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라워라!

잘생긴 인물들이 여기에 참 많기도 하구나!

인간은 참 아름다워! 오 멋진 신세계여,

이러한 종족이 살다니.

 - 셰익스피어, 『템페스트』, <5막 1장> 중에서

 

올더스 헉슬리(1894∼1963)

 

 * * *

 

올더스 헉슬리는 광범위한 분야에 걸쳐 두루 전문적인 지식을 갖춘 탁월한 지성의 소유자였다. 그가 지닌 독특한 지성의 면모를 생각하면 『멋진 신세계』와 같은 작품이 결코 우연히 탄생한 게 아님을 느끼게 된다. 그는 문학과 철학은 물론 과학과 심리학을 비롯한 온갖 학문 분야에 두루 박학다식한 인물이었고, 이런 지식을 바탕으로 '삶의 의미'를 언제나 근본적으로 사색하고 규명하려고 평생 동안 애쓴 인물이었다.

 

그의 지성적 면모를 살펴보기 위해서는 집안의 가계도를 잠시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그는 영국의 저명한 과학자 집안과 문학가 집안의 피를 고루 물려받았다. 더구나 그의 할아버지는 다윈 이후 가장 유명한 생물학자였던 토머스 헨리 헉슬리였다. 그의 아버지는 교육자였고, 어머니는 옥스퍼드 대학교의 시학 교수이자 『교양과 무질서』로 유명한 매슈 아놀드의 조카딸이었고, 그녀 스스로도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영문학을 전공한 여류시인이었다. 올더스의 형인 줄리안 헉슬리는 저명한 생물학자이면서 초대 유네스코 사무총장을 지냈고, 이복동생인 앤드류 헉슬리는 노벨 의학상을 수상한 유명한 생리학자였다.

 

할아버지인 토머스 헉슬리에 대해서는 조금 더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는 찰스 다윈이 쓴 『종의 기원』의 서문에도 등장할 정도로 탁월한 생물학자였다. 그는 단테를 원어로 읽기 위해 이태리어를 배울 정도로 학구열이 대단한 인물이었다. 그는 다윈의 『종의 기원』 발표 이후 종교계의 극단적인 반발과 반론을 최선두에서 가장 논리적이고도 효율적으로 반격한 중심 인물이었다. 인간의 조상이 동물로 이어진다는 주장을 담은 그의 대표작 『자연 속에서의 인간의 위치』는 훗날 헉슬리 가문을 관통하는 중요 연구 관심사가 되었으며, 올더스 헉슬리의 세계관에도 영향을 끼쳤다. 왕립학회 회장을 지낸 그는 존 러스킨, 틴덜, 매슈 아놀드, 토머스 칼라일 등과도 두루 교류했다.(찰스 다윈, 토머스 헉슬리, 틴덜은 버지니아 울프가 쓴 『댈러웨이 부인』에도 함께 등장한다. 버지니아 울프의 아버지는 토머스 헉슬리와 친구 사이였다.)

 

올더스 헉슬리의 아버지 레오나드 헉술리는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공부했고, 재학중에 부인 줄리아 아놀드와 만났다. 그녀는 옥스퍼드 영문학과를 수석으로 졸업했으며 훗날 시집을 출간하여 삼촌인 매슈 아놀드로부터 찬사들 받기도 했다. 레오나드는 시골에서 학교 교감으로 지냈지만 창조론과 진화론에 대한 공방에는 늘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이들 부부의 3남 1녀 가운데 셋째로 태어난 올더스 헉슬리는 14세에 어머니를 잃고 큰 충격에 빠진다. 시력이 나빠져 또다른 충격을 받은 그는 각막염 수술을 받았고, 나중에 옥스퍼드 의대에 진학했다가 결국 영문학으로 전공을 바꾼다. 연극·예술 비평가로 사회 생활을 시작한 그는 작품 활동 내내 언제나 사물의 궁극적인 실체를 이해하기 위해 집요한 노력을 기울인 끝에 온갖 난해한 주제에 대한 엄청난 백과사전적 지식을 습득하게 되었다.

