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작가의 임무는 질문에 답변을 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질문을 제기하는 것이다."

 - 헨릭 입센

 

 

헨릭 입센(1828∼1906)

 

 

입센은 현대 연극에 가장 큰 영향을 끼진 극작가로 꼽히는 인물이다. 그는 노르웨이의 부유한 선주의 아들로 태어났으나 극작가로 입지를 굳힐 때까지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다. 어릴 때 아버지가 파산하는 바람에 약국 수습원 생활을 하는 등 어려움을 겪었고, 20대에는 운문극과 시와 역사소설에도 손을 댔지만 모두 실패했다. 그나마 23세 때부터 12년 동안 노르웨이 극장의 전속작가 겸 무대감독으로 일한 경험이 훗날의 성공 기반이 되었다. 34세 때 노르웨이 극장이 파산한 뒤 약간의 보조금을 받아 설화 수집을 위한 여행을 떠났는데, 그때 《페르 귄트》의 소재를 얻은 것도 훗날의 창작에 중요한 밑거름이 되었다.

 

36세때 국왕의 외유 연구비를 받은 덕분에 고국을 떠난 그는 그로부터 무려 27년 동안이나 외국에서 생활한다. 덴마크와 독일을 거쳐 이탈리아의 로마에서 오래도록 체류했던 그는 '남국의 밝은 태양 아래에서' 다시 태어난 느낌을 받고 창작에 몰두한다. 이 무렵부터 노르웨이 국회가 연금을 지급하기로 결의하면서 생활도 차츰 안정되었다.

 

39세에 발표한 《페르 귄트》는 오늘날까지도 작가의 대표작으로 평가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당대 노르웨이에서는 악의적으로 국민성을 과대 묘사했다는 심한 악평을 들어야 했다. 이 작품은 발표된지 9년 만에 그리그의 음악을 배경으로 음악극 형식으로 초연되어 대성공을 거뒀다. 페르귄트 모음곡 가운데 <솔베이그의 노래>와 <아침의 기분> 은 지금도 클래식의 명곡으로 널리 사랑받고 있어서 입센의 희곡을 뛰어넘은 느낌이 든다.

 

입센을 하루 아침에 세계적인 극작가로 변모시킨 작품은 로마에 살면서 51세에 완성한 《인형의 집》(1879)이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이 작품을 여성해방운동의 상징으로 떠받들지만, 당대 사람들의 반응은 전혀 달랐다. 신성한 결혼과 가정생활을 파괴하고 부추긴다는 비난이 쏟아졌던 것이다. 이런 반응에 자극받은 입센은 더욱 대담하고 충격적인 후속작인 『유령』(1881)을 발표했고, 거기서 다시 한 걸음 더 나아가 《민중의 적》(1882)을 잇따라 발표했다. 이들 세 작품으로 크게 고무된 입센은 1884년에 걸작 《들오리》까지 완성함으로써 가장 숨가쁜 창작 시즌을 보낸다.

 

60세에 쓴 《바다에서 온 여인》(1888)은 《인형의 집》, 《유령》과 함께 '여성해방 문제를 다룬 3부작'으로 여겨지는 작품인데 다른 작품들과는 분위기와 색채가 많이 다른 신비주의적인 경향을 띠고 있다. 62세에 작가의 또다른 대표작으로 평가되는 《헤다 가블레르》(1890)를 완성한 작가는 이듬해인 1891년 마침내 기나긴 외국 생활을 마무리하고 고국에 안착한다. 1899년, 작가의 나이 71세때 지어진 노르웨이 국립극장에는 그의 동상이 세워졌고, 입센은 1905년 조국이 스웨덴으로부터 독립할 때까지도 생존했고, 이듬해 국장(國葬)으로 예우를 받으며 삶을 마감했다.

