그게 바로 렌스끼가 소설의 중간에서 총에 맞고 사라질 수밖에 없는 이유를 제공하는 격이라네.
소설 속의 화자는 렌스끼의 시를 두고 <이렇게 그는 침침하고 맥없이 썼다>라고 혹평한다네.
그게 바로 낭만주의와 시에 대한 대한 푸시킨의 입장이라네. 이 작품으로 시와 작별했으니.
<세월은 엄정한 산문으로 나를 기울게 한다>는 작품 속 고백이야말로 자신에게 한 말이라네.
렌스끼는 젊은 시절의 푸시킨 자신어었던 셈인 거지. 눈 밝은 독자들은 알게 된다네
이 소설에는 논평하고 회상하고 사색하고 조롱하고 진지하게 탐구하는 시인이 있다는 걸.
그래서 이 소설은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화자야말로 진정한 주인공이라는 평을 듣는다네.
어찌어찌 쓰다보니 여기까지 왔건만, 끝끝내 이 서평은 졸작 되고 마는구나.
어느새 사라진 게 운율만이 아니구나. 늘어놓은 글줄들은 벗어 놓은 바지 꼴.
꼬락서니 보아하니 운문 서평은 글렀구나, 이리 보고 저리 봐도 흡족한데 하나 없네.
아이고 아이고(I GO), 나는야 가야 하네, 어설픈 산문 끄적이던 그 자리로 가야 하네.
서럽고도 서러워라, 뮤즈 여신 못 사귄 탓에 운문 서평 엉망됐네.
늦은 나이에 재미 붙인 훌륭한 서책 중엔 이름난 서사시도 많았건만
거기서 배운 지식도 실전으로 들어가니 말짱 꽝인 줄 몰랐구나.
노래하소서, 뮤즈의 여신이여. 운문 서평도 못쓰는 알리디너의 분노를.
독자들에게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고통을 가져다 주었던 그 이름난 서책들이여.
호메로스의 양대 서사시여, 아이스퀼로스의 <오레스테이아>여,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이여, 에우리피데스의 <토로이의 여인들>이여.
아리스토파네스의 <개구리>며 <구름>이며 <새들>이여, 베르길리우스의 <아이네이스>여.
오비디우스의 위트와 파토스여, 루크레티우스 철학시의 심오함이여.
단테의 질서정연함이여, 셰익스피어의 현란함과 무궁무진함이여.
에머슨의 심오함이여, 엘리엇의 난해함이여. 참으로 애석하구나.
그들을 읽은 수고가 이토록 헛되이 운문 서평글 하나로써 다 무너지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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