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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 카레니나 3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21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연진희 옮김 / 민음사 / 2009년 9월
평점 :
(밑줄긋기)
브론스키는 그녀의 삶의 유일한 목적이 되어 버린 그 갈망, 즉 그에게 사랑받고자 할 뿐 아니라 그에게 도움이 되고자 하는 갈망을 존중했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그녀가 그를 사랑의 올가미로 얽매려 애쓰는 것을 부담스러워하기도 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그가 올가미에 얽매인 자신을 발견하는 일이 잦아질수록, 그는 그 올가미에서 벗어나고 싶다기보다 그것이 자신의 자유를 방해하는지 아닌지 더욱더 시험해 보고 싶어졌다. 만약 점점 더 강해져가는 이런 자유롭고자 하는 욕망이 없었더라면, 모임이나 경주를 위해 도시로 가야 할 때마다 법석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욕망이 없었더라면, 브론스키는 자신의 생활에 충분한 만족을 느꼈을 것이다. 그가 택한 역할, 러시아 귀족의 핵을 이루는 부유한 지주의 역할은 그의 취향에 아주 잘 맞았을 뿐 아니라, 그렇게 반년을 보낸 지금은 그에게 점점 더 커져 가는 만족을 주었다.(199쪽)
- 톨스토이, 『안나 카레니나_3권』
"당신은 날 위협하는 것 같군. 좋아, 나도 당신과 떨어지지 않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으니까." 브론스키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하지만 그가 이 부드러운 말을 하는 동안, 그의 눈에는 차가운 눈빛뿐 아니라 쫓기느라 잔혹해져 버린 인간의 사악한 눈빛이 번득였다.
그녀는 그 눈빛을 보았고, 그 의미를 올바로 짐작했다.
'그렇게 된다면, 그건 재앙이야!' 그의 눈빛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그것은 순간적인 인상이었지만, 그녀는 결코 그것을 잊지 않았다.(249쪽)
- 톨스토이, 『안나 카레니나_3권』
춤추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귀머거리의 감정
연주 내내 레빈은 춤추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귀머거리의 감정을 맛보았다. 곡이 끝났을 때, 그는 완전히 당황하고 말았다. 그리고 팽팽하게 긴장된, 그러나 그 무엇으로도 보상받지 못한 집중으로 지독한 피로를 느꼈다. 사방에서 우레와 같은 박수소리가 들렸다. 다들 자리에서 일어나 걸음을 떼며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
"놀랍군요!" 페스초프의 굵은 베이스 목소리가 말했다. "안녕하십니까, 콘스탄친 드미트리치. 굉장히 생생하지요. 조형적이랄까요, 색채감도 풍부하더군요. 코델리아가 다가오는 것이 느껴지는 부분 있잖습니까, 여성이, das ewig Weibliche가 운명과 싸우는 부분 말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런데 코델리아가 그것과 무슨 관련이 있습니까?" 레빈은 그 환상곡이 광야의 리어왕을 묘사한 것이라는 점을 까맣게 잊고 머뭇머뭇 물었다.
"코델리아가 나오잖습니까……. 여기 보십시오!" 페스초프는 손에 들고 있던, 새틴처럼 매끄러운 프로그램을 손가락으로 툭툭 두들기고 그것을 레빈에게 건넸다.
그제야 레빈은 환상곡의 제목을 기억해 내고 프로그램의 뒤쪽에 실린, 러시아어로 번역된 셰익스피어의 시를 서둘러 읽었다.
"이것이 없으면 좇아갈 수가 없습니다." 페스초프는 레빈을 돌아보며 말했다. 그의 말상대가 자리를 뜨는 바람에 더 이상 이야기를 나눌 상대가 없었기 때문이다.(283쪽)
주석) das ewig Weibliche : '영원한 여성, 혹은 영원한 여성성.'(독일어) 괴테의 『파우스트』의 마지막 연에서 성모 마리아에 대한 비유로 언급된다. 한편 괴테와 동시대인인 베토벤이 죽고 난 뒤, 그가 das ewig Weibliche에게 쓴 부치지 못한 편지 세 통이 발견되었다. 베토벤의 편지 대상이 된 이 'das ewig Weibliche'은 우리나라에서 '불멸의 연인'이라는 호칭으로 번역되었다.
(나의 생각)
톨스토이는『광야의 리어왕』이라는 가공의 환상곡을 듣는 장면을 이용해서 인류가 낳은 위대한 예술가들과 작품을 한꺼번에 여럿 등장시키고 있다. 『파우스트』에도 등장했고, 베토벤이 남긴 편지에도 등장했던 '불멸의 연인'을 셰익스피어와 코델리아(리어왕의 막내딸)에게까지 연결시킨 점도 몹시 흥미롭다. 기회가 닿는다면 톨스토이가 남긴 『예술이란 무엇인가?』도 꼭 한번 읽어 보고 싶다.
- 톨스토이, 『안나 카레니나_3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