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더하기 삶 - 한국의 건축가 13인이 말하는 사람을 닮은 집
김인철 외 지음, 박성진 엮음 / MY(흐름출판)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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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집'이라는 공간은 더 이상 잠만 자는 공간이 아니다. 사람이 환경의 지배를 받는다는 것은 곧 '집'이라는 환경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 밖에서 시달린 몸이 빨리 가고 싶은 집인가, 아님 조금이라도 더 있다 가고 싶은가는 집안에 있을 사람과도 상관이 있겠지만, 어쨌든 '집'이 주는 편안함이 비중을 많이 차지할 것이다.

 

2. 이 책은 국내에서 내노라하는 13인의 건축가가 지은 집들에 대한 스토리다. [하우징 스토리]라는 방송 프로그램에서 다뤘던 건축가와 건축물을 재구성한 책이다. 진행자는 각 건축가들에게 묻는다. '좋은 건축이란?' 공통된 단어를 하나로 줄인다면, '삶'이다.

 

3. 사실, 이런 책은 불편하다. 난 어느 세월에 이런 집에 살아보나. 내가 이 땅에 살아가는 동안 그런 기회나 오게 될까? 그러나, 최근 이런 류의 책. 집과 관계되는 책들을 연이어 보게되는 것은 나름 이유가 있을 것이라 생각든다. 사람 일은 모르니까 마음 속에 그림이라도 그려보자.

 

4. 집을 하나의 작품으로 보고 싶다. 전원주택이 대부분이다. 그러니까, 주거 밀집 지역에 있는 집이 아닌, 호숫가 근처 또는 절벽 끝머리쯤이나 강가 등이다. 스치듯 그런 집들을 보며 자연과 잘 어우러진 집들을 보면 그 안에 사는 건축주나 건축가가 착한 사람으로 그려지나, 그렇지 않고 내 고집만 내세워 지은 집들을 보면 불편하다. 그러니까, 집이 너무 튀어도 안 좋다는 이야기다. 집이 주위 자연환경을 살려주고, 자연환경은 집을 더욱 집답게 만들어준다면 그만이다.

 

 

 

5. 다행히 이 책에는 그런 집들이 자주 눈에 들어온다. 책은 4챕터로 구성되었다. @ 집 더하기 자연-푸른 달빛이 흐르는 집. @ 집 더하기 이웃-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집. @ 집 더하기 작업-일이 왠지 즐거워지는 집. @ 집 더하기 쉼-게으름이 살아 숨쉬는 집.

 

6. 처음 등장하는 집은 '은빛 호수 위의 점 하나'로 소개된다. 겉보기엔 투박한 듯 해 보이나 호수를 포함한 주변 경관을 손상시키지 않고, 마치 처음부터 그리 자리잡고 있었던 듯 차분하다. 건축가의 말이다. "저에게 설계를 의뢰하는 많은 분들이 처음 만났을 때 대부분 '예쁜 집 지어주세요'라고 말을 꺼냅니다. 그러면 저는 '그건 당연하고, 거기에 멋을 더해야죠'라고 답합니다. 제가 말하는 '멋'이란 어디 멀리서 찾을 수 있는 특별한 것이 아니라 바로 그 집에 살 사람들의 일상에서 우러나오는 그들의 삶입니다. 공간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잘 담아내는 건축이 바로 좋은 설계 아닐까요?"

 

 

 

7. 많은 건축물 중에서 특히 눈길이 머문 곳은 건축가 김억중의 리모델링 하우스 무호재(無號齋)다. 애물단지 단무지 공장이 보물단지로 변신했다. 건축가 김억중은 우연히 공주 계룡산 자락을 지나다가 본 허름한 단무지 공장에 마음이 사로잡혔다. 시큼시큼 썩은 단무지 냄새가 코를 찌르고 쓰레기에 뒤덮여 폐허가 되어버린 그 공장을 마주하자마자 흙 속의 진주를 발견한 듯 신이 났다고 한다. 

