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동안의 유럽 여행에서 만난 풍경과 사람들
어영부영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다.
모처럼(?) 아내와 함께 동유럽을 여행하기로 계획을 세웠던 게 올해 3월 초순쯤 되었던 듯하다. 그런데 그동안 뭐가 그리도 바빴는지 여태 아무런 준비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내일(5/18)이면 뮌헨으로 가는 비행기에 올라타야 한다. 속절없이 흘러간 두어 달의 세월이 그저 야속하기만 하다.
따지고 보면 작년 7월에 감행했던 '17일 동안의 유럽 자유 여행 경험'이 이번 여행에 대한 준비 소홀에 크게 한 몫을 한 듯하다. 작년 여행만 하더라도 '하나에서 열까지' 정말 준비할 게 많았다. 그런데 이번 여행은 어쨌든 '패키지 여행'이니 그저 안내자가 이끄는 대로 아무 생각없이 그저 따라다니기만 해도 그만이라는 생각부터 앞섰다. 도대체 준비할 게 뭐가 별 게 있겠냐 싶은 알량한 생각에 아무 생각도 없이 지내다 보니 어느새 여행을 떠날 날짜가 코앞에 불쑥 다가오고 말았다.
동유럽을 여행한다고 하더라도 어디 가볼 만한 도시가 어디 한둘일까마는, 우리는 특별히 몇몇 도시만 집중적으로 돌아다니는 '여행 스케줄'을 따로 골랐다. 그래서 이번에 여행할 나라는 체코, 오스트리아, 헝가리 딱 세 나라다. 도시 또한 체코의 프라하와 체스키크룸로프, 오스트리아의 잘츠부르크, 할슈타트, 비엔나, 헝가리의 부다페스트가 전부다.
여러 나라의 여러 도시를 돌아다니는 여행 상품도 많았지만 주마간산격으로 도시를 스치듯 지나치며 장거리를 부지런히 이동하는 게 도대체 무슨 재미가 있을까 싶어 일부러 애써 찾아봤더니 마침 알맞은 상품이 나와 있었다. 이번에 고른 여행상품은 최대인원을 열댓명으로 제한한다는 점도 좋았고, 유명 관광지의 한가운데서 묵을 수 있다는 점도 무척 매력적이었고, 무엇보다도 '자유시간'을 듬뿍 준다는 점이 좋았다.
- 동유럽 여행 코스(뮌헨 in, 프랑크푸르트 out)

(붉은 색 표시는 항공편으로 이동)
우리가 묵게 될 숙소들은 대략 프라하에서도 중심지역(카를교 근처), 체스키크룸로프, 할슈타트, 비엔나 중심, 부다페스트 중심 등인데, 특히 체스키크룸로프와 할슈타트의 동화 속 풍경 같은 곳에서 하루씩 묵을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 기대된다. 특히나 할슈타트는 작년 여름에 우리 일행이 직접 차를 몰고 다녀온 곳인데, 그 멋진 풍경 속에서 그리 오래 머물지 못한 아쉬움이 너무나 컸었기 때문에 이번 여행에서 '할슈타트에서의 저녁과 밤과 아침'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으리라는 기대로 너무나 가슴이 설렌다.
- 이번 여행과 작년 여행이 겹치는 경로. 점선 동그라미는 작년 여름 여행때 특별히 인상깊었던 여행지들

- 맨 왼쪽 동그라미는 장크트 길겐(St.Gilgen) 마을. 모짜르트의 어머니가 태어난 곳이니 모짜르트의 외가인 셈.
볼프강 호수 주변의 멋진 휴양지에서 지난해 여름에 우리 일행은 아주 예쁜 펜션에서 하루를 묵었었다.

- 두 번째 동그라미_우리가 묵었던 숙소에서 대략 20여 km쯤 떨어진 잘츠감머굿 호숫가의 그림같은 풍경

- 세 번째 동그라미_할슈타트 풍경. 이번 여행에서는 이 작은 마을에서 하룻밤을 보낼 예정.

- 여행자들의 로망이라 불리는 할슈타트를 찾은 낯선 여행자

작년에 독일을 중심으로 유럽 여행을 다녀오면서 얻게 된 여러 가지 소득 가운데 정말 '뜻밖의 소득'이 하나 있었다면 그건 바로 클래식 음악을 듣는 데 '독일 여행'이 굉장히 많은 도움이 되더라는 점이다.
사실 클래식 음악을 얘기하면서 '독일'을 빼놓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서양 음악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바흐도 독일인이고, 가장 위대한 작곡가로 추앙받는 베토벤 또한 독일 사람이니 달리 더 말해 무엇할까.
어쨌든 작년에 독일을 구석구석 누비고 온 덕분에 클래식을 들려주는 라디오 방송에서 곧잘 접하게 되는 '음악가들의 발자취'를 더듬는 얘기들을 들을 때마다 이런저런 도시와 장소들이 머릿속에 다시금 떠오르면서 그 얘기들이 정말 귀에 쏙쏙 들어오는 게 신기할 정도였다. 비록 작년 여름 여행때 정작 실제로 음악 공연을 접했던 건 딱 한 번 밖에 없었지만 말이다.
- 바그너의 오페라 〈뉘른베르크의 명가수〉의 무대인 뉘른베르크

- 뉘른베르크는 독일에서도 가장 맛있는 소세지를 맛볼 수 있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우리 일행은 다음 행선지인 라이프찌히로 서둘러 달려가야 했기 때문에 이 소시지를 달리는 차안에서 먹었다.

