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공원정대
배상민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3년 10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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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별 기대없이 바람이나 쐴까 하고 나섰던 짧은 유람선 여행에서 돌고래떼를 만난 듯 반갑다. 배상민의 소설이 주는 즐거움이다. 그러나, 그저 재미로만 읽기엔 톡 쏘는 강한 맛이 있다. 돌고래가 솟구치며 뿌리고 간 물벼락을 맞은 듯 싸~하다.

 

2. 이 작가의 작품은 처음 만난다. 1976년 경남 진해 태생인 작가는 2009년 자음과모음 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한다. 단편소설 [어느 추운 날의 스쿠터]로 2012년 '젊은 소설'에 선정되었고, 이 작품 외에 장편 소설 [콩고, 콩고]가 있다.

 

3. 책에는 8편의 단편이 실려있다. 소설의 공통점은 청년이 주인공이라는 점이다. 그러나, 그들의 삶은 밝지도 화려하지도 않다. 전혀 그 반대이다. 그러나, 그들은 어떻게든 조악한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친다. 때론 죽는 것이 사는 것보다 쉬울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살아야한다. 숨이 붙어 있는 한 열심히 살아가야만 한다.

 

4. 8편 중 몇 편만 요약하며 느낌을 적어본다.
'안녕 할리' - 바이커들의 로망일 수도 있는 할리 데이비슨으로 시작해서 할리로 끝난다. 할리가 주인공인 듯 하지만, 사실은 오로지 출세지향적인 사회구조와 욕심에 제동을 걸고 있다. 주인공은 삼십이 년간 엄마에게 자랑스러운 아들이었다. 엄마는 공부를 잘 하는 것은 물론, 부모 말에 토를 달아본 적이 없는 착한 아들이라고 온 아파트에 자랑하고 다녔다. 그런 아들이 양아치꼴을 하고 나타난다. 모자간의 합의된 목표인 S전자에는 못 들어가고 L전자에 들어갔지만, 그마저도 부서장 책상에 기세좋게 사표를 던지고, 그 위에 담뱃불까지 끄곤 회사를 나왔다. 그리곤 오토바이 가게를 열었다.

 

5.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잘 되었으면 좋았을텐데 그렇지 못했다. 결말이 아주 안 좋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설 속 작가의 표현력은 참 맛있다. "내가 커서 뭐가 되어야 하는지는 미리 정해져 있었다. S대를 나와 S전자 정도 되는 대기업을 들어가는 것이 기본적인 삶의 방향이었다." S자가 빈번하게 등장한다. 작가는 S중독 환자들에게 일침을 가하고 있다. S대, S전자, S라인, Sexy 까지..나아가선 이 모든 것을 통합한 Standard가 있다. 주인공은 삐딱선을 타기 시작한다. 좀 늦게나마 반란을 일으킨다. 주인공의 S는 오직 Sex와 Sports뿐이다.

 

6. '조공원정대' - 책을 통해 여러가지를 알고 배운다. 조공원정대를 알게 된다. '조공'이라는 건 팬들이 좋아하는 스타에게 선물을 갖다 주는 것을 뜻한다. 더불어 '조공원정대'는 좋아하는 스타를 찾아가서 직접 선물을 주고 오는 팬들을 의미한다. 주인공은 친구들을 부추겨 난생처음으로 서울을 향한다. 목표지점은 '소녀시대'다. '소녀시대'를 만나서 '루왁커피T10'을 전해줘야한다. 커피는 주인공의 여자친구가 끔찍히도 아까는 것을 몰래 훔쳐왔다. 아무리해도 소녀시대에게 전해줄 조공물이 준비가 되지않았기 때문이었다.

 

7. 주인공과 친구들 역시 일그러진 이 사회가 만들어낸 젊은 초상들이다. 그들은 소녀시대에게 선물도 전해주고 가까이서 직접 보고 싶다는 일념이었지만, 어느 덧 서울 생활에 이끼처럼 내려 앉는다. 레스토랑 점원으로, 나이트 클럽 웨이터 보조로 그렇게.. 주인공을 통해 2009년 미국에서 벌어진 서브프라임 모기지론 부실 사태로 인한 글로벌 경기 침체가 이 나라 이 땅에 영향을 준 부분이 언급된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러한 외풍에도 전혀 상관이 없는 사람들이 나라의 중요 정책을 주관한다는 점이다. 그들은 아쉬울 것도 없고, 배고플 일도 없고, 죽고 싶은 마음도 들지 않으니 참 웃기는 세상이다.

 

8. '미운 고릴라 새끼'에선 보노보 원숭이가 조연으로 등장한다. 유인원에 가장 가깝다는 보노보. 조국 교수는 이 보노보를 타이틀로 [보노보 찬가]를 썼다. 침팬지가 우세한 정글 자본주의사회에서 인간으로 살아가기 위한 삶의 지혜를 생각해보자는 단상을 적었다. 작가도 보노보의 일상을 들여다보면서 뭔가 배울점이 있지 않겠냐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그들의 코드는 차별없는 평화다.

 

9. 일부러 리뷰를 쓰기전에 책의 말미에 붙은 문학평론가 이경재의 해설을 안 봤다. 내 느낌이 우선이기 때문이다. 지금 보니, 이 해설의 소제목이 '우리 시대의 디오게네스'라고 적혀있다. 배상민 작가를 두고 하는 말이다. 부조화가 키워드란 이야기도 한다. 이경재의 표현을 그대로 옮겨본다. "정치적 시선의 맹목을 아우르는 인류학적 시선의 공허를 파고드는 정치적 시선이 서로 깊은 관계를 맺은 결과이다." 말은 어렵지만, 뜻은 간단하다. 웃기는 짧은 이야기 속에 작가가 전하고자 하는 분명한 메시지가 있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어쨌든 이 작가의 글은 참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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