 

 

 

 

8. 꽤 튼튼한 골조로 만들어진 단층의 노출콘크리트 구조물. 에라, 모르겠다, 그는 그 공장을 발견한 날 바로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다. 다 더해봐야 10여 곳 겨우 넘는 이웃집과 산자락 풍경이 고즈넉한 시골마을. 그 대단한 변신의 과정을 보면서 역시 건축가의 안목은 다르구나 하는 마음을 느낀다. 마음에 드는 구조다. 특히 서재가 정말 마음에 든다.

 

 

 

9. 사(買)두기 위한 집이 아니라, 사람이 살기(生)위한 집. 우린 그런 집에서 살다가야 정상이다. 사람이 건강하면 집도 건강해지고, 집이 건강하면 사람도 건강해진다. 크고 화려하고 전망이 좋다고 모두 좋은 집은 아닐 것이다. 아무리 조악한 환경일지라도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의 마음이 합해지느냐 흩어지느냐를 생각해본다. 죽을 때 갖고 갈수도 없는 집이기에 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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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공포 비채 모던 앤 클래식 문학 Modern & Classic
에리카 종 지음, 이진 옮김 / 비채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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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나와 너가 저지르고 사는 일은 크게 두 가지다. '뭐 그렇게까지?' 또는 '최소한 이렇게는 해야지!'이다. 70이 넘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매력적인 여성 에리카 종은 후자이다. 아무리 그래도 '이 정도는 쓰고 살아야지.'를 느낀다. 물론 그녀의 말이 아니고, 내 생각이다.

 

2. 자전적 소설을 읽을때는 특히 마음문을 활짝 열어줘야 한다. 쓰는 사람은 얼마나 힘들었겠는가. 아마도 썼다 지웠다 할 수도 있다. 이것 빼고 저것 빼다가 아무 것도 안 남자 그만 포기하고 다 쏟아놓았을 지도 모른다.

 

3. 이 책 비행공포(Fear of Flying)가 출간 된 것은 1973년이다. 올해 꼭 40년이라는 시간이 지나갔다. 지금 읽어도 '어허~' 하며 읽어야하는데 아무리 동,서양이 성(sex)과 적나라한 솔직함을 받아들이는 차이가 있을지라도 큰 반향을 일으켰음에 틀림없다. '전세계를 발칵 뒤집어놓았다'는 표현이 이해된다.

 

4. 책을 펼치자 도발적인 문장이 시선을 잡는다. "꿈의 학회 혹은 '지퍼 터지는 섹스'로 가는 길". 소설 속에서 이사도라라는 이름만 바뀐 작가는 빈으로 향하는 비행기에 타고 있다. 117명의 정신분석 전문의와 함께 한다. 그 중엔 작가의 두 번째 남편도 섞여있다. (써 놓고 보니 이 표현이 적절하다. 이사도라의 남편은 그 많은 남자들 중 한 사람일 뿐이다).

 

5.모름지기 작가는 관찰력과 상상력이 뛰어나야한다. 그 다음엔 표현력이 요구된다. 에리카 종은 이 모두를 갖추었지만, 특히 관찰력에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사람들에 대한 묘사. 그들의 내, 외면의 모습을 어찌 그리 섬세하고 리얼하게 묘사했는지 감탄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들이 모두 실존 인물들이라는 것이다. 에리카 종의 가족들, 친구들, 전 남편, 그녀와 사랑을 나눴던 남자들.('사랑'이라고 쓰고 '섹스'라 읽는다). 여전히 그녀는 세번 째, 네 번째 남편과의 결혼 생활을 낱낱이 담은 소설을 속속 출간하고 있다. 내 모든 것이 까발려지지 않기 위해선 그녀와 거리를 둘 일이다. 그녀의 남편들은 이를 각오하고 그녀와 결혼했을까. 얼떨결에 당했을까 궁금해진다.