- 바흐가 살아생전 가장 오랫동안 활약했고 이제는 그의 영원한 안식처가 된 라이프찌히의 성 토마스 교회

- 라이프찌히를 떠나 우리 일행이 도착한 곳은 '엘베 강의 피렌체'로 불리는 음악 도시 드레스덴.
사진의 맨 오른쪽 건물이 바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드레스덴 젬퍼 오페라 극장이다.
이 극장의 위치를 제대로 알지 못해 우리 일행은 7월의 뙤약볕 아래 꽤나 많은 시간을 헤맸었다.
- 드레스덴 젬퍼 오페라 극장 정문 일부

- 드레스덴을 떠나 다다른 곳은 베를린. 수많은 거장들이 거쳐간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로 통하는 길
- 마침내 그 유명한 베를린 필하모니 홀까지 찾아왔지만 그저 외관만 구경하고 돌아설 수밖에 ...
- 여러 도시들을 거치고 난 뒤 우리 일행은 마침내 하이델베르크에 와서야 '고성 음악회'를 즐길 수 있었다.
이때 들었던 드보르작의 교향곡 8번 가운데 3악장은 정말 온 몸에 전율을 느낄 만큼 감동적이었다.

지난해 여름 여행에서 아쉬웠던 점이 어디 한둘일까마는 그 가운데 가장 큰 아쉬움은 아무래도 음악으로 유명한 여러 도시들, 그 가운데서도 특히 루체른과 잘츠부르크와 비엔나를 건너뛰었다는 점이다. 언제 또다시 갈 기회가 있을지도 모르는데 지척의 거리를 두고도 그런 도시들을 그냥 못 본 체 스쳐 지나가야 한다는 건 두고두고 후회스러울 만큼 여간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다행히 이번 여행때는 잘츠부르크와 비엔나도 충분히 여유롭게 둘러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체코의 프라하에서도 온전히 이틀밤을 묵을 정도로 여유있는 일정이어서 지난해 여름에 가졌던 아쉬움을 얼마쯤 달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부터 든다.
체코의 프라하는 드보르작이나 스메타나 뿐만 아니라 모짜르트에게도 매우 특별한 도시여서 평소에도 몹시 가보고 싶었던 곳이다. 그래서 내가 이번 여행을 앞두고 결코 빼놓아서는 안 되겠다 싶은 준비사항이 따로 하나 있었으니 그건 바로 그 유명한 음악 영화인 〈아마데우스〉를 '미리' 봐 두는 일이었다.(그런데 이상하게도 나는 여태껏 그 유명한 영화를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다. 도대체 왜 그랬을까. 가만히 생각해 보니 그 영화가 개봉되었을 때가 하필이면 내가 군에 복무할 때와 겹쳐서 그랬던 듯하다. 아무리 그렇더라도 그 이후에 얼마든지 그 영화를 볼 기회가 있었을 텐데, 여태 그 영화를 보지 못한 나도 참 어지간하다 싶긴 하다.)
이번에 마침 밀린 숙제 하듯이 영화〈아마데우스〉를 보고 나니 모짜르트의 걸작 오페라인 〈피가로의 결혼〉과 〈돈 조반니〉가 초연된 곳도 바로 프라하였다는 사실도 새롭게 알게 되었다. 모짜르트가 그의 조국인 오스트리아의 비엔나에서보다 체코의 프라하에서 더욱 열렬한 환영을 받았던 사실은 자주 들어서 알고 있었지만 모짜르트에게 프라하가 그 정도로 사랑받은 도시인 줄은 미처 몰랐다.
프라하는 비단 모짜르트에게만 특별한 도시도 아니다. 블타바가 포함된 연작 교향시〈나의 조국〉을 작곡한 스메타나는 물론 헝가리의 보헤미안 정서를 대표하는 음악들을 여럿 남긴 드보르작도 결코 프라하를 빼놓고는 이야기하기 어렵다. 게다가〈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쓴 밀란 쿤데라, 〈변신〉과 〈성(城)〉을 쓴 프란츠 카프카에게도 프라하는 '결코 떠날 수 없는 도시'이자 자신들의 삶과 작품의 무대 그 자체였다.
그토록 걸출한 인물들이 평생 동안 고스란히 그곳에서 살다가 묻힌 여러 이름난 도시들을 이번 여행을 통해 두루 직접 둘러볼 수 있게 된다는 사실만으로도 벌써 가슴이 부풀어 오른다. 더군다나 이번 여행을 앞두고 또하나 빼놓지 않은 '준비물'이 있었으니 그건 바로 음악의 본고장인 비엔나에서 직접 음악 공연을 볼 기회를 만드는 일이었다.
욕심 같아서는 빈 뮤지크페라인에서 모짜르트의 피아노협주곡도 들어보고 싶고, 칼스 성당에서 모짜르트의 레퀴엠도 직접 들어보고, 빈 슈타츠오퍼에서는 모짜르트의 피가로의 결혼, 돈조반니, 코지 판 투테까지 모조리 보고 왔으면 싶지만 그저 희망사항일 뿐이다. 비엔나에서 머무는 게 고작 이틀 뿐이다 보니 원하는 공연이 마땅한 게 없어서 하는 수 없이 빈 슈타츠오퍼를 구경할 겸 체네렌톨라를 예약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것도 아주 좋은 자리를 고르느라 거금을 들였다.

여기까지 쓰고 보니 이미 시간이 너무 많이 흘렀다. 정말 여행을 떠날 날이 코앞에 바싹 다가왔다. 이것저것 몇가지 얘기를 더 쓰고 싶지만 더 이상은 무리다. 이쯤에서 마무리해야겠다. 여행을 다녀 오지도 않은 사람이 '떠날 여행'에 대해 너무 많은 말을 늘어놓는 것도 흠이라면 흠이겠다. 여행을 다녀와서도 얼마든지 이야기를 풀어놓을 시간은 있을 테니 그 때 좀 더 알차고 풍성한 이야기를 꺼내 놓을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그럼 이만 총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