 

과학 문명의 발달이 초래할 암울한 미래상을 그린 작품은 『멋진 신세계』 말고도 『원숭이와 본질』 같은 작품도 있었다. 그러나 그가 진심으로 동경해 마지않는 긍정적이고 낙천적인 사회를 그린 작품도 아예 없지는 않았다. 『섬』이라는 작품이 대표적이다. 그 작품을 두고 그가 스스로 논평한 글은 다음과 같다.

 

“위대한 역사, 폴리네시아 인류학, 산스크리트어와 중국어로 된 서적, 그리고 불교 경전, 약리학, 신경생리학, 심리학, 교육에 관한 논문들, 더불어 소설, 시, 비평, 기행문, 정치 논평, 철학자에서부터 배우, 정신병원의 환자로부터 롤스로이스를 타고 다니는 재벌들에 이르기까지 온갖 사람들과의 대화, 이 모든 것이 나의 유토피아적 방앗간의 깔때기 속으로 곡물이 되어 들어가 이 작품이 되었다.“ 이 작품 하나에 대한 그의 관심 분야가 이 정도로 폭이 넓었으니 그의 작품 세계 전체를 아우르는 관심 분야가 얼마나 다양했을지는 짐작하고도 남을 정도다.

 

온갖 분야에 두루 해박한 지식을 지녔던 천재 작가 올더스 헉슬리가 그려낸 『멋진 신세계』는 과연 어떤 세계였고, 그런 세계가 미래에 실제로 실현될 가능성은 또 얼마나 될까.

 

포드 기원 632년으로 설정된 '멋진 신세계'의 시대 배경은 대략 2540년쯤이다. 과학 문명이 고도로 발달된 세계에서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첨단 생명공학의 발달이다. 인간들은 더이상 어머니의 뱃속에서 자라지 않는다. 모든 인간들은 시험관에서 수정되고 조건에 맞게 배양되어 조건반사 양육을 받으며 자라난다. 소설에 맨 처음에 등장하는 회색 빌딩의 중앙 현관 위에는 '런던 중앙 인공부화 · 조건반사 양육소'라는 간판이 붙어 있다. 방패 모양의 현판에는 '공유 · 균등 · 안정'이라는 세계 국가의 표어가 달려 있다. 이 두 가지가 '신세계'를 상징한다.

 

인간들이 인공부화 과정을 거쳐 탄생한다는 사실로부터 인간의 삶은 근본적으로 변화된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필요없는 세상이 된 것이다. 번거로운 자녀양육 의무가 뒤따르는 결혼제도도 사라진다. '만인은 만인을 위한 공유'가 세계 국가의 이념이다. 격정을 유발하기 마련인 '연인 관계'라는 것도 없다. 자유 연애가 보편적인 사랑의 형태이고, 섹스 파트너를 오래 독점하는 연인 관계는 사회적 지탄을 받거나 금기로 여겨진다. 첨단 의학의 발달 덕분에 인간의 신체는 육십이 되도록 젊음을 유지하지만 그 이후에는 '시체 처리소'로 직행한다. 죽음은 더 이상 회피하거나 슬퍼할 일이 아니라는 점은 양육 과정에서 세심하고 철저하게 주입식으로 교육된다. 더군다나 부모, 자녀, 친인척이 따로 없는데 그토록 죽음을 슬퍼하고 연연할 이유 자체도 이미 사라지고 없다. 미래 세계는 강력한 중앙 통제 체제를 갖추고 있으며, 무엇보다 공유와 균등과 안정을 최우선 가치로 삼는다.

 

미래 세계의 또다른 특징은 철저한 계급 사회라는 점이다. 전세계 인구는 20억 명으로 제한되며, 피라미드 식으로 이뤄진 각각의 계급에 필요한 인원은 철저한 사전 계획에 따라 생산되고, 조건반사 양육소에서 '각각의 계급에 가장 알맞은 정도로' 양육 받는다. 이러한 과정은 물론 오랜 시행착오 끝에 검증되고 정착된 시스템이다.

 

겨우 34층밖에 되지 않는 나지막한 회색 빌딩에서 시작된 미래 세계는 '런던 중앙 인공부화 · 조건반사 양육소' 소장의 안내를 받는 견습생들 덕분에 '첨단 생산 시설'을 두루 살펴보는 행운이 뒤따르지만, 센터 내부의 분위기는 실험실용 플라스트와 니켈과 스산하게 빛나는 도자기류뿐이다.