 

6. 이 소설 속에 자리잡은 그녀의 남편은 베넷이다. 자유분방한 섹스 라이프를 추구하는 여인이 또한 결혼생활의 공백을 감당못하는 것도 아이러니 하다. 대담한 듯 하면서도 사실 이 여인은 여린 편이다. 포비아도 의외로 많다. "나는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종류의 공포를 갖고 있다. 비행기 추락, 성병, 유리가루를 삼키는 것, 식중독, 아랍인, 유방암, 백혈병, 나치, 흑색종...., 아무리 건강한 것 같아도, 통증이나 상처가 전혀 없어도, 성병에 대한 두려움을 떨쳐버릴 수 없다."

 

7. 그러나,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그녀가 진짜 두려워하는 것은 뜨거운 열정을 그녀의 몸 안에, 이야기하고 싶은 것을 마음 안에만 쟁여놓지 못하는 것이라는 것을 알아냈다. 그녀가 진짜 두려워하는 것은 '진실'이 외면되고 묻히는 것이다. 그녀에겐 '진상'으로 표현 될 수도 있는 그 진실. "진실을 말하는 건 위험하면서도 필요한 일이다. 내게 [비행공포]가 그랬다. 이 책을 쓰는 내내 나는 무척 두려웠고, 책이 출판된 직후에는 열렬한 찬사와 날선 비난을 동시에 감당해야 했다. 솔직함이 항상 인정받는 것은 아니며 때로는 그로 인해 감옥에 갈수도 있기에. 그러나 진실을 말하지 않는 작가는 오래갈 수 없다." _에리카 종

 

8. 최근 외국의 어느 여류작가(대학교수이기도)가 자신의 사생활을 적나라하게 노출한 책을 출간해서 화제가 된 적이 있다. 결혼도 했지만, 어느 유부남과의 사랑이야기를 가감없이 옮겼단다. 그녀도 비슷한 말을 했다. "나는 내가 겪은 일만 쓴다." 용감한 여인들이다.

 

9. 나는 이 책에서 에리카 종의 두 열정을 본다. 사랑에 대한 열정과 문학 즉, 글쓰기의 열정이다.   대학시절부터 시를 발표하여 이 소설이 발표되기 전 1971년 첫 시집 [과물과 식물] 등 다수의 시집을 펴냈다. "시인이나 소설가를 한 명씩 연구하면서 그들의 작품을 반복해서 읽고 그들이 어떻게 한 작품에서 또 다른 작품으로 변화해갔는지 연구했다. 여러 작가의 스타일을 몇 달 동안 모방해보기도 했다." 그녀의 문학에 대한 열정이 묻어 있는 부분이다.

 

10. 소설에는 국내 웹서점 어느 곳에서 틀림없이 걸어 놨을지 모를 금기어가 자주 튀어나온다. 그래서 못 옮겼다. 옮긴이는 이런 말을 했다. "고백하건대, 이사도라가 언급하는 작품들, 작가들, 사건들을 조사하고 각주를 다는 것보다 더 힘들었던 건 거칠고 대범한 그의 언어를 적절한 수위의 한국어로 옮기는 작업이었다." 말미에 작품 해설겸 추천사를 쓴 스티븐 캐프너 교수는 이 책이 에리카 종의 [비행공포]를 제대로 옮긴 최고의 번역본이고 유일하게 읽을 만한 번역본이라는 말을 했다. 이에 적극 공감한다. 80년대 중반 읽었던 조악한 번역본(일본책을 중역한 듯한)을 접했던 기억에 비하면 이 책은 진짜 제대로 된 책이다.  참, 그리고 그녀가 이 책에서 겪은 현재 상황은 20대 후반의 나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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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그 본성과 세계에서의 위치 (천줄읽기) 지만지 고전선집 608
아르놀트 겔렌 지음, 이을상 옮김 /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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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살아있는 생명체가 발생시키는 미세한 전기장을 감지하는 능력을 먹이사냥과 바다 항해에 활용하는 귀상어는 과연 어떻게 이런 능력을 발휘하는 걸까? 열을 볼 수 있는 능력으로 어둠 속에서도 위협적인 사냥꾼인 비단구렁이와 살무사는 어떻게 이런 육감이 작용하는 걸까? 향유고래는 동물의 왕국에서 가장 큰 소리를 내며 깊은 바다에서 오징어를 사냥하는데 소리로 어떻게 시각 능력을 발휘하는 걸까?