 

《인형의 집》은 1879년에 출판되자 말자 엄청난 파장을 불러 일으켰다. 결혼이나 가정에서의 남편과 아내의 지위는 결코 신성불가침의 영역도 아니고 고정불변의 것도 아니라는 주장을 담았기 때문이었다. 당대의 도덕관념으로는 쉽게 용납하기 어려운 주장을 담은 이 작품은 여러 나라에서 상연 자체가 금지되거나, 결말 부분이 수정되어 공연될 정도였다. 세 아이를 버려두고 집을 나간 노라의 행위를 둘러싼 격론은 두 갈래로 나타났다. 여성해방론자들과 일부 문학 관계자들은 적극 환영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작가가 결혼과 가정의 신성함을 파괴했다고 격렬하게 비난하는 쪽에 섰다.

 

흥미로운 사실 한 가지는 이 작품을 쓸 때만 하더라도 입센이 스스로 여성해방론자를 자처한 적은 결코 없었다는 점이다. 이 작품 발표 이후로도 그런 사정은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입센의 작품을 극찬했던 제임스 조이스는 심지어 이런 말을 남길 정도였다. "만일 입센이 페미니스트라면 나는 카톨릭 주교다." 작가 스스로도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내 자신이 의식적으로 여성의 권리를 위해 일한다는 명예로운 사실을 부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고 해서 입센을 두고 여성해방론자가 아니라고 강하게 부정할 수도 없다. 《인형의 집》을 쓰던 해인 1879년 10월 19일 작가의 노트에 남긴 기록만 읽어봐도 작가의 입장이 어땠는가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현대 비극을 위한 비망록>

 

'두 종류의 도덕규범이 있다. 두 종류의 양심이 있다. 하나는 남성의 것이고, 하나는 전혀 다른 여성의 것이다. 그들은 서로 융합하지 않는다. 그러나 실생활에서 여성은 여성의 기준이 아닌, 남성의 기준으로 재판받는다.

 

여성은 현대사회에서 독립된 인격체가 될 수 없다. 이 사회는 완전히 남성적이어서, 남성이 만든 규범으로 남성의 입장에서 여성의 행동을 판단한다.

 

작품 속 여인은 문서를 위조하고 이를 자랑스러워한다. 그것은 남편에 대한 사랑에서 나온, 남편을 구하기 위한 행동이었다. 하지만 남편은 상식에 기대어 그녀를 비판하고, 법률의 잣대와 남성의 눈으로 정황을 판단한다.

 

도덕적 갈등, 권위에 대한 믿음이 흔들리면서 그녀는 아내이자 여성으로서 지켜야 할 도덕 및 자녀양육의 의무에 대한 확신을 잃는다. (……) 모든 것을 혼자서 짊어지고 갈 수밖에 없다. 파국은 무자비하고 돌이킬 수 없다. 절망, 저항, 그리고 파멸.'(462쪽)

 

 - 동서문화사, 『인형의 집 / 유령 / 민중의 적 / 들오리』중에서

 

작가가 《인형의 집》에서 말하고자 했던 궁극적인 메시지는 보다 심오했다. 자신의 참된 정체성을 깨닫고 그에 따라 살아갈 때 타자성에 매몰되지 않는 진정한 삶이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남자든 여자든 관계없이. 입센은 철저하게 인생의 허위를 파헤쳐 진실을 드러내 보이고자 했고, 그걸 위해서라면 어떤 비난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인형의 집》은 등장 인물과 줄거리가 간단한 편이다. 변호사인 토르발 헬메르와 아내 노라는 '남편의 은행장 취임'을 앞두고 몹시 들떠 있다. 어느 날 이들 부부에게 오랜 친구인 랑크 박사와 노라의 학교 친구였던 린데 부인이 찾아온다. 린데 부인은 최근에 남편과 사별하고 나서 변변한 수입조차 없어서 '취직 부탁'을 위해 들른 참이었다. 노라는 남편에게 부탁하면 그 정도는 쉽게 해결되리라고 장담한다. 그런 틈에 일종의 대출 브로커나 마찬가지인 크로그스타가 불쑥 집을 찾아온다. 노라는 오래 전에 남편이 과로로 건강이 몹시 나빠졌을때 남편 몰래 그 남자에게 찾아가 돈을 융통한 적이 있었다. 남편의 실업과 요양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여자로서는 대출 자격조차 없었던 터라 노라는 궁리 끝에 친정 아버지의 명의로 대출을 받았고, 아버지의 서명은 그녀가 대신 써넣었다.