 

모든 것이 살벌함을 겨루고 있었다. 거기서 근무하는 자들은 흰 작업복을 입었고 손에는 시체같이 창백한 고무장갑을 끼고 있었다. 조명은 차갑게 죽어 있었다. 유령 바로 그것이었다.(7쪽)

 

도무지 등장 인물들 사이의 대화 조차도 없을 듯한 숨막히는 세계에서도 사건들은 일어나고 갈등이 생겨난다. 알파 계급에 속해 있으면서 최면교육 전문가로 근무하는 버나드 마르크스와 감정공학 대학의 감성교육 엔지니어인 헬름홀츠 왓슨은 신세계의 통치체계에 완전히 적응하지 못하고 약간의 반감과 혐오를 품은 인물들이다. 그들은 정신적으로 일종의 과잉상태에 있으며 스스로의 개성을 인식하고 있으므로 몰개성적인 통치 체계에 종종 비판적인 견해를 표출한다. 그들은 서로가 공감대를 가진 부분이 있다는 걸 발견하고 차츰 그런 감정들을 공유하기 시작한다.

 

버나드는 성격마저 우울하고 소심한 데다 사교성이 부족한 탓에 또래의 여자들과 제대로 사귈 기회도 갖지 못한다. 사교적이면서 발랄한 처녀인 레니나는 수줍음이 많은 버나드에게 거꾸로 대쉬하지만 그녀를 쉽게 수용하지 못하고 겉으로만 맴돈다. 이들 커플은 좀 더 친밀해지기 위해 휴가 기간 동안 뉴멕시코의 야만인 보호구역으로 함께 놀러갈 계획을 세운다. 야만인들은 고도로 문명화된 지역에 사는 사람들과는 철저히 분리된 지역에 사는 원주민들이며, 오랜 옛날의 생활 습관들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격리된 채 살고 있다. 안내자들을 따라 조심조심 야만인들의 풍습을 둘러본 두 사람은 자신들의 방식과는 너무나 다른 생활 습관을 지닌 '야만인들의 풍속'에 기겁을 한다. 그곳은 몹시 불결할 뿐만 아니라 보기에도 흉측한 늙은이들도 많았고, 아이들에게 젖을 먹이는 모습, 기우제를 올리는 기이한 원시 풍속 등 어느 하나 낯설지 않은 게 없었다. 비록 레니나에게는 극도로 혐오스러운 모습일지 몰라도 예민한 감성을 지녔던 버나드는 도리어 그런 삶의 모습에 깊은 흥미를 품는다.

 

그들은 거기에서 오래 전에는 문명세계에 속해 있다가 언젠가 우연한 사고 때문에 거기서 정착해 살고 있는 린다라는 늙은 여성을 만난다. 그녀는 25년 전에 인공 부화 센터 소장이던 남자 친구와 함께 '야만인 보호구역'으로 놀러 왔다가 그만 길을 잃는 바람에 끝내 실종 처리된 여성이었다. 베타 계급에 속했던 그녀는 거기서 존이라는 아들을 낳아 키웠지만 원주민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온갖 간난고초를 겪으며 어렵게 생활해 왔던 터였다. 

 

그녀는 그곳 생활이 힘겨울 때마다 아들에게 문명 세계에서 지냈던 행복한 지난 과거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리고 언젠가는 그곳으로 되돌아갈 날을 꿈꾸며 아들에게 글과 노래까지 가르쳐 준다. 그때 존이 심취해서 읽은 책이 셰익스피어 전집이었다. 존은 비록 책 속의 모든 내용을 전부 이해할 수 있는 건 아니었지만, 온갖 다채롭고 풍성한 감성들이 넘쳐나는 인간미 넘치는 세계를 동경하게 된다. 버나드와 레니나는 린다와 존을 설득시켜 그들을 마침내 문명 세계로 이끌고 나온다. 무료한 대중들의 폭발적인 관심과 연구 대상이 될 것임을 확신하면서.

 

야만인 보호구역에서 어머니와 함께 핍박받고 따돌림을 당하며 살아오던 존에게는 '런던으로 가겠느냐'는 버나드의 제안이 더없이 반가울 수밖에 없었다. 문명세계로의 이주 제안에 대해 존이 감격에 벅차 내뱉은 대답이 바로 셰익스피어의 『템페스트』에서 미란다가 외쳤던 말이었다. 멋진 신세계!