 

2. 인간의 존재감을 설명하기 전에 동물의 초감각을 먼저 생각해봤다. 인간이 위와 같은 능력을 갖고 있다면, 아마도 초인이라 부를 것이다. 이 책의 저자인 겔렌은 철학의 긍극적 목적을 인간학적 원리에 입각해 근대 서구 기술 문명의 본성을 해명하는 것에 두고 있다.

 

3. 따라서 저자는 인간학적 원리의 정립에 초점을 맞춘다. 인간학적 원리의 정립을 위해 저자는 먼저 인간과 동물의 생물학적인 근본 차이를 규명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동물은 그 종(種)에 특수화된 기관이 발달되어왔다. 따라서 동물은 일정한 환경에 대한 자연적 적응이 언제나 용이하게 수행되도록 스스로 형성되고 변화된다.

 

4. 그렇다면, 인간은 어떠한가. 사실 인간은 생존을 위한 모든 '기관적인 수단이 결여'된 상태이다. 자연을 지배하는 것같이 보이지만, 자연 앞에서 '생존'하기 위한 시스템이 매우 미약하다. 자연이 부여한 고유한 무기도 없고, 공격과 방어는 물론 도피를 위한 기관도 허약하다.

 

5. 그렇다면, 감각일까? 예지능력일까? 이러한 점이 동물들보다 뛰어나다고 볼 수 있을까? 헤르더는 이러한 점에서 인간은 '결핍 존재'라고 했다. 자연적 삶의 조건을 구성하는 유기적 기관을 갖추고 태어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저자 겔렌은 이러한 테제를 이어받고 있다. 그 역시 인간에게는 동물이 자연 속에서 발전시켜 온 감각과 본능이 갖춰져 있지 않다는 점에서 인간을 '결핍 존재'로 규정한다.

 

6. 그렇다면 인간은 왜 아무런 기관적 장비도 갖추고 태어나지 못한 것일까? 그 이유에 대해 겔렌은 인간에게는 감각과 본능이 상실된 것이 아니라 '퇴화'되었다고 대답한다. 즉 그것은 유구한 진화사를 통해 동물이 자신의 합목적적 활동에 적합하게 기관을 특수화했듯이, 인간도 합목적적 활동을 통해 자신의 기관을 특수화해 온 결과, 본능이 퇴화되었다는 것이다. 겔렌이 아무래도 무리수를 드는 느낌이 드는 대목이다. 생물학적 차원에서 퇴화되는 것은 반대로 발달되는 기능이 따르기 마련인데, 그렇다면 발달된 부분은 무엇인가?

 

7. 겔렌은 이 점에 대해 이렇게 언급하고 있다. "인간은 자연적인 '무능력자'임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지구 전역에 걸쳐 계속 번식하고 자연을 정복해 가는가? 그것은 바로 인간만이 미래를 예측할 수 있고, 계획된 공동 활동의 성과를 토대로 하여 살아가기 때문이다." 즉, 인간은 자연조건을 자의적으로 구성하고, 자연의 예측과 변경을 통해 생존을 위한 기술과 수단을 마련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인간 활동이 자연적 활동과 구별되는 것이다. 이를 '문화'라고 부른다. 겔렌에 의하면 문화란 인간의 활동을 통해 변경시킨 야성적 조건들의 총체다.