 

크로그스타는 은행장이 바뀐다는 소문을 듣고 일찌감치 헬메르의 집으로 미리 찾아온다. 그는 오래 전부터 은행의 말단 직원으로 일하고 있었지만 부도덕하고 부패한 인물로 낙인이 찍혀 있었다. 헬메르에게 찾아봐 자신이 해고되지 않도록 도움을 요청했지만 매정하게 거절당한 그는 노라에게 다시 부탁한다. 자신이 짤리지 않도록 남편에게 영향력을 발휘해 달라고. 노라 역시 그런 부당한 부탁을 단호히 거절한다. 그러나 크로그스타는 물러서지 않는다. 그는 마침내 노라의 '불법 대출'을 문제삼는다. 친정 아버지가 서명한 대출 서류가 위조됐다는 것이다. 마침내 헬메르까지 이 사실을 알게 되자 평소에 노라를 끔찍하게 사랑하던 남편의 태도는 돌변한다.

 

헬메르 어리석기는……. 당신이 무슨 일을 저질렀는지 알기나 해?

노라 떠나게 해주세요. 나 때문에 당신이 곤란해져선 안 돼요. 나 대신 죄를 뒤집어쓰면 안 돼요.

헬메르 비련의 여주인공 흉내는 그만둬! (복도로 나가는 문을 잠근다) 여기서 얌전히 설명해 봐. 당신이 무슨 짓을 한 건지 알고 있어? 대답해 봐! 알고 있느냐고!

노라 (그를 뚫어지게 쳐다보며 굳은 표정으로) 그래요. 이제야 진실을 알겠군요.

헬메르 (방을 서성이며) 아! 이게 도대체 무슨 꼴이람! 8년 동안 나의 기쁨이고 자랑이던 여자가 위선자에 거짓말쟁이…… 게다가 범죄자였다니! … 당신에게 이렇게 추악한 면이 있었다니……! 에잇!

노라 (말없이 계속 바라본다)

헬메르 (노라 앞에 멈춰 서서) 이런 일이 생길 줄 예상했어야 했어, 미리 짐작했어야 했다고. 이게 다 당신 아버지의 무책임한 성격…… 입 다물어! 당신 아버지의 무책임한 성격을 물려받아서 그래. 믿음도 없고, 도덕심도 없고, 책임 의식도 없지……. 아, 당신 아버지를 잘못 본 벌을 이렇게 받다니. 난 당신을 위해 그렇게 한 거야. 그런데 그 보상을 이렇게 하는군.

 

 

이런 식의 험담을 계속 쏟아낸 헬메르는 앞으로는 아이들 양육까지도 아내에게 맡길 수 없다고 선언한다. 그러다가 상황이 급반전된다. 노라의 친구인 린데 부인이 크로그스타를 유혹했고, 자신에게 은인이나 마찬가지인 노라를 위해서라도 더이상 위조 서명을 문제삼지 말아달라고 그에게 부탁한 것이다. 온갖 오명과 불명예로부터 순식간에 해방되는 감격에 휩싸인 헬메르는 다시금 아내를 사랑하기로 마음을 되돌린다. 다음과 같은 낯뜨거운 말들을 쏟아내면서.

 

"남자란 아내를 진심으로 용서했다고 스스로 인정하면서 이루 말할 수 없는 뿌듯함과 만족함을 느끼는 법이지. 그럼으로써 아내는 두 가지 의미에서 남편의 소유가 되는 셈이야. 남편이 아내에게 새 생명을 준 거나 마찬가지지. 말하자면 아내는 남편의 아내인 동시에 자식인 거야. 당신도 오늘부터는 그래, 갈 곳 잃고 쩔쩔 매는 내 귀여운 아가, 이제 아무 걱정하지 마, 노라, 나한테 다 털어놓기만 해."