 

"오오, 이 얼마나 경이로운가!" 존이 말했다. 그의 눈에서는 광채가 났고 얼굴은 빨갛게 상기되어 있었다.

 

"얼마나 많은 훌륭한 피조물이 여기에 있는가! 인간이란 얼마나 아름다운 피조물인가!" 그의 홍조는 갑자기 더욱 깊어졌다. 그는 레니나를 생각하고 있었다. 진한 초록색 인조견 옷을 입고 피부는 젊음과 영양크림으로 윤기 있고, 포동포동하고 자애롭게 미소짓는 천사를 생각하고 있었다. 그의 음성이 더듬거리고 있었다. 

 

"오오, 멋진 신세계여!" (177쪽)

 

버나드와 레니나 덕분에 '야만인 보호 구역'에서 문명 세계로 끌어올려진 존과 린다는 구원을 받는 게 아니라 도리어 더욱 난처한 상황에 처하고 만다. 린다는 늙고 뚱뚱한 데다가 모습마저 추하게 일그러져 문명세계에서는 한낱 구경거리에 지나지 않는 존재로 전락한다. '야만인 씨'로 불리는 존도 마찬가지다. 체제 부적응자로 분류된 버나드는 언제라도 험지 아이슬란드로 전출당할 위기를 의식하고 있었고, 그런 좌천 발령을 모면하기 위해서라도 존을 활용한 실적 쌓기가 필요했던 것이다. 그런 영문도 모르고 이리저리 불려다니는 존은 문명 세계로 올 때부터 미모에 이끌렸던 레니나에게 차츰 사랑의 감정을 느끼게 된다.(자신도 모르게 『로미오와 줄리엣』의 대사를 자주 중얼거리면서.)

 

촉감 영화관에서 존과 함께 데이트를 즐긴 이후로 레니나는 존이 자신을 연모하고 있다는 걸 확실하게 알아챈다. 자유 연애에 익숙한 레니나는 오래 고민할 겨를도 없이 적당한 기회를 틈타 야만인의 방으로 먼저 찾아간다. 그러나 정작 충분한 마음의 준비가 덜 된 상태였던 존은 제발로 찾아온 그녀를 극도로 혐오하고 도리어 밀쳐낸다. 연애 단계에서 반드시 거쳐야만 마땅할 듯한 섬세한 밀당 단계가 생략된 걸 도무지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것이다. 이런 희극적인 모습이야말로 가치관이 전도된 문명 세계와 야만인 사이에 펼쳐지는 '아이러니의 극치'다.

 

"기절할 때까지 키스해줘요. 오! 내 사랑, 안아주세요. 아늑하게 ……."

 

야만인은 그녀의 팔목을 잡더니 어깨를 잡았던 그녀의 손을 풀고 팔을 뻗어 그녀를 거칠게 밀었다.

 

"오! 아파요! 당신은 나를…… 오!" 그녀는 갑자기 입을 다물었다. 공포로 인하여 고통도 잊은 상태였다. 눈을 떴을 때 그의 얼굴이 보였다 ㅡ 아니, 이것은 그의 얼굴이 아니었다. 전혀 낯선 인간의 창백하게 일그러진 얼굴이었다. 형언할 수 없는 미친 듯한 분노로 경련하는 얼굴이었다.(245∼246쪽)

 

존은 문명 세계의 사람들이 불편한 감정을 잊고 행복감에 빠져들도록 도와주는 '소마'를 배급하기 위해 모여든 인조 인간들을 향해 분노를 가득 담아 외친다. 소마는 행복을 주는 약이 아니라 독약이라고. 그렇게 소동을 부린 끝에 존은 버나드와 헬름홀츠와 함께 서유럽 통치자인 무스타파 몬드에게 불려간다. 총통의 서재로 안내된 야만인 존은 도리어 총통을 향해 '인간다운 삶'을 역설하고, 몬드는 한편으로는 야만인의 주장을 인정하면서도 감정의 기복조차 느낄 필요가 없을 정도로 안정된 문명세계가 더 행복하다고 주장한다. 심지어 행복을 위해서는 예술, 과학, 종교까지도 불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신의 존재까지도. 그들 사이의 격론은 야만인 존이 마침내 다음과 같이 외칠 때까지 계속된다.