 

8. 이 책을 읽다보면, 유사한 제목과 테제의 책이 오버랩된다. 막스 셸러의 [우주에서 인간의 위치 / 지만지,2012]이다. 두 책의 제목도 매우 흡사하다. 셸러와 겔렌의 공통점은 두 사람 다 독일 태생이라는 것이다. 셸러는 겔렌보다 꼭 30년 전에 태어났다. 셸러가 세상을 떠나기 한 해 전에 겔렌은 철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으니까 셸러의 입장에서 겔렌은 아들뻘인 후학이다. 겔렌은 이 책의 테마를 셸러에게서 얻었다고 짐작된다.

 

9. 예상했던대로 겔렌은 이 책에서 셸러를 언급한다. 다짜고짜 겔렌은 셸러의 논리를 '선입견'이라고 부른다. 셸러가 살아 있으면 이를 어떻게 받아 들였을지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셸러는 '철학적 인간학'의 창시자로 기록된다. 칸트는 일찍이 철학의 근본 물음을 "인간이란 무엇인가"로 설정했지만, 셸러는 더 나아가 철학적 인간학이 종래의 '인간론'과는 분명히 다르다고 선을 긋고 있다.

 

10. 그렇다면 겔렌은 셸러에게 어떤 논리로 딴지를 거는 걸까? 셸러는 '지능'이 동물과 인간을 본질적으로 구별하는 징표인지 아닌지에 대한 의문을 던지며 스스로 답한다. 셸러의 말이다.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새로운 원리는 모든 생명체 일반에 대립해 있는 원리이며, 우리가 삶이라고 부르는 모든 것의 바깥에 서 있는 원리인 정신이다. 정신의 본질은 실존적으로 풀려나 있음, 유기적인 것과의 의존성에서 분리되어 있음이다. 이러한 정신을 지닌 존재는 더 이상 충동에 얽매여 있지도 않고, 환경에 얽매여 있지도 않다. 정신을 지닌 존재는 환경으로부터 자유롭고, 세계 개방적이다."

 

11. 겔렌의 반론이다. "셸러의 학설 속에는 말하자면 본능, 습관, 실천적 지능, 인간적 지능이라는 하나의 단계적 도식이 들어 있는데, 이것은 일반적으로 범하는 편견이다. 그 이유는 두 가지 가능성 때문이다. 그 하나는, 이미 동물도 가지고 있는 실천적 지능과 인간의 지능 사이에는 단지 점진적인 구별만 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동물에서 인간에 이르는 연속적인 이행이 가능해지고, 인간은 동물적 '특성'을 풍부하게 지니고 있거나 정교화하고 복잡하게 만듦으로써 정의 될 수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이것은 고전적인 계통발생론에 따른 것이다. 다른 하나는, 동물과 인간을 구별해주는 본질적으로 인간적인 것은, 단순히 지능이라는 특수한 소질 속에서 찾아 질 수 있는 '정신'이라는 어떤 특수한 성질이라는 것이다. 정신은 실천적 지능에 이르기까지 모든 선행적 성취에 대립한다. 그리하여 정신은 탈자연화되어 있다."

 

12. 이 책에서 겔렌이 펼치는 논지 속 부각되는 키워드 중 '부담 면제'에 시선이 머문다. 다시 동물과 인간을 대비할 수 밖에 없다. 동물은 비록 환경에 의존적이라 할지라도 환경에 의해 생존을 보호받고 있다. 이에 반해 어떤 보호막도 부여받지 못한 인간의 세계 개방성은 자연적 삶의 조건에서는 엄청난 삶의 부담으로 작용할 수 밖에 없다. 따라서 겔렌은 이러한 점이 '근원적으로' 인간이 짊어 질 수 밖에 없는 '부담'이라는 것이다. 내겐 두 사람의 논지를 충분히 이해하는 것이 더 없는 '부담'으로 남는다. 두 사람의 책을 함께 읽으면 '우주에서, 세계에서 인간의 본성과 그 위치를 숙고해보는 계기가 되리라 생각든다. 나는 좀 더 두 사람과 대화를 나눠봐야겠다. 따로 또 같이 불러서 이야기를 좀 더 들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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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가의 연인들 - 소설로 읽는 거의 모든 사랑의 마음
박수현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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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페이스북과 같은 SNS의 역기능에 대해 염려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순기능도 많다. 그 중에서 뉴스피드에 올라오는 페북 친구들의 일상의 모습에서 나의 모습을 발견하기도 한다. 나의 못난 모습을 보며 화가나고, 실망스럽다가도 타인의 살아가는 모습을 보며 오십보 백보구나 하며 위로를 받는다.