 

노라는 이토록 순식간에 태도가 돌변하는 남편을 도저히 수긍하지 못한다. 그리고 문득 깨닫는다. 남편은 단지 자신을 인형을 다루듯 대해왔다고. 그 옛날 자신의 아빠가 그녀를 대했던 것처럼. 그러면서 이제 아이들조차 키울 자격을 상실한 자신은 집을 떠나겠노라고 선언한다. 아이들을 키우는 일보다 먼저 자신을 가르치는 일이 더 급선무라면서.

 

헬메르 (펄쩍 뛰듯 일어서며) 지금 뭐라고 했어?

노라 나 자신과 세상을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완전히 독립해야 해요. 그래서 더 이상 당신과 살 수 없어요.

헬메르 노라, 노라!

……

헬메르 이 무슨 미친 짓을!

노라 내일, 내가 살던 옛날 집으로 돌아갈 거예요. 뭘 하든 그곳에서 하는 게 더 쉬울 것 같아요서요.

헬메르 세상 물정이라고는 눈곱만큼도 모르는 주제에!

노라 그걸 알려고 이러는 거예요, 토르발.

헬메르 집도, 남편도, 애들도 버리고! 사람들이 뭐라고 수군댈지 생각해 봤어?

노라 그런 건 신경 안 써요. 내가 아는 건 무슨 일이 있어도 이렇게 해야 한다는 것뿐이에요.

헬메르 최악이군! 가장 신성한 의무를 저버리겠다는 거야?

노라 뭐가 가장 신성한 의무죠?

헬메르 꼭 말해야 알겠어? 남편과 아이들에 대한 의무잖아!

노라 나에겐 그것만큼 신성한 의무가 또 있어요.

헬메르 그런 건 없어. 도대체 무슨 의무를 말하는 거야?

노라 나 자신에 대한 의무요.

헬메르 당신은 무엇보다 아내이자 어머니야.

노라 이젠 그런 것도 믿지 않아요. 난 무엇보다 사람이에요, 당신하고 똑같은. 아니라면 적어도 그렇게 되려고 노력할 거예요. 물론 대부분의 사람들은 당신처럼 생각한다는 걸 알아요, 토르발. 책에서도 그렇게 말하고요. 하지만 난 이제 사람들의 말이나 책에 쓰인 것에는 믿음이 안 가요. 나 스스로 깊이 생각해서 이치를 깨달을 거예요.(89∼90쪽)

 

결국 그날밤 노라는 여행가방을 꾸린다. 그리고 손가락에 꼈던 결혼반지마저 남편에게 돌려준 뒤 끝내 집을 나간다. 그렇게 연극은 막을 내린다. 입센의 걸작  《인형의 집》은 이렇게 끝난다.

 

아래쪽에서 탕 하고 문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이토록 충격적이고 놀라운 결말이라니! 입센은 《인형의 집》을 발표한 이후 세상 사람들의 놀라운 반응에 자못 신명이 났던지 더욱 충격적인 작품을 집필한다. 후속작은 1881년에 발표한 《유령》이었다.

 

이 작품은 '남편의 유지를 받들어' 열정적으로 자선사업을 하는 어느 미망인이 주인공이다. 마침 남편의 서거 10주년을 맞아 그녀는 고아원 개원식을 준비하느라 정신이 없는데, 그 와중에 프랑스 파리에서 그림을 공부하던 외아들까지 휴가를 얻어 집으로 돌아온다. 그런데 오랜만에 재회한 아들 녀석이 어느 틈에 가정부를 유혹하는 모습을 보게 되면서 미망인은 '남편의 유령'을 보는 듯한 착각과 충격에 빠진다.

 

《유령》의 공연 모습

 