 

"하지만 저는 불편한 것을 좋아합니다."

 

"우리는 그렇지 않아." 총통이 말했다.

 

"우리는 여건을 안락하게 만들기를 좋아하네."

 

"하지만 저는 안락을 원치 않습니다. 저는 신을 원합니다. 시와 진정한 위험과 자유와 선을 원합니다. 저는 죄를 원합니다."

 

"그러니까 자네는 불행해질 권리를 요구하고 있군 그래."

 

"그렇게 말씀하셔도 좋습니다." 야만인은 반항적으로 말했다. "불행해질 권리를 요구합니다."(305쪽)

 

야만인은 마침내 그곳을 견디지 못하고 멀리 외딴 데로 도망친다. 그러나 그곳도 끝내 안전한 곳은 되지 못했다. 언론의 집요한 추격을 피하지 못한 그는 열광적인 취재 열기에 시달리다 끝내 자살하고 만다. 그가 은신처로 피난하기로 결심하면서 버나드에게 했던 말은 이랬다.

 

"나는 문명을 먹었어."

"문명이 나에게 독을 먹였어. 그래서 나는 오염되고 말았어."

 

『멋진 신세계』는 1949년에 쓰인 조지 오웰의 『1984』보다는 조금 덜 우울하다. 오웰의 작품에서 나타난 1984년의 세계는 실제 세계보다 훨씬 더 암울하게 그려져 있다. 빅 브라더가 지배하는 고도의 전체주의 지배 체제 하에서는 개인의 일거수일투족이 스크린을 통해 철저하게 감시받고 통제되며, 체제에 순응하지 못하는 반체제 인사들은 사상 경찰들을 통해 색출되고, 혹독한 고문을 거쳐 개조되거나 끝내 흔적도 없이 제거된다. 거기엔 어떠한 자유나 방임도 허용되지 않는다. 그에 반해 올더스 헉슬리가 그린 미래 세계는 비록 전체주의 지배 체제인 점에선 닮아 있으나, 과학 문명이 고도로 발달한 끝에 도래하는 '인간 본연의 삶이 파괴된 황량한 세계'를 그리고 있다는 점이 다르다.

 

기술 문명이 발달할수록 더욱 강조되기 마련인 공유와 안정 같은 가치들이 도리어 궁극적으로는 인간다운 삶 자체를 파괴하는 방향으로 기울고 만다는 헉슬리의 경고는 미래로 나아갈수록 점점 더 강한 설득력을 얻을 주제임에 틀림없다. 또한 헉슬리가 내다본 까마득한 미래 세계는 우리의 생각보다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도 않다. 시험관 아기는 어느새 보편적인 자녀 획득 방식으로 자리잡은지 오래다. 유전공학을 비롯한 첨단 과학기술의 발전은 질병과 노화에 대한 극복 능력을 갈수록 확대하고 있으며, 인간 생활의 편리함과 즐거움을 위해서라면 어떠한 생명공학이라도 기꺼이 감수할 정도로 첨단 과학 기술에 대한 숭배가 과도한 측면도 간과하기 어렵다.

 

올더스 헉슬리가 쓴 『멋진 신세계』가 출판된지 겨우 87년밖에 지나지 않았는데도 세상은 온갖 혁신적인 기술들로 넘쳐나는 판국이다. 멋진 신세계에서 주인공들이 즐겼던 '촉감 영화관'은 현실 세계에서도 빠르게 확산되고 있으며, 가상현실이나 증강현실과 같은 실감형 기술들도 앞을 다투듯 현실화되고 있다. 그러나 자율주행과 인공지능에 기반을 두고 움직이는 미래 기계 문명은 사소한 사고 하나로도 끔찍한 대혼란을 일으킬 위험을 품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만인은 만인을 위해 공유한다'는 공유 이념 또한 마냥 좋을 리만은 없다.