 

2. 시선을 문학 작품으로 돌리면 더욱 다양하다. 작품안에서 나의 모습, 너의 모습을 보게 된다. 작품 속 인물들의 갈등을 보며 그들이 그 상황 속에서 웃고 울고 하면서도 풀어나가는 것을 보면 뭔가 답을 얻는 느낌이다.

 

3. 이 책의 저자 박수현은 소설가를 꿈꾸던 이십대, 이른바 세계명작을 읽으며 자존감을 얻었고 소설의 가치를 발견했다고 한다. 슬퍼하지 않는 기술도 배웠다고 한다. 문학이 지닌 치유의 힘을 깊이 깨달은 셈이다.

 

4. 저자는 7년 동안 이 책을 궁리했다고 한다. 문학작품 속 사랑의 다채로운 면면을 이야기하고 있다. '소설로 읽는 거의 모든 사랑의 마음'이라는 부제가 전해주는 느낌이 있듯이, 문학작품뿐 아니라 모든 예술 작품의 영원한 인기 테마인 '사랑'을 들여다본다.

 

5. 그대는 '사랑'에 대해 얼마나 아는지? 내겐 '알다가도 모를 일'이 사랑이다. 어쩌면 사람은 '사랑'이 뭔지 알기위해 부딪히고, 깨지고, 상처받고, 위로받고, 주저앉았다 일어났다, 죽었다 살았다 하기도 하는 것 같다. 아니 진짜 죽어버리는 경우도 있다. 그 망할 '사랑' 때문에 죽어간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6. 저자는 프롤로그에서 이런 표현으로 서장을 열고 있다. '삼킬수도 뱉을수도 없는 애물단지, 사랑 그리고 소설'. 연인들의 고뇌와 곤궁을 담았다. 이 책에서 사랑의 장구한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지만, 결국 다음 세 가닥으로 묶인다. 첫째, 신경증이나 광기에 가까운 기이한 연인의 심리. 둘째, 판타지를 벗긴 사랑의 누추한 면모 혹은 인문학적 통찰. 셋째, 사랑의 기적 또는 기적을 행하는 방법.

 

7. 저자는 이 책이 사랑의 비극적 양상에 주목하는 이유는 '보다 잘 사랑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사랑 때문에 비탄에 빠진 사람은 그 사랑의 부정적 면모를 두루 알아야 위로받고 자신을 치유할 수있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다양한 연인의 고뇌를 발굴하고, 그 본색을 샅샅이 캐려 했다. 아픈 마음의 대륙을 가능한 넓고 깊게 탐사하려 했다."

 

8. 각 이야기의 서두에는 민, 경, 희, 연, 도 등 익명의 인물들이 등장한다. 그들은 소설 주인공이 아니라, 독자다. 연애 때문에 고통받는 독자다. 그들은 소설에서 비슷한 증상(?)을 발견하고 공감하거나 위로받거나 깨달음을 얻는다.