남편은 세간의 고상한 평가와는 달리 몹시 방탕하고 무절제한 삶을 살다가 일찍 병들어 죽었고, 아내는 그런 남편의 과오를 감추는 대신 세인들이 고인을 우러러 보도록 남편의 유산을 자선사업에 쏟아부었다. 그런데 아들이 지금 유혹하려는 가정부는 과거에 자신의 남편이 하녀를 범해서 얻은 자식이었다. 미망인은 가정부와는 가까이 말라고 아들을 간곡히 타이르지만 별로 소용이 없다. 아들은 이미 심각한 병을 얻어 발작을 경험했고, 한번 더 발작이 일어나면 가망이 없다는 선고를 들은 터였다. 그래서 그녀에게서 마지막 삶의 위안을 찾겠다는 것이다. 의사의 말에 따르면 자신의 병은 아버지의 성병 때문에 유전된 불치병이었다. 아들은 벌써부터 품속에 독약을 지닌 채 살아온 터였다. 3막에서 아들은 끝내 발작을 일으키고, 미망인은 아들과 약속한 대로 아들에게 약을 주어 죽게 할지 아니면 아들을 살려 가망없는 불치병자로 계속 살게 할지 고심한다. 바로 그 순간 연극은 막은 내린다.

 

'유령'은 작품에서 단지 스치듯 두세 번 짧게 언급될 뿐이다. 그 가운데 인상적인 한 대목은 이렇다.

 

만데르스 뭐가 나타나요?

알빙 부인 유령이요! 아까도 레지네와 오스왈드가 저기서 무슨 말을 하는 것을 듣고, 꼭 유령을 만난 기분이었지 뭐예요. 이런 생각마저 들었어요. 우리 모두가 유령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요. 부모님께 물려받은 유령이 우릴 따라다니는 거예요. 그뿐만이 아니죠. 모든 낡은 사상과 온갖 낡은 신앙도 우릴 따라다녀요. 진짜 살아 있는 게 아니라 우리 몸속에 달라붙어 있을 뿐인데도 우린 그걸 밖으로 몰아내지 못하죠. 신문이라도 읽을라치면 유령이 활자들 사이에서 꾸물대는 것 같아요. 분명 온 나라에 유령들이 득실대는 거예요. 바닷가의 모래알처럼 잔뜩. 그래서 우리가 빛을 무서워하는 거예요.(133쪽)

 

 

입센은 이 작품을 발표하기에 앞서서 미리 세간의 반응을 충분히 짐작하고 있었다. '아마 《유령》은 사회 일각에서 꽤 큰 소란을 불러일으킬 것입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습니다. 그게 아니라면, 그것을 쓸 필요도 없었던 셈이니까요.'

 

작가의 예상은 적중했다. 《유령》은 출판되기가 무섭게 북유럽 전역에서 거센 비난을 받았다. 입센은 이 작품을 쓰기 전부터 《유령》이 《인형의 집》과는 관계가 없음을 강조했었다. 그런데 결과적으로는 《인형의 집》의 주제를 한층 더 심화시킨 작품으로 평가되었다. 작가는 사랑이 결여된 결혼과 남들의 이목을 위해 거짓된 삶을 살아가는 낡은 인습이라는 유령이 어떻게 인간의 삶을 망치는지를 알빙 부인을 통해 보여주고자 했다. 그러나 대중들은 작가의 진정한 의도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작품 속의 사건이 지나치게 비현실적이라거나, 아버지에 대한 존경의 의무와 같은 전통적인 사회관습을 공격한다고 비난하기 바빴다.

 

입센은 그런 독자들의 반응에 대해 자신을 지지했던 작가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답장했다.

 

'저도 그런 난리가 벌어질 것은 이미 각오했습니다. 우리 스칸디나비아의 비평가들 몇몇은 다른 재능은 없을지 몰라도, 자신들이 판단하려는 책의 저자를 완전히 오해하고 잘못된 해석을 내리는 재능만큼은 틀림없이 갖추고 있더군요. 그러나 그것이 진정 오해에만 그치는 문제일까요? …… 그들은 희곡의 등장인물 중 누군가가 말한 의견에 대해 제게 책임을 묻습니다. 그렇지만 이 희곡에는 작가의 책임이 될 만한 의견이나 발언이 어디를 봐도 전혀 없습니다. 그렇게 되지 않도록 세심하게 주의를 기울였기 때문이죠. …… 제 의도는 독자들이 제 작품을 통해 마치 현실의 경험처럼 생생한 인상을 받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대사 안에 작자 개인의 의견을 끼워 넣는 일만큼 그런 인상을 효과적으로 방해하는 것은 없지 않겠습니까?'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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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5-17 01:1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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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5-17 18:5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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