 

『멋진 신세계』는 탄탄한 서사가 뒷받침된 멋진 소설이라기보다는 예언적 우화에 가까운 소설이다. 또한 작품의 제목에서도 드러나듯이 이 작품 속엔 작가 특유의 유쾌한 아이러니가 곳곳에 가득하다. '멋진 신세계'를 꿈꾸며 야만인 보호구역에서 벗어나 고도 문명 사회로 뛰어든 존이 도리어 그 세계를 지배하는 총통에게 대들듯이 싸우며 '과학과 철학과 종교의 가치를 역설'하는 장면은 얼마나 역설적인가. 홀로 독학하다시피 셰익스피어를 탐독한 그는 인간 삶의 궁극적인 본질들을 절묘하게 꿰뚫는 듯한 명대사들을 아무 때라도 주저없이 쏟아낸다. 그때마다 문명인들은 야만인 청년의 말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어리둥절해 한다. 야만인 존은 비록 문명세계로부터 격리된 곳에서 외계인 취급을 받을 정도로 고통을 겪으며 자랐지만 셰익스피어로 상징되는 문학의 힘을 통해 인간 삶의 본질을 터득한다. 인간의 행복이란 결코 그저 얻어지는 알약 같은 것이 아니며, 행복과 고뇌와는 표리관계에 있다는 사실 말이다.

 

끝내 문명 세계의 공기를 견디지 못한 야만인이 목을 매고 자살하는 결말이 너무 비참하게 여겨졌던 탓일까. 올더스 헉슬리는 이 작품을 출간한지 14년이 흐른 뒤 이 소설의 재판본 서문에 작가의 입장을 새롭게 추가했다. 『멋진 신세계』를 처음 쓸 때만 하더라도 야만인에게는 두 가지 가능성 밖에 없었다고. 문명국에서 미치거나 야만국으로 컴백하거나. 그러나 다시 그 작품을 쓴다면 제3사회의 존재를 설정하겠노라고. 문명국으로부터의 망명자나 도망자들이 건설하는 세계를. 그런 작업으로도 부족했던 것일까. 작가는 1958년에 기어이 새로운 작품을 하나 더 썼다. 그 작품의 이름은 『다시 찾아본 멋진 신세계』였다. 인간의 주요 관심사들에 대하여 그처럼 빠짐없이 의견을 표명한 인물도 찾기 어렵다. 미래의 고도 문명 사회가 어떠한 모습일지 궁금한 독자들은 한번쯤 올더스 헉슬리가 창조한 '멋진 신세계'를 다녀올 필요가 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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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9-02-15 13: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1984』는 읽었는데『멋진 신세계』는 읽지 못했어요.

˝불행해질 권리를 요구합니다.˝(305쪽) - 그야말로 뒤집힌 생각이네요. 우리 고정관념의 반전을 보여 주네요.


oren 2019-02-15 14:35   좋아요 1 | URL
제 개인적인 생각입니다만,
『1984』는 이미 지나간 과거를 ‘다가올 미래‘로 그린 소설이 되어버렸지만,
『멋진 신세계』는 여전히 다가올 미래를 그린 소설이라는 점에서 더 오래 살아남지 싶어요.^^
그렇다고 조지 오웰의 작품이 올더스 헉슬리보다 덜 뛰어나다는 뜻은 절대 아닙니다.
두 작품 모두 ‘인간이 인간을 지배하는 세계의 모순‘을 적나라하면서도 심오하게 파헤친 작품이나까요.

외유내강 2019-07-02 16: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1930년대에 미래를 예언한 소설이기만 하지만 과학과 기술 등의 문명의 발달이 가져온 인간성의 상실이라는 측면에서는 예측이 딱 들어맞는거 같아요. 인간의 행복이 단순히 알약하나로 얻어지는 미래세계가 읽는사람 입장에서는 지구 밖에서 객관적으로 보기 때문에 무섭게 느껴지지만 정작 내가 그 속에 살고 있는 알파나 베타 같은 사람이였다면 그게 무서운지도 모르고 훈련받은대로 만족하며 살았을꺼 같아요...모든 사람들이 회의를 품지 않는 안정된 틀 속에서 의심을 품거나 의식을 가지고 체제를 거부하기란 쉽지 않을듯 하거든요..어쩌면 우리 모두 점점 멋진 신세계로 우리도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진입하고 있는지도 모를거란 생각이 듭니다.

oren 2019-07-02 18:10   좋아요 0 | URL
쓰여진지 100년 가까이 지난 소설인데도 오늘날의 여러 ‘실제 상황들‘을 날카롭게 예견했다는 점에서 참으로 놀라운 소설임에는 분명한 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