 

9. 책에는 12권의 국내외 문학작품이 소개된다. 그 중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들여다본다. 그 전에 만나는 남자마다 자신을 충분히 사랑하지 않기에 '난 저주 받았어'소리치기도 하든 '희'라는 여인이 사례로 등장한다. 희는 남녀관계가 도달할 수 있는 정서적 오르가즘을 믿는다. 서로에게 열정적으로 빠져들어서 이례적인 헌신을 베풀고 희로애락을 공유하며 죽기전에 '당신만을 사랑했어'라고 고백할 수 있는 관계가 가능하다고 믿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한 번도 그 꿈이 이뤄지지 못할 것 같아 불안하다 못해 절망이다.

 

10. 쿤데라에 따르면 "하나의 사랑이 잊지지 않는 사랑이 되기 위해서는 성 프란체스코의 어깨에 새들이 모여 앉듯 첫 순간부터 여러 우연이 합해져야만 한다." 우연이 반복되면 운명이라는 상투어도 있다. 사랑을 차지하기 위해 우연을 가장한 접근도 필요하긴하다. "사랑은 꽉 짜인 필연의 그물을 벗어나서 짐작치 못했던 돌발적인 기적을 행할 수 있다. 우연성으로, 사랑은 범속한 일상성에 대항하는 힘을 얻는다. 우연은 신의 영역이고 필연은 인간과 사물의 영역이다."

 

11. 사랑도 당연히 인간과 인간사이의 관계이다. 좀 더 내밀하고 복잡한 그 무엇이 개입되긴 하지만, 이 책에 나오는 여러 인물들을 통해 인간관계를 위한 팁을 얻는 면도 있다. 읽어볼까 말까 망서리는 독자들에게 저자는 이렇게 권유한다. "세상은 내 뜻과 다르고 삶은 여전히 막막하며, 과거에 나는 많은 것들을 몰랐고, 그 무지를 깨닫는 일은 희열이자 고통이지만, 글쓰기는 행복하다. 이 책을 계기로 사람들이 열정을 수치스러워하지 않고, 사랑을 쉽게 그만 두지 않기를 소망한다." 글쓰기는 아무나 할 수 없는 작업이지만, 읽는 것은 아무나도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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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공원정대
배상민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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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별 기대없이 바람이나 쐴까 하고 나섰던 짧은 유람선 여행에서 돌고래떼를 만난 듯 반갑다. 배상민의 소설이 주는 즐거움이다. 그러나, 그저 재미로만 읽기엔 톡 쏘는 강한 맛이 있다. 돌고래가 솟구치며 뿌리고 간 물벼락을 맞은 듯 싸~하다.

 

2. 이 작가의 작품은 처음 만난다. 1976년 경남 진해 태생인 작가는 2009년 자음과모음 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한다. 단편소설 [어느 추운 날의 스쿠터]로 2012년 '젊은 소설'에 선정되었고, 이 작품 외에 장편 소설 [콩고, 콩고]가 있다.

 

3. 책에는 8편의 단편이 실려있다. 소설의 공통점은 청년이 주인공이라는 점이다. 그러나, 그들의 삶은 밝지도 화려하지도 않다. 전혀 그 반대이다. 그러나, 그들은 어떻게든 조악한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친다. 때론 죽는 것이 사는 것보다 쉬울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살아야한다. 숨이 붙어 있는 한 열심히 살아가야만 한다.

 

4. 8편 중 몇 편만 요약하며 느낌을 적어본다.
'안녕 할리' - 바이커들의 로망일 수도 있는 할리 데이비슨으로 시작해서 할리로 끝난다. 할리가 주인공인 듯 하지만, 사실은 오로지 출세지향적인 사회구조와 욕심에 제동을 걸고 있다. 주인공은 삼십이 년간 엄마에게 자랑스러운 아들이었다. 엄마는 공부를 잘 하는 것은 물론, 부모 말에 토를 달아본 적이 없는 착한 아들이라고 온 아파트에 자랑하고 다녔다. 그런 아들이 양아치꼴을 하고 나타난다. 모자간의 합의된 목표인 S전자에는 못 들어가고 L전자에 들어갔지만, 그마저도 부서장 책상에 기세좋게 사표를 던지고, 그 위에 담뱃불까지 끄곤 회사를 나왔다. 그리곤 오토바이 가게를 열었다.

 

5.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잘 되었으면 좋았을텐데 그렇지 못했다. 결말이 아주 안 좋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설 속 작가의 표현력은 참 맛있다. "내가 커서 뭐가 되어야 하는지는 미리 정해져 있었다. S대를 나와 S전자 정도 되는 대기업을 들어가는 것이 기본적인 삶의 방향이었다." S자가 빈번하게 등장한다. 작가는 S중독 환자들에게 일침을 가하고 있다. S대, S전자, S라인, Sexy 까지..나아가선 이 모든 것을 통합한 Standard가 있다. 주인공은 삐딱선을 타기 시작한다. 좀 늦게나마 반란을 일으킨다. 주인공의 S는 오직 Sex와 Sports뿐이다.

 

6. '조공원정대' - 책을 통해 여러가지를 알고 배운다. 조공원정대를 알게 된다. '조공'이라는 건 팬들이 좋아하는 스타에게 선물을 갖다 주는 것을 뜻한다. 더불어 '조공원정대'는 좋아하는 스타를 찾아가서 직접 선물을 주고 오는 팬들을 의미한다. 주인공은 친구들을 부추겨 난생처음으로 서울을 향한다. 목표지점은 '소녀시대'다. '소녀시대'를 만나서 '루왁커피T10'을 전해줘야한다. 커피는 주인공의 여자친구가 끔찍히도 아까는 것을 몰래 훔쳐왔다. 아무리해도 소녀시대에게 전해줄 조공물이 준비가 되지않았기 때문이었다.

 

7. 주인공과 친구들 역시 일그러진 이 사회가 만들어낸 젊은 초상들이다. 그들은 소녀시대에게 선물도 전해주고 가까이서 직접 보고 싶다는 일념이었지만, 어느 덧 서울 생활에 이끼처럼 내려 앉는다. 레스토랑 점원으로, 나이트 클럽 웨이터 보조로 그렇게.. 주인공을 통해 2009년 미국에서 벌어진 서브프라임 모기지론 부실 사태로 인한 글로벌 경기 침체가 이 나라 이 땅에 영향을 준 부분이 언급된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러한 외풍에도 전혀 상관이 없는 사람들이 나라의 중요 정책을 주관한다는 점이다. 그들은 아쉬울 것도 없고, 배고플 일도 없고, 죽고 싶은 마음도 들지 않으니 참 웃기는 세상이다.

 

8. '미운 고릴라 새끼'에선 보노보 원숭이가 조연으로 등장한다. 유인원에 가장 가깝다는 보노보. 조국 교수는 이 보노보를 타이틀로 [보노보 찬가]를 썼다. 침팬지가 우세한 정글 자본주의사회에서 인간으로 살아가기 위한 삶의 지혜를 생각해보자는 단상을 적었다. 작가도 보노보의 일상을 들여다보면서 뭔가 배울점이 있지 않겠냐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그들의 코드는 차별없는 평화다.

 

9. 일부러 리뷰를 쓰기전에 책의 말미에 붙은 문학평론가 이경재의 해설을 안 봤다. 내 느낌이 우선이기 때문이다. 지금 보니, 이 해설의 소제목이 '우리 시대의 디오게네스'라고 적혀있다. 배상민 작가를 두고 하는 말이다. 부조화가 키워드란 이야기도 한다. 이경재의 표현을 그대로 옮겨본다. "정치적 시선의 맹목을 아우르는 인류학적 시선의 공허를 파고드는 정치적 시선이 서로 깊은 관계를 맺은 결과이다." 말은 어렵지만, 뜻은 간단하다. 웃기는 짧은 이야기 속에 작가가 전하고자 하는 분명한 메시지가 있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어쨌든 이 작가의 글은 참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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